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영화인문학시즌1> 구로사와 아키라 <라쇼몽(1950)>

띠우
2021-06-13 00:35
557

프레임 밖 세상을 보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

 

항암 치료중인 노라님의 추천으로 ‘카카오프로젝트100, <詩 읽는 100일, 날마다 김수영>’에 참여하고 있다. <풀>이나 <폭포>라는 시가 떠오르는 김수영은 저항 시인의 이미지였고,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00년이라고 하니 함께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알게 된 그의 시들은 지극히 폭력적인 남성의 얼굴을 자꾸 떠올리게 한다. 대로변에서 아내를 때린 사건에 대한 시(‘죄와 벌’)만 해도, 당시 잃어버린 지우산이 아깝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지나치게 거침없다고 할까. 영화 <라쇼몽>에서 버려진 아기에게서 돈이 될 천을 챙기며 아기를 버린 부모와 단도를 훔친 나무꾼을 맹렬하게 비난하던 행인이 겹쳐졌다. 보는 이들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고 나 역시 불쾌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의 시를 필사한 지 83일차, 그의 시가 하나의 프레임 안 세상이라면, 프레임 밖 세상이 어떠했는지가 궁금해졌다. <라쇼몽>의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삶과 마찬가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1950)>은 볼 때마다 새롭다. 이 작품은 나무꾼이 발견한 시체를 둘러싼 진실을 밝히는 이야기지만, 진실은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무라이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둘러싼 각각의 진실이 있을 뿐이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주관적인 현실을 재구성함으로써 그들의 진실을 의심하게 한다. 입체적인 플래시백을 통해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가지 시각으로 재현하며 관객의 눈을 가리거나 변형하는 것이다. 감독은 <라쇼몽>의 연출의도에 대해 “인간은 그 자신에 대해 정직해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 할 때면 언제나 각색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라고 말했다. 기억과 주관적인 진실을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장치로써 플래시백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영화로 들어가 보자. 네 명(나무꾼, 타조마루, 아내, 접신한 사무라이)의 사건 진술은 모두 다르다. 네 사람이 사회적으로 위치한 자리에서 사건을 이야기한다. 일본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신분에 의해 그들은 기호화되어 삶을 해석한다. 재판정 장면은 그들을 정면이나 위에서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위치가 재판관과 동일시되는 효과를 낳는다. 영화 속 시공간의 구성은 단순하다. 현재, 폭우가 내리치는 라쇼몽 아래의 상황과 살인사건이 벌어졌던 과거의 숲 속, 그리고 그 사이의 재판정이 전부다. 그래서인지 관객은 더욱 장면에 집중하게 된다. 수평트래킹을 통해 보여주는 인물들의 속도감 있는 움직임(달리는 나무꾼이나 개싸움하는 남자들 등), 숲 속의 빛과 어둠의 교차, 영화 소품을 이용한 감정표현(칼이나 모자), 의상이나 분장, 배우의 목소리, 음악, 비와 바람, 그리고 햇살과 땀 등으로 영화가 구성된다. 이러한 배치의 미장센은 분위기를 설정하고 모티프를 제시하며 영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달리 해석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라쇼몽 효과’라 부르는데, 이 영화에서 유래되었다. 인물들이 말하는 해석뿐만 아니라 보는 관객 또한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가 시대를 넘나들 때 가능해진다. 처음에 나는 단도를 훔친 것으로 추측되는 나무꾼이 아이를 맡는 모습에서 인간애에 대한 긍정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후에는 나무꾼이 짓는 미소가 어쩐지 위선적이라 느껴졌던 시기가 있었다. 결국 재판정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았듯이 아이를 둘러싼 모습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포함해 인간을 이해하는데 실마리를 주는 예술로써, 이 영화가 가진 보편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김수영의 시를 읽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인증을 하면 김수영을 잊고 하루를 살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 그를 잊기 위해 그를 기억하는 아침이 80일이 넘게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반복하다보면 조금씩의 차이를 낳고 거기에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기도 한다.

 

같은 영화인데도 볼 때마다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들뢰즈는 『시네마』에서 퍼스의 기호학을 끌어들인다. 영화 이미지의 무한한 발산, 즉 ‘차이와 반복’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미국 프래그머티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는 하나의 기호가 성립하려면 개별 주체에 의한 해석이 요구된다고 보았다. 그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기호란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나타내는 어떤 것”이라는 정의에 ‘해석’이라는 요소를 덧붙였다. 퍼스의 ‘대상체(시체)-표상체(살해당한 시체)-해석체(각각의 진실)’라는 도식은 마지막 해석체를 표상체(각각의 기호)로 간주하면서 또 다른 삼항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해석체/표상체’에 의해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을 퍼스는 세미오시스(semiosis)라고 불렀다. 네 사람에게 시대가 부여하고 있는 기호로 영화를 읽게 되면, 각각의 진실이 주는 해석이 발생하고 지금 시대에는 그 해석체이자 표상체가 또 다른 해석을 낳으며 순환될 수 있다. 인간이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이렇게 해석들이 얽혀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한겨레에 실렸던 정희진의 글을 가져와 이해를 돕고자 한다. 코로나와 관련된 글을 발표한 그에게 자료를 보내달라는 누군가의 요청이 왔다. 이에 대해 자기 삶에서의 통합적 사고의 글이기 때문에 발표글 외에는 보내줄 자료가 마땅치 않다고 하자 상대편은 아깝냐고 되물은 것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코로나를 주제로 내가 강의한 내용은 현실이라는 텍스트에 근대성, 발전주의, 기후위기, 생태주의, 팬데믹, 거버넌스, 개인의 자유, 전염병의 역사, 돌봄노동 등 기존 나의 지식과 관점이 합쳐진 것이다. 나, 몸의 역사다. 개인의 몸은 그 개별성 때문에 앎의 내용과 가치관에 따라, 현실과 합쳐지는 지식의 범위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한국 사회의 인구수만큼 다른 코로나 지식이 있어야 한다. 획일적 생각을 하는 큰 몸이 국가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다.” 해석체에 의해 차이와 반복은 가능하며 인간의 삶은 그런 구조 속에 존재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동일 사건에 대해 우리는 모두 다르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같은 영화에 대해서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은 다른 관점을 통해 바깥을 모색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희진은 이를 위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동체에 있다 보면, 무리가 지어질 수 있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편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으로 미세한 선이 그어지기도 한다. 미세한 균열은 불편함을 잠재태로 가진 상태다. 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각색한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죄악이라 언표화된 기호에 희망이라는 해석을 덧붙이려고 한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요즘도 나는 공동체 안에서 종종 다투고 다툼을 목격하고 불편한 감정을 경험한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친목이나 만남을 유지하는 것은 환상이다. 이 환상은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같은 질문을 낳는다. 다시 한 번 공부가 필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오히려 나는 무수한 다툼이나 충돌의 반복 속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관찰해감으로써 각각의 진리 바깥을 사유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충돌과 긴장은 시대를 넘나드는 영화의 프레임을 통해서나 혹은 한 편의 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하루가 시작되면, 나는 다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김수영의 시를 만날 것이다.

 

* 라쇼몽(羅生門) : 일본 헤이안시대 말기 교토의 지진과 화재, 기근으로 황폐해져버린 성문으로 난세(亂世)를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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