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영화인문학 시즌1> 내.신.평.가 #1 피아니스트

호면
2024-04-11 17:16
50

 - 그래서 저는 항상 말합니다. '극한 상황하의 치열한 생존 족 인간의 민낯'을 시험하는 작품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고.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은 민낯이란 이름의 야만에서 자신만 쏙 빠진채 이등시민들의 아비규환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싶어하는 욕망의 산물입니다. 

  좋아하는 영화이고, 세번째 보는 피아니스트 이지만 막상 어떤 장면을 골라야 할지 좀 막막했다. 그러던 와중 팔로우 한 유명SF작가의 SNS에서 그가 리트윗한 윗글을 보았다. 나는 전쟁영화를 좋아한다. 저 SNS에 따르면 극한상황을 견뎌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피아니스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 

  하지만 '오징어게임'같은 드라마도 인간이 처한 극한 상황을 다룬것인데 2화 정도 보고는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몰려오곤 했는데, 저 트윗을 보고 내 불쾌함의 정체를 밝혀줄 언어를 찾은 느낌이었다. 저 트윗의 내용중 '자기만 쏙 빠진채'라는 말은 조금 바꾸고 싶은데, 생존게임류의 컨텐츠를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열광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아를 투영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사회라는 치열한 '생존'의 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는 비열한 행동들은 사실 인간의 '민낯'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과정.  그러나 과연 인간의 '민낯'이라는 것이 내가 살기 위해 어떤 짓이든 상관없다는, 야만의 모습만이 전부일까. 

    블라디스와브 슈필만은 '찐으로'  홀로코스트라는 극한상황에 던져졌던 인물이었다. 유대인 게토 안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들이 더욱 소름끼는 것은 이것이 바로 실제 상황이었다는 것. 같은 유태인이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 독일인만큼이나 잔혹하게 동포를 탄압했던 이츠하크 같은 인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민낯'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게토안에는 유태인 모두의 자유와 생존을 위해 싸웠던 슈필만의 동생 헨릭과 마요렉 같은 용기있는 자들도 분명 존재했다.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어떤 고난이든 견뎌낼 수 있다는 무한 긍정을 이야기하는 작품도 부자연스럽지만, 저열한 인간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춘 작품도 작위적인 것은 매한가지. 

   그래서 내가 고른 신은 43분 부터.  갖은 애를 썼지만 결국 수용소행 기차를 타게 된 슈필만 가족. 죽을 것을 알면서도 가족에게 돌아온 할리나와 헨릭.  그들의 뒤편에서는 경찰에 발각되지 않으려고 우는 아이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가 계속 울부 짖는다.  죽음으로 향하는 와중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헨릭. 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에도 20즐로티라는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으로 캬라멜을 파는 소년, 그것이 말도 안되는 가격임을 알면서도 캬라멜을 사서 작게 조각내어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는 아버지. 그리고 비록 내가 고른 신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불타버린 도시 한가운데에서 홀로 남겨 졌을때 조차 피아노를 치겠다는 생각을 결코 놓지 않은블라딕.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인간의 '민낯'을 어떻게 한가지로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댓글 5
  • 2024-04-11 17:59

    time_1:54:42

    이 장면은 독일군으로부터 하염없이 도망치다 들어오게 된 병원에서
    주인공 스필만이 상상 속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 입니다.

    배경이 병원인 것이 스필만이 도움을 받아야하는 상태라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안쓰러우면서도 기가막힌 설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스필만이 피아노를 친다는 것의 의미를 느낄수있는 장면 같습니다.
    신체가 피아노를 치는 상상만으로도 자유로움과 안정감 그리고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
    이를 적성이라고 얘기하기엔 너무나 작지만 그보다 좋은 단어를 찾진 못했습니다.
    고통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
    언제든 신체가 긴장을 풀 수 있는 일! 경이롭다고도 느꼈습니다.

    세미나원분들께서는 어떤 일에 몰입함으로서
    자유로움을 느껴보신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 2024-04-11 20:23

    1시간 50분 정도

    <피아니스트>를 보다 보니 이거 실화인가 싶어졌다. 실화이기 때문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지는 느낌이랄까. 평화롭게 지내던 유대인 가족이 나치의 침공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주인공은 실존 인물로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슈필만이다. 그는 모든 가족이 죽고 혼자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전쟁의 참상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절박함은 보는 이의 감정을 동요시킨다. 그런데 다시 보다 보니 마음이 참 묘해진다. 그가 살아남은 것이 소중해보이면서도 한편으로 피아니스트 슈필만이란 사실이 두드러져 보인다. 그야말로 자기삶을 살아가던 존재들의 희생은 너무 많이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

    내가 고른 장면은 폭격을 피해 게토로 다시 들어간 슈필만의 모습이다. 그를 멀리서 보여줌으로써 완전히 파괴된 삶의 공간이 강조된다. 요즘 일본어 강독에서 읽고 있는 두 개의 전쟁 모습이 그대로 겹쳐져 온다. 아래 그림처럼 가자 지구의 현재 모습을 영화에 갖다 놓은 것 같다. 1940년대에 벌어졌던 일이 2024년 현재도 끔찍하게 벌어지고 있다. 반유대주의로 역사적인 희생을 경험했던 유대인들이었다. 그런데 가자 지구에서는 자신들에게 나치가 들이밀었던 잣대를 그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들이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훗날 이 전쟁의 기록은 어떻게 남게 될 것인지...

    예술가로서 뛰어난 주인공의 능력이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또한 영화에서는 희생자였던 이들이 현재는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일까.

    KakaoTalk_20240411_174310383.jpg

    • 2024-04-11 20:24

      이스라엘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가자 지구 최대규모 알시파 병원 주변은 그 자체가 ‘무덤’으로 변했다. April 1, 2024 - AFP

      603113_0.jpeg

  • 2024-04-12 08:59

    1시 40분 전후
    게토를 떠나는 기차를 타기 전에 모여 앉은 장면.
    이 장면을 꼽은 이유는,,,,
    인상적인 장면이 너무 많아서 뭐 하나 고르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이 장면을 고른 이유는, 죽음을 앞두었었지만 가장 평온해 보이고, 한편으론 슬픔이 가장 극대화되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족의 마지막 만찬이 되어준 카라멜 한 조각이라니....달콤함과 비애가 뒤섞인 카라멜을 나눠먹으며 서로의 죽음을 예감했을까.

  • 2024-04-12 14:34

    2:01:09 슈필만이 통조림을 따는 모습

    영화 제목이 ‘피아니스트’인데 피아노 치는 모습은 처음에 잠깐 나오고 2시간 가까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가 뽑은 장면은 슈필만이 어렵게 구한 통조림을 온 힘을 다해 따는 모습이다. 슈필만은 영화 내내 ‘생존’을 보여 준다. 살아남아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나 비참하고 조마조마해서 언제 이 사람이 살아남아 피아노를 다시 칠 수 있을까 싶었다. 이 장면을 고른 이유는, 오래 굶은 주인공에게 이 통조림 하나가 얼마나 큰 감격으로 다가왔을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신의 힘을 다해 통조림을 따는 그의 동작은 피아노 치는 모습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어릴 때, 누군가 아프면 황도 통조림이 생길 때가 있다. 그걸 딸 때 주변에 모여 얼른 그 캔이 열리길 기다리던 시간도 생각났다) 어쩌면 슈필만에게 그 순간은 불후의 명곡을 남기는 것보다 더 소중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통조림을 한 번 두 번 두드리는데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져 굴러가면서 통조림 속 국물이 흐르는 순간. 아, 저거 빨리 세워야 하는데, 국물만 있어도 며칠은 버틸텐데 싶어 “안 돼!” 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때 카메라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독일군 장교의 모습이 나타난다.

    독일장교 호젠펠트를 만나 피아노를 연주하고 살아 남는 감동적인 장면은 영화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슈필만의 연주도, 호젠펠트의 얼굴 표정도. 하지만 그 장면들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였다. ‘유태인 피아니스트가 그의 재능으로 살아남는 스토리’ 말이다. 나는 그보다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주목하지 않았던 시간들 속에서 살아 남아야 했던 끔찍한 정황들에 더 마음이 간다. 좋아했던 여자에게도 체면 따위는 남아 있지 않고, 용기나 자존심도 모두 버려야 하는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시간들. 주변 사람들의 의로운 저항과 죽음을 지켜보면서도 비굴한 모습으로 살아 남아야 했던 주인공의 심정은 어땠을까.

    슈필만이 특별해서 살아남은 건 분명하다. 그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분명 가족들과 함께 죽음의 열차를 탔을 것이다. 하지만 슈필만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거나 예술혼을 내세워 특별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피아노를 치고, 벽돌을 나르고, 도망가고, 숨었다. 그야말로 죽음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다행히 조금씩은 선량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 대가로 예술에 대한 열망은 드러낼 수도 없었던, 가장 기본적인 ‘살아 있음’조차 불가능했던 시간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역사를 만들었던 시대와 사람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항의로 말이다.

    KakaoTalk_20240412_125203703.jpg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0
<2024 영화인문학 시즌1> 내.신.평.가.#3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7)
띠우 | 2024.04.25 | 조회 42
띠우 2024.04.25 42
129
<2024 영화인문학 시즌1> 내.신.평.가.#2 <잠수종과 나비> (4)
청량리 | 2024.04.16 | 조회 67
청량리 2024.04.16 67
128
<2024영화인문학 시즌1> 내.신.평.가 #1 피아니스트 (5)
호면 | 2024.04.11 | 조회 50
호면 2024.04.11 50
127
2024 CDP 영화인문학 시즌1_두 번째 시간 후기 (4)
청량리 | 2024.04.08 | 조회 66
청량리 2024.04.08 66
126
2024 CDP 영화인문학 시즌1_<카프카, 유대인, 몸> 메모 (4)
모카 | 2024.04.04 | 조회 66
모카 2024.04.04 66
125
2024 CDP 영화인문학 시즌1_첫 시간 후기 (2)
띠우 | 2024.03.31 | 조회 104
띠우 2024.03.31 104
124
2024 CDP 영화인문학 시즌1_첫 시간 공지~ (4)
청량리 | 2024.03.23 | 조회 122
청량리 2024.03.23 122
123
2024 CDP 영화인문학 시즌1 <영화로운 신체들> (3/29 개강) (10)
청량리 | 2024.02.18 | 조회 600
청량리 2024.02.18 600
122
<2023영화인문학> 에세이데이 후기입니다 (5)
띠우 | 2023.12.13 | 조회 252
띠우 2023.12.13 252
121
2023 영화인문학 마무리에세이 올려주세요 (5)
띠우 | 2023.12.07 | 조회 238
띠우 2023.12.07 238
120
2023 영화인문학 <영화, 묻고 답하다> "에세이데이"에 초대합니다 (2)
청량리 | 2023.12.04 | 조회 318
청량리 2023.12.04 318
119
<2023 영화인문학> 내.신.평.가.#8 <말없는 소녀> (5)
청량리 | 2023.11.23 | 조회 174
청량리 2023.11.23 17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