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킬조이] 5차시 <마이너 필링스> 후기

초빈
2026-10-10 21:05
103

이번 시간에는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겪는 차별과 그로 인해 겪는 내적인 경험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책에서 흔히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불행서사(비극적인 인종차별 에피소드)를 늘어 놓는 것을 피해, 소수자가 타인의 비판을 스스로 내면화 함으로써 자기혐오를 하게 되는 구조를 예리하게 관찰해낸다.

 

읽으면서 저자는 언어를 참 잘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읽고 쉽고 편한 문체 속에서도 단단하고도 예리한 시선이 느껴졌다. 어려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풍부하고 구체적인 사건들을 나열해 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술술 읽히는 글이라 금방 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깊어지는 지점들이 많아 쉽게 시선을 옮기기가 어려웠다.

 

이 책은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각자의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연결지어가며 읽었다.

책 내용이나 세미나 때 나왔던 이야기 중 생각나는 몇 가지 인상적인 것들을 적어보고 싶다.

 

1.

겸목 샘은 한국계 미국인인 저자의 이야기가 곧 한국에 살고 있는 여자 사람인 자신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모범적 이민자'라는 한국인 이민자의 위치는 남성중심사회에서 생존하려는 여성들이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다. 외부의 평가에 비추어 자신을 바라보고 분열을 느끼는데, 동시에 주류에 속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검열하고 결국 자기 소외가 강화되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2.

참 샘은 아이들이 있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대놓고 음란물을 보는 아저씨를 보고 한참 고민하다 이어폰을 사용해줄 수 있느냐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참샘에게 내가 왜 그래야 하냐며 화를 막 냈다고 한다. 그 뒤로도 같은 아파트 사람인 그 아저씨를 마주칠 수 있어 계속 불안했다고 한다. 심장이 차갑게 철렁하고 쿵쿵 뛰는 경험. 마치 내 경험인 것처럼 낯설지 않은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무사 샘은 올 여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아시아인을 가끔 봤는데, 그들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는 경험을 공유해주셨다. '한 공간에 아시아인이 너무 많으면 짜증이' 나고, '한 무리로 뭉뚱그려져서 더 열등해지는 기분이 든다'는 저자의 말처럼, 자신에게도 아시아인(곧 당사자인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처럼 책과 관련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수적 감정(마이너 필링스)'는 인종 차별 당사자만의 감정만이 아닌, 소수자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공적 감정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었다.

 

나도 비판을 내면화 하는 과정이 나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감각이라는 게 충격이었고, 또 약간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건 며칠 전 내 이야기인데, 일본 워홀 때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과 파티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남자애(워홀 때 좀 끈질기게 데이트 신청 하던 애)가 파티에 오고 싶어한다고 했다. 불편해서 만나고 싶지는 않은데, 다같이 친구 사이인데 말했다가는 괜히 분위기를 망칠까봐 걱정 됐다.

'한 번쯤은 실수할 수 있지, 걔도 악의가 있어서는 아니고 외로워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이해하려고 들다가도, '아니, 이걸 내가 이해해야 하는 건가?!' 하는 분노가 올라왔다. 이중적인 마음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결국 친구들에게 그 애랑은 불편한 일이 있었으니 부르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게 킬조이의 정신?! (킬조이 이렇게 쓰는 개념이 맞나요?ㅋㅋ)

 

상대를 용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상대를 미워하는 감정에 잠식되어 있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페미니즘 세미나에 몸 담고 있다 보면 언젠가는 길이 좀 보이지 않을까...

댓글 6
  • 2026-10-11 09:44

    초빈샘과 킬조이세미나에서 만나면서
    저도 내가 놓치고 지나가는 게 없는지 찬찬히 살펴보게 됩니다.
    자진해 후기 남겨 줘 것도 고마워요:)

    “백인성을 탈중심화하는 글쓰기 형식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캐시박홍은
    다시 만나도 또 탄복하게 되네요.
    마이너 필링스 중에 전 이번엔 '수치심'에 대해 특히 이끌렸어요.

    • 2026-10-12 11:20

      저도 성적 수치심 아닌, 성적 빡침, 성적 불쾌감과 관련한 담론들에 대해서 레깅스 판례 다시 찾아보면서 생각해보고, 마이너필링스 읽으면서 느낀 수치심이란 감정 역시 인종이나 다른 여타의 구조적 차별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지는 감정임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서 기억에 남아요.

  • 2026-10-11 14:55

    마이너 필링스라는 감정이 나에게 무척 일반적인 감정, 감각이라 놀라고 저자의 글솜씨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캐시 박홍의 이야기를 늘 곁에 두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ㅎㅎ그치만 작년 페미니즘 세미나때 오드리 로드의 책을 곁에 두겠다고 말했던 게 떠올라 ㅠㅠ 좀 부끄럽네요~ 그 때와 지금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요? ㅋ
    초빈의 생각과 엮이는 이 세미나가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지점이 되길~

  • 2026-10-11 19:37

    ㅋㅋㅋ 오드리 로드와 마이너 필링이랑 두 권 다 둡시다^^ 저도 그런 생각중!! 초빈의 후기를 읽으며 진행중인 정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여전히 계속되는 것들을. 그걸 놓치지 않고 낚아채야 할 텐데 자금도 숭숭숭 새나가고 있겠지요. 정신을 차려보고 마음을 다잡아보고!

  • 2026-10-12 11:27

    "'소수적 감정(마이너 필링스)'는 인종 차별 당사자만의 감정만이 아닌, 소수자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공적 감정임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초빈의 말처럼 저도 개인적 감정으로 보이는 것들이 사회적 감정으로 통하게 되는 것, 감정적으로 가까이 있음을 이번 마이너필링스를 통해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자기 의심, 죄책감, 부채의식 등이 앉은 자리가 개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에 대한.
    초빈이 지금 관련해서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세미나와 후기라서, 함께 고민하며 갈 수 있어 좋아요.

  • 2026-10-13 23:03

    긴 호흡으로 고민하고 있는 흔적들을 메모로 세미나 때 발언으로 나눠줘서 고마워요. 초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속도는 느리지만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ㅎㅎ 후기 고마워요. 잘 읽었습니다.

이미지 선택
이미지 선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4
[페미니스트킬조이] 6차시_퀴어이론 산책하기_첫번째 메모와 발제 (6)
참 | 2026.10.13 | 조회 68
참 2026.10.13 68
43
[페미니스트 킬조이] 5차시 <마이너 필링스> 후기 (6)
초빈 | 2026.10.10 | 조회 103
초빈 2026.10.10 103
42
[페미니스트 킬조이]5차시 <마이너 필링스> 메모 (7)
무사 | 2026.10.06 | 조회 90
무사 2026.10.06 90
41
[페미니스트킬조이]4차시 <우울:공적감정> 2부 3장 후기 (5)
관리자 | 2026.10.05 | 조회 123
관리자 2026.10.05 123
40
[페미니스트 킬조이] 시즌2 3차시 <우울: 공적 감정> 2부 1,2장 후기 (3)
무사 | 2026.09.29 | 조회 122
무사 2026.09.29 122
39
[페미니스트 킬조이]2차시 <우울: 공적 감정> 2부 3장 메모와 발제 (5)
참 | 2026.09.29 | 조회 95
참 2026.09.29 95
38
[페미니스트 킬조이] 시즌2 3차시 <우울: 공적 감정> 2부 1,2장 메모와 발제 (6)
무사 | 2026.09.15 | 조회 107
무사 2026.09.15 107
37
[페미니스트 킬조이]2차시 <우울; 공적 감정>1부 후기 (6)
참 | 2026.09.15 | 조회 104
참 2026.09.15 104
36
[페미니스트 킬조이]시즌2_2차시<우울:공적감정>1부 메모와 발제 (7)
참 | 2026.09.08 | 조회 97
참 2026.09.08 97
35
[페미니스트 킬조이] 시즌2 1차시 후기 (6)
르꾸 | 2026.09.08 | 조회 118
르꾸 2026.09.08 118
34
[페미니스트 킬조이] 시즌2 1차시 <우울: 공적 감정> 서론 메모와 발제 (8)
무사 | 2026.09.01 | 조회 113
무사 2026.09.01 113
33
[페미니스트 킬조이] 시즌2 세미나 모집 (12)
참 | 2026.08.07 | 조회 399
참 2026.08.07 399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