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숲] 다섯번째 메모와 발제

2024-04-11 15:43
83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회고록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중 프롤로그-

 

에리봉 :  당신은 일기나 비망록 그리고 【슬픈 열대】에서 인용한 '여정 일지feuilles de route' 를 늘 기록했나요?

레비스트로스 :탐사 때는 당연히 메모를 많이 남깁니다. 『슬픈 열대』의 몇 몇 구절들은 내가 메모했던 내용들을 거의 그대로 다시 실은 것이었죠.

에리봉 :하지만 당신은 말리노프스키가  쓴 『엄격한 의미의 일기 Diany in the strict sense of the term』와 동일한 유형의 일기를 쓴 것은 아니었죠?

레비스트로스 : 나는 내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는 큰 중요성을 부여하질 않았어요!

에리봉 : 내가 이런 질문을 한 것은, 당신이 『슬픈 열대』에서 기억력이 매우 나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레비스트로스 : 내 기억력은 자기 파괴적입니다. 나는 내 개인적인 삶과 직업적인 삶의 요소들을 그 자리에서 제거해버립니다. 그런 다음엔 사건들 을 재구성하려 해보아도 잘 되지가 않아요.

에리봉 : 당신이 그것을 약점이라 생각한다면, 고치려고 해보거나······

레비스트로스 : …….어쨌거나 인생살이에 매우 거북한 것이긴 합니다.

에리봉 : 당신의 모든 행동을 매일매일 기록하려고 시도해본 적은 없나요?

레비스트로스 : 한 번도 없어요. 아마도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 됨됨이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인 불신 때문일 겁니다.

에리봉 : 불신이라고요?

레비스트로스 : 난 『슬픈 열대』에서 내 지성이 신석기 시대의 지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나는 내 지성으로 얻은 지식을 비축하거나 그것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항상 이동하는 경계선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편이죠. 내겐 순간의 작업만이 중요합니다. 그런 연후에 그 작업은 즉시 사라져버립니다. 나는 그것의 자취를 간직하는 데는 취미도 없고, 또 그런 욕구를 품지도 않습니다.

에리봉 : 당신에게는 순간과 사건 그 자체만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내겐 거의 역설로 들립니다.

레비스트로스 : 주관적으로는 그러합니다. 그것들만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나는 카드를 작성하면서 작업을 합니다. 전체 내용에 대한 개요, 재빨리 포착된 아이디어, 읽은 내용의 요약, 참고 문헌, 인용문 등을 카드에 기 입하지요. 그리고 뭔가를 시도할 때면, 난 서류 정리함에서 한 꾸러미의 카드를 꺼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그것들을 재배열합니다. 우연이 작용하는 이러한 종류의 게임이 나의 무기력한 기억을 재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레비스트로스와 디디에 에리봉과의 대담집 <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 의 인상적인 첫 부분을 가져왔어요. ‘이동하는 경계선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편’이라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이 그의 이야기를 읽어내기 위한 또 하나의 단서로 보이네요.

메모와 발제를 여기에 올려주세요.

우린 내일 만나서 또 많이 얘기나누어요. ^^

 

 

댓글 9
  • 2024-04-11 16:50

    6부 보로로족 발제 올립니다.

  • 2024-04-11 23:42

    메모라기 보담, 넋두리.

    난독증에 걸린 것같다.
    읽긴 읽었는데, 적긴 적었는데, 내 안에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듯한 느낌이, 정말이지 무척 낯설다.
    읽는 내내, 내 안에서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밍밍하다. 공감이 없다. 아니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줄을 쳐 가면서 읽어도,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카두베오족은 술을 마시면 이상한 반응을 나타낸다(352쪽)라고 하는데,
    이렇게 일반화 할 수 있는 걸까?
    적어도 '카두베오족이 술을 마시면 이상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정도의 표현이어야 하지 않을까?
    서술된 반응에 대한 저자의 인식의 문제가 아닐까? 레비스트로스에겐 이게 그렇게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을까?

    일부일처제(358쪽), 다른 가족의 품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358쪽)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선,
    현상을 객관적(?) 혹은 사실적(?)으로 서술한다는 점에서는 아무 이의가 없지만,
    '좋아, 그래, 그렇구나. 근데 이유가 뭘까? 왜 레비스트로스는 '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을까?
    공동체문화를, 그 문화속에서의 서열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레비스트로스에게 이유를 대라고 전화할 수도 없고... 참...ㅋ

    매 챕터를 읽으면서 계속 이런 느낌이다.
    "그래? 그렇구나." 하다가 "그런가 보다." 하다가 "정말 그런가?"로 이어진다.
    내가 탐험기(?)에 익숙하지 않은 겐가?
    어떤 특정한 목적? 방향?을 가지고 난 이 책을 읽고 있는 겐가?
    아니면 내안에 무슨 두꺼운 선입관같은게 있는 겐가?

    책을 읽든, 음악을 하든, 과정 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습관은 그래도 몸에 익었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슬픈 열대'와의 만남에선, 이게 잘 안된다는 느낌.

    답답은 하지만 무겁진 않다.

  • 2024-04-12 00:27

    443) 그들은 제각기 손에 거적을 들고 나와 남자들의 집 서쪽에 위치하는 무용장소의 평평한 땅바닥에 깐다. 그곳에서 그들은 몸에 바른 우루쿠칠과의 계속적인 접촉으로 인해 가운데가 오렌지색으로 바랜 무명의 담요를 덥고 눕는다. 아마 인디언 보호국에서는 이 담요가 자기네들이 이 지역에 희사하였던 것인 줄을 결코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또한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함께 누워서 때로 몇 마디씩 지껄일 수도 있는 커다란 거적도 있었다. 어떤 자들은 동료들이 엎드려 있는 돔 사이로 느릿느릿 걸어다니기도 한다. 호명이 계속됨에 따라 한 가족의 우두머리들이 차례로 일어나 대답하고, 그의 명령을 부여받고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자세로 다시 반듯이 드러누웠다. 여자들 또한 오두막으로부터 나와서 문턱에 떼를 이루어 서 있다. 처음에는 한두명의 제식 집합자들로 시작했으나 사람들이 자꾸만 모여듦에 따라서 굉장히 떠들썩하던 이야기 소리가 차차 멎었으며, 우리들은 처음에는 남자들의 집 속에서부터 울려 나오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이 무용장소의 전역에서 부르는 노래.합창.서창들이 밤새 계속되는 것을 듣게 되었다. >>> 그 죽은 자는 세라반족의 성원이었다. 따라서 투가레반족이 그의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의식을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 2024-04-12 00:48

    정말 내가 궁금해서 못 살겠다..

    p325 그들은 깊숙한 숲 속의 어떤 곳에서 보금자리를 잡는 것일까? 그들은 어떤 비밀장소에 활과 화살을 숨겨놓고 있는 것일까?...어떤 전통과 의식 그리고 신념에서 그들은 다시 숲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일까?
    - 이 궁금함이 책의 말미에는 해결이 될까?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보는 수밖에.

    p355 이들의 문명은 우리들 자신의 사회가 그것의 전통적인 오락들 중 어느 하나에서 즐겨 상상하였던 것을 즉각적으로 환기시켜준다.
    - 상상이 현실로, 환상이 작품이 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는 원주민일까? 아니면, 원주민들이 바라보는 레비-스트로스일까?

    p366 왜 원주민은 인간의 얼굴 모습을 변화시려고 하는가?
    - 창조주의 작품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선교사의 신앙(또는 논리)마저 무용하게 만드는 원주민의 그림(어떤 의미로는 그림이 원주민 자신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사실)

    p368 므바야족은 자연에 대한 그들의 공포를 안면도식과 낙태, 그리고 영아살해라는 관습으로 표시했다. 이 원주민의 예술은 신이 최초로 우리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한 재료라는 점토에 대해 최대의 경멸을 표명하였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원주민의 예술은 죄와 인접해 있는 것이다. 제수이트파의 선교사로서 산체스 라브라도르는 원주민의 예술에서 악마의 존재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 당신이 뭔데..

    p378 우리는 이 복잡한 사회구조를 하나의 체계화된 전체로서 고찰할 수 있다. 계급과 반족을 두 측면으로 구별하여, 그 하나가 다른 것보다도 더 오래된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로서....(생략)
    - 이 쯤 되면 눈치채야하는 구조주의인가?,
    아..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는 원주민들의 사회구조, 체계에서의 어떠한 모순과 그 모순의 통합을 통해 무엇을 연결시키고자 했을까?

    p380 카두베이족 예술의 신비한 매력과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 같은 복잡성은, 만약 한 사회의 이해와 미신이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실현될 수 있었던 제도들에 대해서 상징적인 형식을 부여하려 했던 사회의 환상으로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p406 아직 별로 오염되지 않은 문명을 가지고 있는 원주민의 한 마을에 처음으로 당도한 사람을 덮치는 저 깊고도 혼란스러운 인상을 어떻게 정리하여 기술해야 할지 모르겠다.

    - 한 사회의 이해와 미신의 방해가 없었다면 어떤 신비로운 세상이 펼쳐졌을까? 그것을 누군가 발견했다면 신비일까?저주일까?악마일까?

    p409 그로 하여금 재차 보로로족의 고대의 이상에 따르도록 만든 하나의 정신적 위기를 초래하였다.
    p414 이 원형의 거주형태는 보로로족의 사회생활과 종교생활에 매우 핵심적인 요소였기 때문에...살레지오회 선교사들은 보로로족을 개종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들의 부락을 포기하도록 만들어, 오두막들이 평행으로 열을 이루는 다른 주거지로 옮기는 것이라는 점을 즉각 깨달았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모든 면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해버리고 말 것이다.

    - 살레지오회 신부들의 이러한 오만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참고로 나는 개신교를 믿었었고,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경험이 있다.) 이 정도까지는 그 신부들을 용서할 수 있다는 레비의 말은 관대함일까? 조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동조일까?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4-04-12 02:28

    사회학적 우주는 물리적 우주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보통 사람들(주술사가 아닌 사람들)의 영혼은 그 자신을 자연의 힘과 동일시 하지 않고, 말하자면 그 자신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자신의 정체를 상실해버리고 집합적인 존재인 ‘아로에(영혼들의 사회)’ 속으로 흡수되어버린다. (438)

    이 만큼 오늘날의 ‘문화’를 잘 표현하는 말이 있을까?! 본문 중 원시부족들의 세계를 ‘사회학적 우주’라고 표현하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들이 만들어낸 우주 속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미신이든 아니면 정말 ‘미개’한 것이든. 레비스트로스가 가장 오래, 그리고 많은 기록을 남긴 것이 장례식이어서 그럴까? 그는 보로로족이 장례식을 치루며 죽은 자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 이 사회학적 우주가 어떻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관찰한다.

    장례식 기간 중 매일매일은 사회와 물리적 우주 사이의 조정을 제공하는 셈이다. (442)

    레비스트로스의 관찰지에서는 계속해서 이원적인 요소들이 등장한다. 안과 밖, 남자와 여자, 산 자와 죽은 자, 인간과 자연... 그동안의 공부에서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배웠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대립항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다. 레비스트로스가 관찰한 부족들의 이원적 요소들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생각했던 이분법적인 사고, 이원적 사고는 “A와 B”가 아니라 “A이거나 A가 아니거나”에 가까웠던 것이 아닐가 싶어진다.

    그들의 사회를 ‘균형’짓게 하는 힘은 종교적 신화(혹은 신화적 종교?)로부터 나온다. 균형은 곧 유지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의 눈에 그것은 스러져가는, 고립된 우주로 보인다. 그는 보로로족이 살아있는자와 죽은 자의 관계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고립을 은폐하려는 ’정당화(453)‘라고 바라보는 듯 하다. 그가 갖고 있는 시선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는 이런 것들이 슬픈 걸까? 아쉬워하는 것일까? 아니면 비난일까? 아니면 그저 한 학자로서 연구인 걸까? 계속 학자의 입장으로서 바라보려고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계속 신경이 쓰인다 ..!

  • 2024-04-12 06:12

    지난 시간 논란이 되었던 인도의 카스트에 관한 언급이 이번 챕터들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카두베오족의 일족인 므바야족은 세 계급으로 분리되어 있고 상위 계급은 하위 계급에 대해 체면과 위신을 잃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출산에 대한 공포와 하위계급과 섞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적으로부터 양자를 들이는 전도된 인종차별의 관례를 만들 만큼 극단적이다.
    레비스트로스가 방문했던 보로로족 마을에도 사회적 지위를 구별하는 체계가 존재했다. 이제 서구문명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대지에서 인구 100여명 밖에 남지 않았기에 규모가 훨씬 축소되었지만 이들은 복잡성 자체를 즐기는 듯 보일 정도로 사회는 상중하로 분화되고 그 안에서 또 상중하로의 분화가 일어나면서 상위집단이 하위집단들에 대하여 우월성을 지니게 된다. 이들은 “모두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영원히 고립적으로 구분되어 왔으며, 그 자체에 자만심을 각각 보유하고 심지어는 잘못된 제도들에 의해서 그 자신으로부터 감추어지기도 하였다”(452)고 레비스트로스는 분석한다.
    계급 분리의 욕망과 사회 존속의 필요성은 모순적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할 때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보로로족의 경우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즉 계급의 비대칭성을 반족의 대칭성을 통해 균형 잡음으로써 사회질서가 유지된다. 그런데 카두베오족의 경우 사회적 제도 대신 예술이 그 역할을 한다고 레비스트로스는 해석하는데 그 점이 흥미롭다. 여성화가들의 안면도안은 사회집단들의 대립과 상보성을 은유하듯이 대칭과 비대칭의 선들이 분할과 재분할을 거듭하면서 아름답게 그려진다. 혼란과 불화의 원천인 신분 분리를 직접 해결하므로써 전래의 관습과 충돌하는 곤란함을 예술로서 변형하여 드러냄으로서 안전하게 해소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실현하지 못한 사회적 보완책을 환상으로 그려냈다는 것일까.
    보로로족의 경우는 극히 정교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가진 종교를 통해 인간과 우주, 사회와 초자연, 죽은 자와 산 자가 대칭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인간(하나의 인격)은 사회학적 우주의 부분을 이루고 변하지 않는 지면배열 구조로 이루어진 인간부락은 영원하게 존재하는 물리적 우주를 의미한다. 사회는 계급적 비대칭성을 반족의 상보성을 통해 대칭성으로 보완하며, 죽음에 대해서도 자연과 인간사회 사이의 증여와 대갚음의 관계로서 사유한다. 그리고 초자연적 세계의 힘들에 서열이 주어져있듯이 사회질서도 그 서열을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믿는다. “보로로족과 같은 하나의 사회학적 체계는 어떤 경우에라도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다”(450)고 레비스트로스는 주장한다.
    “원주민들은 춤을 추는 가운데 부락의 반족이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고, 호혜성에 대한 일종의 정열로서 여자∙물건∙서비스를 교환하고, 어린이들을 근친결혼시키며, 상대편의 죽은 자를 매장해주고, 삶이란 영원하며, 인간은 서로 도운다는 확신을 함께하며, 사회는 정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믿는다.”(451)

    아주 작은 규모의 인간집단이 아니라면 계층 분화는 필연적인 것일까? 어떤 사회든지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존재에 대한 사유와 상징체계가 작동한다고 볼 때 그것을 환상인가 아닌가로 구별할 수 있을까?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자부하는 사회 역시 부와 권력를 세습하며 갈라치기가 횡행하고 있다는 진실은 은폐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어떤 방향의 사유가 더 포용력이 있는 것인지는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 2024-04-12 07:11

    5부 발제

  • 2024-04-12 08:21

    으흐흐 슬라이딩

  • 2024-04-12 09:03

    레비스트로스는 카오두베족의 신성한 목상들을 아이들에게 장난감으로 준 것을 보고 신앙의 붕괴라고 쉽게 단정내리지 말라고 일러둔다. 그들에게 신성과 세속의 대립은 결코 절대적이거나 연속적인 것이 아니다. (P350)
    카오두베족의 독특한 특징(p359)이 서구와 만나 는 지점에서 나타나는 변형에 대해서도 인류학자로서의 자신의 태도는 그들의 전통적인 관습과의 관련속에서 살피려고 애쓴다. 그는 그들의 관습과
    전통이 이미 서구와의 접촉을 통해 간염되고 변형됨을 인지하고 그가 방문한 순간의 상태를 섬세하게 보려고 애쓰고 있음이 보인다. ( 스트래선이 말한 복잡성이 레비스트로스의 시선에서도 )
    그러면서 1930년대 , 그들의 몰락을 마주하면서
    그들의 독특한 삶의 특징들과 그것을 고수하려던 그들에 대해 더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는 듯 하다.

    카두베오족 최후 종족인 므바야족의 카스트제도는 신라의 골품제를 떠올리게 했다.
    성골과 진골 , 6두품의 엄격한 신분세습과 더 엄격한 혼인제도가 그러하다. 보르르족의 세라와 부가레가 성골과 진골로 연상되었다.
    카두베오족의 예술양식이 보로로족의 주거형식으로 구체화되는것 같아 흥미롭다.
    특히 보로로족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그들 부락의 지면배열로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신성과 세속, 삶과 죽음, 동물과 인간( 인간형체를 과도적 형체로 간주) 경계에 존재하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므바야족이 자연에 대한 공포를 안면도식과 낙태, 영아살해라는 관습으로 표출했고
    보로로족은 모순을 제거하는 방식을 택한 듯한데
    그것이 그 부족의 미래를 다르게 만드는 지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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