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후기

수수
2025-10-16 15:08
362

  이번 시간엔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오가와 사야카)>를 읽고 세미나를 했다. 긴 연휴 후에 만나서인지, 책의 내용이 파지사유비전 찾기에 적절해서인지 다양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오고 갔다. 이 책은 문화인류학자인 오가와 사야카가 홍콩에 있는 탄자이나 출신 상인들을 참여관찰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저자의 관심은 이민자들에 대한 문화인류학보다는 증여나 교환 등 경제인류학, 비공식 경제로서 유사품 교역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자칭 ‘청킹맨션의 보스’인 카라마를 만나면서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만드는 경제구조 –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互酬性)을 기반으로 한 사업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 - 를 연구하게 되었다.

 

  우리를 제일 즐겁게 한 단어는 ‘겸사겸사’였다. 청킹맨션에 거주하는 이들은 비정주성, 유동성, 이질성의 특성을 지닌다. 불법 체류자, 난민으로 허가받은 사람, 여행 비자로 와서 3개월이 되면 다른 나라를 통해 비자 갱신을 하는 사람 등이 섞여 있는 이들은 ‘이동하는’ 상업적 여행자들이 다수다. 그들은 갑자기 병으로 사망한 이를 돕는 과정에서 ‘탄자니아 홍콩조합’을 결성한다. 이 조합은 우리가 생각하는 유형의 조합과는 많이 다르다. 언제 구성원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정기적인 회비를 받거나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중요한 일(주로 타국에서 사망하는 조합원을 모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기부금을 받고 역할 분담을 한다. 기부금도 본인의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낸다. 조합원이 스스로 탈퇴하지 않는 이상 어느 곳에 있어도 사망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장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공유하고, 여러 가지 상호 부조에 참여한다.

  저자는 이러한 상호부조의 논리를 ‘겸사겸사’의 논리, ‘적당히 하기’라고 부른다. 상대의 요구에 내가 부응할 수 있으면 기꺼이 그렇게 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따라 무리하지는 않는다.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논리인데, 이는 ‘내가 너를 도우면 너도 나를 도울 것이다’가 아니라, ‘내가 너를 도우면 누군가 나를 도울 것이다’라는 원칙이 그것이다. 이는 각자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무수히 확대 증식하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속에서 거대한 안전망이 만들어지는 특이한 시스템을 구성한다.

 

  그들은 SNS를 활용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활용한다. 홍콩에 있는 브로커와 아프리카에 있는 고객, 또 물건을 팔고자 하는 홍콩 등지의 판매자들을 연결하는 망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를 TRUST라는 가상의 플랫폼으로 설명하는데, 전문적으로 구축한 사이트는 아니며 다양한 SNS가 활용된다. TRUST에는 누구나 신용할 수 있고 누구도 신용할 수 없는 세계-인간관이 유지되고 거래실적이나 자본 규모, 과거의 실패나 배신과도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돌아간다. 여기에 참여하는 브로커들 사이의 불신과 신뢰의 균형은 카라마와 동료들이 퍼 나르는 웃긴 동영상이나 인스타그램 라방, 그리고 ‘상업적 여행자’들과 ‘겸사겸사’ 행하는 매일의 상호 부조, 조합 활동과 연동하면서 창출된다. TRUST는 ‘협동형 커먼즈’로, 또 ‘안전망’으로서 이들에게 작동한다.

 

  홍콩의 탄자니아인들에게 돈벌이는 중요하지만, 목적이라기보다는 수단이다. 동료를 만들고 증여를 순환시키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벌이를 동료나 증여를 순환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돈벌이야말로 사회를 만드는 놀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는 지점에는 장사의 논리가 있다. ‘우리는 어떤 기회도 자신의 이익으로 바꿀 수 있다’라고 공언하기 때문에 가볍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책에 나온 호수성(互酬性)’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번역되는 ‘호혜성(互惠性)’과달리 ‘호수성’은 ‘당한 만큼 갚아준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는 모스의 증여론에 나온 사회적 의무와는 달리, 강제적이지 않고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네트워크로 이들을 설명한다. 이는 ‘주고 받고 답례하기’의 의무와는 다른 것이지만 결국에는(넓게 볼 때) 서로의 도움을 주고 받게 되는, 보이지 않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2016년에 참여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재의 홍콩은 또 많이 달라졌겠지만, 책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유형의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류학의 변화도 느낄 수 있었고, ‘유저 커뮤니티’에 어떤 관계로 접속할 것인지 고민했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파지사유가 어떤 정체성·관계성을 가져야 할지,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함께해야 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모든 생각들은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는 에세이에 치열하게 담길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스러운(?) 곰곰샘의 메모로 깔끔하게 마무리!

 

  각자도생의 시대. 다정함을 강조하는 얘길 많이 듣는다. 그러나 이 다정함은 얼마나 멀리까지 가닿고 있을까. 여전히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사람들, 갈수록 선명해지는 갑을관계, 공경과 예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만연한 소비자 마인드. 우리가 강조하는 다정함은 끼리끼리 사이에서 오가는 협소함은 아닌지, 낯설다는 이유로 그저 타인일 뿐인 사람을 위험한, 또는 이질적 타자로 배제하지는 않는지, 두루두루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희망은 믿음인 것 같다. 믿을 수 있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지 못하겠어도 믿는 것이다. 그런 믿음도 없이 이 불확실한 세상을 어찌 살겠나 싶고, 사는 힘은 희망을 믿는 그 마음에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곰곰)

댓글 2
  • 2025-10-16 18:25

    우와, 깔끔한 정리입니닷!
    책 한권을 이렇게 정리하다니. 반장님 다워요!

  • 2025-10-21 21:48

    잘 정리해주셨네요 짝짝짝!!
    공평하게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특이하게 이질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정말 다르게 느껴지고 배울 점도 많은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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