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영화인문학> 내.신.평.가.#7 <파고>

청량리
2023-11-16 07:27
159

내.신.평.가. #7

<파고>(1996) | 코엔 형제 감독 | 프란시스 맥도먼드, 스티브 부세미, 윌리엄 머시 주연 | 98분

 

<00:24:02>

 

 장인어른, 저 제리인데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내에게 일이 생겼어요. 

 

아내가 어느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식료품을 사 들고 집에 돌아온 제리는 그 현장을 보게 된다.

납치 현장 장면 위로 제리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장인어른, 저 제리인데요....."

내가 고른 저 장면없이 그저 제리의 통화 목소리만 영화 속에 나왔다면, 이렇게 분노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에서 정말이지, 이 제리라는 남자에게 두 손들고 말았다. 

장인이 제리의 사업에 흥미를 느끼게 되자, 아내 납치 계획을 취소하려는 그를 보며 내심 괜찮은 사람이네, 싶었다.

근데 이 장면에서 두 납치범보다 더 악질인 사람으로 생각됐다. 

영화의 사건 속에 연루된 인물 중에서 제리의 아내만이 유일하게 자기 잇속을 챙기지 않는 인물인 듯 보인다. 

남편, 그의 아버지 장인어른, 납치범들, 그를 소개시켜 준 샘....모든 이들이 원하는 건 자신의 밥그릇이다.

그들은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협박하며, 때로는 울먹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린다.

 

나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그들의 밥그릇이 궁금했던 건지,

영화의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면서 든 생각은 칼(스티브 부세미)이 얼굴에 총을 맞아가며 숨겨둔 그 돈가방의 행방이다.

끝도 없는 철망에서 돈가방을 찾기 위해 칼은 표식을 해 둔다. 그게 눈 속에 파묻힌 건 아닐까? 근데 그 역시 죽었잖아?

마지(프란시스 맥도먼드) 역시 범인들은 잡았지만 돈가방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아...구십이만 달라....(백만 달라에서 팔만 달라를 빼면...) 검색해 보니 약 12억원 쯤 된다. 

자막이 다 올라갈 무렵 나오는 쿠킹영상은 이렇다.

지겹도록 무섭게 내리는 눈, 카메라는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철조망을 보여준다. 

눈보라가 날리는 가운데, 칼이 숨겨둔 표식의 빨간색 손잡이가 보인다. 

눈에 파묻힐 듯, 아닌 듯 보이기도 하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 같은 게 들리면서 끝난다.

상상이다. 이건 마블이 아니니까.

 

---------------

p.s. 이 영화를 보면서 영어 단어 하나는 아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외우게 됐다.

ya~!! 미쿡사람들은 yes.....라고 안 한다...ya~, of course!!! 

 

 

 

 

 

 

 

 

 

 

 

 

댓글 5
  • 2023-11-17 00:20

    파고

    00:13:46 ~ 00:15:21

    칼과 게이어가 진을 납치하기 위해 마을로 향하며 차에서 나누는 대화.

    가볍고 말 많은 칼이 쉴 틈 없이 말한다. 게이어는 무시, 혹은 단답으로 대꾸한다. 짧은 대화 씬에서 극명하게 다른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나저나 대체 이 모습이 왜 이렇게 익숙할까. 가족과 차를 탈 때, 친구들과 대중교통을 탈 때의 나랑 너무 닮았다. 물론 닮은 쪽은 칼. 나도 조금 신나기 시작하면 말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일단 말 많은 사람들의 입장을 칼이 대변해서 말해주어 고마운 마음에 선정했다.

    아..
    게이어같은 동료는 정말 최악의 파트너다. 리액션이 이렇게 없을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쿵짝이 안 맞는 콤비면서 대체 둘은 어쩌다가 손잡고 일하기로 한 걸까. 절대 친구는 아닌 것 같고, 같이 일한 지는 얼마나 된 걸까.
    아니, 어쩌면 친구일수도, 오래 일한 동료일 지도 모른다. 평소 굳이 게이어가 드러낼 일 없는 성격이 이번 사건을 통해 나타난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아무 말 안 하기는 결국 누굴 위한 것이냐.

    7주차01.png

  • 2023-11-17 15:49

    코엔들의 계획: 화가 치밀어 죽게 만들까?

    시작부터 뿌옇다.
    주인공은 씨에라로 하자
    눈으로 뒤덮인 벌판을 달려오는 씨에라
    아, 주인공을 눈벌판으로도 하자(28분)
    아니다, 누가 주인공인지 모르게 블랙스크린을 끼우자. 사람들이 알아차릴라치면 얼른..자주 나온다고 대수겠어? 어차피 블랙-코미디인걸.
    그 담은 관객의 화를 돋우는거야. 어째서 그런지도 모르게 배우들이 화를 내. 차츰 차츰 빌드업시키는거지. 드뎌 궁지에 몰린 제리까지..킬러도 사장도 제리도 불가항력적으로 화를 표출하는거지. 그래 제목은 누가누가 더 많이 화내나로 하자, far go!
    화룡정점은 마지로 하자.
    유일하게 화내지 않는 마지가 뒷자리 앉은 킬러에게 한마디 하는거지. 돈은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그 쎄한 한마디, 도덕적 교훈을 내뱉으면 관객들은 극강의 분노 체험을 하게 되겠지. 이 모든게 돈가방을 감추려는 속셈으로 보일까? 여기서 분노체험을 하면 집에 가고 싶어질거야. fargo!! 그럼 성공인거지

    Screenshot_20231117_151240_Video-Player.jpg

  • 2023-11-17 16:07

    영화는 돈 때문에 얽혀버린 사건들을 비교적(?) 잠잠하게 따라간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진의 아버지가 딸이 납치를 당한 상태에서도 돈 걱정을 하는 모습.
    우리의 상식으로는 딸이 살아만 돌아 온다면 백만달러가 아까울까 싶지만 구두쇠 장인에게는 백만달러는 딸이 반드시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 배팅할 수 있는 돈인 것이다. 결국 사위를 믿지 못한 장인은 백만 달러를 직접 들고 나갔다가 납치범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영화는 우리가 비교적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사회적 관계들이 돈이라는 것에 의해 무참히 어그러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친구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부부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조차 돈의 문제가 얽혀 들면서 신뢰의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 하는 것이다. 영화는 경찰에 잡혀가는 제리의 모습과 작은 성취에도 남편을 자랑스러워 하는 마지의 모습이 대비를 이루며 끝을 맺는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너무 직접적인 메세지를 던지는 결말이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당연하게 생각 했던 모습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설마.... 마지도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 할 수도 있어... ) 나의 모습을 보면서 마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해할 수가 없어."

    KakaoTalk_20231117_154807040.jpg

  • 2023-11-17 16:21

    (1:26~)
    무엇 때문에? 그까짓 돈 때문에? 사는 데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 그걸 몰랐어?
    당신 꼴을 봐. 이 아름다운 날에. 난 이해할 수가 없어

    사람을 죽이고 목재 분쇄기에 시체를 갈고 있는 개어. 출산을 두 달 남겨둔 마지는 몸을 사리지 않고 혼자 살인범을 체포한다. 불안한 결말을 예상했지만 다행히 경찰차 안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마지가 담담히 개어에게 말을 건넨다. 맑고 투명하고 진심어린 표정으로.

    개어는 대화할 줄 모르고 감정도 거의 없는 것 같다. 영화 내내 대사가 몇 개 없다.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고, 멍하니 TV를 보는 것이 전부다. 돈을 준다고 하니 그것에 방해가 되는 성실하고 정직한 경찰, 지나가는 목격자, TV 보는 데 시끄러운 존재면 아무 죄책감 없이 죽인다. 이런 사람에게 날이 아름다운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마지가 ‘난 이해할 수 없어’라고 하자 개어가 슬쩍 마지를 본다. 그 눈빛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내가 볼 때 그 역시 후회나 반성이 아닌, ‘너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로 느껴졌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내 꼴이 이상하다고? 이해할 수가 없네. 날이 아름답다는 건 또 뭐지.. 왜 이 경찰은 나를 안쓰럽게 보는 거지?(아니, 안쓰럽다는 감정 자체를 모를 것도 같다)

    영화 끝부분에 마지는 남편과 함께 “여보, 우린 잘하고 있는 거야”라며 두 달만 지나면 아이가 나올 것을 암시한다. 애써 다짐하는 그들의 현재와 미래는 행복할까.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아름다운 날들일까. 그들의 평안과 행복이 나에게는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경찰차의 안전망 사이처럼 선과 악은 아주 가깝다. 잠시 떨어져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분리될 수 없는 세상인 것이다. 살인범 하나를 잡았다고 이들의 미래가 안전할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8, 코엔 형제)>의 ‘안톤 시거’는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요즘 자주 하는 말도 “아, 정말 이해가 안 된다.”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주변 사람들의 갈등 상황도, 종교와 명분을 내세운 폭력적인 세계 정세도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할지, 이해 안 되는 걸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 고민이다.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무겁고 먹먹한 것도 그래서인가 보다.

    KakaoTalk_20231117_140357912.jpg

  • 2023-11-17 16:46

    영화에서 제리의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더 큰 사건을 줄줄이 만들어 냈다. 그는 왜 거짓말을 하게 된걸까. 돈 때문에?

    우리는 언제 거짓말을 하는지 생각해보자.

    영화에서 제리의 거짓말은 표면적으론 돈 때문이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거짓말은 어긋남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도 있다. 장인과 사위의 어긋남 같은.

    납치 사주라는 무서운 소재를 다루면서 엉뚱하게도 영화는 비장함 보다는 어설픈 어긋남으로 시작된다. 제리와 예비 납치범과의 한시간 시간 오류. 이후 영화는 줄곧 어긋남을 보여준다. 장인과 사위, 할어버지와 손자, 카 딜러와 고객, 두명의 범인들 대화, 경찰관과 옛 남사친, 셉과 제리....거의 대부분의 만남과 대화가 어긋나며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그런 사소한 어긋남 속에서 크고 작은 거짓말이 등장한다.

    최근 전청조와 남현희 사건으로 아주 시끄러운데, 이 사건 역시 어긋남과 거짓말이 마구 뒤범벅이 된 거 아닌가 싶다.

    그러니 주의하자. 만약 내가 뭔가 예감이 안좋은 어긋남의 징후를 느낄때, 그리고 그 어긋남을 무마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사소한 거짓말을 머릿속으로 꾸미게 될 때, 더 큰 화를 부르지 않고 싶다면 잠시 멈출것. 그리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고, 그 해결의 실마리는 무엇일지. 거짓말이 사건을 무마시키는데 도움이 될지, (그렇다면 거짓말을 하는거고) 해가 될지.(이 경우엔 하지 않는거고)

    Screenshot_20231117_162554_Video-Play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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