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숲] 두번째 시간 후기

한가위
2024-03-19 22:11
176

발제자의 발제를 마치고 가진 질문의 시간은 예상밖으로 잔잔했다. 전반부에 비해 분량은 훨씬 적었지만, ⟪서문⟫ 후반부에 대한 이해는 전반부의 이해가 다소 부족하면 그 함축된 의미를 얻기에 역부족인듯.

 

이래도 되는 지 잘 모르겠지만, 구성원의 메모를 중심으로 나의 주관적인 느낌과 함께, 나눈 질문과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메모 순서대로)

 

뚜버기는 메모에서 이렇게 말한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어떤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가에 대해 질문하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현실의 구체적인 고민들에 대한 질문이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생각이 미친다.” 뚜버기는 이제까지 해 온 공부를 통해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는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자기 자신에게 다시 부상했다고 이야기한다. 

뚜버기가 수학을 전공했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뚜버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수학만큼 참 논리적이라는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리가 잘 되서 편안하다.

 

단 두 번밖에 접하지 못한 참의 메모는 ‘일기같은 수필’이다. 삶 속에서 자기 경험의 산물들을 바탕으로한 사례를 들어, 그 내용에 공감하든 그렇지않든, 읽는 사람을 끌어 안는다.

참은 "말의 힘과 존재가 관여라는 말은 연관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 ‘관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끙.

 

르꾸의 메모는 간결하고 명확하다. 함축적이면서 동시에 자기 주장을 설득력있게 풀어간다. ⟪서문⟫ 전반부는 모스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추앙기’로, 후반부는 ‘비판기’로 읽힌다고 르꾸는 말한다. 마나, 하우 때문에 교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교환이라는 상징체계가 작동하기위해 마나, 하우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역전을 통해 레비스트로스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에대한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나가는 여정이 기대된다.

 

⟪증여론⟫을 읽지 않아 이해가 어려워 결국 책을 주문했다는 어때. "수많은 단어들이 연결되지 않고 떠돌아 총체적 사실로서 내 개인의 체험 속에 구현되지 않음을 실감한다."라는 어때의 메모는 어때가 모스, 또 레비스트로스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에 대해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거시기’ 혹은 ‘그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을 표현하는 어때의 용기있는 사유, 이것이 바로 무수의 철학자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궁극적인 과제가 아닐까?

 

수년 전, ⟪증여론⟫ 세미나에서 가졌던 "하우"에 대한 난감함을 레비스트로스의 설명(정확히는 옮긴이의 주석)으로 조금 해소됨을 느낀다는 새봄. 

레비스트로는 "하우는 교환의 궁극 원인이 아니다. 하우는 교환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 사회 사람들의 교환의 무의식적 필연성을 파악하는 의식적 형태이지 그 필연성의 이유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메모를 마친다.

 

짧은 메모와 적은 말수의 돈키호테. 왜 별명이 돈키호테일까?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는 길가에서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람을 보고 “저 자는 미친 게 아니라면 돈 키호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라고 말한 일화가 생각난다. 세미나 중 ⟪몸테크닉⟫에 대해 관심을 보인 돈키호테가 앞으로 어떤 모험을 나누어줄 지 궁금하다. 

 

동은은 "지난 시간에는 ‘상징체계’가 눈에 들어왔다면 … 이번 시간에는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하우를 ‘사람의 심성’ 혹은 ‘성질’같은 것으로 이해… 호혜성이라는 말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기표와 기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함을 피력하며 얼마 전에 읽은 ‘버섯 선물’의 개념과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레비스트로스는 모스의 선물을 교환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나열하고 물어보는 것이 ‘공부(?!)’에 있어 가장 솔직한 첫 내딛음이라는 걸 몸소 실천하는 동은의 질주와 함께 함이 즐겁다.

 

‘여기에서의 차이는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개념들 자체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이 개념들이 우리사회에서는 유동적이고 자생적인 성격을 갖지만 다른 곳에서는 심사숙고된 공식적 해석 체계의 기초로 쓰인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마나 유형의 개념들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마나 유형의 개념들이 가진 유일한 기능은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지금까지의 상보관계가 손상되어 불일치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그때 그때 알리는 데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말을 자주 떠올리고 살고자 한다. 여기에 ‘기표와 기의 사이에 간극이 있다..”라는 낮달의 메모에서, 간극을 메우고자하는 인간의 잔잔하면서도 마음 찡한 의지를 공감한다.

 

한가위는 반성중.

발제자가 후기를 올린다는 걸 안내받았음에도 이야기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 하고, 생각하고…나누는 즐거움에 빠져 후기 작성을 위한 메모를 깜빡했다는 걸 세미나가 끝난 후에야 알아차렸다.

이 후기는 세미나 식구들을 향한 나의 주관적인 마음이 대부분. 새롭게 만난 세미나 식구들 사이에서, ‘후기’라는 형식의 ‘상징체계’를 만들어가는 이 과정은, 나만의 피할 수 없는 "부유하는 부표"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엔 나에게 주어진 소임을 좀 더 집중해 봐야지^^.

댓글 6
  • 2024-03-20 16:23

    너무 재밌는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보통 세미나 할 때 후기 담당자는 다른 사람 말할 때 아래를 보며 뭔가 적기에 급급하다든가 하지요..
    근데 그날 한가위 선생님은 아주 여유롭게 계셔서 어떤 후기가 나올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ㅎㅎ
    한가위님의 주관을 거쳐 나온 그날의 세미나 흥미진진합니다.
    무엇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 걸까요?
    유클리드적 논리체계를 벗어나야 새롭게 질문을 길어올릴텐데 쉽지 않네요~ 많이 도와주세요^^

  • 2024-03-20 16:28

    상냥~친절한 후기 넘 감사해요~
    한가위님이 후기 작성의 메모도 잊을 만큼 뜨거웠던 그날의 분위기가 떠오르네요^^ ‘부유하는 기표’ 에 관한 뜨거운 논쟁도 꽤 즐거웠고요~
    마나가 구체적 대상에 스며들어 작용했다가 다시 분리되어 세계를 떠돈다는 게 참 흥미롭습니다! 온갖 마나를 흡수해서 순간적인 걸작을 만들고 싶다는 ㅋㅋㅋ

  • 2024-03-21 08:07

    세미나라는 '기표'에 동학들에 대한 애정과 통찰이 가해진 '기의'가 즐겁게 춤을 추네요~
    이렇게 회화적인 후기라니요?!
    지난 시간의 우리의 세미나가 한가위님의 손을 거쳐 전시 공간의 '걸작'이 됐네요:)
    즐거운 전시 공간에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가위님의 말씀처럼
    전 자신의 확고한 문제의식 속에서 모스를 '추앙'하고 '비판'하는 레비스트로스가
    자신의 글에서는 이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을 지 점점 더 기다려집니다.
    <슬픈 열대>>로 고고씽~

  • 2024-03-21 18:44

    저야말로 세미나시간에 '부유하는 부표'같은 느낌이었는데 한가위쌤은 언제 이렇게도 섬세한 관찰을 하신건지 부지런히 배워야겠습니다. 후기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 2024-03-21 20:36

    한가위님의 재미난 후기 감사해요.
    메모를 깜박하셔서 일까요^^ 오히려 지난 시간의 분위기가 더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다음엔 저도 메모에 집중하기보다는 이야기에 홀려서 세미나 시간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2024-04-03 19:51

    세 번째 시간 후기를 적으려고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참 재밌게도 쓰셨어요 ㅎㅎ
    지난 주, 참의 분해의 미학 강의로 여유롭게 한 주를 벌었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잠시, 내내 '후기'의 압이 어깨를 누르네요 ㅋ
    마음의 짐을 던져버리기 위해 다음 후기를 쓰러 가겠습니다!!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259
N 더-낭독 <일리아드> 일곱 번째 시간 후기 (1)
느티나무 | 2024.04.25 | 조회 28
느티나무 2024.04.25 28
258
[레비스트로스의 숲] 일곱번째 시간 메모와 발제 (5)
| 2024.04.25 | 조회 74
2024.04.25 74
257
<마니세미나> 난처한 미술이야기2: 로마 미술 후기 (4)
띠우 | 2024.04.23 | 조회 37
띠우 2024.04.23 37
256
[레비스트로스의 숲] 여섯번째 시간 후기 (4)
동은 | 2024.04.22 | 조회 115
동은 2024.04.22 115
255
[레비스트로스의 숲] 여섯번째 메모와 발제 (6)
| 2024.04.18 | 조회 94
2024.04.18 94
254
생명에서 생명으로 2회차 메모 (6)
달팽이 | 2024.04.18 | 조회 45
달팽이 2024.04.18 45
253
[레비스트로스의 숲] 5번째 시간 <슬픈열대> 후기 (5)
돈키호테 | 2024.04.16 | 조회 101
돈키호테 2024.04.16 101
252
낭독 <일리아드>여섯번째 후기: 불행의 시작 (2)
담쟁이 | 2024.04.14 | 조회 56
담쟁이 2024.04.14 56
251
<분해의 정원> 밭 디자인시간 (2)
모카 | 2024.04.12 | 조회 72
모카 2024.04.12 72
250
[레비스트로스의 숲]4번째 시간_<슬픈 열대> 3부 후기 (5)
르꾸 | 2024.04.11 | 조회 86
르꾸 2024.04.11 86
249
[레비스트로스의 숲] 다섯번째 메모와 발제 (9)
| 2024.04.11 | 조회 79
2024.04.11 79
248
[레비스트로스의 숲] 4번째 시간 - 슬픈열대 4부 후기 (5)
낮달 | 2024.04.11 | 조회 76
낮달 2024.04.11 76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