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세미나] <해러웨이선언문>> 첫번째 시간 후기

뚜버기
2023-01-01 20:10
371

오늘날의 생태위기의 원인은 무엇보다 인간중심주의에 있다는 결론에 이를 때가 많다.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막상 구체적인 실천에 있어서는 상상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에게 인식의 전환을 주는 텍스트들이 최근의 새로운 인류학들 그리고 도나 해러웨이의 사상인 것 같다. 하지만 익숙치 않은 사유에, 기반이 되는 지식들도 방대하다보니 혼자 읽기는 어렵고도 괴롭다. 그래도 올 겨울엔 읽어보자 싶어 세미나를 열었는데 뜻밖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역시 이심전심이었나보다.  무려 두팀이나 꾸려진 인류학 세미나, 함께 머리싸매고 열공해보아요!

 

세미나 첫시간은 도나 해러웨이의 <<해러웨이선언문>> 에 실린  <사이보그선언>이었다. 화목  세미나 후기를 섞어서 올려 보려 한다. 화요팀은 자누리쌤이, 목요팀은 내가 발제를 맡아서 했다.

<사이보그선언>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아이러니’를 대하는 태도였다. 해러웨이가 말하는 아이러니는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모두 참되기에 그대로 감당할 때 발생하는 긴장에 관계한다. 변증법적 전체로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차이를 넘어 서로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부분적인 것들이 하나의 총체성을 이루어야 한다고 한다는 생각은 더이상 시대에 걸맞지 않다고 해러웨이는 생각했다. 아이러니한 차이들의 바다를 잘 유영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글이 나온 80년대 초를 하나의 이행기, 경계가 분명한 산업화사회에서 다형적인 정보체제의 흐름으로 이행하는 시대라고 판단한다. 세상은 안락한 위계의 지배질서로부터 무섭고 새로운 네트워크(지배의 정보과학)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론에 의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도 무너졌으며, 기술의 발달은 자연과 인공, 유기체와 기계의 차이를 알 수 없게 섞어버렸으며 초소형화기술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눈에 띠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내며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마저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해러웨이의 우려는 “지배의 정보과학체제에서는 가장 취약한 위치의 사람들이 생존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데 실패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주의-페미니즘 정치가 긴급하다고 해러웨이는 강조한다. (공동체, 가족, 섹슈얼리티의 이슈는 백인남성중심의 산업노조에서 외면받지만 여성노동자들의 집합적 투쟁에서는 포함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페미니즘이 필요)

그런데 문제는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이 인식론적으로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그 안에서도 래디컬이냐, 사회주의냐 등으로 경계선을 긋고 다른 페미니즘들을 모두 주변화하던지 통합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20세기 후반에 새롭게 나타나는 여성들의 경험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역시 백인 인본주의의 논리와 언어 또는 실천에 일정부분 가담하고 단일한 지배의 기반을 찾으려 했다는 점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다.

“여성들이 실제로 처한 상황은 지배의 정보과학이라는 생산/재생산과 커뮤니케이션의 세계 체제 속으로 통합/착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 일터, 시장, 공적 영역, 몸 자체, 이 모든 것이 거의 무한하게 다형적으로 분산되고 인터페이스에 접합될 수 있으며 이 과정은 여성과 다른 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사람마다 대단히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는 국제적 저항운동을 만들어내기가 무척 힘들어지는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이와같은 운동이 절실하다.”

해러웨이는 ‘동성애자’가 그렇듯이 ‘인종’과 ‘계급’은 늘 있어왔던 것이 아닌 역사적 행위자로 생겨난 것임을 강조하며 정체성에 갇히지 않아야 됨을 요청한다. 사이보그는 유기체와 기계의 경계 바깥에 있으며 포스트젠더적 피조물이다. 또한 에덴으로 상징되는 서구 중심의 기원설화와 오이디푸스 가족이라는 서사에서 벗어나 있는 형상이다. 가족도 공동체도 꿈꾸지 않고 조화로운 세계를 바라지도 않는다. 사이보그는 전체론을 경계하지만 연결은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해러웨이는 사이보그의 이미지에서 가능성을 읽는다.

“상상력을 구성하는 신화와 의미 체계를 포함해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를 다루는 이론과 실천은, 사회주의-페미니즘 정치를 재구성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 가운데 하나이다. 사이보그는 해체되고 다시 조립되는, 포스트모던 집합체의 일종인 동시에 개인적 자아이다. 이것이 바로 페미니스트가 코드화해야 하는 자아이다.”

“어떤 사이보그가 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급진적 질문이며 그 답에 생존이 걸려있다.”

사이보그의 이미지에 대해서 화요일 세미나에서도 목요일 세미나에서도 이론적으로는 동의가 되지만 정서적으로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나타날 것들이 과연 좋은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걱정 아닐까 싶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는 옳고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해러웨이는, 우리가 다루는 문제가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인간관계가 좌우하는 역사적 체계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과학기술의 사회관계”라는 용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한다. 정보체제의 지배 아래에 있지만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행위와 관계가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기계와, 비물질과 융합할 것인지, 말 그대로 “어떤 사이보그가 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해러웨이에게서 멋졌던 점은 아이러니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아일랜드계천주교 가정 출신 여성임에도 생물학박사가 되고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미소냉전시대 덕분이었다는 점을 그 예로 든다.

“지금껏 겪은 실패를 곱씹으면서 무한한 차이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고, 부분적이고 진정한 연결을 구성해야한다는 까다로운 과제를 끌어안고 실패를 무릅쓴다”고 말하는 점 역시 멋지다.

무시무시하게 유연하게 우리를 포획해 버리는 자본주의의 힘 앞에서 늘 우리는 현실을 비관적으로 읽는다. 실패했던 경험이 더 많고 실패가 예견된 듯한 상황에 무력하다. 올해는 해러웨이의 “실패를 무릅쓴다”는 말이 나를 사로잡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댓글 4
  • 2023-01-01 21:13

    혼자 읽기는 외롭고 괴로웠던 1인.. 이번 세미나... 어렵다에 집중하기 보다 뭔가 곱씹고.. 차이에 좀 더 담대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들을 무릅써보겠습니다!! ^^

  • 2023-01-02 20:27

    해러웨이가 사이보그의 이미지에서 찾은 그 무엇이
    어떤 사이보그가 될 것인가와 바로 연결되어 있는거겠죠???
    “주체가 된다는 것은 자율성을 확보하고 막강해지며 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주체됨은 환상이며 그 때문에 타자와 함께 종말의 변증법에 들어가게 된다. 반면 타자됨은 다양해지는 것,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너덜너덜해지는 것, 실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는 너무 적지만 둘은 너무 많다.”(p.77)
    목요반에서 뚜버기선생님이 던져주신 이 문제적 문장 -하나는 너무 많지만 둘은 너무 많다- 는 정말 중요한 지점이였던거 같아요.
    ㅎㅎ 저는 단순하게 수만가지의 다층적인 정체성이 모이고 연결되는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듯~~
    역시나 이 어려운 문장들을 여러분과 같이 읽을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3-01-10 06:45

    반려종 선언 발제문 여기 올립니다. 요약도 아니고... ㅠㅠ

  • 2023-01-10 08:37

    저희의 난상토론(?)을 이렇게 깔끔한 후기로 정리해주시다니요?!^^
    차근차근 읽어보니 절로 복습이 됩니다.

    전 해러웨이가 당대의 진보진영과 페미니즘 양쪽 모두에 '딴지'를 걸면서
    새로운 인식론적 전환이 필요함을 여러 분야를 가로지르며
    자신의 기획을 제시하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이거슨 또 문탁이 잘하는 작업이라 약간의 반가움도^^)

    거의 40년 전의 얘기가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함에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동시대 문제에 비판적으로 개입한 해러웨이를 더욱 주목하게도 되네요.
    앞으로 그녀의 얘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회할지 '기대+난감'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난해한 텍스트 읽기를 함께 견디는 멤버들이 있어 '다행+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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