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시 <세상 끝에서 춤추다> 전반부 후기

뚜버기
2024-03-26 04:00
122

에코프로젝트 두번째 시간, 

드뎌 완전체로 모여서 꽉찬 느낌으로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봄볕이 비치는 파지사유 세미나실, 다들 표정이 밝다

 

노라가 가져온 술병모양 초콜렛으로 다들 한 잔(?)씩 하고 셈나를 시작했다....

 

 

이번 시간 텍스트는 SF의 대가이자 우리에겐 <빼앗긴 자들>로 친숙한 어슐러 르귄의 에세이 모음집 <<세상 끝에서 춤추다>> 전반부였다. 표지 색깔이 참 산뜻하다. 

이번에도 발제없이 메모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토로는 첫번째 에세이인 <우주노파>를 소재로 썼다. 르귄은 완경의 여성을 노파라고 부르면서 노파라는 말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에 맞선다. 여성에게는 월경의 시작과 마침이라는 두 차례의 변곡점을 사이에 두고 삶을 바꿀 가능성을 두 번이나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르귄은 주목한다. 토토로 역시 본인의 첫 월경의 경험과 완경을 앞둔 현재의 마음에 대해, 르귄의 문체를 따라 시제를 오고가며 써내려갔다. “지혜롭고 용기있는 노파가 되기” 위해 먼저 우리 이웃의 약한 목소리에 힘을 보태자고 말한다.

곰곰은 <가족계획의 도덕적, 윤리적 함의>에서 다룬 윤리와 도덕 개념의 의미와 지난 시간 읽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에서 로런의 ‘살인’을 연결지었다. 여성의 낙태 선택 문제는 “생명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과 결부된 것, 즉 생명을 추상개념으로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여성 자신의 구체적 사실로서 접근해야 한다고 르귄은 쓰고 있다. 곰곰은 로런의 초공감증후증과 회복불가능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도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죽은 윤리의 멍에에서 새로운 도덕성을 끌어”냈기에 로런이 “생존으로 가는 길”을 갈 수 있었을 지 모른다는 것이다.

띠우, 노라, 참 세 사람은 <젠더가 필요한가>로 메모를 썼다. 르귄은 소설 <어둠의 왼손>에서 고정된 젠더 정체성 대신 성별이 바뀌는 사람들의 세계를 창조하여 우리의 ‘습관적인 사고방식’을 뒤집는 사고실험을 한다. 하지만 성별대명사의 사용과 관련하여 여성독자들로부터 아쉬움의 피드백 받게 된다. 이 에세이는 그에 대해 재고한 결과물이다. 노라는 바뀐 생각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파란잉크 파트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참도 “중요한 것은 꺽이는 마음”이라고,  르귄 자신의 부끄러움이 담긴 변화과정의 흔적에 형광핑크 색연필을 칠하고 싶다고 한다. 띠우는 남성-여성의 양성이 아니라 무성애까지 포괄하는 상상을 해보자고 한다.

자누리와 느티나무는 <서사에 대한 몇가지 생각>에 관해 메모를 썼다. 르귄은 최근 몇 세기 동안 영어 동사에서 가정법이 사라져가고 직설법이 주를 이루게 된 점을 지적한다. 가정법에 의해 연결된 서사는 왜곡과 과장이 아니라 선택과 제안이며 환경에 적극적으로 직면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자누리는 이 점에 주목하면서 “이야기가 우리를 제대로 인간일 수 있는 자유를 준다”고 썼다. 느티나무는 “서사는 필멸의 전략”이며 “삶의 방식이며 수단”이지만 “경험과 연결하고 끼워맞춰야만” 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글쓸 결심이 서야 할텐데…라는 고민으로 글을 맺었다. 문탁의 낭독전문가이자 이야기꾼인 느티나무에게 글쓰기만이 서사만들기의 방법은 아닐 것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오랫동안 시와 소설의 구분된 특성을 가르쳐 온 수수는 <산문과 시의 상호관계>가 제시하는 관점이 신선했다고 한다. 르귄은 시와 산문의 차이는 종류가 아니라 정도에 있다고 쓰고 있다. 즉 산문에도 산문 나름의 느슨한 리듬과 마디를 가진다는 것이다. 수수는 외국어로 번역된 시도 역시 읽는 기쁨이 있다는 르귄에게는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딴지를 건다. 조지훈의 ‘승무’를 그 맛깔스러운 어휘의 사용을 어떻게 외국어로 옮길 수 있겠냐는 것이다.

뚜버기와 달팽이는 유토피아에 대해 썼다. 의례등에서 개인들 사이에 세속의 질서가 전도되어 평등하고 해방된 개인들 사이의 집단적 공통성이 발휘되는 순간들(커뮤티타스)의 경험이 우리가 유토피아를 꿈꾸게 만든다. 하지만 유클리드적 합리성의 유토피아는 전체주의로 귀결되는 이율배반을 내포한다. 이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유클리드적 관점으로 지도에 없는 길을 나서야 한다고 르귄은 말한다.뜨거운 서구 문명이 추구해왔던 양의 유토피아와는 다른 음의 유토피아는 어떤 모습일까? 성공, 밝음, 하늘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고통이 속해있는 곳,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하는 어둠의 세계 속에, 빼돌린 비축물과 굶주림 위에 세워진 도시 대신 나눔과 정의로 세운 도시가 음의 세계이며 그곳에서 희망을 구할 수 있다고 르귄은 말한다. 달팽이는 분해의 철학이 묘사하는 세계가 바로 음의 세계이리라고 덧붙인다.

다음 시간은 서평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읽고 오기로….

댓글 10
  • 2024-03-26 08:32

    음, 저 술병 모양 초코렛, 맛보고 싶다^^

  • 2024-03-26 10:03

    수수님의 승무론에 완전 공감했어요.
    번역 문제는 우리의 숙제인거 같아요.
    어떤 영역이든 거의 번역서를 읽다보니 맛들이 죽고 제대로 읽기는 하는건가 의심이 들곤하죠.
    텍스트가 문자로만 읽히지 않고 생물의 말처럼 읽히면 좋을 거 같은데
    그게 안되니 답답해요
    ..공부 못하는 자의 변명처럼 들리네요 ㅎㅎ

    • 2024-03-26 13:40

      일단 샘이 '공부 못 하는 자'라 하시면 들고 일어날 사람이 많으니 취소하심이 ㅋㅋㅋ

      그리고 제가 번역시의 효용 자체에 딴지를 거는 건 아니구요(당연히 필요하긴 합니다),
      예전에 랭보니, 파블로 네루다니, 유명하다고 해서 읽어 본 시들이 저에겐 별 느낌이 없더라구요. 우리나라 좋은 시들도 번역하면 그렇게 바뀌겠죠. 그게 안타까웠어요.
      그러니 이젠... 번역이 필요 없는, 우리글로 된 시라도 많이 읽는 걸로~~^^

  • 2024-03-26 15:46

    르귄 멋있네요
    갑자기 막 좋아지려 합니다
    조심해야지!!

  • 2024-03-26 16:14

    루귄 덕분에 제 월경의 처음과 끝을 써봤네요. 흥미로웠어요. 기억을 끄집어내서 서사를 만드는 과정이.

  • 2024-03-26 18:22

    후기 보니 지난주 그날이 눈앞에 다가오네요~
    고맙습니다
    그나저나 일주일이 참 빨리도 가요ㅋ

  • 2024-03-26 19:48

    오~~~~뚜버기샘~
    굉장히 꼼꼼하게 기억하시네요^^
    이번주 후기는 부담 될듯 ㅋㅋ

  • 2024-03-26 20:49

    르귄의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또 그 이야기가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가 이어져 가는 과정이 재밌네요
    토토로의 초경, 완경 이야기도 재밌었고
    수수샘의 국어교사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내일 셈나도 기대^^

  • 2024-03-26 22:53

    엄청 거부하시더니... ㅋㅋㅋ 이래서 다들 믿고 맡기나 봅니다. (그래서 좋은건지 나쁜건지... 물론 저는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

  • 2024-03-27 00:21

    이렇게 많은 댓글이라니...
    요즘 보기 드문 댓글 행진입니다.
    샘 후기로 보니 르귄의 글도 메모의 글도 더 멋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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