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 세미나] 슬픈 열대 7부 후기

르꾸
2022-01-25 16:13
211

지난 세미나에서 <슬픈 열대> 6, 7부를 읽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저는 7부를 중심으로 후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레비스트로스가 탐험한 4개의 원시 부족 중 3번째에 해당하는 남비콰라족은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과는 달리 ‘인류의 유년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원지대의 지리적 환경의 가혹함으로 물질적 빈곤에 시달리면서 문화적 빈약함을 포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이들의 공동체에서 부부 간, 연인 간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이 육체적인 것보다 유희적이고 감정적인 것을 중시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의 평정과 육체적 쾌락을 연결하며 이들의 고매한(?) 성 의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배적 성규범이 서구 사회의 담론적 구성물임을 암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세미나에서 주요하게 얘기된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남비콰라족을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특히나 족장에 대한 해석은 기존에 다른 책에서 족장을 설명하는 것과 다소 상이하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원시 부족의 족장에 대한 기존 설명은 주로 ‘관대함’의 측면이 부각되는데 반해, 레비스트로스는 족장의 자질로서 관대함을 포함하여 공동체 재산 관리, 사적 소유 무관심, 리더쉽과 기민성 등과 일부다처혼의 특권을 제시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족장 개인의 심리적 동기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부다처의 특권이 성적, 정서적, 사회적 과정에서 아무리 매력적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로서는 충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족장은 그의 동료들이 회피하는 공적 생활의 부담 그 자체를 수행하는 과정 자체에서 충분한 보상(인정과 명성)을 발견하는 사람임에 주목하면서, 이를 사회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에서 그 기원을 찾는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레비스트로스의 남비콰라족 해석은 서구가 미개 사회로 명명한 이곳에서도 서구의 ‘개인주의’가 주목하는 개인적 차이들이 발현하고 있음을 주장하면서, ‘서구=근대 vs 남비콰라족(원시부족)=미개’의 이분법을 해체시키고자 합니다.

 

또하나 우리의 흥미를 불러 일으킨 것은 문자에 대한 에피소드였습니다. 남비콰라족 인구의 대략적인 수효라도 체계적으로 계산해보기 위해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이 사귄 우티아리티 우두머리를 졸라 그들의 회합에 함께 동행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이에 대한 인디언들의 긴장과 감시를 느끼고 이를 완화하고자 ‘교환’에 착수할 것으로 함께 간 우두머리 친구에게 종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글을 읽을 줄을 모름에도, 종이 한 장을 꺼내 읽는 척을 하면서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하는 교환의 댓가들을 장장 두시간에 걸쳐 연출했다는 점입니다. 이 때 레비스트로스는 남비콰라족에게도 문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음을 포착하면서 이때 문자는 지적인 목적보다는 사회적인 목적 즉, 권위와 특권을 고양시키기 위한 목적임에 주목합니다. 이를 통해 레비스트로스는 문자를 알고 있다는 것이 사회적 위계 유지에 중요한 수단이 되고, 그런 측면에서 문자가 반드시 인류 문명 진보의 필요조건이 아님을 역설합니다. 이러한 레비스트로스의 해석이 흥미로우면서도 일견 문자의 원초적 기능을 ‘예속화’에 둘 것인가? ‘진보’에 둘 것인가?는 좀 더 다차원적인 맥락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였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곳곳에 인류학 연구의 태생적 취약함을 인정하면서도 이의 취약함을 극복하는 방법으로서 연구자(레비스트로스)와 연구대상자(원시부족) 간의 일방적 소통이 아닌 상호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가 남비콰라족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들의 일상과 의식구조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타자화나 대상화의 흔적을 읽을 수 없는 것은 아마 이러한 성찰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비스트로스의 원시 부족에 대한 탐험과 이에 대한 설명이 점점 더 재미있어져 다음 주도 기대된다는 이구동성으로 세미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주는 <슬픈 열대>의 8,9부로서 마지막 장입니다. 장장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다음 주에 마무리된다는 게 젤 흐뭇합니다. 흐흐흐

댓글 2
  • 2022-01-26 08:52

    레비스트로스 선생님께서 참 설명을 맛깔나게 잘 하시더라고요..다음 책은 어떨런지~
    읽을 때는 아무 생각 없다가 이야기 나누면서, 우리가 원초적이라고 생각하는 쾌락들 조차 원초적인 게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류의 원형적 삶을 찾아 서구문명에서 멀리 더 멀리 떠난 레비스트로스가 목격한 것은 극단적으로 적은 사람들이 겨우겨우 생존하여 버티고 있는 그런 사회들이라니... 책 제목이 점점 크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 2022-01-26 12:26

    레비스트로스가 만난 남비콰라족 추장은 전사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서

    역할을 나누던 때의 추장과는 좀 다른 것 같긴 합니다.

    추장을 공동체의 재화가 흘러가는 통로라고 생각했을 때는 개인의 심리적 동기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레비스트로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개인적 차이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튼 슬픈 열대를 읽고 있자니 원시사회의 다른 측면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게 뭐라고 정리는 잘 안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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