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 겨울-사이 읽기 <모든 것의 새벽> 1차시 후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세미나를 신청해 주셔서 놀랍고 기쁜 마음으로 첫 발제를 맡았는데 쉽게 읽히는 인트로와 달리 1장과 2장은 내용이 꽤 빡빡했다. 허둥지둥 내용 요약에 급급하느라 정작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깊이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여러 샘들과 텍스트를 되집어 가다보니 떠오르는 뭔가가 있었다.
유럽 지성사에서 아메리카 선주민들을 유아 취급하거나 무시했던 차별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인들의 유럽 비평과 비판을 통해 유럽 문명에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하여 계몽주의가 탄생했으며 두 번의 혁명이 가능했다. 이는 우리가 몰랐던 인류의 역사였다. 이처럼 이 책은 기존의 역사적 사료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최초의 발걸음을 역추적하고 기존 지성사의 개념을 바꾸어 낸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
1, 2장은 루소의 <<인간 불평등의 기원>>(1754)이 등장하게 된 계기를 주제로 논의가 전개된다. 17,8세기에 유럽에서는 “인간은 언제부터 불평등해졌나”라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우리 시대에도 2008 금융쇼크 이후 불평등이 주요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나 불평등이 확산되었는지, 어떻게 평등을 이룰 것인지와 같은 질문은 막연하다. 또한 변화의 가능성을 찾는 방법에 있어서 비생산적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오히려 ‘불평등의 기원’과 같은 질문이 언제 제기되었는지 그 기원을 추적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재발명할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을 회복하고자 한다.
여기서 그레이버는 인간을 “집단적 자기 창조의 투사물”로 파악한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본질은 다른 형태의 사회조직을 시도하는 것, 다시 말해 자기 창조의 능력과 자유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 그레이버 사유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이상적인 평등상태를 상정한 뒤 그 개념에 얽매여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되었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셈나 시간에 나온 워딩을 빌면 “자유와 평등에 대한 정치사상사의 재구성”이 이 책의 여정이 될 것 같다.
저자들은 기존의 역사서술이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자료와 장면들만을 취사선택했다고 비판하는데, 다른 한편 저자들 역시 그렇지 않을까 라는 질문도 셈나 시간에 나왔다. 하지만 주류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된 자료들에 빛을 비추고 그로부터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어쨌든 나의 경우는, 아나키스트 인류학자 그레이버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인류사에 매우 끌리는 것은 분명하다.
책에서는 우리말로는 똑같이 자유라고 번역되는 두 단어를 구별하고 있다. liberty는 근대적인 개념으로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누리는 권리이라는 개념이라면 freedom은 예속되지 않는 권리라는 차이가 있다. 16세기 아메리카인들을 처음 만난 선교사들은 그들의 자유 개념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선주민들 역시 유럽인들의 자유없음에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메리타 선주민들이 보기에 유럽인들은 상급자를 두려워 하며 살아가는, 노예보다 별로 나을 것 없는 존재들이었다. 아메리카인들은 추장이라 할 지라도 부족민들에게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킬 수 없었고 처벌 대신 일족 전체에 의한 보상이라는 방식으로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갔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의지 이외의 어떤 다른 충동에도 복종하지 않고 어떤 법도 준수하지 않는 정신을 갖게 된다.”(66) 선주민들에게 자유란 이런 것이었다. 신에게 대한 복종을 근본으로 삼는 선교사들에게 이런 사악한 자유는 난감한 것이었다.
다른 자유로부터 다른 평등 개념이 이끌려나온다. 유럽인들에게 평등은 법 앞에서의 평등 혹은 주권자 앞에서 똑같이 복종하는 평등이었지만 선주민들에게 평등은 명령에 복종하거나 불복할 자유를 똑같이 누린다는 의미이다.
두 자유 사이의 차이가 처음엔 추상적이었는데 세미나를 하면서 명확해졌던 것 같다. 특히 리버티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오히려 관계를 부정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개체의 고립으로 이어지고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자유주의는 힘을 키워가는 것 같다.
자유에 대한 대화는 함께 사는 삶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처음 텍스트를 읽을 때는 liberty와 상호지원(mutual aid) vs freedom과 공산주의의 대비처럼 해석했고, 셈나 시간에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 했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강조점은 둘을 구별하는 데 있기보다는 공산주의라는 용어의 의미를 확대하는 데 있었던 것 같다. 즉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생산물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보다 더 원래적인 의미에서의 공산주의라는 용어가 있다는 점을 저자들은 강조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저자들은 ‘능력에 따라 내놓고 필요에 따라 가져간다’는 의미의 공산주의는 모든 사회에 통주저음처럼 흐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다만 그 한도를 어디까지 적절히 연장할 수 있는가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선주민들은 프랑스인들이 기본적인 공산주의를 상실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웬다트 연합의 전략가 칸디아롱크였다. 그는 특히 사유재산과 부를 권력으로 전환시키는 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유럽 문명이 평등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도발했다. 이런 선주민들의 유럽 비평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유럽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주었다. 계몽주의자들 다수가 선주민 비평을 전유했고 보수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이 가운데 한명인 튀르고에 의해 사회는 수렵>목축>농경>도시문명으로 발전한다는 사회진화론의 초기형태가 만들어졌고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학파에게 파급되었다. 기존의 기독교적 세계관(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퇴락해가는 인간)과는 또 다른 관념의 등장인 것이다.
저자들은 루소의 성공은 당시의 세 가지 사유의 흐름을 잘 엮어 낸 결과라고 보았다. 선주민의 유럽비평의 전유와 문명이 기술적으로 진화해 간다는 튀르고의 새로운 이론 그리고 에덴의 상실처럼 불평등을 향해 퇴락해간다는 이미지를 잘 엮어냄으로서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루소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라이프니츠나 볼테르와 같은 다른 계몽주의자들과 달리 루소는 유럽 사회를 타자의 관점에서 보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타자를 지우고 야만인이라는 단순한 사고실험으로 축소함으로써 다른 사회가 가진 가능성과 상상적인 힘을 빼앗아 버린 것이다. 루소의 사고 실험으로부터, 어리석었기에 순진하게 자족할 수 있는 야만인이라는 이미지가 후대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하현님의 경우는 텍스트에서 돌봄과 존재의 인정이라는 키워드들이 읽혔다고 한다. 또한 앞으로도 그것들을 발견하면서 읽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재미있는 읽기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이 예속적인 삶을 살지 않도록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것이 사회성의 기본이라는 그레이버의 전제에는 그런 개념들이 내포되어 있음에 분명하다. 자유와 평등의 문제는 결국 돌봄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키워드를 찾으면서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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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수고로운 발제에 이어 이렇게나 찰떡같은 후기라뇨?!^^
뚜쌤의 잘 정리된 후기 덕에 저희 모두가 떡상한거 같아요ㅎ 정갈한 후기 고맙습니다!
헬레벌떡 읽고 가 저도 놓친 부분이 많았는데
세미나 시간에 여러 선생님들의 얘기 속에서 새롭고 풍부하게 다시 텍스트를 보게 되었네요.
특히 2장의 제목이 왜 '사악한' 자유인지, 이를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논의는 흥미로웠습니다.
역시 벽돌책은 무조건 같이 읽고 각자의 해석의 조각들을 이어붙일 때 더 멋진 모자이크가 완성되나봐요.
저는 이 믓찐 아저씨들이 인류의 새벽을 다시쓰기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법을 구사할지가 점점 기대됩니다.
정성스런 후기 덕분에 지난 시간 복습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나를 그리고 어떤 ‘우리‘를 재발명할
귀한 기회와의 접신일까요?
난감했을 첫 발제와 후기를 맡아주신 뚜,
같이 이야기를 맞춰가는 세미나친구들도 넘 소중~
이런 이야기가 있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아, 후기도 써야 하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