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소설 읽기 두 번째 - 『빛과 멜로디』를 읽고

수수
2026-04-13 09:47
33

‘조해진 소설 읽기’ 두 번째 시간에는 『빛과 멜로디』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시간 조해진의 단편집 「빛의 호위」를 통해 작가가 세상의 어떤 지점에 애정의 눈빛을 주는지 알게 되었다면, 이번 장편을 통해서는 구체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하나의 세상을 마주하는 듯했다.

 

단편 빛의 호위를 쓰고 발표한 지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빛의 호위를 조금씩 수정하며 빛과 멜로디로 다시 쓰면서,

시리아와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으로 배경을 확장하고

인물에게서 인물에게로 이어지는 호위의 서사를 엮어가면서,

……

나는 다시,

믿고 싶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일이란 것을

--‘작가의 말중에서

 

단편을 장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작가에게 또 다른 도전일 수 있을텐데, 조해진은 그러한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장편이 되면서 인물은 늘어나고 배경도 확장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가져오지만 단편에서 보여주지 못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풍요로워지고, 주인공 주변의 다른 서사들이 확장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물론 그 서사에 또 다른 전쟁이 추가되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장편소설이라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다. 우연샘은 『빛과 멜로디』로 조해진 소설에 입문하였는데, 마음 아픈 이야기가 많지만 결국은 작가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달팽이샘은 장편이라 시점의 다양성을 볼 수 있어 좋았고, 10년의 시간 동안 작가가 역사의 변화를 담았다는 것에 많은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주인공 권은의 직업이 사진가이고 소설 곳곳에 권은의 직업적 고뇌가 나타나서인지, 사진의 ‘윤리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닮지 않아야, 그러니까 피사체와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거리낌 없이 촬영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거리는 결국 냉정함의 거리라고 …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사진을 위해 한 사람의 고통을 이용해 온 건지도 모른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빛과 멜로디』 60쪽)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 사람들을 찍어 온 주인공 권은의 고민이 무엇일지 짐작하기는 쉬웠다. 어쩌면 모든 예술이, 모든 활동이 이런 고민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경험을 활용한다는 것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 성공이나 만족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경계를 알기는 어렵고, 타인을 위한다는 것과 나 자신의 만족이라는 것도 모호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인물은 의외로 민영의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자신과 동등한 인격과 존엄을 갖춘 타인이 있긴 했을까. 누군가의 아픔을 절대적으로 바라본 적이 있었을까.”에서 알 수 있듯 민영의 아버지는 딸에게 전혀 애정이나 공감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내의 투병 과정에서는 자신의 이기적인 면모만 드러냈고, 딸에게는 막말을 쏟아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딸인 민영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데 연락 없이 찾아오고 손녀의 사진과 영상을 요구한다면? 이 아버지에게 이제 와서 아버지의 자리를 인정해 주어야 할까,에 대해 우리의 의견은 나뉘었다. 달팽이샘과 나는 ‘뻔뻔하다, 이해해주지 말아야 한다’였고, 우연샘은 ‘아버지도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서사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뿐’이라는 의견이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또 다른 아버지 콜린은 전쟁에 참가해 의도하지 않은 조종사가 되고 원하지 않는 작전에 투입되어 민간인을 죽이는 일을 했다. 그래서 그의 아들 게리와 평생 불화하고, 화해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죽는다. 작가는 민영의 아버지와 달리 콜린에게 그가 어쩔 수 없었음을 항변하는 서사를 부여한다. 그 또한 그 일로 평생 괴로워했음을, 잊고 싶었지만 평생 잊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콜린은 죽음을 앞두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나는, 나도……. 사람을 죽이려고 태어나지 않았지.”라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 것과 역사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의 차이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문제를 생각할 때 고민하는 것들이 소설에서는 인물 하나하나의 삶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허구가 아니고, 우리는 언제든 작가가 만든 그 세계로 갈 수 있다. 또, 그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르지 않다.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이유는, 이 후기를 지금 끝내야 하는 나의 세계 때문이다 ㅋㅋ)

 

좋은 이야기, 많은 이야기를 후기에 다 담지 못해 아쉽다. 우연샘과 달팽이샘에게 기대를 ~~ ^^

댓글 1
  • 2026-04-13 11:39

    조해진의 소설은 사회 현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나의 모순된 감정들을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어 애착이 많아 갔다. 어설픈 위로와 공감이 나의 도덕적 만족인지, 그들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얄팍한 죄의식에 대한 면제부는 아닌지.
    수전 손택이 그랬던가, 행동하지 않은 감정은 결국은 또하나의 소비재에 불과하다고.
    소설을 읽고 이런 내부의 갈등들을 같이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됨이 새삼 감사하다. 또한 소설 속의 인물들은 기사화 된 사건 속에 우두커니 남겨져 있는 객관적 객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숨 쉬고 살아가는 바로 내 이웃들로 다가온다.
    답은 없으나 세미나가 끝나고 나면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시 깊게 생각하게 된다.

    그나저나 세미나 시간 참 빨리 지나간다. 하고 싶은 말, 반 밖에 못하고 끝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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