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11회차 후기 <소년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토토로
2024-02-27 15:46
305

1. 설렘 혹은 몽상

 

성심강림절 연극이 열리던 날 밤

(The night of the Whitsuntide play)

벨비디어 학교의 우수한 학생 스티븐은 연극에서 주연을 맡게 된다.

가족들, 교단 관계자들 등등 많은 이들이 그 연극을 보러 올것이다.

그치만 그 날 밤 스티븐이 제일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그녀(Her)이다.   2년 전 파티에서 처음 만나 반해 버렸고, 그 날 밤 같이 트램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나눈 대화에 잔뜩 설레임을 주었던 그녀. 사실 알고보면 별다른 '썸씽'은 없었지만 말이다.

썸씽은 없었지만 스티븐은 그녀를 그리며 2년간 시를 쓰고, 몽상(reveries)을 꾸었으며, 거리를 헤메지않았던가.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 그 앞에서 스티븐은 충만한 감정으로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연극은 성공리에 끝났다.

이어서 쏟아지는 박수갈채. 그러나 스티븐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만나는 것.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몽상에서 그리던 그녀를 다시 만난다니 얼마나 설레는가 말이다.

 

 

<더블린 사람들> 단편 <애러비>의 주인공 '나'. 그의 마음도 온통 기대와 설렘이 한 가득이다.  수업시간 교과서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온통 옆집 누나 생각 뿐이다.  누나에게 줄 선물을 사기위해 한 번도 가본적 없는 아랍 박람회장에 간다는 것도,  거기에서 산 선물로 누나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란 것도...생각만 해도 벅찬 일이다.

 

2. 현실자각 혹은 에피파니

 

<애러비>의 '나'는 기대를 잔뜩 품고 간 아랍 박람회가 사실은 별 거 없다는 것, 그리고 상인들에게 조차 자신은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누나를 향했던 자신의 마음, 그 마음이 누나로부터 어느정도 조롱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현실인식에  '나'는 이글이글 분노를 느낀다.  동시에 허영심이 자신을 애러비로 이끌었다는 것을 지각하게 된다.

Gazing up into the darkness I saw myself as a creature driven and derided by vanity.

 

 

다시 <젊은 예술가의 초상> 성심강림일 연극의 스티븐. 연극이 끝나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와 보니 그녀는 없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지인들 뿐이다. 기다릴 줄 알았던 그녀는 벌써 집에 간 건가? 나만 혼자 기대했던 건가?

분노의 증기(열받으면 스팀이 나오는 건 너 나 없이 똑같다^^), 짓이겨진 허브향처럼 강렬한 향이 나는 분노의 증기가 눈 앞에서 치~~~익! 뿜여져 올라가는 기분이다. 

자존심은 구겨지고,  그녀랑 잘 될 거라는 희망은 꺽여져버렸으며, 욕망은 좌절되었다.

열 받고 쪽 팔릴땐 괜히 옆사람에게 시비 걸지 말고 뛰쳐나가는 게 상책!

스티븐은 무작정 거리로 달려나간다. 어디로 갈지 목적지도 없지만...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노로 미칠것 같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미친 듯 달려 도착한 지저분하고 쾌쾌한 거리에서 스티븐은 드디어 그녀에 대한 몽상을 떨쳐버리게 된다. 요동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현실파악을 했다고 할까. 눈물이 조금 나긴 했지만 더 이상 이글거리는 분노는 느껴지지 않는다. 스티븐의 마음은 꽤 차분해진다.

 

A film still veiled his eyes but they burned no longer.

A power, akin to that which had often made anger or resentment fall from him, brought his steps to rest.

 

 

 

그리고 '나'에게도, '스티븐' 에게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그 순간, 

그 모든것이 그녀의 탓도, 누나의 탓도 아닌, 바로 자신의 허영이 만들어 낸 몽상때문이었음을 깨닫는 그 순간,

비록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만,

비로소 작은 에피파니(Epiphany)가 일어난다.

 

소년은 이렇게 성숙한 어른으로 자라난다.

 

"My Heart is quite calm now. I will go back"

댓글 6
  • 2024-02-27 22:41

    이리 빠른 후기라니!
    갑자기 어려워져서 헤매고 있었는데, 토토로님이 지난주부터 자세하게 하나하나 콕콕 설명해주신 덕분에 정리가 됩니다.

    토토로님 후기에서 "I will go back"이 새롭게 읽히네요
    결국 우리도 몽상이 생각이 자신을 지치고 힘들게 하잖아요?
    그럴 때 돌아갈 어떤 곳, 늘 우리에게 있는 본연의 그 곳으로 "I will go back!"

    • 2024-02-28 07:42

      영어에서 미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미래와 의지미래.
      스티븐의 "I will go back"은 그야말로 스티븐의 의지를 담은 말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그녀를 원망하고, 심지어 그녀를 괴롭히는 스토커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에피파니를 느꼈기 때문에 차분한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말한 것 입니다. (저는 그렇게 해석했어요ㅎㅎ)
      "I will go back!"

  • 2024-02-28 17:29

    와~ 토토로샘의 속도감 있는 후기로 스티븐의 감정이 더 생생하게 와닿네요!

    인간은 이성외에도 어떤 대상을 향해 이상화된 이미지로 부풀리는 몽상이 있는 것 같아요. 단테도 파넬과 종교를 향해, 애러비의 소년도 친구 누나를 향해, 스티븐 역시 그녀를 향해 그 흥분과 도취가 주는 매혹에 빠져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 2024-03-02 00:13

    He knew, however, that his father's property was going to be sold by auction and in the manner of his own dispossession he felt the world give the lie rudely to his phantasy.
    그는 아버지의 재산이 경매로 팔려나갈것을 알았고, 그 자신의 박탈감으로 인해 그의 환상이 터무니없는 거짓임을 세상이 알려주는 거라고 느꼈다.

    이러한 현실들이 상상의 판타지에서 그를 "go back"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그렇게 소년은 어른이 되어간다.

  • 2024-03-02 11:47

    막내딸이 나중에라도 꼭 읽기를 바라며 후기 저장해 둡니다. 지금은 사랑이라 믿고 있어 현실을 보지 못하네요.

    All day he had imagined a new meeting with her for he knew that she was to come to the play...
    and all day the stream of gloomy tenderness within him had started forth and returned upon itself in dark courses and eddies, wearying him in the end...

    스티븐이 에피파니가 일어나기전, E.C를 향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딸을 통해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답니다.
    딸은 언제쯤 짓이겨진 허브향을 맡을 수 있을까요?

  • 2024-03-06 11:55

    "I will be back"으로 읽히는 몽상을 합니다.
    I said I'll be back.
    I'll be right back.
    I'm back.
    뚜둥뚱뜨등~ 뚜둥뚱뜨등 ~

    갑자기 진한 쑥향을 맡고 싶네요^^
    쾌속 후기글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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