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숲] 아홉번째 시간 메모와 발제

2024-05-09 20:51
86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내림. 로히에르 반 데르 바덴.1435

 

레비스트로스 내가 보기에, 화가의 일은 현실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6세기와 17세기의 네덜란드 정물화가들이 치즈 조각의 구조, 투명한 유리잔, 솜털로 뒤덮인 과일을 정확히 묘사하려고 노력한 것은, 물리적인 인상과 화가의 작업이 내포하는 지적인 작용 사이에 상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입 니다. 이렇게 해서 화가의 작업은 감각세계에 대한 지적인 반영이 됩니 다. 화가는 우리가 내부로부터 감각세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에리봉 술라주는 당신이 19세기의 군소 화가들만 찬양한다는 주장도 했 습니다.

레비스트로스 그건 부정확한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야생의 사고』에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문자 P를 사용할 수 있는 화가가  모든 것을 발견했으며, 그 이후의 회화는 그가 이룩해놓은 것으로 살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빚지고 있는 화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반 데르 바이던Van der weyden이라고  밝혔기 때문이지요. 다른 화가들에게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에게 내 자신이 보는 것보다 실재를 더 잘 볼 수 있도록, 세상사 속에서 나를 감동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의 지각과 인식 능력을 보조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혹은 한때는 실재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 초현실 세계로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지요. 나는 막스 에른스트에 감탄하는 글을 쓰기도 했어요. 이런 사실은 내가 현대 회화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밤.클로드 조제프 베르네.1771

 

조르주 샤르보니에와 나눈 대담에서, 나는 해양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조제프 베르네Joseph vernet의 항구 그림 시리즈를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그건 대수롭지 않은 작품이 아닙니다. 기법도 대단하고, 구성도 대단합니다. 회화의 고유한 방식에 의해 감상자는 사라진 세계로 이끌려 들어갑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세계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에요. 왜냐하면 화가는 자신이 본 것을 맹목적으로 재생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는 요소들을 재구성해서 서정적인 종합을 이루어내었습니다. 베르네의 큰 항구는 프루스트가 바라본 오페라 극장의 야회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 …)

레비스트로스 그래요. 인간이 자연의 창조물과 동등한 혹은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창작물을 자신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지요. 고갱과 동시대인인 세뤼지에는 모리스 드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것에 비해 자연은 왜소하고 진부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창조계에서 미천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과, 창조계가 자신보다 더 풍부하다는 것과, 그 어떤 미학적인 창작도 광물이나 곤충이나 꽃이 제공하는 미학적 창작과는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새, 풍뎅이, 나비는 우리가 틴토레토나 렘브란트의  작품에서 보는 것과 동일한 열렬하고 주의 깊은 관찰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신선함을 잃어버려, 더 이상 제대로 볼 줄을 모릅니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레비스트로스와 에리봉의 대화중에서

 

                  바바리안. 막스 에른스트. 1937

 

 

지난 시간의 질문들을 떠올리며

레비스트로스와 에리봉의 회화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보았어요.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를 흥분시킬까요???^^

메모와 발제를 아침까지 올려주세요~~

 

댓글 8
  • 2024-05-09 22:38

    쿨럭 쿨럭.
    3장 발제요~

  • 2024-05-10 00:08

    134 ...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가의 여부는 잠시 접어두고, 오세지족의 전설은 위에 말한 역사적 과정의 구조적 적응이라는 가설에 기초를 둔 이와 같은 해석이 원주민 자신들 사고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오세지족의 전승에 의하면 선조들이 땅이라는 그릇 속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집단은 평화를 사랑하며 채식을 하고 왼쪽과 관련되어 있던 반면, 다른 집단은 호전적이고 육식을 하며 오른쪽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 두 집단은 서로 합류하여 음식물을 교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이동 생활을 하다가, 제3의 집단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사납고 주로 썩은 고기만 먹는 집단이었는데 결국은 그들과도 합세하기에 이르렀다. 세 집단은 각각 일곱의 씨족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씨족의 수는 21이 되었다.
    이 세 부족 분할에 균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들어온 부족들이 호전적인 쪽에 가담하게 되자 균형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한 쪽은 14개 씨족, 나머지 쪽은 7개 씨족이 되었다. 이와 같은 불균형을 수정하고 호전적인 측과 평화적인 측 사이의 균형을 보전하기 위하여 전사들로 된 집단의 씨족은 다섯으로,
    135
    나머지 집단은 둘로 줄였다. 원형으로 생긴 오세지족의 야영지는 입구가 동향인데 입구의 왼쪽인 북반분()은 평화적인 7개 씨족이 차지하고 입구의 오른쪽인 남반분()은 호전적인 7개 씨족이 차지한다(J.0. Dorsey 1; 2).
    이 전설은 이중의 과정을 제시한다. 그 하나는, 순전히 구조적이며 이원적인 체계에서 삼원적인 체계로 변하여 다시 먼저의 이원체계로 환원하는 과정이다. 또 하나는 구조적이면서 동시에 역사적이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건들, 즉 이주• 전쟁 • 동맹 등 역사적으로 간주되는 사건으로 인해 당초의 구조가 완전히 뒤집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에 관찰된 바에 의하면 오세지족의 사회구조는 이 두 가지의 면을 포함하고 있다. 씨족의 수효는 같으나 평화적인 측과 호전적인 측에는 불균형이 있었다. 한 쪽은 순수한 하늘이었으나 다른 한 쪽은 땅이라고 불리는 동시에 각각 육지와 바다와 관련된 두 군의 씨족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체계는 동시에 역사적이고 구조적이며, 이원적이면서 삼원적이며, 균형적이면서도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불안정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러한 형태의 난제에 부딪혔을 때 현대인의 반응은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최그의 한 어떤 연구발표에서 결론의 일치점이 얼마나 서로 다른가를 한 번 보기로 하자.

    .. 프랑스...

    136
    오세지족의 경우는 한 쪽은 공시적이고 다른 쪽은 통시적인 두 대립적 유형을 그 출발점으로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중의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평등하게 받아들여 구조의 관점과 실제 사건의 관점을 두 가지 모두 취하여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도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
    --> 요 말..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평등하게 받아들여 구조의 관점과 실제 사건의 관점을 두 가지 모두 취하여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도식을 만들어낼 것이다...
    도식을 만들어 내는 일이 갖는 의미, 양자를 평등하게.. 두 관점을 모두 취하여 통합.. 도식의 역할? 의미를 새겨보면서 새겨보면서 .. 감탄중..

    178.. 따라서 동화될 수 있는 부분은 순수한 동질성의 지표이다. 음식물 금기는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과는 반대로 이 동질성의 부정을 그 참 목적으로 한다. 인류학자들은 이 제2의 관점만을 고려하는 우를 범하였고 그로 인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동질성, 유사성, 협동 등으로 나타나는 단일()한 관계로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다. 자연과 문화 사이에 교환되는 유사점과 상이점이 그것이며 나아가서는 동물들 사이에 또 인간 사이에 혹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도 유사점과 상이점이 교환된다.
    동물들 간의 차이를 사람은 자연에서 구해서 문화의 영역으로 옮겨놓는다(대립과 대조로써 그것을 기술하여 그것을 개념화하거나 구체적이며 영구보존되는 몸의 일부인 깃털이나 부리, 이빨__이것 역시 하나의 '추상화‘이다-을 취함으로써). 그래서 그것을 인간집단이 표장으로 선택해서 인간 자신의 동질성을 변화시키는 데 사용한다. 토템 집단의 사람들은 그 토템 동물을 먹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서로 유사하다는 말은 사람이 동물의 고기와 동일시되기를 부정하는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것은 역의 경우도 인간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한에서의 이야기다. 따라서 어느 동물의 고기도 어느 인간 집단에 의해서든 동일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후자의 접근인 '음식물 금기'가 첫번의 접근 '토템분류'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가능하기는 하나 필연적 결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음식물 금기가 반드시 토템금기에만 수반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논리적으로는 토템분류에 종속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물 금기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음식물 금기를 통해 인간이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성을 인간성에 돌리기를 거부하고 실은 여러 동물을 구별하는(인간에게 차이점을 부여하는 자연적 모델을 제공한다) 상징적 특징을 취하여 인간 사이에 차등을 두는 데 쓰고자 함이다.

    --> 띄엄 띄엄 읽어서 그런지 알듯 말듯..합니다. 요 부분 마지막 단락이니.. 이야기 나오겠지요?

  • 2024-05-10 01:16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성적 관계와 음식 섭취 간에 논리적 유사점이 있다. (205)

    작년 ‘섭식장애인식주간’ 행사의 진행을 맡았던 적이 있다. 마지막 색션이 정희진의 강의였는데 그때 정희진은 ‘먹는 행위’와 여성의 신체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구체적인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몸에 들어오는 행위에 따른 여성의 신체 관통하는 현대의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거기서 처음 씹어삼키는 자궁(176)을 들었던 것 같다. 그 강의를 들으면서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폭력적이면서도 이내 전복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여성과 음식의 교환에 대한 내용이라니 ... 살짝 예민해지기도 하는 느낌...
    여성과 음식은 기능과 상징의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교환을 통해 씨족 유지에 한 역할을 담당한다. 혼인교환은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매개 기구(203)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 결혼 자체는 남성에게 종속적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얘기가 떠오른다. 분명 한 축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오늘날에는 일종의 착취로 느껴지게 되는건 왜일까...

    여성과 음식, 자연과 문화, 여성의 자연성과 남성의 문화성, 순종과 혼종, 외혼과 내혼, 토템과 카스트... 한번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그나마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연과 문화의 관계였다. 문화는 인위적인 것, 인간이 자연의 논리를 통해 사회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자의적 논리를 재현해놓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각각의 자연물의 상징 씨족은 그 성격과 특징이 모두 다르며 그것이 서로 여성을 통해 호혜적 관계로 상보성을 띄며 서로를 유지해왔다. 씨족의 토템은 씨족마다 다른 행동원칙을 수반하고, 토템은 부호로서 규칙과 금지를 통해 윤리적 기초가 만들어진다. 토템이 그들의 윤리이자 그들의 합리성이었다는 점... 금기 부분은 좀 어려웠다... 이에 비해 카스트는 직업적으로 나뉘어져 자연물이 아닌 기능적 역할로서 그들이 나뉘어져있다는 의미였다는 뜻인 것 같다...!(맞나?)
    그런데 자연물도 그렇고, 카스트도 그렇고 오늘날에는 각각의 역할이 서로를 돕는게 아니라 그 귀천으로 구분되고 있는 것 같다. 귀천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금기로부터...? 흠..

    202쪽에 카스트와 관련해 자연과 문화의 차이는 잘 이해가 안됐다.
    “카스트는 스스로를 자연종으로 묘사하는 반면 토템집단은 자연종을 카스트로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좀더 공들여 표현하자면 카스트는 참 문화를 거짓되이 자연화하지만 토템 집단은 거짓의 자연을 참되게 문화화 시킨다.

  • 2024-05-10 07:22

    p145 중부 멜라네시아에서의 음식금기의 기원은 특정한 조상에 대한 기묘한 상상에서부터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 집은 동짓날 팥죽을 먹지 않는다. 엄마 말에 의하면 동짓날 조상이 피를 흘리고 죽여서 동짓날 팥죽이 금기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유래를 찾아보니 "공공씨(共工氏)의 자식이 동짓날에 죽어 역귀가 되었다. 동짓날 그가 생전에 싫어하던 붉은팥으로 죽을 쑤어 역귀를 쫓았던 중국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어쩌다 우리집은 이런 금기가 생긴 건지 굳이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엄마도 시엄마에게서 전해 들으셨겠지. 어쨌든 음식물 금기가 토템미즘의 변별적 특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 일상에서도 토테미즘이 살아있다.
    p204 혼인관계의 호혜성만이 먼저 말한 토템과 카스트의 두 가지 형식 중 어는 한 쪽 혹은 양쪽과 결부되어서, 또한 그 자체만으로도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착각을 접고 결혼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인 문제라는 인식을 새롭게 했다. 그래서인지 혼인관계의 호혜성이라는 말이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여전히 내 이익을 위해 부부 둘만의 문제라고 간주하고 그 외 귀찮은 관계들을 절단하고 있긴 하지만...

  • 2024-05-10 07:31

    요약 발제

  • 2024-05-10 08:47

    외혼제와 음식물 금기는 하나의 '실천'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두 가지 면 내지는 두 가지 양상인 것이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성적관계와 음식 섭취 간에 논리적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서 남자와 여자가 어떤 위치를 담당하느냐는 때에 따라서 또 사고의 수준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다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하고 있다(p205).
    기독교 사상에 기반한 남녀의 관계(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종교), 유교사상에 근거한 남녀의 관계(아마, 이 두 사상에 근거한 남녀관계가 나에겐 익숙할 터이다), 여러 사상에서 밝히고 있는 남녀의 관계가 늘 석연치 않고 불편했던 점을 감안하면
    인류학에서-신화적 사고-에서 밝히고 있는 남자와 여자, 특히 여자의 교환이라는 부분-그것이 호혜성에 기반한-또 새롭게 다가온다.
    물론, 그 논리들이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체화되는 과정이 아니여서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남자와 여자, 먹는 자와 먹히는 자, 선과 악, 결혼이라는 것, 그리고
    그 결혼 자체가 거부되어지는, 혹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현대의 사회에서 그 개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우리의 사고 수준은 어디에 와 있을까? 이상적인 사고의 수준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 음식 섭취와 금기는 어떠한 수준을 말하는 것일까?

    # 정+반=합(변증법)
    3장과 4장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논리는 정, 반. 이것의 합을 통해 마침내 이루어지는 자연의 섭리(?)다.
    -먹어도 되는 동식물과 금지된 동식물의 구분은 금지된 동식물을 해로운 것으로 간주하는 생물학적 특성이나 신비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강조된 종'과 '비강조된 종'으로 구분하는 배려에서 온 것이라는 것(P173)
    -자연적 구분과 사회적 구분은 한 쪽 질서에서 어떤 구분을 선택하면, 다른 쪽 질서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구분이 채택(P174)
    -남자를 잡아 먹는 측, 여성을 잡아 먹히는 측으로 등치
    -특정 동물이나 식물을 증식시켜 다른 집단들이 취할 수 있도록 할 책임
    -상호의존성은 래드클리프-브라운이 오스트레일리아 경우에서 설명했듯이 식물성 식품(여서예과 동물성 식품(남성)의 상호교환을 기초로 한 결혼에 잘 나타나 있고, 이 경우에서 부부 가족은 두 카스트제의 소규모 사회와 같은 것
    -내혼제 카스트와 외혼제 토템집단
    -각 집단은 '자기들끼리'의례를 행하지만 거기서 이익을 취하는 자는 주로 '남들'
    -토템집단이 각기 한 종류의 동물이나 식물을 조절하는 책임을 짐으로써 다른 집안에 이익을 준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기능분화는 또 다른 관점에서 직업 카스트의 기능분화와 닮음(p196)

    -----------------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의 대결(?)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식구들이 도움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는 하부주조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관습적 행동이 직접적 실천에서 나온다고 너무 쉽게 결론을(p206)내렸으며 구조주의에서는 실천과 관습적 행동과의 사이에 언제나 매개항이 있다고 믿는 부분, 그 매개항은 개념의 도식인데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본질과 형태가 그 도식의 조작에 따라 구조, 즉 경험적이면서 해명 가능한 존재로 구현된다고 너무 쉽게(?) 설명하는데 나는 이해가 어렵다. 게다가 인류학이 무엇보다 심리학이라니(내가 배운 심리학은 무엇?)
    여러 '주의'와 '사상'과 '종교'와 '신화'가 어지럽게 머릿속을 부유하던 어제밤. 새벽까지 들어오지 않던 남자, 아침에 눈떠 보니, 화장실을 안방 삼아 쉬고 계시는 그 분... 결혼, 식사, 소유, 가치, 이익, 수확물, 승리가 모두 하라의 단어라는 요루바 말에 한 단어를 추가해야할 것 같다...ㅋㅋㅋ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4-05-10 08:53

    메모 올려요

  • 2024-05-10 09:41

    주제와 변주

    수백 혹은 수천년 간 고립되어 존속해온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각 부족들은 토템조상에 대한 사고, 사회조직방식, 의례 체계에 있어서 저마다 미묘하게 다른 내용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지식이 방대하여 전체를 도식화하는 직관적으로는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레비스트로스는 이 내용들 사이에서 그것을 구축하는 뼈대로서의 형식을 직관하고 있다. 그는 유사하고 이해하기 쉬운 예시로서 18-19세기 유럽 농촌 마을에서 복장양식이 성립된 과정을 소개한다. 인근 촌락과 자기 마을을 구별지으면서 더 나아가 그들을 능가하는 멋진 복장을 고안하는 과정에 비추어 볼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각 부족들에게서 조사된 토템문화들 역시 폐쇄된 사회 속에서 사색과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전래의 양식들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그 테두리 안에서 부단하게 주제를 갈고 닦아 변주곡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즉 그 내용은 다르지만 어떤 문화 내든지 그 안에는 전체적인 체제 순응주의와 좁은 범위 내에서의 독자성 발휘 사이의 상호작용이 마치 음악에서의 ‘주제와 변주’처럼 존재한다는 표현이 조금은 구조주의를 감 잡게 해 준다. 레비스트로스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전체 기술, 경제적이고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구조가 하나의 방대한 변환군”(158)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치고 있다. 그것이 가능했을지 아니면 이제는 가능한 일일지도 궁금하다.
    고립이라는 좋은 조건 덕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토템형 사고가 잘 보존되고 조직되어 이어져왔다. 인간 집단에서 토테미즘은 왜 생겨났을까? 이에 대하여 레비스트로스는 이질적인 체계들을 결부시켜 기호화하는 방식이라는 놀라운 답변을 제시한다.
    “토템형 사고와 신앙이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그것을 형성하거나 차용한 사회에서 그것이 ‘부호’가 되고 개념체계의 형태를 띠게 되는 바, 그로써 각 수준에 속하는 메시지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언뜻 보기에 무관한 메시지들, 즉 인간들 사이의 관계인 문화나 사회 또는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 간주되는 기술적・경제적 현상의 그 어느 한 쪽에만 속하는 듯한 메시지들 사이에도 변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토테미즘은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고민해온 문제인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립을 초월하는 수단 혹은 희망으로 고안된 해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근대 서구 문명은 이 문제에 대해 자연을 문화에서 분리하여 이용가능한 자원으로 격하시켰고 그것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 오늘날의 기술이다. ‘자연과 문화 사이의 모순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까라는 주제에 대한 파괴적인 변주곡을 우리는 연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레비스트로스는 하부구조란 우리에게 주어진 카드패라고 말한다. 게임의 규칙이 한계로서 주어지지만 그것은 다양한 체계로 해석될 수 있는 지으며 “아무리 똑같은 카드가 쥐어졌다 하더라도 누구나 똑같은 식의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264). 그런 의미에서 실천은 관습적 행동에서 바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개념의 도식이라는 매개항을 통해 구현된다는 것을 우리는 3, 4장에 걸쳐서 레비스트로스에게 이끌려서 반강제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과정을 “상부구조의 이론”(206)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말한다.“인류학은 무엇보다 심리학”이라는 레비스트로스는 하부구조의 연구가 역사학이 담당할 과제라면 인류학이 담당할 과제는 “관습과 사실 사이의 종합적 조작매체” 역할을 하는 체계가 무엇이며 그것에 의해 사실이 어떻게 ‘기호’로 변화되고 경험적 다양성이 어떻게 개념적 단일성으로 나아가며 더 나아가 유의미한 종합이 되는지 증명(‘상부구조의 변증법’)하였다고 단언한다. 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과연 새로운 변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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