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영화인문학 시즌1> 내.신.평.가.#3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띠우
2024-04-25 12:25
47

수어에서 말, 그것이 진화?

 

1시간 13분, 1시간 34분 언어를 사용하는 시저 부분

 

 

아, 눈빛

 

굳이 못된 짓을 하는 보호소 관리인 도지에게 시저가 복수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을 것이다. 밉상이다. 거기서 시저가 ‘노우’를 외치는 모습은 마지막에 진화가 더 되어가면서 윌에게 ‘시저 집은 여기야’로 이어진다. 수어를 통해 의사소통하던 시저가 자신에게 말로 응답하자 놀라움과 기쁨까지 포함된 눈빛을 보내는 윌. 말을 하게 되니 망설임없이 시저를 무리들에게 기쁘게 보내주는 느낌이랄까. 너의 진화를 인정하마...

 

초반 우리에 갇힌 시저의 엄마가 보여준 사각의 세상 속에 시저는 태어나자마자 갇혀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다수의 언어를 획득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을 움켜쥔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페터와 시저가 다른 점은 인간전복의 기회를 잡은 것이겠지. 앤딩 크래딧 이후 나오는 항공노선이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니 인류는 결국 유인원에 의해 멸종의 위기를 맞을 것이다. 영화는 인간 세계가 굴러가는 힘의 원리를 복제해 보여주면서 인간에게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처음 시저가 윌의 집에서 수어로 소통할 때 모습을 떠올려 보면, 그것은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존재 자체만으로 이웃과 마찰이 일어나고, 자기 딴에 윌의 아버지를 구하려다 보인 행동은 사회의 위험요소가 된다. 변명도 할 수 없이 보호소에 이르면 잔혹하게 무시되고 고통을 받는다. 의사소통을 수어로 하느냐 말로 하느냐에 따라서 시저는 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시저가 수어가 아닌 말을 하는 순간, 윌의 눈빛이 그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실험 속에서 태어난 시저는 빠르게 인간을 모방함으로써 진화해 간다. 

 

과거에 인간사회에서 수어는 몸짓이나 원시적인 의사소통의 행위로 받아들여졌다면, 차츰 하나의 언어로서 인정되고 있다. 그럼 사회가 좀 나아진 것일까. 여전히 수어보다 말을 하는 것이 더 인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외국어와 수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서도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다 보니, 수어와 말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지가 보였다. 우리가 의사소통에도 어떤 위계를 세워 두고 있는지 보였다. 이는 얼마 전 끝난 선거를 떠올리게 했다. 50cm가 넘는 투표용지에서 무효표가 많이 나왔다는데, 이는 투표하지 않는 선택뿐만 아니라 투표 자체가 힘든 이들에 대한 접근방식 부재도 포함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더 많은 표현의 방식이 생겨나기를 바라는 것이 나만은 아니겠지.

댓글 7
  • 2024-04-25 16:37

    말을 할 수 있게 된 시저가 처음 내뱉은 말은 NO!이다. 자신을 폭행하려는 남자에게 거칠게 내뱉은 말이지만, 사실 이 말은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모든 인간들을 향한 절규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인간에게 먹이를 얻어먹으며 사는 동물(포획되거나 가축인 동물)들은 인간에게 뭐든 이익을 줄때에 만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젖이라도 짜내고, 전시되어 관람객의 지갑을 열게 해야한다. 인간은 동물들을 소위 길들이기 위해 온갖 잔인한 행동을 다 저지른다. 불치병인 치매를 치료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큰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시험삼아 침팬지에게 신약을 주입하는 것까지도 윤리적으로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영화 <혹성탈출>은 그런 만행에 대한 아주 직설적인 고발이자 항거로 보였다.

    장애학과 동물해방을 공부하고 있는 이번달 내내 나는 성찰, 반성, 성찰, 반성을 반복하고 있다. 이 영화도 한번 더 성찰하게끔 쿡쿡 찔러댄다.

    *주인공 침팬지 피터가 빨간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예사롭지 않않다.

    *57분 50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에서 좀 울었다. 몇달 전 나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아버지처럼 엄마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치료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느낌이 왔다. 그만해야 한다, 엄마는 그걸 원한다라는..
    사랑하는 사람이 늙고 병들어 아파하는 것을 보기란 얼마나 고통스런 일인가. 어떻게든 치료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게 사람 맘 일것이다. 하지만 그건 욕심이다. 언제까지 삶을 연장시킨단 말인가. 삶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오면 우리 엄마처럼, 영화속 아버지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슬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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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5 16:40

      사진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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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5 16:41

      사진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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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5 20:37

    time 55:16 - 1:01:02

    러쉬라는 코스메틱 브랜드에서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FAT (Fighting Animal Testing) 정책을 진행한다. 내가 일 할 적에는 이 정책을 위해 서명을 진행했다. 적극적으로 고객님들에게 이 서명에 동참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동료 중에는 동물실험을 직업으로 가지고 살다가 그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퇴직 후 아르바이트 겸 온 사람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 서명을 부정적으로 봤다. 서명의 의미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동물실험이 완벽한 실험 방식이라는 것이다. 난 주인공을 보면서 어째서인지 그 동료가 자꾸만 떠올랐다.

    >
    “자넨 역사를 만들고 난 돈을 버는 거야”

    -

    “아버지한테 시약을 실험했잖아. 전화 한 통이면 자넨 끝장이야”

    “그럴 거 없어요. 제가 그만두죠”

    “그럼 자네 없이 진행하지”

    “AZL-113 이 인간한테 치명적일 수도 있다구요”

    “그래서 침팬한테 테스트하는 거잖나”
    <

    영화에서 침팬치로 실험을 진행하는 곳은 굉장한 성과주의다. 데이터에 기반을 두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하며 과정은 그저 성과를 위한 단계일 뿐이다. 주인공은 이에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줄락 말락 한다. 침팬치를 구출시키거나 계속해서 이 실험들을 반대하는 언행을 보이지만 아버지를 실험체로 쓰거나 침팬치를 실험체로 쓰는 것에 대해 논리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해내진 못한다. 어쩌면 침팬치를 구함으로써 영웅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 바보는 아닐까? 의심하면서 보기도 했다.

    사람은 살다 보면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 일 등의 본질을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생겨나는 말과 행동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말과 행동에 차이, 논리의 허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성장의 길을 걷게 되니 그전까지는 바보로 살아야 한다. 내가 봤을 때 주인공은 바보다. 아니 다행히 바보였다! 이 바보 덕에 세상이 혼란을 겪고 뭔가 변화의 시점이 생겨난 게 아닐까 싶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의 문제를 건드려 변화를 만들어 낼 존재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립청년 54만 명, 70만 명의 조선족, 유대인 카프카, 퀴어, 장애인 등이 떠오른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들의 신체야말로 이 시대를 제대로 살아가는 중이다. 나 또한 열심히 시대를 잘 느끼며 살아가는 중인 것처럼 말이다.

  • 2024-04-25 22:44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안돼, 그걸 명심해."
    아버지의 장례를 끝마친 뒤 시저와의 좋았던 한때를 찍은 사진을 보는 윌에게 캐롤라인이 이야기 한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안된다고. 하지만 과연 그 '자연의 순리'라는 것이 무엇일까...
    캐롤라인이 동물원의 유인원들을 보면서도 '자연의 순리'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의 치매를 치료하고자 약을 만들어 냈던 윌의 의지는 자연의 순리라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침팬지들도 자연의 순리에 따른 것일까. 영화에서 캐롤라인이 이야기 하는 '자연의 순리'라는 것은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이 아닐까. 유인원이 지배하게 된 이후 시리즈(볼지 안볼지 모르겠지만) 는 캐롤라인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자연의 순리'가 생겨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겠지.

  • 2024-04-26 12:43

    23:25 ~
    뭐해?
    허락을 구하는 침팬지들의 제스처예요

    1:34:00 ~
    시저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 집으로 가자 내가 지켜줄게
    시저 집은 여기야

    영화 초반 시저는 삼나무 숲에 들어가기 전, 윌에게 손을 내밀어 허락을 구한다.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는 신나게 숲으로 뛰어간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다른 침팬지에게 위협을 당하는 윌을 구한 시저는 넘어진 윌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준다. 이 두 장면의 윌과 시저의 손은 상징적이다. 시저는 진화했고, 둘의 관계는 역전했다.

    시저의 변화를 권력에 대한 이야기로 읽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여러 계기가 모여 시저는 침팬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고 막강한 권력을 지니게 된다. 아마 다음 편에서는 인간 세상도 접수하게 될 듯하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부에 대한 집착이 어우러져, 침팬지인 시저는 인간도 물리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넣는다.

    시저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리보다 뛰어난 지능과 이성적 능력이었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뛰어난 상황 파악 능력을 발휘해 무리들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권력투쟁 과정에서 결투도 하고 협력도 하지만 침팬지들의 고유한 의사소통 방법보다는 인간에게 받은 우수한 지적 능력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시저에게 우수한 지능이 없었다면 원래 우두머리를 이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지능과 이성’이 어떤 집단의 우월을 결정할 때 생기는 많은 문제들을 알고 있지만 가장 객관적 지표로 작용하는 것도 현실이다. 심지어 학교나 회사의 홍보 문구에는 ‘1%의 리더가 이 세계를 정복한다’ 류의 자신만만한 글이 넘쳐 난다. 그런 리더가 되어야 하고, 남들을 이끄는 사람이 더 우수한 존재로 인정받는다. 시저 역시 99%의 깨어나지 않은 침팬지들에게 인간의 묘약(?)을 던져 줌으로써 그들을 진화시키고 자신은 1%의 리더가 되었다.

    공부는 또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영화를 보니 수요일 세미나 ‘짐을 끄는 짐승들’의 내용이 되살아난다. “문제는 이성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감정, 감각 그리고 인식하고 존재하는 다른 방식들과 분리된 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격상되는 데 있다. … 이 문제들은 비인간 동물이나 현저한 지적 장애인처럼 이성이 없거나 없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위한 해방을 이론화할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새겨야 할 것들이다.”

    시저는 멋있지만
    시저를 만든 상황은 가히 멋있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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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4-26 12:44

      진화?

      KakaoTalk_20240426_124210276_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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