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자본주의] 시즌2_6차시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 1부를 읽고 질문과 메모를 올려주세요
곰곰
2026-10-11 13:22
81
어느덧 퐁당퐁당 있었던 휴일들도 이제 안녕이군요.
내일은 새 책 제이슨 W.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를 읽고 만납니다.
새로운 이론, 개념어들이 낯설어서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내일 샘들과 같이 얘기하면 좋아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ㅎㅎㅎ
1부. 이원론에서 변증법으로: 세계생태로서의 자본주의
1장. 대상에서 오이케이오스로: 자본주의적 세계생태에서의 환경형성
2장. 생명의 그물 속 가치
3장. 단일한 신진대사를 향하여: 이원론에서 자본주의적 세계생태의 변증법으로
인상적인 부분의 메모와 질문을 여기에 올려주세요.
그나저나 발제는 몇 장까지 괜찮으신가요? 참고로 지금 9장인데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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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생태론, 그 방법은 오이케이오스를 통해서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을 다발로 묶는 것을 강조한다. … 항상 이미 나머지 자연과 서로 스며들어 있어서 항상 이미 생명의 그물 속 변화의 생산자이자 생산물인 인간관계가 우리 관심사다. 83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 모든 인간 활동이 오이케이오스를 통해서 펼쳐진다면(오이케이오스 자체는 접힘), 당연히 이런 관계들은 항상 그리고 도처에서 나머지 자연과 맺는 관계다. 그것은 안팎으로 동시에 작동하는 변증법인데, 요컨대 지구는 인간에 대한 환경이고 인간은 나머지 지구 생명에 대한 환경(그리고 환경형성자)이다. 90
실재는 서로 스며들어 있고 난잡하며 복잡하다. 100
도나 해러웨이의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공-산’이 생각났어요.
공-산은 단순한 낱말이다. ‘함께-만들기’라는 뜻이다. … 지구 생명체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공-산은 복잡하고, 역동적이고, 재빨리 응답하고, 상황에 처한 역사적 시스템들에 적정한 용어이다. 107
크리터들은 서로 깊숙이 침투하고, 서로를 빙 돌아 관통해서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서로를 먹고, 소화불량이 되고, 서로를 부분적으로 소화하고 부분적으로 동화시켜서 공-산의 채비를 갖춘다. 108
생명체들은 서로 얽혀 공-산한다는 생각과 자연·환경과 인간이 서로를 공-산한다는 생각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또 데이비드 봄의 접힘과 펼침이 양자역학에 대한 이론인 줄 알았는데 자본주의와 자연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니 그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자연-속-자본주의'라는 표현에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과 프레이저의 『좌파의 길』이 떠올랐다. 세 사람 모두 경제를 독립된 영역으로 보지 않았다. 폴라니는 경제가 사회에 묻어 있다고 했고, 프레이저는 자본주의를 총체적 사회질서로 봤다. 특히 프레이저의 착취와 수탈은 무어의 착취와 전유로 이어진다. 프레이저가 수탈, 돌봄, 자연을 각각 다른 범주로 다룬다면, 무어의 전유는 자연의 무상 일과 돌봄 같은 인간의 무상 일을 하나로 아우르는 더 넓은 개념인 것 같다.
차이도 있다. 폴라니와 프레이저가 경제, 사회, 자연을 구분된 영역으로 두고 그 관계를 묻는다면, 무어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비판하며 사회와 자연의 구분 자체를 문제 삼고 오이케이오스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 낯선 개념을 통해 무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p82 변증법적이고 전체론적인 이 대안에서, 오이케이오스는 생명의 그물 속 역사적 변화에 관한 시각을 접힘과 펼침으로 특징짓는다.
p90 인간들 사이의 모든 관계, 모든 인간 활동이 오이케이오스를 톻해서 펼쳐진다면(오이케이오스 자체는 접힘), 당연히 이런 관계들은 항상 그리고 도처에서 나머지 자연과 맺는 관계다.
접힘과 펼침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니,
데이비드 봄(각주 29)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라고 한다.
오이케이오스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스며든 관계의 전체로, 늘 바탕에 접혀 있다. 인간의 관계와 활동은 그 전체가 펼쳐진 모습이다. 그러니 아무리 사회적으로 보이는 관계에도 자연이 접혀 있다.
p114 영국이 주도한 큐가든왕립식물원은 미합중국이 주도한 국제농업연구센터로 대체되었고, 이것 역시 마침내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물 탐사와 지대 추구, 유전체 지도 작성 행위로 대체되었다.
p131 자본주의의 새로운 시대는 매번 새로운 산업화, 새로운 제국주의, 새로운 과학을 수반한다.
큐가든, 국제농업연구센터, 유전체 지도는 각 시대에 새로운 값싼 자연을 '찾아내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AI 산업은 새로운 산업화, 새로운 제국주의, 새로운 과학일까?
설명 좀 해주세요.
- 59쪽) 변증법의 역사적 방법에의 전환은 항상 곤란한 작업이었는데, 요컨대 만물은 서로 빠짐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항상 불균등하고 항상 변화하며, 항상 새로운 파괴 지점과 새로운 변화 수단이 있다. 변증법적 방법은 실천하기보다 주장하기가 더 쉬웠다. (중략) 세계역사 학자들은, 세계 과정들에 얽힌 지역적 역사를 추구하는 작업과 탐구 대상으로서의 세계역사 과정을 관계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제 올립니당
이원론에서 변증법으로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생태 위기는 데카르트적 이항구조에 의해 인류와 자연 사이를 분리로부터 비롯되었다. 따라서 환경을 대상으로 파악하는 관점은 오늘날의 금융화에 연계된 위기와 기후변화에 연계된 위기를 다루는 데 부적절하게 보인다. 아무리 환경(혹은 자연)에 우선 순위를 부여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환경학은 데카르트로부터 벗어나기를 주저하는 태도로 인해 난관에 처해 있다고 제이슨 무어는 진단하면서, “독립적인 단위체들(자연과 사회)의 상호작용이라는 개념에서 생명의 그물 속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이 난잡하게 다발로 묶이고 서로 침투하면서 형성하는 상호의존적 관계들의 구체적인 변증법”(71)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 여기서 무어는 데카르트의 이항구조가 생명 그물 속 인류의 지위를 보이지 않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본주의는 자연을 수도꼭지와 쓰레기통으로 취급한다고 말할 때에 생태적 관점에서 좋은 비유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문제인걸까? 마치 안 보이는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고통을 머리로는 안타깝다고 이해하지만 내 신체의 감각으로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것일까.
오이케이오스(oikeios)는 오이코스의 형용사형이라고 한다. 저번에 오이코스와 다른 말이라고 했는데 사실 같은 의미였다. 그리스어로 가정(사람과 가축, 토지 등을 모두 포함한 파밀리아)을 뜻하는 오이코스의 형용사형이니 가족의, 친밀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진다. 무어가 말하는 오이케이오스는 오이케이오스 토포스(topos 장소)의 줄임말로 이 용어를 고안한 그리스 식물학자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종과 환경의 관계”를 나타내고자 사용했다. 무어는 생태계를 바라보는 접근법을 “종과 환경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로서 오이케이오스를 중심에 두고 역사적 분석을 해 나갈 것이라 말한다. 요컨대 오이케이오스는 식물들, 동물들 그리고 행성의 다양한 지질학적, 생물학적 배치와 순환,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이케이오스로서의 자연은 인간 활동이 전개되는 매트릭스이자 역사적 행위 주체성(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의 특정 다발이 이루는 관계적 특성:75)이 작동하는 장이 된다.
상품 프론티어(commodity frontier) 자연, 토지, 노동이 새롭게 변형/전유되어 자본주의 상품으로 통합되는 외곽 경계선.
75~77쪽에서 기후에 대해 이야기하는 맥락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가치 법칙과 가치 관계의 차이
자본주의 아래 가치 법칙은 두 가지 국면으로 구성된다. 1) 추상적 사회적 노동으로서 자본의 끝없는 축적이다. 2) 유기적 전체로서 결합된 착취 관계와 전유 관계의 끝없는 확대이다.(101)
=>무어는 이 관점이 “가치형태와 (필연적으로 더 광범위한) 가치 관계의 역사적 및 논리적 비동일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게 볼 때 가치는 “체계적 함의를 품은 경제적 현상”(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며 오히려 가치관계란 “중추적 경제적 국면을 갖춘 체계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이로써 맑스가 말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의 중요성을 폐기하지 않고 변증법적 방법에 내포된 이론적 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즉 잉여가치의 생산과 축적을 그 재생산의 필요조건과 연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추상적 사회적 노동의 축적이 (인간과 비인간의) 무상 일을 전유하여 가능하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어떻게 “무상일로 지탱되는 임금노동을 배치하는 가치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을 고안할 것인가가 자본주의의 핵심적 과제가 되며 이에 대해 분석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무어의 분석: 무상일의 전유과 가치의 착취는 우리가 배웠던 프레이저 역시 의 “수탈과 착취” 논의와 비슷한 듯 다르다. <포식하는 자본주의>>에서 프레이저는 자신의 생각이 무어의 최근 생태위기 이론과 비슷하다며 무어의 논의를 소개했었다. “‘값싼 자연들’ 들을 향한 자본의 요구가 자본이 확보할 수 있는 ‘값싼 자연들’을 추월하여 빠르게 상승한다는 사실에 모순의 핵심이 있다.”는 것이 프레이저가 파악한 무어의 이론이다. 프레이저는 인종화된 수탈, 사회적 재생산에 무임승차하는 자본에 관한 자신의 논의와 무어의 ‘값싼 자연들’이 유사하다고 말한다. 즉 자본은 자연에도 무임승차한다는 것이다. “횡재를 좇아 자본은 해당 역사의 국면에 주어진 외곽 경계선(frontier) 바깥에서 새로운 자연들의 위치를 찾아내고 그 지도를 그리며 이를 전유해야한다는 유혹”을 받는다. 이에 대해 대담자인 예기는 무어의 설명이 자본주의를 경제주의적으로만 파악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 투쟁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으며 프레이저는 자신의 자연/사회 경계선 개념이 무어의 프론티어 개념이 갖는 약점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프레이저 178-179) 예기의 사회적 투쟁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번에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를 1부를 읽으면서 나 또한 느꼈던 부분이긴 한데, 경제주의적이라는 비판은 너무 쉽게 읽어 낸 것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간 자연과 비인간 자연이 다발을 이루어 오이케이오스라는 매트릭스를 통해서 행위 주체성을 펼치는 역사”라는 개념이 오히려 프레이저의 경제/정치, 생산/재생산, 자연/사회의 경계 이론을 더 포괄하는 것 아닌가.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1. 낱말은 텅 빈 풍선과 같은데, 우리에게 자신을 연상으로 가득 채우도록 권한다.
가득 차게 되면 그 낱말은 고유한 힘을 얻어서 마침내 우리의 지각과 기대를 형성 하기 시작한다. 에콜로지'라는 낱말도 마찬가지다. -워스터 68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지적한 대로, “우리가 문제를 초래하는 데 사용한 그 사고방식으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의 사고방식은 언어로 표명되는 관념들로 구축되기에 데카르트적 대립쌍 관념들로 특징지어지는 근대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구축하기 위해 무어는 신조어를 고안하고 기존 어휘를 새롭게 조합하거나 하이픈으로 연결한다.상징체계의 전환을 통한 자연-속-자본주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무어의 주장이 함축된 말인듯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것을 느끼는 새로운 방식이 있을 뿐“이라는 오드리 로드의 말이 또 한번 떠오르기도 한다.
2.가치법칙은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 으로 환원되기는커녕, 처렴한 자연의 창출과 뒤이은 전유를 통해서 팽창의 필요조건을 찾아낸다. 자본이 생산비 상승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려면, 이런 전유 운동이 비경제적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으로써 나는, 자본주의의 순환 현상으로 수용하게 된, 되풀이 되는 본원적 축적의 파동 이상의 것을 뜻한다! 이 파동도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소중한, 확대재생산'과 "탈취에 의한 축 적"의 변증법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은 자본 축적에 쓸모 있도록 자연 을 수량화하고 합리화하며 그 지도를 제작하는 데 전념하는 지식과 그것에 관련된 실천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즉 추상적인 사회적 노동, 추상적인 사회적 자연, 본원적 축적의 삼위일체가 존재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세계실천의 관계적 핵심이다. 121
-프레이저의 배경논의(착취와 수탈)과 관련해 이 같은 삼위일체가 저항으로 ( 야성-페미니즘 운동, 자연-환경운동, 식민지-탈식민운동) 이어지는 동력이기도 했다는 점이 무어와 프레이저가 비슷한 부분인 거 같다. 되풀이되는 사회생태적 소진이라는 119 측면에서 신도시개발같은 우리나라식 프로젝트는 (일산, 분당 , 동탄 식으로 이어지는 )이런 전유운동과 같은 지 어떤지 얘기해보고 싶다. 역사적 자본주의가 전유영역을 착취영역 보다 빨리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였다는 무어의 주장이 21세기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부분에서 연결해서 얘기하면 좋겠다. 아무래도 21세기 자본과 다른 부분은 금융자본이라는 또 다른 변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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