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숲] 두번째 시간 메모

뚜버기
2024-03-14 16:52
107

두서없지만 ... 시간 관계상 일단 올립니다.

댓글 8
  • 2024-03-14 20:38

    자자, 긴장하자.
    교환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군. 당연히, 이건 내가 아는 교환이 아니겠지. 음, 첫 장부터
    '증여론'에서 전개된...내가 이 모든 것, 즉
    이 모든 것이라 함은

    첫째, 마나와 하우에서 이야기되어지는 교환=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
    둘째, 기표와 기의의 상보적 관계, 이 같은 관계 유지인 상징적 사고의 실행을 위한 조건(의미작용의 잉여분),
    셋째, 마나, 와칸, 오렌다 등 개념의 의미론적 기능의 의식적 표현
    넷째, 이로써 상징적 사고가 그 고유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실행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마나 개념에 들러붙어 해결 불가능해 보였던 이율배반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

    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증여론'을 읽지 않았기 때문일까?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을 하니 목요일 오후에 도착한다는 알림.

    어떻게든, 다시.
    마나, 하우. 뭐였더라 뜻이. 책장을 앞으로 넘기며. 휴우.

    심리적 삶이 오직 두 가지 지평(사회적인 것의 지평=언어, 생리적인 것의 지평=생명체의 필요라는 무언의 다른 형식)
    에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콩트의 가르침에 매몰된 모스.

    오늘, 수많은 단어(언어)들이 연결되지 않고 떠돌아 총체적 사실로써 내 개인의 체험 속에 구현되지 않음을 실감한다. 언어가 아니가 개념인가.

    어쨌든 나에게도 거시기, 나아가 그 '무언가'가 있어 이러한 개념들을 통합하고, 사유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내일 만나는 것(대상)은 기분 좋은 일이다. ㅎㅎ

  • 2024-03-14 21:52

    p 62,65,66
    (옮긴이) 주석
    '구름은 수생 식물에서 피어오른 연기이다'
    모스는 주술적 판단을 '완벽에 가까운 선험적 종합판단'으로 여긴다. 여기서 모스는 마나가 고전 논리학에서 말하는 계사, 즉 주사와 반사를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본다. 가령 구름은 식물의 연기이다에서 구름과 식물의 연기라는 불연속적인 두 관념을 신비스럽게 이어주는 계사 역할을 마나가 맡는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연기와 구름을 동일시하는 사고가 무의식적 층위에서 어느 순간 성립했기에 이러한 주술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추론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마나의 개입을 무의식 수준에서 일어나는 연기=구름의 관계에 대한 의식적 표현이자 주관적 반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재작년 뚜버기샘의 증여론 수업을 들었을 때 '하우'라는 개념의 등장에 난감했다. '선물은 그것을 준 사람의 영혼(하우)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며, 선물을 받은 사람이 답례의 의무를 느끼는 이유는 이 영혼의 일부가 자신의 고향과 이전 소유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의 난감함이 레비스트로스의 설명(정확히는 옮긴이의 주석으로)으로 조금 해소되는 것 같다. 레비스트로스는 '하우는 교환의 궁극 원인이 아니다. 하우는 교환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 사회 사람들이 교환의 무의식적 필연성을 파악하는 의식적 행태이지 그 필연성의 이유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 2024-03-14 23:05

    p98) 신체에는 사회적인 것을 수용하고 그것을 개인 특유의 생리적 상태에 맞취 표현하는 '상징적 모공'이 존재한다. 신체 용법은 집단의 압력이 몸에 미치는 일방적 효과가 아니라, 몸에 관한 집단적 규범과 그에 응답하는 개인 신체의 상호 공명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 2024-03-14 23:27

    64
    여기서 차이는 인간 정신이 어디서나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개념들 자체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이 개념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유동적이고 자생적인 성격을 갖지만 다른 곳에서는 심사숙고된 공식적 해석 체계 — 우리 사회에서는 학문의 역할로 맡기는 해석 체계—의 기초로 쓰인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마나 유형의 개념들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마치 대수 기호처럼 이 개념은 의미작용의 불확정적 값을 나타낸다. 즉 그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기에 어떠한 의미라도 수용할 수 있다. 마나 유형의 개념들이 가진 유일한 기능은 기표와 기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지금까지의 상보관계가 손상되어 불일치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그때그때 일리는 데 있다.
    —>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말을 자주 떠올리고 살고자 한다. 여기에 ‘기표와 기의 사이에 간극이 있다’.. 라는 설명을 보면서 .. 실은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번 이런 순간을 경험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우리의 의식과 언어생활은 저 깊이 깊이부터 쌓아온 불확정적인 것들을 대면하고 헤맸던 순간들이 두껍게 쌓여서 가능해졌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자체로 우리 존재가 얼마나 지성적인지 설레인달까.. 뭉클하달까.. 그렇다.

    79
    인간의 조건을 이루는 근본적 상황이 줄곧 (분명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인간이 태초부터 기표 전체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기표를 기의에 어떻게 할당해야 할지 몰라서 무척 난처에해하는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그저 주어져 있을 뿐 미지의 것으로 머무는 기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오직 신적 지성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불일치가 상존하며, 그 결과 기표는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기의를 양적으로 초과하게 된다. 따라서 언제나 인간은 의미작용의 잉여분을 보유한 채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착수한다. (인간은 상징적 사고의 법칙에 따라 이 잉여분을 사물들 사이에 배분한다. 다만 그 법칙을 연구하는 것은 민족지학자와 언어학자의 몫이다.) 추가적 할당량의 배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 과정은 가용한 기표와 식별된 기의가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이 같은 관계 유지야말로 상징적 사고의 실행을 위한 조건 자체에 해당한다.
    —> ‘신적 지성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는 불일치’가 상존하는 상황..즉, ‘의미작용의 잉여분을 보유한채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우리가 ‘이해’라는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는 것이 순간 순간 어떤 도전인지.. 그 작용이 귀하고 이상하게 아름답게 다가온다. 레비스트로스는 사람들과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80
    마나 유형의 개념이 아무리 다양하더라도 가장 일반적인 기능(앞서 살펴봤듯이 마나의 이 기능은 우리 사고방식과 사회 형태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고찰하면, 그것은 정확히 부유하는 기표(signifiant flottant)에 해당한다. 이 기표는 모든 유한한 사유에 주어진 구속이자 모든 예술과 모든 시, 모든 신화적이고 미적인 창작물의 보증자이다.
    —> 그냥 좋아서..

    83
    ~ 무엇보다 모스 자신이 민족학의 본질적 목표를 인간 이성의 확장에 두었기 때문이다.
    ~ ~ 심리적 삶이 오직 두 가지 지평에서만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콩트의 가르침에 모스가 평생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한결같이 보여준다. 하나는 사회적인 것의 지평이며 다른 하나는 생리적인 것의 지평인데, 전자는 언어이고 후자는 생명체의 필요라는 무언의 다른 형식이다. ~
    —> 나는 상담이나 공감을 나누는 현장에서 내가 하려는 것이 .. 생명체의 필요에 주목하고 그것을 같이 느끼고 상대에게 적절한 언어가 찾아오도록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자는 언어이고 후자는 생명체의 필요..라는 말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어려워서 던져놓고 싶은 책이 있고, 어려워서 다시보고 싶은 책이 있는데.. ㅎㅎ 이 책은 다시보고 싶다. 추천해준 친구님들께 감사~ / 이번 회차는 어떤 풍성한 이야기들이 오가갈지 매우 궁금합니다. ㅠ.ㅠ.. 참. 제가 주말 워크숍이 없는 주를 끼고 발제를 하고 싶은데요..28일 순서를 맡을 수 있을까요?

  • 2024-03-15 01:43

    발제같은 요약, 요약같은 발제 올립니다. 에고야. ^^
    ----------------
    마르셀 모스 저작집 서문 후반부 요약발제

    1. ⟪증여론⟫ - ‘하우’, 교환

    모스는 ⟪증여론⟫에서 ‘사회적인 것은 체계에 통합될 때만 실재적이라는 입장에 서서, 그 인식의 문제를 ‘체계의 부분들 사이에서 연관성, 등가관계, 상호의존성을 찾아’내는 문제로 제기한다. 뒤르케와는 구별되게, 모스는 ‘현상들 사이에서 불변하는 관계’를 상정하고, ‘교환’은 ‘주고, 받고, 돌려줄 세가지 의무’라는 경험적 조각들로 구성되며, 그 조각들 안(혹은 사이)에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레비스트로스는 모스의 한계를 지적한다. 모스는 ‘전체의 통일성은 그 각각의 부분들보다 더 실재적이다”라는 원칙에 반해, 부분들을 혼합한 다음, ‘하우’ (선물에 깃든 증여자의 영혼이자 증여자가 준 선물에 응답하게 만드는 힘 - 감정적•신비적 접착제)라는 ‘효력’을 더한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는 ‘하우’는 교환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특정 사회 사람들이 교환의 무의식적 필연성을 파악하는 의식적 형태이지 그 필연성의 이유가 아니다(62쪽)라고 말한다. 교환은 요소들의 합성물이 아니라 분할 불가능한 전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의무들이 아니라 교환 자체를 ‘근원적 현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우는 교환의 원인이 아니라 증거이다. (135쪽)

    레비스트로스는 교환과 커뮤니케이션을 동일시하는 입장을 피력한다.(127쪽) 상징체계의 작동을 커뮤니케이션(=교환)으로 볼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징체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대립과 상관관계로 연결된 항들, 역으로 말하자면 항들 간의 대립과 상관관계들이 상징체계를 구성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대립 즉 차이나는 것들의 짝짓기를 상징체계를 구축하는 기본 논리로 간주함) 대립/상관관계들의 확립과 재조정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으므로 커뮤니케이션은 상징체계의 작동이다. 상징체계는 곧 커뮤니케이션 체계, 커뮤니케이션을 조직하는 체계이자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조직되는 체계이다. (128쪽)

    레비스트로스는 교환은 상징적 사고에 즉각 주어진 종합이자 상징적 사고를 통해 주어지는 종합이라고 주장한다.(76쪽) 상징적 ‘사고’는 상징체계의 ‘작동’을 지시하는 것이므로, 이 진술은 교환이 상징체계에 의해 조직되는 작동이자 상징체계를 조직하는 작동으로 볼 수 있다.
    상징체계인 교환은 사회생활속에서 총체적으로 전개된다. 여기에 호혜성(서로 대갚음)의 개념이 도입된다. 상징체계의 작동인 교환은 사회생활의 근본 조건이자 요구로 변모한다(129쪽)
    호혜성은삼중의 의미에서 원리가 된다. 1) 그것은 사회의 존재 근거가 되는 실제 원리이다. 서로 대갚음하는 원리가 구현될 때, 사회생활이 있다. 2) 호혜성은 행위의 규범이 되는 실천적 원리이다. 사회생활은 ‘타자로부터 그리고 타자를 통해 자기가 가장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일이 서로 대갚음의 규범을 통해 일반화되길 요구한다. 3) 호혜성은 인식의 근거가 되는 원리이기도 한다. (근친상간 금지)

    2. ⟪주술의 일반이론 개요⟫ (이후 ⟪개요⟫)에서 ‘마나’
    레비스트로는 모스의 ‘마나(비인격적이고 초자연적인 힘)는 명제에서 계사역할을 수행한다’(65쪽)라는 주장도 ‘하우’와 같은 선상에서 그 문제점을 말한다. 즉, 마나가 작용한 연기가 곧 구름이라는 모스의 추론에 반해, 레비스트로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의식적인 사고의 층위에서는 마나가 개입될 필요 없이 연기가 곧 구름이라고 추론한다.
    같은 선상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모스가 이야기하는 마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 의지, 믿음의 질서 - 숙명, 인연 - 임의성’은 현상을 밝혀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 자체의 일부를 이루는 것(74쪽)이라고 주장한다.

    3. ‘하우’와 ‘마나’, 교환과 호혜성
    ‘하우’는 ⟪증여론⟫의 첫머리에 등장하고, ‘마나’는 ⟪개요⟫의 끝머리에 등장한다.(75쪽)
    ‘교환은 상징적 사고에 즉각 주어진 종합이자 상징적 사고를 통해 주어지는 종합이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형태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환에서도 상징적 사고는 자신에 내재한 모순을 극복해낸다. 사물을 자기와 타인 양쪽에게 있어 대화의 요소로 인식하는 한편, 그 본성상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건네져야하는 것으로 건네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모순이 그것이다. 이때의 사물이 나의 것인지 타자의 것인지는 애초의 관계성 성격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다.(76쪽)
    이 논저는 주술적인 측면(즉, ⟪개요⟫의 관점)에서 유사하다. 주술적인 판단은 연기와 구름을 동일시하는 더 근본적인 사고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적어도 특정관계에서는 한쪽은 다른 쪽과 같은 것을 간주되며, 이러한 동일시가 그 뒤에 이어지는 관념의 연합을 정당화한다. 모든 주술적 조작은 통일성의 회복에 달려있다.(76쪽) 이 통일성은 (상실된 통일성이 아니라) 무의식적 통일성이다. 마나 개념은 실재의 질서가 아니라 사고의 질서에 속하며, 사고는 자신을 사고할 때조차도 오직 특정 대상만을 사고한다 (⇒ 개별적인 구체적인 경험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기 떄문일까?).

    4. 인식의 흐름
    언어의 출현으로 ‘아무 것도 의미가 없는 단계에서 모든 것이 의미를 갖는 단계로의 이행이 일어났다.’(77쪽) 인식은 천천히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우주에 대한 의미부여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정신의 역사에 하나의 근본적 대립, 즉 불연속적 성격을 나타내는 상징체계와 연속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인식 사이의 대립이 존제한다. 기표 전체와 기의 전체에서 상호일치 관계를 드러내는 부분들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인식으 아주 느리게 궤도에 진입힌다. 따라서 진보(인간정신의 진보, 과학적 인식의 진보)는 자기완결적이고 자기보완적인 전체의 내적 조정 작업처럼 이뤄질 수밖에 없다. 즉 진보란 내적 분할들을 바로 잡고, 새로운 분할과 편성을 시도하며, 소속 관계를 정의하고 새로운 지원을 찾아보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78쪽)

    5. 기표와 기의 - 상징체계와 인식 사이의 관계
    인간은 기표 전체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기표를 기의에 어떻게 할당해야 할지 몰라서 (어떻게 총체적인 연결을 통해 실재하는 지를 설명할지 몰라서) 난처해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기표와 기의사이에는 불일치가 상존하며 그 결과 기표는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기의를 양적으로 초과하게된다. 따라서 인간은 의미작용의 잉여분을 보유한 채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착수한다. … 이 과정은 가용한 기표와 식별된 기의가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는 필요조건이며, 이 관계 유지는 상징적 사고의 실행을 위한 조건 자체에 해당한다.(80쪽)

    * 끄덕끄덕
    - ‘파푸아어와 멜라네시아어는 구입과 판매, 융자와 차용을 하나의 단어로 지시한다. 상반된 작용이 같은 단어로 표현된다.’ ⇒ 문제의 작용이 실제로는 ‘상반된’ 것이 아니라 같은 실재의 두 가지 표현양식일 뿐. 대립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종합을 이루게 할 하우도 필요하지 않다. (63~4쪽)

  • 2024-03-15 05:15

    <레비스트로스의 숲>시즌1_2차시 메모_참

    존재한다는 것은 관여하는 것이다.

    사례1)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두 개의 식빵을 구분해 놓고 한쪽은 듣기 좋은 말, 나머지는 듣기 싫은 말을 퍼부어 두 식빵의 부패 정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싫은 말( 빵도 우리말을 알아듣는지 )을 들은 쪽에 곰팡이가 더 많이 생겼다.
    사례2)
    ’감기한 번 안걸리네~ ’라고 생각없이 말했다가 꼭 며칠후에 아프곤 한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라 평소에는( 정신 나갈때 빼고 )조심하는 편이다.
    사례3)
    작은 짐승이 로드킬로 누워있는 것을 목격할때 마다 옆에 있던 운전자는 창을 열고 ‘퉤퉤퉤‘ 세 번 침을 뱉는 시늉을 한다.

    나는 ’말‘에 무언가를 발생하거나 없애는 힘이 있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모스와 함께 연구했다는 뤼시엥 레비브륄( p62)은 보로로족의 남자들이 스스로를 앵무새로 간주하거나 적이 남긴 발자국을 적으로 여겨 그곳을 향해 창을 던질때 ’관여‘가 관찰된다고 보았다. 레비브륄이 보기에 원시인( 그의 연구주제가 원시적 심성 )들에게 있어 “존재한다는 것은 관여하는 것이다”

    말의 힘과 존재가 관여라는 말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레비스트로스는 연기와 구름을 동일시하는 사고가 무의식적 층위에서 어느 순간 성립했기에 이러한 주술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추론한다. (P66)
    상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의미의 구멍이나 상징화되지 않은 잔여는 위협적이다. 그러므로 레비스트로스는 마나나 하우같은 부유하는 기표는 상징체계의 중단 없는 작동을 위해 필요불가결하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나의 레비스트로스적 가치에 역자들이 제기한 (오히려 모스에 가까운 해석) 마나에 깃든 ‘움직임’은 굉장히 설득력있게 들린다. (P141) 마나는 힘, 존재, 작용, 속성, 상태라는 다양한 양태를 가짐으로서 어떤 구체적 대상에 스며들어 작용했다가 다시 그로 부터 분리되어 세계를 떠돈다는 것. 요컨대 마나는 초인간 존재들의 개입이 발생시키는 효력을 지시한다며 흥미로운 전개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말에 깃든 효력도 이와 비슷한게 아닐까?
    기표와 기의사이에 오직 신적 지성을 통해서만 해소될수 있는 불일치가 상존( p79)하고 따라서 인간은 의미작용의 잉여분을 보유한채 세계를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써왔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은 마나의 효력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 무언가 말로 딱부러지게 설명할수 없는 불일치를 메우기 위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주술에,영화에, 음악에, 그림에 드러난다.
    영화 <솔라리스>가 떠올랐다. 원작은 sf소설이고 나는타르코프스키의 영화로 보았는데, 인간이 이해할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광기가 되는 과정을 기묘하게 보여주었다.
    아~ 이제 메모를 급하게 마무리해야할 타이밍.
    다시 지난주에 제일 흥미로왔던 부분으로 돌아가보자.
    가장 내밀하고 보편적인 주관성으로 우리와 타자 사이에 자리잡은 무의식을 통해 우리는 민족지적 탐사에서만난 우리에게 가장 낯선 타인을 마치 또 다른 자기 자신 처럼 접근할수 있다.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분석에 따르면 신화의 변형(p150)은 개별신화의 안! 이 아니라 신화들 사이!! 에서 이뤄진다. 800여개의 상호연결된 신화들이 인간들속에서 스스로 사고하고 그는 ‘의미의 전달자’로 머무른다. 시인 김소연은 자신은 시를 쓰는게 아니라 시를 받아적는 서기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레비스트로스의 말로 하면, 시를 받아적는 존재가 되는 지점은 신화, 다른 말로 무의식을 포착하는? 그것에 닿는 순간이 되겠지?
    진짜 그런 것이 흐르고 있다면,
    상징체계의 구멍을 메우려는 끝없는 시도들이 신화들 사이에서 발생한 수없이 많이 변형된 마나들로 존재하고 나는 그 수많은 복제물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움직이고 있는 마나에 순간이라도 접속할 수 있다면, 그 감각으로 조금이라도 살만한 쪽으로 관여할수 있다면…

  • 2024-03-15 06:28

    나의 새벽과 바꾼 메모..

  • 2024-03-15 08:55

    지난 시간에는 ‘상징체계’가 눈에 들어왔다면 지난 시간을 지나 이번 시간에는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계전에 <증여론>을 읽었을 때 나는 하우를 ’사람의 심성‘ 혹은 ’성질‘ 같은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호혜성’이라는 말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레비스트로스가 얘기하는 하우(마나 개념?)은 그 사회의 상징체계에 따르는 ’관계적 판단‘이 아닐까 한다. 성질이나 심성이나, 보이지 않는 영혼에 대한 추상화같은 것이라기보다는 그 사회가 따르는 상징체계 속 인식되지 않는 의식(이게 가능한 말이라면...) 같은 것...

    그래서 모스가 말하는 총체적인 사회적 사실(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든 분야가 서로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표와 기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기표와 기의는 무엇일까? 선물? 얼마 전 읽은 세계 끝의 버섯에서는 송이버섯이 상품과 선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본주의 내에서 균열을 내고 있다고 하는데... 거기서의 선물과 모스의 선물이 잘 연결이 안됐는데 이걸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마르셀 모스의 교환은 ‘선물’인가? 레비스트로스는 모스의 선물을 교환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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