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ch, Such Were the Joys 7회차 후기

보리
2025-10-22 21:28
220

  드디어 조지 오웰의 에세이 <즐겁고도 즐거웠던 시절>, 내용상 <괴롭고도 괴로웠던 시절>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중편이지만 느낌상 장편 같은 작품이었고 소설이 아닌 어린 시절의 감정을 자세히 토로한 에세이였기 때문에 더 길게 느껴졌던 것 같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겠지만, 처절하고 괴로운 기억이 많을수록 더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 같다. 행복의 기억은 뭉뚱그려지거나 경계가 흐릿한 이미지처럼 올라오는 반면, 불행의 기억은 좀 더 날카로운 선이 살아 있는 채로 뾰족하게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확신은 절대적이지 않아 오웰 역시 'think', 'seem', 'believe', 'remember'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서술한다. "나는 그때 불행했다"가 아니라 "나는 그때 불행한 것 같았다"거나 "나는 그때 불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는 식이다. 그러나 확신으로 종결된 문장이 아니더라도 모든 감정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오히려 살짝 빠져나가는 느낌을 주는 게 그가 마주한 고통이 더 큰 것이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많은 어른이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민감하고 이율배반적이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을 잊어 버리고 살지만 생각보다 아이의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아이들은 그토록 사랑받기 원하면서 사랑받을 수 없게 행동하고 그토록 이해받기 원하면서 이해받을 수 없게 행동하는 양면성이 있는데, 오웰은 그 묘한 마음이 어떤 심리인지 또한 아이에게 어른이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는 것에 마지막 챕터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절대 건너갈 수 없는 강력한 장벽처럼 서술하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아이는 어른을 이해하기 어렵고 어른은 아이 시절을 건너왔지만 아이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대전제는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아이의 진심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 엉뚱한 상상을 해 본 적도 있다.
  인간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 시절의 마음을 고스란히 기억하여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유전적으로 어떤 맹점이 생겨 인류의 존속에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하지 않은 것이라고... 인간이 자신이 거쳐온 시간을 잊고 혹은 잊지 않았더라도 그때 그 마음으로 그때의 자기 자신을 대하듯 아이를 대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어린 시절의 오웰에게 어른은 대체로 나쁘고 폭력적이며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는데, 그가 어린 나이에 군대 못지 않은 기숙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오웰이 그 끔찍한 기숙 학교를 겪지 않았어도 결국 사회의 어둡고 부조리한 면을 담아내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 것 같다. 그의 감수성은 기숙 학교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원래 타고난 예민하고 비관적인 기질이 지독한 학교 생활을 겪으며 더욱 예리하게 벼려진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꽤 오래도록 아버지 때문에 세상이 싫은 비관론자가 되었다고 원망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아버지 아래 태어난 언니도 오빠도 나 같은 비관론자는 아닌 것 같고, 나만 늘 아버지 탓을 하며 스스로 나빠지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약했고 약하면 나빠지는 길을 쉽게 선택한다.
  이제는 나와 오래도록 삶을 같이 한 비관이 누구 때문이거나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닌 속성의 일부라는 관점이 더 강해졌다. 이제 비관은 더 이상 불행한 무엇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하나의 렌즈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오웰의 어린 시절을 관통한 비관 역시 시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졌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웰이 어린 시절 그런 비인간적 환경을 겪으면서 고통을 받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겪었으니 그것은 이미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너의 일부이므로 너를 굳이 위로하지는 않겠어.'

 

댓글 3
  • 2025-10-23 09:48

    아이들은 그토록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받지 못할 행동을 한다. 그토록 이해 받기 원하면서 이해 받지 못할 행동을 한다.
    오은영의 열마디, 스무마디 보다 더 와 닿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아이들만 그렇겠습니까. 어른들도 속마음과 행동이 이율배반적일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ㅎㅎ

    에세이 후반부에서 오웰이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어른들이란 어떤 모습인지 설명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저는 (어릴때) 그렇게 보진 않았거든요.

    그렇지만 어린이들이 기숙학교로 보내져서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만은 진정성있게 느껴졌어요.

    상대적으로 안락한 가정에서 자란다고 해도 비관론자는 나오기 마련이지만, 아이가 느낄 비관의 무게는 조금 가벼울 수 있을것이라 생각해요.

    좋은 후기 감사해요~

  • 2025-10-23 11:32

    아이는 자기 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이고, 어른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율배반적이 되는게 아닌가 싶네요.
    각자가 지닌 서로 다른 기질과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 힘듬이고,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나 예술이 필요한거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당장 내가 낳아 키운 아들 조차도 이해하기 어렵다보니..

  • 2025-10-25 22:27

    글도 재미있고 후기도 재미있어요. 각자의 삶의 무게가 다 ~ 느껴지네요. ^^

    댓글을 읽다 보니 돈이 구김살을 쫘악 펴준다는 기생충의 대사가 문득 떠오르네요.

    그래도 뭔가 삶에, 과거에 스토리가 있는 사람, 그 삶을 이겨낸 사람에게 느껴지는 멋짐이 있지 않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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