[레비스트로스의 숲]세 번째 시간 후기

어때
2024-04-03 21:08
113

[슬픈 열대]1~2부를 읽고

 

시간이 거듭될 수록 숲은 깊어지고, 나무는 풍성해진다.

 

드디어, 레비스트로스의 숲으로, 열대로, 브라질로 떠나는 시간. 

때는 1930년 대, 우리는 레비스트로스가 그랬듯이 화물여객선 1등칸의 승객이 되어 모험을 떠난다. 사유의 바다로.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고,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하지만 지금 여행기를 쓰려고 한다'는 그의 역설은 마치 그가 감당해야 했던 모험의 위험과 가치를 대변하는 듯하다. 여러 해에 걸친 각고 끝에 미지의 상태로 있던 사실들을 밝혀내는 학문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그 속에 담긴 증언의 가치를 판단하도록 안내하는 민족학의 무게를 이렇게 덤덤히 표현해낸다. 

 

선상에서 만난 '천민'빅토르 세르루에 대한 '특권자'레비스트로스의 관찰은 여러 식구들(세미나 식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조심스럽고 부자연스러운 태도에다가 수염없는 얼굴, 섬세하게 생긴 이목구비, 그리고 낭랑한 목소리의 세르주 같은 문화유형이 러시아에서는 혁명가로서의 경력 가운데서 형성된 것일지 몰라도 프랑스에서는 옛날부터 파괴적인 활동과 결부시켜 보는 생명력의 충일이나 남성적인 기질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적 기능이 집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그의 예에서 우리는 인류학자로서의 레비스트로스의 면밀함을 들여다보고 있다. 또한 지난 책에서 언급되었던 몸테크닉과도 결부시켜 이해해보려 한다.

 

과연, 그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탐구하고자 하였을까? 

그는 어떤 상황에 담긴 진실이 나날의 관찰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분류를 통한 증류 속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배운다. 민족학자로서 그는 가장 성실한 사람들에게서도 다만 의식하지 못할 뿐인 어떤 과정을 통하여 기억을 추려내고 걸러서, 실제로 체험한 것을 평범한 이야기로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현대의 조미료없이.

 

많은 북아메리카 부족들 사이에서,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사춘기에 달했을 때 겪어야 하는 시련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기 위해 몇 주 또는 몇 달 간 집단으로부터 격리되었던 젋은이는 어떤 힘을 마련해서 돌아오게 된다. 그 힘의 마법적 특성에 대해 우리 식구들의 이야기가 다양한 방면으로 이어진다. 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고, 그리하여 탐구하게 된 힘이 결국 무엇을 증명하게 될 지 궁금하다.

 

 [슬픈 열대]는 서로 다른 종류의 텍스트가 동시에 발생해서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같은 층위에서 존재하면서 상호간섭하는, 여러 권의 책이라고 미국의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는 소개한다. 여행기인가 싶으면, 철학적인 사유가 담겨있고, 일기처럼 쓰여지다가도 인류학적인 탐색들이 가득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엔 함정이 있다.  브라질로 가는 선상에서 그가 묘사하는 바다와 배, 빛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과 바다에 대한 묘사, 해가 떨어지는 모습. 그가 표상에서 느끼는 여러 아름다운 묘사들을 우리는 편히 바라보지 못하고, 분석하려 든다. 직업병처럼. 표면의 심층으로 들어가려고만 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레비스트로스의 글이 가지는 매력이고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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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떠났고, 우리는 바다 한 가운데에 있다. 앞으로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람이 불어닥치고, 표류해도 우리는 우리 서로를 구해줄 우리가 있기에, 

이 모험은 떠나봄직하다.

 

(2명이 나누어 발제했고 내용이 많았는데, 후기로 요약하기엔 부족함이 많아요. 우리 식구들이 채워주시길~~)

 

댓글 7
  • 2024-04-04 00:06

    세미나는 시작했고,
    우린 텍스트 한 가운데에 있다.ㅎㅎ
    이 극한 모험의 세계에서
    우리가 우리를 구할수 있을까?
    라고 물으신다면
    어때님의 대답은 당근 예~~~쓰^^
    어때님 후기 보면 ㅋㅋㅋ
    <슬픈 열대>다들 엄청 읽고 싶어할듯요~~

  • 2024-04-04 00:19

    -시멘트에 묻힌 폴리네시아 섬들은 남쪽 바다 깊이 닻을 내린 항공모함으로 그 모습을 바꾸고, 아시아 전체가 병든 지대의 모습을 띠게 되고, 판자집거리가 아프라카를 침식해 들어가고, (…) 알려지지 않았던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낸 서양문명 최대의 고명한 작품인 원자로의 경우처럼, 서구의 질서와 조화는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 막대한 양의 해로운 부산물의 제거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행이여, 이제 그대가 우리에게 맨 먼저 보여주는 것은 인류의 면전에 내던져진 우리 자신의 오물이다.-p140
    산업문명에 대한 지독한 증오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다니…워~~~~
    지금 같았으면 레비스트로스는 딱 입틀막!!

  • 2024-04-04 06:51

    흐흐흐 분석하려고만 했던 저를 급반성합니다^^
    이렇게 세미나를 알흠답게 들려주는 문학적인 후기라니요?!
    세미나가 진행될수록 다들 ‘본색’을 마구 드러내시네요:).
    레비의 선상 묘사는 어때 쌤처럼 했어야지, 넘 과했어요ㅋㅋㅋ
    자신의 언어로 세미나에 색깔을 입혀 매력적인 후기를 들려주셔 부럽고 감사합니다^^

  • 2024-04-04 11:16

    "우리는 우리 서로를 구해줄 우리가 있기에" 계속 이 혼돈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을 내 봅니다.
    어때님 후기 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헤매면서 슬픈 열대를 다시 집어들어요.
    내일 만나요!

  • 2024-04-04 11:32

    셈나 식구로서 후기가 참 뿌듯하네요~
    까칠한 레비스트로스 선생님의 슬픈 열대로의 여행.. 혼자서는 볼 수 없을 것들을 함께하니 보게된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감사해요~~

  • 2024-04-04 22:11

    레비스트로스는 해가 지는 것을 '시작과 중간과 끝이 완전하게 재현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새벽은 하루의 시작에 지나지 않지만, 황혼은 하루의 반복'이다. 심쿵했슴다^^
    어때쌤 후기 재미나게 잘 읽었어요!

  • 2024-04-06 06:37

    어때님 감사해요~ 레비스트로스가 바라보는 장면 .. 그 묘사 부분을 읽으면 회화를 보는것 같아요. 한곳에 있는 곳에 가만히 주목하는 레비스트로스가 저는 좋아질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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