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상영작 <일출> 후기

띠우
2019-10-27 15:54
355

유쾌한 치정멜로서스펜스!! 무르나우 감독의 일출 ~~

아침엔 충무김밥, 점심엔 복잔치, 쫓기는 사람처럼 시계바늘 보면서~~

신해철의 노래 ‘도시인’이 떠오를 만큼 빡빡한 하루를 보내고... 쿠키무이에 잠깐 들렀다가 파지에서 저녁을 먹었다.

곧이어 7시 ‘필름이다’의 영화상영이 시작되었다. 나 졸고 있니? ㅎㅎ

 

무르나우 감독은 <노스페라투>라는 유명한 영화 때문에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최초의 흡혈귀 영화라 일컬어지는 <노스페라투>의 음울함을 어슴프레 기억하는 나는 이 영화도 그런 것이 아닐까 예상했다. 무엇보다 나는 흑백의 명암이 가득한 영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고전영화를 볼 때 주어지는 여유로움이 좋기에 피곤하고 졸더라도....

그러나 영화의 스토리는 나의 예상을 벗어났다. 보다보니 이건 치정/멜로/코메디/서스펜스를 넘나들었다. 그것도 단 90여 분만에. 스토리는 시골마을에 온 도시의 매력적인 여성이 젊은 부부의 남편을 유혹해 아내를 살해하자고 제안한다(치정). 남편은 도시녀의 매력에 빠져 아내를 죽이기 위해 바다로 나가지만 결국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멜로). 우연히 도시로 가게 된 부부는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코메디) 밤이 되어 돌아오다가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 바다는 휘몰아치고 아내가 물에 빠져 실종된다(서스펜스). 남편은 좌절하여 슬픔에 빠지지만 마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아내를 찾아오고 도시녀는 쫓겨난다. 영화는 해피엔딩~

나의 취향저격이었다. 요약한 스토리는 뻔하지만, 막돼먹은 웃음소리가 파지사유를 가로질렀다. 엉뚱해서 웃고, 기막혀서 웃고, 반복된 웃음코드로 인해 웃고, 그러다보니 즐거워서 또 웃고... 무성영화다 보니 함께 보는 분들이 영화에 더빙을 얹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말이 아닌 행동과 표정, 그리고 화면의 구성위에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끼어들어 영화가 완성되었다. 영어 대사가 자막 처리 되자 그걸 소리내어 해석하고 반응했다. 영화를 이렇게도 보는구나...이런 것이 극장이 아닌 파지사유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재미 같다. 자연스레 잠은 달아나더군.

영화가 끝나고 큰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아, 난 이런 자리배치에서 돌아가며 말하는 게 참 어색한데....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평은 좋았다. 끝났을 때 환호성과 박수를 받은 작품은 <뉴욕라이브러리에서>에 이어 이것이 두 번째라고 하니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청실장님과 사장님목소리가 한껏 흥분되어있음을 느꼈다ㅋㅋ

 

<일출>은 아카데미에서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1927년이 아카데미상이 생긴 첫해라고 한다. 무르나우는 엄청난 조건으로 헐리웃에 스카웃되어 왔지만, 사고로 죽게 되어 남아있는 그의 헐리웃 영화는 많지 않다.

 

무성영화는 유성영화에 비해 영상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강조된 소리들이 주목된다. 이 영화에서는 유독 교회종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 그것은 주인공 남자의 심리가 바뀌는 데 큰 영향은 주고 있다. 살인을 저지르려던 남편이 행동을 멈추게 된 것이나, 도시의 결혼식이 있는 교회에서 울려 퍼진 종소리는 남편이 다시 아내에게 완전히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당시 사회가 종교적인 영향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동물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오갔다. 마굿간에서 아내를 죽이기 위해 갈대자루(?)를 준비하자 말이 머리를 내민다든지, 아내의 위기를 감지한 개가 줄을 풀고 배로 헤엄쳐 온다든지, 술에 취한 돼지의 연기 같은... 이 당시에 이미 이런 화면을 연출했다는 신기함 같은 것이 있었다. 요즘엔 이런 것들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는 CG가 넘쳐나는데 왜 이 영화만큼 새로움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영화를 어떻게 봐야할지 잠깐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1920년대에 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영화 환경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있다. 당시 어떤 사회적 변화 속에서, 어떤 기술의 변화가 있었으며 누가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를 글로 읽을 때보다 영화를 통해 만나면 훠~얼씬 기쁨이 된다. 이유가 무엇일까.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느끼는 설레임 때문이 아닐까. <기생충>이나 <조커>에서 내가 기발하거나 완전히 새롭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이미 익숙한 담론 속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즉, 나는 2000년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미디어, 사람들이 동시대적 담론을 형성하기에 영화에 대해서도 자꾸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려 의식하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들은 현실에서 한발을 떨어뜨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형식이든 스토리든 현실과 뚝 떨어진 형태로 만들어진 영화 속에서 현실을 발견하면 좋겠다.

 

서울쥐와 시골쥐의 교훈?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인 안정과 평화에 대한 교훈적 메시지를 이 영화도 담고 있다. 당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러한 메시지가 헐리웃에서 나왔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무르나우는 왜 도시에서 온 요부의 이미지를 가져왔을까. 일설에는 무르나우가 동성애자였기에 그에 대한 부담이 늘 있었다고 한다. 정상부부라는 틀 속에서 도시녀는 쫓겨나고 안정된 시골가정의 행복을 암시하는 결말은 무르나우가 스스로 넘어서지 못한 정상에 대한 한계를 드러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뒤이어 둥글레님의 ‘추억의 부스러기’에 해당하는 작품 <더티댄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 영화, 나도 몇 번 봤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다. 극장에 가서 친구들이 맨 뒷자리를 끊어놓고 일어나 춤을 따라하던 기억이 떠오른다(나는 그냥 웃기만 했던ㅋ). 그때의 그 울렁울렁하던 것들이 잠깐 떠오른 시간이었다.

 

자연스레 <조커> 논쟁으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열띤 토론이 한참을 이어져갔다. <조커>는 정말 논란을 불러온 영화인가 보다. 이 내용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청실장님의 이야기 속으로 gogo~~

 

그리고 다음 상영일에 준비되는 영화에 대해 청실장님이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무슨 영화일까...  다음 필름이다의 상영작에  많은 분들이 관심가져주시길~~                  

 

댓글 3
  • 2019-10-27 16:46

    <일출>...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후기네요. ^^

  • 2019-10-27 17:21

    전....영화가 (영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춤을 추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영화적 리듬이 뭔지 진짜 알겠더라구요^^

  • 2019-10-30 03:24

    띠우님의 신속후기 감사드려요~ 저는 이번에 함께 영화를 보면 장르가 바뀐다는 마법을 본 듯 했습니다.
    혼자 볼 때랑 전혀 다른 영화로 다가오더라구요.
    아마 누군가에게 추천해줘도 그 감동을 공유하긴 어려울 듯.
    "당시 어떤 사회적 변화 속에서, 어떤 기술의 변화가 있었으며
    누가 새로운 시도를 했는지를 글로 읽을 때보다 영화를 통해 만나면 훠~얼씬 기쁨이 된다. "
    이런 측면에서 현실을 너머서는 영화가 자극이 된다는 띠우님의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띠우님도 이번 기회에 필통회원이 되어보심이 어떠하실지요?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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