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시즌3>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이야기'(2019)

청량리
2021-01-09 21:11
74

함께 그러나 불안정하고 모호한

결혼이야기 Marriage Story(2019) | 감독 노아 바움백 | 주연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137분 |

 

 

 

 

 

10년 전, 첫째아이 육아휴직 때 처음 ‘문탁’에 접속했다. 그때 읽은 책이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이었고, 그해 축제의 슬로건은 <가족을 흔들어라>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제 막 아이도 태어났는데, ‘가족의 종말과 해체’를 마주하자는 이야기와 마주했다. 어쩌자고 논리적으로 수긍되는 부분도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일반적으로, ‘가족’은 결혼으로 시작한다. 주거와 생계를 유지하는 단위로서의 ‘가구’와는 달리 가족은 혈연이나 혼인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가구와 가족의 구별은 사적 사회구성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 그 구성원(들)의 밀도나 결속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내밀함’의 정도에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지 않을까. 쉽게 말해,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방이 보이는 ‘원룸’구조와 현관문, 중문, 방문, 전실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 ‘안방’이 다르게 배치되는 이유다. ‘스위트홈’에서 가장 내밀한 영역의 안방,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부부’다.

 

문제는 그들이 내밀해서가 아니라, 그 내밀함을 가족 혹은 부부의 ‘견고함’으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어린 아들을 둔 부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서로에 대한 장점과 애정을 편지로 써서 읽어주려 한다. 그러나 니콜은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그 편지를 읽지 못한다. 이미 벌어진 틈을 과거의 감정으로 메울 수는 없었다. 영화 <결혼이야기>(2019)는 그렇게 어느 부부의 ‘이혼이야기’로 시작한다.

찰리를 사랑했고 그와 함께 하기 위해 10년 전 LA를 떠난 니콜의 마음은 좀 더 복잡하다. 굳이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 원만하게 그들 사이를 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찰리는 그러한 니콜을 믿으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도, 니콜의 내면을 살피기보다는 찰리는 그녀의 연기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는다. 그러한 찰리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뒤돌아서 니콜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노련한 변호사 노라(정성미 로라 던)를 만나면서 니콜은 진심으로 찰리와 헤어짐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는 관심도 없고, 잘 나가는 자신을 위해 훌륭한 반려자로 남길 원하는 찰리가 니콜은 싫다.

 

<미안해요, 리키>에서 가족이 해체되는 건 아들의 반항이 아니라, 애비와 리키의 마찰에서 시작한다. 리키는 애비를 집에서 살림하는 엄마로, 자신을 보조하는 아내로서 남기를 원한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생산활동을 할 수 있다고 리키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니콜을 바라보는 찰리의 시선은 리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결혼으로 시작되는 가족은 부부의 관계에 따라 해체되기도, 유지되기도 하기에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분리불안, 의심, 원망, 사랑, 애정 등이 혼재된 가족은 불륜과 공포의 무대로서 등장한다. 리키가 <샤이닝>(1980)의 ‘잭(잭 니콜슨)’이 되는 건 결국 ‘한 끗’ 차이일 뿐이다.

 

가족은 불안정하기에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다. 신혼은 지나가고 아이가 태어나고 빚을 갚기 위해 맞벌이를 하고 아이들에게 사춘기가 찾아온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관계’ 속에서 가족의 모습도 파도를 탄다. 보약 한 번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절기마다 알러지에 약을 달고 사는 사람도 있다. 눈이 나빠져 안경을 낀 사람이 비정상은 아니다. 평생 함께 살아가기도 하지만, 어느 날 헤어지는 부부도 있기 마련이다. 어느 하나를 가족 혹은 부부의 ‘정상’으로 재단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우리가 흔들고 종말을 고해야 할 것은, 내밀하고 견고하다고 여기는 상태만을 ‘정상’으로 바라보려는 ‘사적영역’으로서의 가족일 것이다.

 

‘사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은 독일의 환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인 페트라 켈리의 주장으로, 사적영역에 감춰진 여성의 문제를 드러내고 사회문제로 이야기하자는 그녀의 정치적 행동을 담고 있다. 앞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호한 가족을 오히려 더욱 견고한 관계로만 소유하려는 가부장적(남성) 권력을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

 

 

니콜과 찰리의 불안정한 상태는 찰리가 LA에 얻은 임시 거처에 니콜이 찾아오면서 폭발한다. 얼마 전까지 부부였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폭언과 비난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화가 난 리키가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듯, 찰리도 주먹으로 니콜 대신 벽에 구멍을 낸다. 두 사람의 사생활은 그들의 변호사를 통해 법정에서 전부 들춰진다. 상대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치부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변호사 노라는 니콜에게 조언한다. 인간적인 조정을 권하던 변호사를 해고하고 찰리도 낡고 닳은 변호사 제이(레이 리오타)를 선임한다.

 

의문이 들었다. 켈리가 말한 정치적 행동, 사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보라는 것은 니콜과 찰리의 해결방법을 두고 말한 것인지,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겠지만 그것만이 해법인지, 아니라면 다른 방법은 없는지 궁금했다.

문제의 해답은 옳은 질문에 있고, 프레임의 문제는 그것을 벗어나야 보이고, 나의 문제는 자신과 떨어져야 알게 되듯이, 부부의 문제는 그것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고, 그것이 사적영역을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 니콜과 찰리에게는 연극단원들이 늘 함께 있었다. 그들의 만나고 결혼하고 다투는 상황, 헨리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친구들이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사적영역은 어느 정도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는 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니콜과 찰리의 연극 친구들은 무대를 벗어나 함께 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니콜과 찰리가 변호사를 찾아가고 법정에서 만나는 것은 오로지 두 사람의 문제로만 비춰졌다. 왜 감독은 친구들이 아닌 변호사에게 그 해법을 물을 수밖에 없었을까? 결국 니콜과 찰리는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주체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함께 하는 건 쉽지 않다. 무진장에서도 가족경제를 벗어나 돈을 섞어보려고 했으나,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가족의 울타리는 견고했고 돈의 흐름은 정체되었다. 사적인 것을 정치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웠다. 해 본적이 없어서 더 어렵게 느껴진다.

 

 

법정에 선 두 사람의 문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난다. 이제는 그들이 어찌 해보려 해도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니콜과 찰리는 따로 떨어져 헨리를 만나고, 가족을 유지하는 법에도 익숙해진 듯하다. 어느 날, 헨리가 읽고 있는 편지를 무심코 집어든 찰리. ‘2초만에 나는 그에게 사랑에 빠졌다. 나는 평생 그를 사랑할 것이다. 지금은 말이 안 되지만.’ 니콜이 이혼조정 전문가 앞에서 읽지 못했던 글이다. 순간 니콜의 마음을 다시 느끼지만, 이제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아는 찰리는 눈물을 흘린다. 영화 <파이란>(2001)에서 ‘결혼해 줘서 고맙다. 강재씨가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다’라는 파이란(장백지)의 편지를 읽고 방파제에서 오열하는 강재와 찰리는 그런 점에서 닮아있다.

그런데 과거 찰리의 연기평 뒤에 몰래 흘리는 니콜의 눈물은 결코 변하지 않는 찰리에 대한 안타까움, 어쩔 수 없음에 대한 것이었으나, 찰리와 강재의 눈물은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연민의 마음에서 흘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나 역시 당시 강재를 보며 주체할 수 없이 주룩주룩 흘리던 눈물을 기억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자기 연민에 눈물을 흘리는 찰리와 강재를 구원하려는 송일곤과 노아 바움백, 두 남성 감독들의 진지한 시선에 다소 불편함이 느껴진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네 사람이 우연히 벌이는 술자리에서의 유쾌함이 대비된다.

 

불안정한 것은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무엇과도 결합이 가능한 잠재적인 상태인지도 모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가족이란 내밀하고 견고하기 보다는, 불안정하고 모호한 측면이 강하다는 걸 알아차리고 살펴보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함께 밥을 먹는 식구라면 누구든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영화 <가족의 탄생>(2006)은 이미, 보여줬으니 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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