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철학] 2강 후기

수수
2024-03-15 23:55
173

오늘은 <분해의 철학> 두 번째 강의가 있는 날이다. 강의 제목은 ‘인류의 임계 - 미래소설에 등장한 분해’이며 강사는 띠우샘이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열강을 펼치고 있는 띠우샘)

 

 

인류가 생겨난 이래 불로불사에 대한 욕망은 사라진 적이 없다. <분해의 철학>의 저자 후지하라 다쓰시는 이것이 치유 불가능한 병이지만 동시에 필요한 병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분해 세계’에서 자기 해체를 앞에 둔 인간이 ‘분해에 저항하는 세계’를 통해 생명을 배턴처럼 다음 세대로 이어감으로써 인류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600만 명의 사망자가 생겨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사고관은 붕괴되었고, 세계는 대량의 불로불사 물질에 둘러싸였으며 점점 ‘분해 세계’는 은폐되기 시작했다.

 

체코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카렐 차페크(1890-1938)는 전쟁이 뒤덮은 일상의 균열 속에 엿보이는 이면의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내구성만이 아니라 인류의 내구성을 문제 삼기 시작하며, ‘지구상에서 인류는 언제까지 지속할까’를 질문한다. 스탈린, 히틀러, 오펜하이머와 동시대를 살았던 차페크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인류가 어이없이 멸망해 가는 방식을 담담한 문장으로 시뮬레이션하며 ‘사고실험’을 한다.

 

‘인간애’에 집중한 차페크와 달리 후지하라 다쓰시는 인간적인 것이 붕괴한 뒤에 태어나는 ‘분해’에 대한 사유로 차페크의 작품들을 바라보고자 하였다. 책에 나와 있는 차페크의 여러 작품에 대해 띠우샘의 자세하고 재미있는 설명이 이어졌다. (차페크의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나에게는 풍부한 이해의 시간이 되었다.)

 

차페크의 여러 작품을 통해 다쓰시가 말하고자 한 바는, ‘분해의 무조건적인 거부’도, ‘정도 이상의 과도한 분해’도 결국 우리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300년을 살게 된 작품 속 주인공은 그런 삶(분해 거부)이 결국엔 저주라고 말하고, 그것의 대척점인 모든 것이 완전히 분해되는 세상(과도 분해) 또한 결국 핵폭발과 같은 상황으로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쓰시는 현대 소설 두 편을 통해 분해력이 약화 된 현대의 모습을 언급한다. 차페크 시대의 로봇이나 비인간(도롱뇽 등)들은 인류의 자리를 넘보고 기꺼이 혁명을 꿈꾸고 실행에 옮긴 반면, 현대 소설에 등장하는 복제인간들은 혁명과 전복을 꿈꾸지 않고 순응한 채 살아가는데, 다쓰시는 그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지닌다.

 

차페크와 다쓰시는 ‘분해 세계’와 ‘분해에 저항하는 세계’의 조화를 통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아마추어 원예가’라는 말로 제시한다. 이 말은 단순하게 식물을 가꾸는 것만이 아니라, ‘흙’이라는 분해 세계를 인간존재론적인 측면까지 확대해 인류가 분해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저자가 복제 인간을 가지고 굳이 분해를 이야기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복제 인간’에 대한 개념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우리가 아직 ‘분해’와 ‘분해력’에 대해 상당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분해는 재생 능력을 말한다, 분해는 순환의 한 과정이다 등등. 그렇다면 ‘분해력’은 또 정확히 어떤 능력을 말하는 것일까. 분해력은 ‘생식의 유·무’로 정해진다는 의견부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이야기까지. 결국 ‘분해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은 다음 강의에서 더 공부해 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논의를 들자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실천할 수 있는 분해의 방법으로 띠우샘이 제시한 ‘읽고 쓰기’이다. 글을 쓰고 읽는 것을 통한 기억의 분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로 돌려 보내는 작업들, 문학 작품을 통한 다른 미래로의 접근 등. 모든 사람들이 원예가가 되어 땅으로 갈 수는 없으니 우리가 하는 공부도 분해의 작업으로 생각해 보자는 의견이었다. 여기에 대해 ‘읽고 쓰는 것은 정신의 활동이니 그보다 육체가 더 움직여 세상과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다른 샘의 의견도 나왔다. 그래서 ‘분해의 정원’ 세미나가 앞으로 할 일이 많다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훈훈한 마무리를 했다.

 

 

처음 읽는 책, 낯선 작가들, 온갖 것에 붙어서 변하는 ‘분해’라는 녀석. 아직은 어색한 대낮의 파지사유. 나의 뇌 세포가 분해되기 직전, 오늘 세미나가 끝났다.

댓글 7
  • 2024-03-17 12:59

    강의를 되짚어 보게 되는 성실한 후기 감동입니다.
    그러게요. 저도 아직 후지하라가 말하는 '분해'의 개념이 정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책을 다시 보다가 이번 강의에서 논했던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생명을 이어가는 생식의 문제'를 얘기하는 부분이 있어서 요약해 적어봅니다.
    <마크로풀로스>에서 비테크는 '인간의 정신은 육체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기만 하면 영원히 진보를 성취해가는 것,
    그 진보에 의해 인간의 정신이 고양되어 전쟁마저 없어진다'고 믿고 있다.
    육체는 분해로 향하지만 정신은 건설로 향하므로 육체의 분해만 저지하면 정신은 한없이 성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주 에밀리아는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이 그것을 완벽해 해낼 수 없는 한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정신만으로) 인간을 더 높은 존재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며 그러한 변화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에밀리아와 비테크 사이에 발생하는 균열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생명을 이어가는 생식의 신비로 메워질 수 있는 그런 얄팍한 게 아니다.
    이 균열을 메우는 것은 프뢰벨의 나무블럭에서 발견된다.
    인간의 정신은 직선적으로 진보를 이루어나가는 게 아니다.
    나무블럭이 그러하듯 정신은 중력, 경계면의 잘 미끄러지는 성질, 안정되기 힘든 특성 등에 지배당하며 무너졌다가 또 쌓아 올리는 일의 반복일 뿐이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구축되는 형태의 차이 속에서 모종의 우연적인 "변화"와 "변태"를 발견할 수 있다.
    육체는 자연을 향해 분해를 이룩해가는 과정이기에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그 변화에 공감함으로서 감각과 정신이 성장하는 것이다.
    (분해의 철학 134~135p)

    다음 시간은 <분해의 철학> 5,6장을 먼저 읽어오세요.
    자누리샘이
    '분해'를 어떻게 어느 범위로 볼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보는게 좋게다고 제안을 하셔서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애매한 길을 함께 찾아가기 위해서 책을 꼼꼼하게 읽어오면 도움이 되겠지요. ^~^

  • 2024-03-17 13:21

    우와 후기는 이렇게 쓰는거군여...!!!! 덕분에 정리가 한번더 되어서 다음장도 잘 읽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 2024-03-18 10:37

    수수님 후기 일목요연^^깔끔하네요
    강의 시간이 잘 복기됩니다.
    분해와 분해력의 의미가 여전히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ㅋㅋㅋ
    어쩌면 후지하라 센세의 이야기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이 분해야라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분해되지 않는 완전무결함, 완전 분해되는 완전무결함 양 극단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인간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어떤 순간적인 안정성을 찾아야하고
    그게 좀 더 지속되는 안정이기를 바라는 까닭에
    한 번 성공했던 방식이 모든 순간에 해체되지 않는 대처방식이 되면 좋겠다는 본능적인 반응이 나오는 거겠죠
    살아있기를 고집하지 않으면서도 또 잘 살아가는 능력
    변화에 유연하면서도 나만의 결을 잘 만들어가는 능력
    그 적절함과 자연스러움
    그게 바로 분해력이겠다 생각해봅니다.
    차페크의 문학을 띠우샘 이야기로 들으니 재밌었네요
    다음에 또 띠우샘 강의 듣고 싶어요

  • 2024-03-19 23:18

    우와~ 같은 강의를 들은거죠?! 묻고싶을만큼 깔끔한 정리 후기 감사합니다~^^

    변화, 변태 과정 등등 단어를 읽으면서도 흘리며 부패 개념에 한정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분해, 분해력에 대해 좀더 깊게 생각할 필요를 많이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양아치에 놀라며 4장을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ㅎㅎ언능 5,6장을 읽어야겠네요~

  • 2024-03-19 23:56

    진짜?!?! 같은 강의 들은 거죠? 아무래도 뇌세포가... 남다르신듯👍

    띠우샘은 또 문학 전문가의 면모를 강의에서 보여주셨지요 어떻게 그 많은 소설들 내용을 줄줄 다~ 꿰고 계신지요... 저는 제목만으로도 헷갈리는데 말이죠 소설로 보니 더 다양한 분해 케이스를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재밌었어요 강의 감사해요~~🧡❤️

  • 2024-03-20 00:39

    후기로 이렇게 잘 정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줌으로 듣느라 토론 부분은 잘 안 들리는데, 덕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잘 알 수 있네요.
    강의를 들으면서는 영화로 본 <나를 보내지 마>가 생각났어요.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감정을 가진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 죽이다니,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인가? 이게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정이었는데, 분해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다음 강의에서 아직 좀 헷갈리는 '분해'와 '분해력'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길 기대하며, 이렇게 참여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 2024-03-21 21:04

    후기를 읽고 댓글들을 읽으며, 강의시간에서처럼 분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고 갸우뚱하며 계속 생각하게 되네요~ ㅎㅎ 소설처럼 가볍게 읽었던 책의 내용이, 모여 이야기하면 한없이 깊어집니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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