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두 번째 시간 후기

재하
2026-04-14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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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에티카>(혹은 ‘윤리학’으로도 불립니다)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에티카>는 비교적 다른 철학 저서들에 비해서는 간결(?)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에서 영감을 받아 정의와 공리, 그리고 그에 따라 나오는 정리와 증명들을 기반으로 하는 수학적인 구조에서 나오는 특징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각 정의와 공리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이를 이해하기란 굉장히 힘든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개인적으로 세미나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정의’들을 지나서 ‘정리’에 들어간 첫 시간에 이어서, 두 번째 시간에는 에티카 1부의 정리들(1부 정리 1-8)을 더 살펴보았습니다. 정리들을 읽어보면, 유난히 많이 나오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로 ‘실체’, ‘실재’, ‘속성’과 같은 단어들입니다. 이에 대해서 김강기명 선생님의 <강의노트> (지난주 후기 참고)에서는 이 부분에서 스피노자의 논의의 핵심이 “수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실체적으로 구별될 수가 없다, 실체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수적으로 구별될 수 없다”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강의노트> 참고). 여기서 실체적인 구별은 “다른 원인과 상관없이 구별”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물병, 책상 그리고 나를 각기 실체로서 구별한다면 그것들의 형상/본질은 작용인과 상관없이 그 자체(실체)로 구별된다는 말입니다. 당시 17세기 기독교적 맥락에서 주장되어진 바에 의하면 이러한 구별은 ‘신’에 의해, 창조자가 나를 나로, 물병을 물병으로 창조하였기 때문에 구별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피노자에 따르면 물병, 책상, 나의 구분은 그렇게 만드는 원인에 의해서이며, 그러한 구분을 취소시키는 원인이 있으면 물병과 나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스피노자는 당시 철학에 큰 영향을 끼친 데카르트주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데카르트주의자들도 동의할 수 있는 전제들에서 시작하여, 그들이 동의할 수 없는 결론들로 나갑니다. 따라서 초반부에서는 데카르트적 개념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정리 1을 보자면:

 

정리 1: 실체는 본성상 자신의 변용에 앞선다. 

증명: 이것은 정의 3, 5에 의해 명백하다.

정의 3: 나는 실체를, 자신 안에 존재하며 자신에 의해서 사유되는 것, 즉 자신의 개념의 형상을 위해 다른 사물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정의 5: 나는 양태를 실체의 변용들, 즉 다른 것 안에 존재하며 또한 이 다른 것에 의해서 사유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정의 3, 실체의 개념은 데카르트식 정의입니다 (<철학의 원리>에서의 실체=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혹은 단지 신의 조력 말고는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은 것). 또한  데카르트는 이러한 실체들 가운데 정신, 물체 등이 있으며 정신의 ‘속성/양태’는 ‘사유’, 물체의 그것은 ‘연장(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아가 정의 5에 대한 이해를 위해 데카르트의 양태적 구별을 보자면 1) 양태없이도 실체를 명확하게 지각하나, 실체없이 양태를 인식하지 못하며 (e.g.,바위라는 실체없이 그것의 운동/모양을 이해할 수 없음), 2) “하나의 양태를 다른 양태 없이 인식할 수 있지만 그 중 어떤 것도 그것들이 내재해 있는 실체 없이는 인식할 수 없”습니다(한 물체의 운동을 다른 물체나 정신과 구분하거나 운동을 지속/구분하는 차이는 실재적, 즉 각기의 수적인 구분). 따라서 양태는 실체 안에 존재하며 실체 없이 인식되지 못합니다(정의 5). 그리고 이에 따라 실체는 그 자신의 변용, 즉 자신의 양태/속성에 앞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실체가 있어야만 양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리 2: 상이한 속성을 갖는 두 실체는 그것들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것도 갖지 않는다.

증명: 이것 또한 정의 3에 의해 명백하다. 각 실체는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자신에 의해 사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한 실체의 개념은 다른 실체의 개념을 함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또한 물체-연장, 정신-사유에 대한 데카르트적 정의에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연장과 사유는 상이한 속성들이기 때문에). 그러나 데카르트가 <철학의 원리>에서 ‘정신’이 명석판명하게 이러한 속성들을 인식하는 것과 달리,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각 실체는 ‘자신’에 의해 사유됩니다.

 

정리 3: 자신들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것도 갖지 않는 사물들의 경우,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증명: 만약 사물들이 어떤 공통적인 것도 서로 갖고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그것들은 (공리 5에 의해) 서로를 통해 이해될 수 없으며, 그리하여 (공리 4에 의해) 하나는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공리 5: 어떤 공통적인 것도 서로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은 마찬가지로 서로를 통해 이해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그 중 하나에 대한 개념은 다른 것에 대한 개념을 함축하지 않는다.

공리 4: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며 그것을 함축한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서로 공통적인 것들만이 인과관계(원인-결과관계)에 처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는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비판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철학에 따르면, 데카르트의 정신론은 무너지게 됩니다: 외부의 실체가 내 정신의 관념의 원인이었다면, 외부의 실체가 정신과 공통점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앞에서 물체와 정신을 구분한 그의 이원론과는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인과론은 이러한 철학을 반박합니다.

 

정리 4: 구별되는 둘 혹은 여러 사물이 서로 구별된다면 그것은 실체의 속성들의 상이함 때문이거나 실체의 변용들의 상이함 때문이다. 

증명: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 안에 존재하거나 다른 것 안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정의 3과 5에 의해) 지성의 바깥에는 실체들과 그 변용들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 따라서 실체들, 혹은 (정의 4에 의해)같은 것이지만 그 속성들, 그리고 그 실체들의 변용들이 아니라면 지성의 바깥에는 여러 사물 사이의 상호 구별을 가능케 해주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여기서 해당 증명에서 언급된 ‘지성의 바깥’은 ‘객관적’이라는 의미에서 쓰인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정리 4 또한 <철학의 원리>에서 파생된 개념인데, 이는 데카르트가 실체들은 실재(real)적으로 구분되며 이로부터 수가 나온다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게루에 따르면 이는 실체‘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고 합니다. 따라서 데카르트적 개념, 즉 수적 구별이 실체적 구별에 기반한다는 구조를 스피노자의 정리가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정리 5: 자연에는 동일 본성을 갖는, 달리 말해 동일 속성을 갖는 둘 또는 여러 실체가 있을 수 없다.

증명: 만약 구별되는 여러 실체가 있다면, (앞선 정리에 의해) 그 실체들은 속성들의 상이함에 의해서이거나 변용들의 상이함에 의해서 서로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속성들의 차이에 의해서만 구별된다면, 오직 동일한 속성을 지닌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한다는 점이 인정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변용들의 차이에 의해 구별된다면, 실체가 본성상 그 변용들에 앞서기 때문에 (정리 1), 일단 변용들을 제쳐두고 실체를 그 자체로 고려한다면, 곧 (정의 3과 공리 6에 의해) 참되게 고려한다면, 한 실체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곧 (위의 정리에 의해) 다수의 실체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할 것이다.

정의 3: 나는 실체를, 자신 안에 존재하며 자신에 의해서 사유되는 것, 즉 자신의 개념의 형상을 위해 다른 사물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공리 6: 참된 관념은 그 대상과 합치해야 한다.

 

정리 5에서 스피노자는 하나의 속성을 가지는 단 하나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데카르트가 제시하는 양태를 통한 실체들의 구별과는 반대됩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하나의 실체가 상이한 양태에 의해서 구분이 가능합니다. <철학의 원리>에서 그는 밀랍과 돌멩이를 가지고 예를 듭니다:

 

1 - 1시간 후의 밀랍조각과 1시간 전의 밀랍조각은 향기, 색, 촉감과 같은 질의 변화/크기/형태와 같은 입자구조 배치의 양태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같은 밀랍조각으로 지칭합니다 (즉 변화된 양태를 가지고도 우리는 하나의 실체를 가리킵니다).

2 - 돌멩이와 밀랍조각은 각기 그 입자 배치 구조의 양태가 상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양태의 차이를 가지고도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가리키었기에, 우리는 돌멩이와 밀랍 조각 간의 상이한 입자 구조 양태 차이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두 실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3 - 두 밀랍 조각들과 같이 돌멩이와 밀랍 조각이 서로 다른 두 실체가 아니며, 입자 배치의 양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입자 배치를 모두 연장으로 환원(reduce)가능하므로 이 둘은 두 실체가 아닌 동일한 연장의 부분이라고 보아야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양태를 통해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카르트주의적 방법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바로 이러한 방식을 “참되게 고려”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의 3과 5에 의해서 실체가 양태/속성에 존재론적으로 우선한다는 점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양태를 우선하여 실체를 구별하는 데카르트는 논리를 거꾸로 사용하고 있는 격입니다(하지만 만약 변용들의 차이에 의해 구별된다면, 실체가 본성상 그 변용들에 앞서기 때문에 (정리 1), 일단 변용들을 제쳐두고 실체를 그 자체로 고려한다면). 더불어 “만약 구별되는 여러 실체가 있다면, (앞선 정리에 의해) 그 실체들은 속성들의 상이함에 의해서이거나 변용들의 상이함에 의해서 서로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의 대우명제가 “동일 본성의 실체가 하나보다 많다면, 실체들은 속성들의 상이함 이외의 다른 것에 의해 구별된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즉 “만약 속성들의 차이에 의해서만 구별된다면, 오직 동일한 속성을 지닌 하나의 실체만이 존재한다는 점이 인정될 것”입니다.

 

정리 6: 한 실체는 다른 실체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 

증명: (앞선 정리에 의해) 자연에는 동일 속성을 갖는 두 실체, 다시 말해 (정리 2에 의해) 자신들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것을 갖는 두 실체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정리 3에 의해) 한 실체는 다른 실체의 원인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한 실체는 다른 실체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 

따름정리: 이로부터 실체는 다른 것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는 사실이 따라 나온다.

따름정리 증명: 왜냐하면, 공리 1, 정의 3, 5로부터 명백하듯이, 자연에는 실체들과 그 변용들 외에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선 정리에 의해) 실체는 실체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 그러므로 실체는 절대 다른 것에 의해 생산될 수 없다.

따름정리 증명 2: 이것은 또한 그 모순의 불합리성을 통해 보다 쉽게 증명된다. 왜냐하면, 만약 실체가 다른 것에 의해 생산될 수 있다면, (공리 4에 의해) 그것에 대한 인식은 그것의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실체는 (정의 3에 의해) 실체가 아니게 될 것이다.

공리 4: 결과에 대한 인식은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하며 그것을 함축한다.

 

“실체들의 상호 산출 불가능성”을 함축하는 정리 6은 인과론적 함의를 내포합니다. 정리 5에 의해 동일 속성을 가지는 두 실체가 없음이 증명이 되었다면, 정리 3, 즉 “자신들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것도 갖지 않는 사물들의 경우,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다른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에 의해서 어떠한 두 실체도 공통적인 것을 가지지 못함으로 인해서 하나의 실체가 다른 실체의 원인이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없습니다 (인과관계를 위해서는 공통점이 필요하므로). 그리고, 이에 따라서 실체는 실체(그리고 그에 속한 변용)가 아닌 다른 어떠한 ‘것’에 의해 생산될 수 없음 또한 증명됩니다. (따름정리 증명:) “왜냐하면, 공리 1, 정의 3, 5로부터 명백하듯이, 자연에는 실체들과 그 변용들 외에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실체는 실체에 의해서도, 그것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서도 생산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리 4에 기반한 따름정리 증명 2는 정리 6을 다시 한번 인과론적 차원에서 증명합니다. 공리 4의 대우명제가 “결과에 대한 인식이 원인에 대한 인식을 함축하지 않고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원인의 결과에 대한 인식이 아니다”라면, 이는 곧 서로 함축하지 않는다면, 원인-결과 관계가 아님을 말합니다. 그런데 앞선 내용들에서, 정의 3에서 실체들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고려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체들 간의 원인-결과, 즉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못한다는 것이 보여집니다. 이를 이해하지 비교적 수월한 예시로 들어본다면, “소금을 넣어 국이 짜졌다”라는 인과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 ‘국의 짬’은 ‘소금의 넣어짐’에 의존하며, 소금의 넣어짐(즉, 넣어진 소금)을 함축합니다. 
  • 우리가 짠 국을 짠 국으로, 넣어진 소금을 넣어진 소금으로 분리하여 각각 개념화한다면, 다시 말해 ‘짠 국’의 개념이 ‘넣어진 소금’의 개념에 의존하지도, 함축하지도 않는다면, 이는 각각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식이 아닙니다.
  • 즉, 원인과 결과는 서로 ‘의존’하며, 결과가 원인을 함축합니다. (그러나 실체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 여기서 우리는 인과관계의 각 항들을 위와 같이 ‘실체화’시킬 때 인과가 사라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나가르주나나 찬드라키르티의 불교 중관학에서의 급진적인 회의주의에 다다릅니다.)

 

정리 7: 실존함은 실체의 본성에 속한다.

 

위의 정리에 따라서 실체는 다른 것에 의해 생산될 수 없기에, 남은 것은 자기원인입니다. 즉, 그것의 본질은 필연적으로(necessarily) 실존(existence)을 함축합니다.

 

정리 8: 모든 실체는 필연적으로 무한하다.

증명: 한 속성을 갖는 실체는 (정리 5에 의해) 오직 하나만이 실존하며, (정리 7에 의해) 실존함은 그것의 본성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 본성에 의해 그것은 유한한 것으로 실존하거나 무한한 것으로 실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실체는 유한한 것으로 실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한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실존해야만 하는 (정리 7) 동일 본성의 실체에 의해 제한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동일 속성의 두 실체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정리 5에 의해)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실체는 무한한 것으로 실존한다.

주석: 사실 유한함은 어떤 본성의 실존에 대한 부분적 긍정이고 무한함은 그것에 대한 절대적 긍정이기 때문에, 오직 정리 7로부터 모든 실체가 무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나온다. 

 

이제 앞서 보았던 정리들에 의해서 실체는 하나이며, 실존함이 본성임이 보여졌는데, 따라서 실존함에 있어서 유한하거나 무한하게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실체의 본질이 실존을 가지고 있다면, 즉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면 실체는 무한하게 존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유한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실존해야만 하는 (정리 7) 동일 본성의 실체에 의해 제한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제한되어 있음(자신의 유 안에서 유한함)은 다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 실체는 정리 7에 따라 똑같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동일한 본질/본성을 가진 2가지 실첵다 존재하게 되어 정리 5 (자연에는 동일 본성을 갖는, 달리 말해 동일 속성을 갖는 둘 또는 여러 실체가 있을 수 없다)를 위배합니다. 따라서 남은 길은 위에서 나열한 본성을 가지는 실체가 유일하고 (유일하기 때문에) 무한하게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증명의 성질을 두고 김은주 선생님은 이와 같은 실체의 유일성에 기반한 증명이 현존하는 인과 계열이 존재하는 유일한 세계라는 스피노자의 필연주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024, 53).

나아가 주석에서는 이미 정리 7이 실체의 본성이 실존이라고 한 점에서,

  • 유한함=실존이 다른 것에 의해 부분적으로 부정됨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 무한함=실존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

과 같기 때문에, 정리 7 하나로도 실체의 본성이 실존이라면, 그것은 무한해야함을 보일 수 있다, 고 스피노자는 적고 있습니다.

 

***

앞전에 스피노자의 논의의 핵심이 “수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실체적으로 구별될 수가 없다, 실체적으로 구별되는 것은 수적으로 구별될 수 없다”라고 말했었는데, 정리 8에 와서 돌아보면 이러한 핵심이 데카르트주의와의 비교/대치 관계를 통한 데카르트의 사상에 대한 비판을 하려고 하는 스피노자의 동기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따라서 이번 두번째 시간, 정리 1-8까지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데카르트로 시작해 데카르트를 넘어서려는 시도’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댓글 1
  • 2026-04-14 21:07

    우와 엄청나게 꼼꼼한 후기 !! 이번 내용으로 조금이나마 실체를 이해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올 양태는 또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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