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 국제법과 학문의 책임>

띠우
2024-03-29 23:46
194

<세계> 2024년 1월호 특집1

 
국제법과 학문의 책임 
파국을 다시 일으키지 않기 위해 
 
네기시 요타 (세이난가쿠인 대학 법학부 국제관계법학과)
 

  파국, 또 다시――1948년, 2023년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인 1948년은 인류가 두 개의 문서를 통해 숭고한 맹세를 세운 해였다. 하나는 세계 인권 선언으로, '인권 무시와 멸시가 인류의 양심을 짓밟은 야만 행위를 초래했던' 것을 반성하고, '공포와 결핍 없는 세계의 도래가 일반 사람들의 최고의 바람'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또 하나는 제노사이드 조약으로,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혹은 종교적인 집단 전부 혹은 일부를 집단 그 자체로서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범죄를 '문명 세계에 의해 죄악으로 인정된 국제법상의 범죄'로 규탄한 후에, 인류를 이 꺼림칙한 고민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 범죄를 방지 · 처벌하는 것을 조약국의 약속으로 규정했다.

 

  그 해는 두 나라의 국민에게도 역사적인 해였다. 수 세기에 걸친 디아스포라(이산)로부터 제노사이드 조약을 낳는 계기가 된 홀로코스트, 그리고 아랍 여러 나라들과의 힘든 싸움을 거쳐 유대인은 이스라엘 건국이라는 염원을 완수했다. 그 환희의 뒷면에, 살던 곳에서 쫓겨나 새롭게 디아스포라를 강요받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향상실의 비극을 파국(al-Nakba: 나크바)이라고 부르며 기억했다.

 

  시간이 흘러 2023년 현재, 이 두 국민을 둘러싸고 '인류의 양심을 짓밟은 야만 행위'에 의해 '인류를 이 꺼림칙한 고뇌'에 다시 속박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방아쇠가 된 것은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를 거점으로 하는 하마스에 의한 이스라엘 습격이다. 10월 7일부터 약 1200명의 사망자와 약 5600명의 부상자를 내고 240명 이상을 인질로 삼는다는 언어도단의 흉행에 이르렀다. 대항하는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연일 공중폭격을 실시하고 같은 달 27일에는 지상작전을 시작했다. 국방장관은 작전 초기부터 "우리는 인간 동물(human animals)과 싸우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발언했고, 그 비인간적인 호칭대로 무자비한 공격이 가자 지구를 향했다.

 

  이 위기로부터 한 달 동안, 가자 지구 주거지 절반 가까이가 파손됐고, 주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사일과 땅을 기어다니는 탱크에 벌벌 떨면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이집트와 인접한 라파 검문소에서 오는 물자는 끊어지고, 식량과 마실 물도 나날이 줄어들고, 교육의 기회도 빼앗기고, 전기와 통신도 두절되었다. 부상당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될 난민캠프와 병원조차 파괴되었다. 문자 그대로 거리를 헤맨다. 이런 절망의 늪에 빠진 가자지구는, 분쟁 시작부터 11월 28일 시점으로, 사망자 수가 1만 5천 명 이상에 달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바로 ‘또 다시 파국’이다.

 

 2023년 10월11일 이스라엘군의 이어진 융단폭격으로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중심가 가자시티가 폐허로 변했다. AP 연합뉴스

2023년 10월11일 이스라엘군의 이어진 융단폭격으로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 중심가 가자시티가 폐허로 변했다. AP 연합뉴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않는다 — 위기와 일상


 

  이 심각함을 인식한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24일에 열렸던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회합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을 했다. “하마스의 공격이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6년간 숨 막힐 것 같은 점령 치하에서 놓여져 왔다. [이스라엘] 정착에 따라 토지를 점점 빼앗기고 폭력에 시달렸다. 경제는 억압되고 사람들은 집에서 쫓겨났으며 가옥은 헐렸다. 그들의 곤경을 정치적으로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은 멀어져 갈 뿐이었다.”

 

  사무총장의 발언은 파문을 일으켜서, 길라드 에르단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다음과 같이 반발하며 사임을 요구했다. “유엔은 파탄 상태이며, 사무총장인 당신은 도덕도 공평함도 잃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흉악한 공격이 진공 상태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무서운 말을 입에 담을 때, 당신은 테러를 용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라며 토로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언쟁은 단순히 정치적 입장 차이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국제법에 비추어 이야기될 때, 양자의 엇갈림은 사태의 대조적인 법적 평가에 여실히 반영된다. 유엔과 아랍 여러 나라들은 이스라엘이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6월전쟁/6일전쟁) 이래로 가자 지구를 점령・봉쇄해왔던 경위를 상기한다. 즉 2023년 10월 7일 ‘이전’의 ‘일상’을 ‘숲’으로 보아 전체를 조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이스라엘과 그를 지지하는 나라들은 하마스에 의한 급습을 ‘테러 공격’으로 비난하며 이스라엘이 국제법에 따라 자국과 자국민을 지킬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른바 2023년 10월 7일 ‘이후’의 ‘위기’를 ‘나무’로 보고 주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후자처럼 발단이 된 공격 이후의 ‘위기’(나무)를 그 이전의 ‘일상’(숲)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국제법 논의에 있어서 두 가지 중대한 문제를 일으킨다.

 


  10월 7일 이후의 '위기' —전쟁에 관한 법/전쟁 중의 법


 

   첫 번째로, 10월 7일 이후의 '위기'(나무)만을 봄으로써 전쟁에 관한 국제법 원칙으로 초점을 좁혀, 그 예외를 가능하게 할 여지를 만들어준다. '전쟁'이란, 여기서는 일정한 선을 넘는 무력분쟁이다. 그러한 '전쟁'에 관한 국제법은 전쟁에 대한 법(jus ad bellum 전쟁권(戰爭權))과 전쟁 중의 법(jus in bello)으로 크게 나뉜다. 전자는 유엔 헌장 2조 4항에 반영된 무력 행사금지원칙이지만, 그 예외로서 51조에 언급된 자위권 등이 있다. 후자는 국제인도법(또는 무력분쟁법)이라 불리며, 그 주된 문서인 제네바조약은 부상당했거나 병에 걸린 병사, 포로, 민간인에 대한 보호 등을 원칙으로 규정한다. 그 중대한 위반은 전쟁범죄로 여겨진다(국제형사재판소 규정 8조). 이 법들은 이중의 필터이며, 설령 전자에 근거하여 정당화되어도 후자에 반할 경우에는 위법한 전쟁이 된다.

 

   전쟁에 관한 국제법 규정은 위에 쓴 조약에 명문화되어 규정되어 있으나 반드시 확정적인 기준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 사법재판소에 의하면 유엔헌장이 자위권의 요건인 '무력 공격(armed attack)', '필요성(necessity)', '균형성(proportionality)'에 관하여 정의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이들 내용은 관습 국제법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누구의 어디로부터의 어떠한 '무력 공격'에 대하여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가, 어떠한 요소가 무력 공격에 대한 자위의 '필요성'으로 인정되는가, 무력 공격과의 '균형성'을 지키려면 어느 정도의 조치까지 인정되는가 등은, 자위를 주장하는 국가의 관행이나 법적 신념에 좌우될 가능성이 있다. 또 제네바 조약을 확충한 추가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도 적잖이 존재하고(이스라엘도 미비준), 그 경우에는 역시 국가의 관행이나 신념에 의존하는 관습 국제법에 의해 규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간인・민간건물·물품과 전투원・군사목표의 '구별(distinction)', 공격에 의한 부수적 피해와 기대 가능한 군사적 이익의 '비례성(proportionality)', 부수적 피해를 최소한에 머물게 하기 위한 '예방(precaution)' 등의 원칙에 대해서는 무력에 호소할 수 있는 강국의 행위나 의사에 의해 예외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10월 7일 이후에 '전쟁'을 선언함으로써, 불확정성을 갖는 무력행사 금지원칙과 국제인도법 원칙의 예외에서 정당화의 길을 찾고 있다. 자위권에 관해서는 "자국민과 영토를 방위할" 뿐 아니라, "인질의 석방을 확보하고 직면한 위협을 무력화하는" 데까지 목적에 포함되어 있어서, 무력 공격에 대응할 필요성을 확장하고 있다. 또 하마스에 의한 공격을 알카에다에 의한 9.11테러에 빗대어 (이스라엘이) 입은 피해의 크기를 강조함으로써 자위 조치와 무력 공격의 균형성을 주장한다. 국제인도법에 대해서도 전투원이나 군사목표에 (하마스가) 섞여 있기 때문에 양자의 '구별'이 어렵다는 점, 연좌에 의한 피해를 피할 수 없는 한편으로 기대되는 군사적 이익이 크기 때문에 양자의 '비례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 공격전에 효과적인 사전 경고를 할 수 없을 경우 등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점들 주장한다. 이들 논법은 어느 것이나 전쟁에 관한 국제법 원칙의 예외를 확대하는 억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심각한 것은 그 억지가 가능해지는 문맥 설정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10월 7일 이전의 ‘일상’ —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 · 제노사이드


 

   두 번째로 10월 7일 이전부터 계속된 ‘일상’(숲)을 보지 못하는 것에 따라서, 인도(人道)에 반하는 범죄나 제노사이드 등의 국제범죄가 평상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음이 망각된다. 인도에 반하는 범죄는 ‘민간인인 주민에 대한 공격이며, 광범위하거나 조직적인 것의 일부로서, 그런 공격이라고 인식하면서 행하는’ 행위이다(국제형사재판소규정 7조 1항). 제노사이드는 ‘국민적,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인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집단 그 자체로서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행위를 가리킨다(제노사이드 조약 2조). 이들 국제범죄는 무력분쟁을 전제로 하는 전쟁범죄와는 달리 적대행위가 발생하지 않는 평상시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가자지구에서는 10월 7일 이전의 ‘일상’의 맥락에서, 이들 국제범죄가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2005년에 철수하고 2007년에 하마스가 지배한 이후로 가자 지구는 그 해상과 상공이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되고 국경 접근 지점도 통제되고 있어 ‘천장 없는 감옥’이라고 불려왔다(봉쇄당한 많은 사람들에게 죄가 없기 때문에 ‘강제수용소’라는 호칭도 있다). 가자지구에서는 민간인의 희생이 따르는 무력분쟁도 빈번하게 발생하여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서는 900명 가까이, 2014년에는 2,3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유엔인권이사회의 특별 절차에 근거한 팔레스타인 피점령지역에서의 인권상황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보고서(2023년 7월)에 의하면 ‘자의적이고 의도적인 학대가 구금 중 불법하게 실행될 뿐 아니라 구금의 범위를 넘어선 대규모의 (물리적·관료적·디지털적인) 감금기술로 이루어진 연속체로서 팔레스타인인에게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른바 자결권을 부정하는 ‘정착민 식민지적 아파르트헤이트’가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비정상 사태의 일상화는 제노사이드의 ‘전주(프렐류드)’나 ‘점차적 진행(슬로우 모션)’이라고도 형용하고 있다.

 

  그러나 세간의 주목이 10월 7일 이후의 전시(戰時)로 옮겨감에 따라 그 이전 평상시에 진전됐던 맥락에서 분리된 형태로, 이들 국제범죄가 이야기되게 되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인질을 잡고, 그들을 인간 방패로 이용하고,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한 행위를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로 규탄한다. 그리고 이들 행위가 하마스에 의해 ‘선언된 제노사이드의 계략’을 추진하기 위해 실시되었다면서 이스라엘인을 ‘파괴할 의도’를 동반한 제노사이드를 구성한다고 비난한다. 그 한편으로 그들이 이전부터 가자지구에 해온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격리정책, 게다가 국방군 수장에 의한 ‘인간 동물’ 발언으로 상징되는 팔레스타인인을 ‘파괴할 의도’ 같은 건 논란의 도마 위에도 오르지 못한다.

 


  위기의 학문―일상을 묻지 않는 것에서

 

  앞에서 소개한 (친)이스라엘의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않는다’는 입장은, 국제법을 연구하는 학문에도 만연해 있다. 위기와 국제법학은 언뜻 보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제법학은 지금까지 위기와 무관하지 않았고, 오히려 '위기의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발휘해 왔다. 21세기의 전쟁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 등, 이루 셀 수가 없다. 실로 국제법학은 역경을 양식 삼아 발전을 이루었다 하겠다. 그러나 '위기의 학문'은 '위기'(나무)에 적용할 수 있는 법규범에 대해서는 열심히 말하면서, 그 위기를 낳은 '일상'(숲)의 문제에 대해서는 냉담하게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분쟁에 관해서도 얼마나 많은 국제법학자가 10월 7일 '이전'부터 있었던 '일상'의 긴장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날 이후 '위기'가 일어날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번 이스라엘 하마스 분쟁은 특히 복잡하기 때문에 '위기의 학문'을 자랑하는 국제법학은 정말 애매하다. 침략국과 피침략국이 명백했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비해 무장집단의 습격에 대한 점령국의 자위라는 이번 사태에서는 전제 되는 여러 조건에 대해 의견이 나뉜다. 예를 들어, 자위권에 대해서는, 원래 '피점령 지역'으로부터의 '비(非)국가 주체'에 의한 공격에 대해 (자위권을 발동하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국제인도법에 대해서도 그것이 작용하는 무력분쟁 국가 간의 '국제적' 무력분쟁인가, 아니면 당사자에 비(非)국가 주체를 포함하는 '비(非)국제적'무력 분쟁인가 하는 논쟁이 있다. 이러한 전제 조건을 정리해도 조국 방위와 인질 석방을 위해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민간인·민간건물 및 물건과 전투원·군사목표가 뒤얽힌 경우에 구별·비례성·예방과 같은 국제인도법 원칙의 예외가 어디까지 미칠지가 반드시 명확하지는 않다. 이와 같이 규범이 확정되지 않는 것 외에도 사실상 상황이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멀리 있는 학자로서는 합법인지 위반인지를 단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일상'을 놓치기 십상인 '위기의 학문'은, 위기를 일으킨 구조적 문제에 대처하는 실정법 규범도 시야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번 분쟁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하마스에 의한 급습, 이스라엘에 의한 난민캠프 공중 폭격과 병원에서의 작전 등 개별 장면에서의 전쟁범죄를 비난하는 소리는 많다. 그런데 10월 7일 이전에도 가자 지구의 상황이 아파르트헤이트나 제노사이드로 표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범죄는 국제법 논의에서 누락되어 왔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제법학회가 11월 19일에 발표한 '중동의 현재 상황에 관한 선언'이 있다. 이 선언은 "국제평화와 안전유지 및 무력분쟁의 경우에 적용 가능한 법의 존중에 공헌한다"고 하는 이 학회 규정의 조문에 기초하여 기안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의 학문'을 구현하는 선언이지만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에 관한 단락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언급하지 않고 제노사이드에 이르러는 건드리지도 않는다.

 


  학문의 위기—일상에 대한 학문으로


 

  요약하면, ‘위기의 학문’으로서의 국제법학은 사태 해결에 효과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존재의의가 의심되는 ‘학문의 위기’에 빠져있다. 그 원인의 하나는 국제법을 ‘재판규범’으로 파악하고, 사후적인 책임추궁을 염두에 두는 재판중심주의의 편견을 안고 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이번 사태처럼 국제형사재판이 상정된 경우에는 객관적 외관 및 주관적 의도가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증명될 필요가 있다고 인식해버린다. 그 사고 양식에 빠지면, 현장에서 멀리 있는 학자의 경우에는 사실을 확정하기 어렵게 되어, 단정적인 법적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국제법학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파국이 다시 일으키지 않도록 학문과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요청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이 애초에 재판에서 거론되기 이전에 일정한 행위를 지시 또는 금지하는 ‘행위규범’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행위규범으로써 국제법을 준수하도록 모든 당사자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제네바 조약의 공통 1조는 모든 조약국이 국제인도법의 기본원칙인 ‘존중받을 권리를 확보한다’는 것을 정해놓고 있다. 그리고 제노사이드 조약 1조(및 인도(人道)에 관한 범죄 조문 초안 4조)도, 이런 국제범죄의 ‘방지’에 관한 의무를 조약국에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규범의 준수를 요구하는 데는 다양한 사실조사 실천에 채용되었던 ‘개연성의 저울’이 타당하다. 즉 ‘인정을 반박하는 증거보다도 그것을 지지하는 증거가 많은’ 것이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위반했다’라고 단정할 수 없더라도, ‘위반할 수 있다(could)/위반일 수도 있다(might)’라는 평가를 해도 문제가 없다.

 

  실제로 이스라엘에 의한 군사작전이 확대, 격화되는 데에 따라서, 개별 장면에서 전쟁범죄만이 아닌, 보다 광범하고 조직적인 인도(人道)에 반하는 범죄, 그리고 가장 심각한 제노사이드 조차도 ‘개연성의 저울’이 기울어져 있다. 하나의 지표로서 유엔 인권 이사회의 특별 절차로 임명된 전문가 집단의 동향이 주목된다. 10월 19일에 9명의 전문가가,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사태의 심각화,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에 의한 발언을 근거로, 인도(人道)에 반하는 범죄와 제노사이드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렸다. 약 한 달 후인 11월 16일에는, 성명을 낸 전문가 수가 36명을 넘어, 제노사이드적인 선동 증가, ‘점령 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파괴한다’는 명확한 의도, 가자를 시작으로 점령 하의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제2의 파국(나크바)’을 요구하는 목소리, 본래적으로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무기의 사용, 그 결과 빚어진 방대한 사망자 숫자와 생명유지를 위한 인프라의 파괴 등의 증거가 제시되었다.

 

  무력 불행사 원칙, 국제인도법(國際人道法)의 원칙들,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 · 제노사이드는 모두 일탈이 허용되지 않는 ‘강행 규범’이고, 국제 사회 전체에 대해 부과되는 ‘대세적(erga omnes)’ 의무이다. 75년 전의 맹세를 잊지 않고, 비극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국제법을 국한적인 ‘위기’에서만이 아니라 그 배경에 있는 ‘일상’의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준수할 필요가 있다. 그 관점에 섰을 때, 일상에서 비정상 사태를 경험해왔던 사람들이 (새新) 일상new nomal의 이름 아래에서 새로운 파국을 겪지 않도록, 그 비정상을 낳은 일상의 구조를 변혁할 수 있다. 국제법학은 그것을 위해 학문과 지식을 결집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위기=기로(岐路)에 서 있다.

 


네기시 요타   1988년생. 세이난가쿠인 대학 법학부 국제관계법학과 조교수. 주요저작으로 ⟪Conventionality Control of Domestic Law(국내법의 조약적합성 통제)⟫ 등.

댓글 1
  • 2024-04-03 09:15

    잘 읽었습니다
    나무만 보지말고 숲을, 일상을 잘 살필수 있어야겠네요
    전쟁중에 사는 이들, 일상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잠시나마 기도하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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