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12회차 후기 <참을 수 없는 육체의 수치>

프리다
2024-03-1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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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정한 의미를 빼앗긴 사춘기

 

청소년기에 접어든 스티븐. 수없이 rove배회하고 wander떠돌아다닌다. 일명 ‘질풍노도의 시기(a time of storm and stress)’를 겪고 있다. 이 정의는 심리학자 그랜빌 홀(1844~1924) <청소년기>에서 비롯됐는데 청소년기를 좌절, 불만의 시기로 문명인이 되기 위해 원시적 충동을 조화시키는 과정이라 보았다. 근대 문명의 보편적 기질이 되었지만, ‘청소년기’라는 용어가 탄생하기 이전엔 이 시기를 사춘기(puberty)라 했다. puberty의 원래 의미는 ‘성적인 성숙이 이루어지는 시기’로 라틴어 어원 pubertas, ‘꽃 피우다’, ‘성인의 시대’에서 파생됐고, 한자 思春期도 성인이 되는 첫 단계, 새로운 힘이 몸과 마음에 살아 움직이며 춘정(남녀의 정욕)이 시작하는 시기를 의미했다. ‘꽃다운 이팔청춘(16세)’이란 말도 이 시기의 성적 욕망을 긍정한 표현이다. 춘향이와 이몽룡, 로미오와 줄리엣도 이 나이에 사랑을 나누지 않았던가. 동서양이 동일한 의미로 공유되던 십대의 자연스러운 성적 욕망은 종교와 근대 계몽주의 영향으로 엄격하게 통제되고 만다. 이미 성인이지만 성인임을 부정하고 성욕=죄로 길들이며 만들어진 것이 ‘청소년기’다.

 

스티븐은 이 ‘청소년기’의 불안과 혼란을 예감하며 ‘더 절절하게 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느낀다. 새로운 몸의 감각, 감정의 동요에서 오는 ‘고통의 맛을 남몰래 음미하며 끈기 있게 기록’해 나간다. 그런데 이 혼란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매번 걷잡을 수 없다. 지난 시간 강독한 부분은 그 혼란이 ‘떼로 몰려들며(thronging) 강렬한 에피파니에 휩싸인다.

 

 2. 여성과 에피파니epiphany

 

카톨릭 세계에서 여성이란 신의 epiphany를 방해하는, 그래서 인간, 정확히 남성들의 삶을 교란시키는 존재로 본다. 조이스는 기존의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깨달음의 epiphany를 비아냥대듯 새로운 epiphany의 개념을 만든다. 일상의 사소한 사건이 주는 감각적 각성이 진정한 epiphany라고. 그리고 그 사건에 여성이 개입될 때 epiphany의 강도는 더 강렬해짐을 보여준다.

스티븐은 여자에 대한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게 된다. 여섯살쯤 아일린과 결혼한다고 했다가 엄마와 단테로부터 '사과하라'고 혼이 나고, 학교 입학해서는 엄마한테 굿나잇키스를 하냐는 질문에 어떤 대답에도 친구들의 놀림을 받자, 구정물에 처박힌 것 같은 굴욕을 느낀다. 성령강림절 공연 전, 헤론은 스티븐을 보러 온 에마를 보자 스티븐에게 성자인 척하지 말고 네 행실을 인정하라며 다리를 지팡이로 때린다.

어린 시절부터 여성에게 느끼는 솔직한 감정은 늘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사태에 사로잡히고 만다. 처음 두 사건에서는 왜 혼나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지만, 헤론 앞에서 스티븐은 그녀를 만나는 기쁨이 더 압도하면서 그 분노는 금방 사그러들고 참회하는 시늉을 하며 모면한다.

 

 3. 성녀와 창녀가 혼재된 여성

 

스티븐은 아일린과 에마의 모습을 성녀의 이미지로 신성화한다. 성모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상아의 탑’ 은유를 ‘아일린의 손’이라 재정의하기도 한다. 스티븐의 손으로 느낀 그녀의 희고 차가운 손의 감각이 진정한 상아의 탑이라고.

에마의 두건cowl 아래의 눈(성모마리아)을 보면서 ‘그녀의 눈이 환상에서였는지 현실에서였는지 그에게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며 도취된다. 그러다 그녀의 허리띠와 검은 스타킹을 보며 성적으로 압도되고 만다. 내면의 목소리가 손을 뻗어 그녀를 가지겠냐고 묻는다. 그 순간 아일린이 떠오른다. 잔디밭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던 때를. 그때와 똑같이 에마 앞에서도 맥이 풀린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성녀의 이미지에 도취되었다가 허리띠와 검은 스타킹에 성적인 대상으로 뒤바뀐다. 스티븐은 이 ‘어리석은 충동’이 올라올 때마다 당혹스러워 무력하게 마비되고 만다.

대부분의 남성이 가지고 있다는 성녀-창녀 콤플렉스The Madonna-Whore Complex를 겪고 있다. 남성은 자신의 성적 욕망과 신성화한 여성 이미지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게 된다. 이 심리가 극단적으로 분열된 남성은 사랑은 성녀에게서만 느끼고, 성욕은 창녀에게서만 느낀다. 일반 남성의 성녀-창녀콤플렉스는 흔한 노랫말에도 투사되어 있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란 성녀와 창녀의 모습이 혼재된 여성이다.

스티븐에게 에마가 그렇다. 그녀에 대한 기억은 ‘두건을 머리에 두른 까만 눈이 그를 사로잡는 동시에 무력하게’ 한 것이다. 에마의 상반된 두 이미지와 그녀의 손가락 ‘가벼운 감촉의 기억’이 그의 몸속에 별안간 파도처럼 지나갔'다. 이 환영으로 욕망의 거품은 한 없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에마를 향한 좌절된 욕망의 냄새를 맡으며 '자신이 그녀를 생각해 왔듯이 그녀도 자신을 생각했을’거라는 몽상이 ‘오만’과 허영임을 깨닫는다.

 

 4. 참을 수 없는 육체의 수치

 

십대 후반으로 접어든 스티븐.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모교를 방문하게 된다. 아버지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지루하게 늘어놓는다. 그런데 교실 책상 아버지의 이니셜 S.D. 그 옆에 책상을 칼로 여러 번 상처낸cut several times ‘FOETUS 태아’를 보자 갑자기 피가 곤두서며, 그것을 새기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요즘 아이들이 야동을 보고 킥킥거리듯, 스티븐의 눈 앞에는 글자를 열심히 새기는 학생의 모습, 그 주위를 둘러싸며 모인 동료들이 옆구리를 찔러 대며 웃고 있거나 상을 찡그린 학생들의 환영을 본다.

그동안은 ‘자신만의 야만적 고질병 brutish and individual malady이라 여겼던 것의 흔적’을 아빠의 책상인 외부 세계에서 발견하자 마치 자신의 성적 욕망이 공개된 듯 얼굴이 달아오르며 수치스러워한다. ‘FOETUS’라는 단어 하나로 ‘최근에 했던 흉측한 몽상이monstrous reveries 떼로 몰려들면서thronging’, ‘자신의 지성을 비하하고 초초해하고 역겨워restless and sickened’ 한다. 성적인 이미지에 쉽게 굴복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견딜 수 없었지만 그 단어 하나로 진실을 마주하며 epiphany가 일어난다.

비정상이라 여겼던 자신의 참을 수 없는 육체의 수치가 아버지 세대의 다수에게 확인되며 그 환멸은 극에 달한다.

 

FOETUS. 책상에 여러 번 상처를 내며 새겨진 단어. 태아 때부터 또 아버지에게서 그 아버지의 육체에 새겨진 심리적 상처의 유산을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스티븐은 자신의 epiphany로 답한다.  사소한 사건이 주는 감각의 사로잡힘과 또 그 육체에 참을 수 없는 수치를 통해  그 상처를 지독히 응시하라고 . Yet his anger lent nothing to the vision. He chronicled with patience what he saw, detaching himself from it and tasting its mortifying flavour in secret.  ‘본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굴욕의 맛을 남몰래 음미하며 끈기 있게 기록’할 때 감각이야말로 새로운 나를 창조할 수 근원적 계기가 된다고.

댓글 5
  • 2024-03-11 15:47

    책상에 새겨진 글자로 왠 에피파니? 싶었는데, 이런 해석을 들으니 수긍이 가네요.
    FOETUS 태아. 그시절의 소년들의 짓굳은 성적 호기심의 표현이었군요. 오늘날의 몰래 보는 야동이라고 표현해주니 느낌이 확~~~옵니다.

    매번 욕망을 억누를 것을 강요받았고, 강요대로 억눌렀지만 정신만 혼란스워 힘들었던 스티븐이 이제 그 억압에서 자유로워 지는 걸까요?
    스티븐이 막 질주하면 어쩐대요. 나이는 많아도 어리숙한 우리들이 읽으면서 감당할 수 있어야 할텐데...

    • 2024-03-11 21:57

      그 '질주'가 점점 기대되는 지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자신의 분노에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지점까지 성숙해진 스티븐이예요.

      헤론이 지팡이로 때린 두 번의 사건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확인되는데요.
      바이런이 더 위대한 시인이라며 분노하며 저항했던 스티븐에서,
      에마란 여자를 두고 헤론의 무례한 행동에도 잠시 분노가 오르다 거리를 두고 친구의 희롱에 영합해 주겠다는듯 기도문을 외우는 모습.
      처음엔 어리석은 자와 적대적인 대립 각을 세우며 옳고 그름을 따졌다면,
      두 번째는 굴욕적인듯 보이지만 헤론을 이죽거리며 비웃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지난 후기 묘유샘 댓글에 현자의 모습과 일치해요.
      현자의 반응인 '네 당신 말이 옳습니다!'

      658fffb8ef9191903902.jpg

  • 2024-03-11 18:55

    FOETUS(태아)의 숨은 의미가 궁금했었는데, 그런(?) 뜻이 있었네요.
    음... 의외네요.
    뭔가 상당히 '형의상학적인', '순수한 예술창작의 불씨'인가 나름 생각했었는데,
    헛다리를 짚었습니다.
    현재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스티븐에겐 FOETUS가 얼굴 붉히게하는 그런 것이었네요 ㅎㅎ

    • 2024-03-11 21:31

      FOETUS(태아)는 상반된 다양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조이스의 단편 제목들을 봐도 하나의 단어로 모순된 의미로 주제를 전달하거나
      기존의 성서적 의미를 전복하며 새로운 개념으로 재치있게 표현하거든요,

      FOETUS(태아) 역시 사춘기 아이들에겐 금기된 성적욕망의 표현이지만 이 욕망의 수치를 넘어설 때
      다시 나를 낳을 수 있는 그 창작의 불씨가 FOETUS(태아)일수도 있겠구요.
      이제 비로소 육체의 깊게 새겨진 상처를 보기 시작했고
      이 상처로부터 창조의 욕망이 탄생하기 위해선 더 큰 굴욕과 휩싸일 교란의 사태가 기다리고 있겠죠.

  • 2024-03-25 00:05

    해부학 수업 강의실 책상위에 새겨진 FOETUS(태아) 글자에 별안간 피가 치솟고 그를 괴롭혀온 갖가지 공상이 그의 기억 속에 떼로 몰려 들었다.
    They too had sprung up before him, suddenly and furiouly , out of mere words.
    확실히 중첩적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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