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빙하시대 녹이기
4장 자유로운 인간, 문화의 기원, 사유재산의 등장

루이지애나 파버티포인트(기원전 1600년경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벌인 거대한 토목공사 흔적)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를 애당초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자유를 재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을 상상력 풍부하고, 지적이고, 장난스러운 존재로 이해될 자격이 있는 존재로 대하면 어떨까?”
“자신을 재발명할 가능성을 상상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엄격한 개념적 족쇄에 우리가 어떻게 얽매이게 되었는지를 묻는다면 어떨까?
1장(19)의 내용인데요. 기존의 인간 역사를 다시 쓰는, 모든 것의 새벽을 다시 여는, 저자들의 태도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마도 텍스트 전체를 읽어낼 때 계속 떠올리게 될 문장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유재산은 농업 혁명이 시작된 신석기시대에 등장했다.’, ‘수렵 채집인들은 평화롭고 순진무구하다.’, ‘우리는 무리에서 부족으로, 족장사회를 거쳐 국가로 발전했다. 이것이 사회적 진화다.’ 저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빙하시대’를 서서히 녹여 냅니다. 증거를 기반으로 하되, 가능성과 상상력을 동원해서 지금으로부터 먼 시기까지의 간극을 채워 나갑니다. 세미나를 함께 하면서 마치 저자들이 다시 쓰는 인류 역사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3장 제목에 걸맞는, 네월아샘의 초간단 빙하기 강의도 인간 진화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빙하기에는 북반구(대부분 육지)의 추위가 혹독하기 때문에 대부분 따뜻한 남반구(대부분 해양)로 이동했고, 여기서 진화가 촉진되어 유전적으로 다양해졌다. 10만년 전쯤 마지막 빙하기 출현했을 때 사피엔스가 진화하며 확산되면서 사회적 조직도 다양했을 확률이 높다. 1만 1700년쯤 전에 간빙기에서 농경문화가 정착할 수 있었다. 농경 기술은 남반구에서 시작되어 북반구로 확산되었다. 수렵 채집인들의 자의식적 판단이 계급과 권력의 고착을 막았다. 빙하기가 인간을 단련시켰다. 빙하기 때문에 인간은 50만년 전 쯤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동물의 결정적 차이는 불이다.”
저자들은 일명 ‘사피엔트 패러독스’(유전적/해부학적 현생 인류의 등장과 현생 인류와 관련된 복잡한 행동의 발달 또는 문명의 등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대한 의문)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미끼이며 ‘미개한 채집인’이라는 기존 담론을 고착화시킨다고 비판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인간(생물학적)이 되자마자 인간의 일(문화적)을 하기 시작했다고. 간극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루소의 <인간 불평등의 기원>을 ‘성서’삼아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을 찾는 논의는 계속되어 왔습니다. 선조들을 오직 평등적인 존재로만 보거나 위계적인 존재로만 보는 두 입장은 사실 같은 입장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거대 구조물, 군왕의 무덤들을 기존 방식대로 유형화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할 지점입니다. 부장품과 함께 매장되었다는 것이 곧 그의 지위와 위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원시적’ 민중은 ‘자의식있는 정치적 행위자가 될 수 없다는 ‘원시적’ 사고방식에 대한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려 깊고 비판적인 분석을 할 수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사회적 삶을 구성했고, 그에 걸맞는 지도력(분쟁을 중재하고, 빈민에게 시혜를 베풀고, 훌륭한 연설을 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을 갖춘 족장을 지도자로 추종했습니다. 특정한 사회적 질서가 결코 고정되거나 불변적이지 않았고, 권력의 집중화를 막는 정치적 결정과 자의식적 실험이 선조들의 사회에 존재했습니다. 뚜버기샘은 ‘계산적 지식’을 바탕으로한 선조들의 정치적 결정과 자의식적 실험이 마치 고병권샘이 말씀하신 ‘선험적 예견장치’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셨답니다. 르꾸샘은 동의하면서도 저자들이 인간만이 행위성을 가진 것으로 전제하는 것은 생각해 볼 점이라는 견해를 더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 묻는 대신 ‘우리는 어쩌다 고착되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인간의 이야기에 대해 평등한 출발점과 위계적 출발점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하는 대신 그들이 인지적, 지적 존재임에도 불평등 시스템에 고착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문해 보자고요. 인구는 증가했지만 인간은 점점 더 작은 규모로 살고 있고, 삶과 열정이 문화, 계급, 언어의 경계선 안에 갇힐 확률도 커졌습니다. 굳이 대륙 저편에 사는 몇 안 되는 인간을 찾아 빙하 대륙을 건너고 바다를 항해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중석기시대 채집인들의 ‘문화 지역’은 현대 민족국가나 신석기시대 보다 넓었습니다. 채집인 선조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존재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절대로 생각해내지 못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며 사회적 시스템과 가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음을 삶으로 증명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똑같은 질문만, 단일한 서사만 반복해왔습니다. 진정한 불평등은 농업의 발명 이후 등장하며, 토지 재산이 출현하면서 물질적 잉여가 생겨났고 이를 기반으로 위계와 계급, 그리하여 ‘국가’의 등장이 피할 길 없이 따라온다는 통념에 따르면, 수렵 채집인은 애초부터 ‘평등 사회’에 살았던 듯 여겨집니다. 과연 그럴까요? 인간은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합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을 가장 창조적인 동시에 가장 파괴적인 존재로 만드는 부분입니다. 이 ‘잉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평등 사회’를 정의하는데 근본개념이 될 것입니다. 진정 평등한 사회는 잉여를 만들지 않는 ‘즉각 보상’ 경제를 영위하는 사회이며, 반면 ‘지연 보상’ 경제는 개인이 다른 개인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기반을 마련합니다. 모든 종류의 잉여를 축적할 가능성을 없앤다면 우리는 진정 평등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먼 선조들에게는 이동의 자유, 상이한 사회구조를 오갈 자유, 권위에 불복종할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여행할 권리(형식적 자유)가 아닌 실제로 여행하는 것(실질적 자유)인 반면 현대인들의 자유는 형식적 자유에 그치며 효율성을 기초로 조직되는 경제에 연동되어 있습니다. 식량을 얻는 방식을 기준으로 인간 발달 단계를 판단함으로써 ‘상업 사회’가 가장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죠. 그 결과 부와 자산도 늘었지만, 더불어 노동 시간도 늘었습니다. 풍요는 절대적 기준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아주 적은 시간의 수렵 채집 활동만으로도 무리 전체를 먹일 수 있었고, 매우 많은 시간동안 ‘인간의 활동’(문화)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굳이 농사를 지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여가를 지키기 위해 신석기시대 혁명을 거부했습니다. 그들의 결정은 기술적 무지가 아니라 자의식적으로 내린 사회적 결정이었습니다. 북아메리카, 일본 등지에서 발견된 거대 문화의 흔적들도 그들이 ‘단순한 일상적’ 채집인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농업 기반 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물질적 재화가 거래된 형태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채집인들은 자유분방하고 게으르며, 문명은 농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통념이 남아있을까요? 이는 유럽의 식민지 팽창이 낳은 유산과 관련이 큽니다. 유럽 정착민은 선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식민지로 삼기 위해 ‘그들은 곧 땅이므로 땅을 소유할 법적 권리가 없다’는 주장을 폅니다. 재산권은 노동에서 도출되는데,(존 로크의 <통치론>) 게으른 선주민들은 땅을 경작하는 노동을 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땅은 빈 땅으로 간주됩니다.
소유권의 기원을 신성의 배타성에서 찾아낸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뒤르켐에 따르면 신성의 가장 명료한 표현은 폴리네시아의 ‘타부tabu’인데요. ‘건드리면 안 됨’이라는 의미입니다. 개인 재산권은 살아 있는 어떤 특정한 개인에게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 대항하여’ 행사됩니다. 자신의 신체를 소유한다는 생각에서 절대적이고 신성한 권리가 나온다는 유럽적인 신성 개념은 이후 비유럽 식민지를 대상으로한 살해와 고문에 적극적으로 활용됩니다. 그러나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달랐습니다. 신성한 자산, 즉 ‘사크라sacra’ 만이 사유재산으로 취급되는 유일한 물건이었고, 제의적 맥락에서만 배타적인 재산 형태가 존재하고 엄격한 위계와 복종이 이루어 집니다. 소유권은 항상 지배와 보살핌의 이중적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로마법 이후 재산 개념에서 관리와 공유의 의미는 사라지거나 최소화됩니다. 내가 처분할 수 있는 재산이 곧 진정한 법적 재산인 것이지요.
수렵 채집인들이 야생동물을 잡은 다음 그들을 반려동물로 기르는 것은 바로 자연 세계의 폭력적인 전유가 양육이나 ‘관리’로 전환되는 지점이라는 저자들의 관점과 관련하여 네월아샘은 “로마법 이후 소유와 보호/관리가 분리되면서 신성성이 배제되기 시작했는데, 자녀 양육’이 신성성이 조금은 남아있는 영역은 아닐까” 하는 시각을 나눠주셨습니다. 이에 뚜버기샘과 르꾸샘 등 여러 샘들은 그레이버는 수렵 채집인의 ‘야만성’이라는 통념을 깨고 선주민 사회가 갖고 있는 돌봄의 긍정적 측면을 보려고 노력한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는데요. 텍스트를 읽어 나가며 저자들의 '돌봄'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의 질문과 통념으로 되돌아갑니다. ’사유재산은 농업 혁명이 시작된 신석기시대에 등장했다.’, ‘수렵 채집인들은 평화롭고 순진무구하다.’, ‘우리는 무리에서 부족으로, 족장사회를 거쳐 국가로 발전했다. 이것이 사회적 진화다.’ 정말 그런가요? 저자들은 답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사유재산에 기원이 있다면 그것은 신성의 발상만큼이나, 인류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그들은 ‘계산적 지식’을 바탕으로 자의식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결정을 했다고. 그런데 왜 우리는 어쩌다 단 하나의 양상에 고착되었을까요? 그 답은 5장 이후에 더 자세히 언급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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