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영화인문학> 내.신.평.가. #4 <쓰리 빌보드>

청량리
2023-10-26 01:52
211

내.신.평.가. #4

<쓰리 빌보드>(2018) | 마틴 맥도나 감독 | 프란시스 맥도먼드, 샘 록웰, 우디 해럴슨 | 115분

 

 

성난 사람들의 변주곡

 

밀드레드 : 진짜 괜찮겠어?

딕슨 : 그놈 죽이는 거요? ...잘 모르겠어요.

 

 

01 한정된 무대와 주어진 사건

영화 <쓰리 빌보드>(2018)에서 범인의 존재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듯하다. 영화 중간,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를 위협하며 범인일 것 같은 남성이 등장한다. 하지만, 결국 그는 진범이 아니었다. 물론 딕슨(샘 록웰)의 ‘촉’에 따르면 강간범에는 틀림이 없다. 마틴 맥도나 감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진행되는 ‘과정’에 있다. 그건 <이니셰린의 벤시>(2022)에서도 마찬가지다. 느닷없는 콜름과 파우릭의 상황을 다소 불친절하게 관객에게 던져준다. 과거에 그 일이 ‘왜’ 일어났느냐 보다는,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이냐에 감독이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틴 맥도나 감독은 공간을 과감히 한정한다. 사진의 정보를 제한하여 흑백으로 찍으면, 사진 속 피사체의 모습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영화 <쓰리 빌보드>의 공간은 광고판이 세워진 ‘에빙’시 외곽의 길 위를 벗어나질 않는다. 공간을 제한하면 주어진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다만, 그 좁은 세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논리의 ‘대전제’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답답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밀드레드 역시 비슷한 상처를 입은 이들과 연대하는 대신 광고판을 결계처럼 둘러 세우고, 자신을 밀어붙인다.

 

 

02 성난 사람들의 이야기

마틴 맥도나 감독은 등장인물도 한정지어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데, <쓰리 빌보드>에 등장하는 밀드레드, 딕슨과 <이니셰린의 밴시>의 콜름과 파우릭은 모두 화가 나 있는 상태다. 경찰서에 불을 지른 밀드레드와 콜름의 집을 불태운 파우릭이 서로 극중 비슷한 역할처럼 보이지만, 밀드레드는 사실 콜름과 짝을 이루는 인물이다. 자신에게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딸아이를 지키기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밀드레드, 그에 비해 콜름은 훌륭한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 열등감에 허우적댄다.

딕슨과 파우릭 역시 그런 상대에게 화가 나 있다. 아니, 그건 상대에 대한 공감으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극의 전개상 두 사람의 태도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건들은 몇몇 존재하지만, 딕슨과 파우릭은 밀드레드와 콜름의 내적 고민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 화상을 입은 딕슨은 병실에서 레드(칼렙 랜드리 존스)의 친절과 윌러비(우디 해럴슨)의 진심어린 편지에 감동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심지어 경찰서에 불을 지른 밀드레드를, 자신에게 화상을 입힌 그녀를 용서한다.

다행히 <쓰리 빌보드>(2018)의 후속작 <이니셰린의 밴시>(2022)에서는 이러한 훈훈한 결론으로 직접 나아가지 않는다. 콜름의 집이 불타버린 후 둘의 관계는 변했지만, 파우릭은 여전히 콜름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고, 마틴 맥도나 감독은 그 부분을 열린 결말로 남겨둔다.

 

 

03 일상의 히어로, 복수의 판타지

안젤라를 죽인 진범은 아니지만, 나쁜 놈인 건 확실하다. 그러니 그놈이라도 죽이는 건 어떨까? 밀드레드는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대응한다. 거기에 어설픈 권위나 폭력으로 상대가 나온다면, 그게 성직자 하더라도 어려워하지 않고, 경찰도 무능력하고 우습게 바라본다. 그래서 그녀의 행동에 ‘사이다’를 느끼고 응원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밀드레드는 일종의, 그리고 일상의 ‘히어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히어로는 여러 의미로 현실적이지 못하다. 밀드레드의 여러 복잡한 상황들은 혼란스럽지만 이해되지만, 감정이입 되진 않는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2014)에서 자신의 딸을 비참하게 죽인 고등학생을 엽총을 들고 쫓아다니며 죽이는 상현(정재영)과 달라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현실 속 부모들은 전혀 그렇지 못 하다. 처음 밀드레드와 딕슨이 아이다호로 출발하는 모습은 꽤 경쾌하게 보였다. 시원한 사이다 같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마음이 무겁다. 그런 복수를 꿈꾸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우리는 영화에서 계속 그런 복수가, 폭력이 매우 잘못됐다는 걸 보고 있지 않았나?

 

 

04 또 다른 길을 위한 선택

총으로 그 강간범이라도 쏴 버리면 조금 나아질까? '안젤라 진상규명 특별법'을 만들어야 할까? 밀드레드는 혼자 운다. 아들도, 친구도, 남편도, 경찰도, 신부도 모르게 혼자, 속으로 슬픔을 삼키려고 하지만, 목구멍으로 역류한다. 그날, 안젤라에게 차를 빌려줬더라면, 심한 말을 내뱉지 않았다면, 수많은 후회들이 밀드레드를 죄책감의 늪으로 밀어넣는다. 공감능력 제로, 매정하고 모자란 남편이 말한다. 안젤라가 나랑 같이 있었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어쩌면 사람들에게 그런 비난을 받을까봐, 밀드레드는 먼저 사람들을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렇게 악다구니에 받쳐 욕을 헤대는 건지도 모른다. 자신을 보호하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외로운 존재가 되어 버린 밀드레드.

 

윌러비 서장과 레드의 친절에 딕슨은 밀드레드에게 마음을 연다. 그는 밀드레드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강간범을 죽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일상이 무너진 밀드레드를 추스리는 건 또 다른 폭력이나 자해, 분노를 키우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키가 작은 제임스는 은근 밀드레드에게 관심을 드러낸다. 기분 좋은 저녁 밥 한끼, 하지만 남편이 초를 치는 바람에 그마저도 흐지부지. 딕슨은 밀드레드에게 총이 아니라, 밥을 권했어야 했다. 파우릭이 콜름의 집에 불을 질러 그를 자신의 감옥에서 빼내듯, 누군가는 늪에 빠진 밀드레드에게 친절한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았을까? 윌러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딕슨,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안젤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밀드레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세미나 때....)

 

 

 

댓글 5
  • 2023-10-26 16:40

    쓰리 빌보드 내.씬.평.갸

    내가 평가하고 싶은 장면은...딱히 없다.
    왜일까.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나 질문이 나쁘지 않았는데...왜?

    10월 마지막 주에 쓰리 빌보드를 보았기 더 그랬을 것이다.

    딸은 죽어가면서 강간당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 경찰의 조사는 지지부진하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사회적으로 잊혀질까봐 엄마는 조바심과 분노가 가득하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 위해 만든 세개의 붉은 광고판. 그리고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이것들을 보면서 '저 곳은 그래도 인정이 있고, 연민이 있네. 최소한의 배려는 있네....'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더 냉정하고, 비루하여 가족을 잃은 슬픔에 빠진 자들을 위로하기는 커녕 비하하고 조롱하는 일이 버젓이 행해진다. 그래서 영화속 마을 에빙은 판타지처럼 보였다.

    자살로 삶을 마무리 하는 날 어린 부인과 딸들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윌러비라니. (아휴..멋진 건 서장이 다 맡았다. 물론 유가족-일방적 피해자, 경찰-방관자 라는 식의 선악 구도를 잡지 않은 것은 좋은 접근 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서장을 '츤데레'로 설정해 놓다니....)
    쓰레기같은 부하직원에게 사랑(love)과 침착함(calm)을 부탁하며 스스로 참회할 기회를 주는 편지를 썼다구?. (그리고 실제로 참회와 자각을 하다못해 갑자기 정의의 인간이 된 듯한 부하직원 딕슨!..기가 막힌다! 감독님~ 세상은 그런 훈훈한 곳이 아니잖아요...) 또한 윌러비가 밀드레드를 위해 남긴 광고비. 지금 장난하나? 저들은 뭐가 저렇게 쉽지고 쿨하지? 싶었다. 내가 너무 메말랐고 감동파괴적인가.

    그리고 아픈 일을 겪었을때 대처하는 다양한 행동유형이 있다지만, 밀드레드의 전사같은 모습은 정말 공감이 되질 않았다. 미쿡 엄마라 그런가.
    나라면 분명 절규하고, 울부짓고, 쓰러지고, 잠 못들고, 거기서 좀 나은 행동을 겨우 한다면 죽을 힘을 다해 1인 시위 피켓을 드는 엄마 정도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못나서 그런가? 저 엄마는 어찌하여 저렇게 강하고, 똑같이 갚아주고, 저렇게 미친개 소리에도 끄떡하지 않고 버틴단 말인가.(저것이 밀드레드가 버티는 방식일 테지만 거리감이 아주 많이 든다.)
    평점도 좋고 명성도 자자한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지금이 10월의 마지막 주이고, 하필이면 그 놈의 망할 할러윈이 며칠 안남아서 그런가......

    영화에 대한 이런 자잘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좋았던 점을 어떻게든 말해 보자면 영화가 품고 있는 질문은 나쁘지 않았다.
    에빙이라는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인종, 인권, 증오, 연대에 대한 것들 말이다. 그리고 몰입력도 좋았다.
    아..그나마 젤 맘에 드는 장면은
    키작은 아저씨가 밀드레드와 저녁식사를 하다가 거부당한 (혹은 무시당한)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쫌 봐줄만 했다.

  • 2023-10-27 00:58

    1:39:00

    아무래도 압권은 헤이스가 자백한 “경찰서에 불지른 건 나야” 에 대한 딕슨의 대답일 것이다.
    “뻔한 소릴 하고 그래요”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헤이스는 처음으로 웃는다.
    현대판 익숙한 복수극과는 다른 전개이다. 자신의 신체를 망가뜨린 그 사건에 대해서 딕슨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뭐야? 너였어? 차세워, 가만 안두겠어. 너도 당해봐’
    등등이 나와야 할 것 같은데, 그 둘은 신경쓰는게 다르다.
    아니, 보고 있는 지점이 다른 것 같다.
    얼핏 생각하면 헤이스의 남편의 어린 새아내가 한 말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부른다”라는 도덕적 교훈으로도 읽힐 수 있겠으나,
    그렇지도 않다.
    실로 분노나 복수라는 관념, 또는 행위란 개인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그렇다고 사회적이라는 말도 아니다.
    누구나 복수적 존재로서 관계의 끈들이 지닌 견고성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헤이스는 아마 딸과의 마지막 언쟁, 그리고 자신이 저주라도 내린 것처럼 되어 버린 욕설이 복수의 표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쓰리 빌보드의 붉은색은 자신을 향해 타오르는 분노를 표현하고도 남는다.
    딕슨은 다양하게 노답인 사회성을 지닌 인물이지만, 어쨋든 그가 연결된 끈 중 가장 질긴 것은 경찰서장의 것이다.
    때로는 그 하나의 끈이 반들반들해지면 나머지 너덜너덜한 끈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또 때로는 그 반대로 하나의 끈이 지저분해지면 나머지 끈이 힘을 못쓴다.
    헤이스가 쓰리 빌보드를 뒤로 하고 가면서, 딕슨의 말에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것도 그 끈의 강도나 재질이 바뀔 것을 암시한다.
    복수의 관계성이 지니는 효과들을 느끼게 해준 영화였다. 내 관점에서는 마지막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IMG_1627.jpeg

  • 2023-10-27 01:38

    소설과 영화에서는 개연성이 중요하다. ‘진짜 같은 거짓말’이 좋은 이야기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하지는 않지만, 상상의 인물들이 말을 하고 사건이 발생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기꺼이 실재라고 느끼고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영화는 2시간 동안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려면 감독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 인간들의 분노에 대해, 이유가 있거나 없는 무자비한 폭력과 혐오에 대해 2시간 동안 기승전결을 만들어 감동도 주고 교훈까지 줘야 한다. 소설은 시간을 많이 들여 그 상황에 빠져든다. 2시간이면 어림도 없다. 길게 읽는 작품은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도 읽는다.

    ‘쓰리 빌보드’는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할 뿐이다.”라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많은 인물들이 분노와 혐오를 분출한다. 마음이 편안한 인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각자의 분노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발생해 활화산처럼 솟아오른다. 그 속에서 주제를 표현하는, 성격이 달라지는 입체적 인물들이 생겨난다. 주인공 밀드레드와 거의 주인공에 가까운 딕슨이 그러하다. 그들의 분노는 서로를 할퀴지만 마지막에는 깎이고 뭉툭해진다.

    내가 고른 장면(1시간 25분쯤)은 딕슨이 무자비하게 때리고 2층에서 밀어버린 광고회사 사장(?) 레드에게 사과하고, 그가 건네는 오렌지주스를 붕대 감긴 시선으로 보는 장면이다. 그때 레드는 절뚝거리면서 딕슨 옆에 주스를 놓아 주고, 빨대를 딕슨 쪽으로 돌려주고 간다. 왜 굳이 그렇게까지 했을까. 레드는 사실 아무런 죄가 없다. 분노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돈을 받고 광고판에 광고를 실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시달리고 목숨을 잃을 뻔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딕슨에게 선행을 베풀다니. 어쩌면 감독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딕슨이 좀 달라져도 되지 않겠어? 죽은 서장 편지 때문에 감동하고, 자신이 폭력을 휘두른 사람이 저렇게까지 하는데 이제 좀 착해져도 이해할거지?’ 인물의 성격이 변하고, 사건이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는 개연성을 높이기 위한 감독의 세심한 노력에 박수를 치고 싶었다. (레드가 그렇게 쉽게 용서할 수 있었던 이유까지 담기에는 2시간이 짧았나 보다.)

    IMG_0056.jpeg

  • 2023-10-27 01:45

    54:50 ~ 58:57

    서장님을 기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일을 하는 거예요
    좋은 경찰이 되는 거죠
    서장님이... 매일 하셨던 일을 하는 거예요
    사람들을 돕는 일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는 에빙 마을의 경찰서. 하지만 전날 밤 일어난 윌러비 서장의 사망 소식이 경찰서 내부의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다혈질에 근무 태도는 불량해도 서장을 존경하던 딕슨 역시 언제나 자신을 제어해주던 서장이 사라진 지금, 이성을 잃고 광고회사로 향한다.
    밝은 대낮, 딕슨이 경찰서에서 나와 저벅저벅 건너편 2층 광고회사 사무실로 올라간다. 그대로 곧장 광고회사의 레드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내려가 길에 널브러져 있는 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다시 경찰서로 돌아가는 이 씬은 꽤 느긋하게 흘러가는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경찰서에서 나갔다가 돌아오기까지 딕슨을 쭉 따라가는데 핸드 헬드?로 찍은 것 같다. (이게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덕분에 이 장면에서만큼은 딕슨의 입장에서 영화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 장면 속 딕슨의 감정을 쉽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직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뜨는 상황을 겪어보지 못해서 이입하기가 어렵다. 아주 영영 못 보는 먼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복잡한 마음이 들 것 같기는 하다. 윌러비 서장의 자살로 넋이 나가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딕슨은 영화의 초반부터 레드와의 갈등은 꾸준히 있었다. 딕슨에게 레드와 밀드레드는 서장의 마지막까지 그를 괴롭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시 서장을 대신하여 그들에게 한 방을 날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아무리 단순한 딕슨이어도 그 정도로 바보일 것 같지는 않다. 죽은 서장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본인의 무력함에 따라오는 분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출해버린 건 아닐까. 마치 밀드레드가 딸을 잃고 광고판을 거는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했듯이 말이다. 장면의 배경음악과 내래이션으로는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온한 음악과 서장님을 따라 좋은 경찰이 되겠다는 딕슨의 목소리가 추도사처럼 깔린다.
    이 장면 외에도 조용한 작은 마을에서 겪는 커다란 사건, 커다란 감정변화가 보이는 장면들 차분하게 보여준 점이 인상 깊었다. 이니셰린의 밴시도 그랬던 것 같은데. 왠지 마틴 맥도나 감독님은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엠넷에는 취직을 못하셨을 것 같다. 틱톡이나.. 쇼츠.. 엠넷식 편집 같은 걸.. 좋아하지도 않으실 것 같긴 하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4주차01.png

  • 2023-10-27 17:16

    딕슨 : 그놈한테 맞았는데 그래도 그 덕에 DNA를 잔뜩 구했죠. 그래서 말하러 온 거예요. 희망 잃지 말라고.
    밀드레드 : 나도 노력중이야. 뭐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니까.
    딕슨 : 엄마도 희망보다 노력이 중요하댔죠.
    -
    살면서 밀드레드 만큼 분노해 본 적이 없는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또 다른 분노를 일으키는 그녀의 행동이 위태롭게 느껴지곤 했다. 그녀의 행동으로 누군가가 다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을 납득 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노력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딸을 지키키엔 이미 늦었지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그녀의 노력. 흔히 결과에 대한 희망을 안고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노력하는 것 밖에 없을 때가 많다. 그리고 노력에서 얻어지는 것은 원하는 결과 보다는 노력의 여정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다. 홀로 싸움을 시작 했던 밀드레드는 결국 동료를 얻었고 같이 아이다호로 떠난다. 그들이 복수에 성공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결국 함께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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