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 7,8장 후기

띠우
2025-10-02 16:41
192

공동체의 상상력

 

이번 주는 7장 종족의 기원–급진적 구성주의와 8장 부활의 선지자들–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꿈꾸며를 함께 읽었다. 7장은 종족·부족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았다면, 8장은 그것들을 가동시키는 힘이 어떤 것인지(천년왕국운동과 같은)를 다룬다. 이 과정을 통해 조미아가 미개하고 원시적인 곳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국가효과와 맞물려 끊임없이 재구성되어 간다는 것을 보여준다(그 수많은 족들의 예,예,예에에에~~!!!).

 

스콧이 조미아를 통해 말하는 급진적 구성주의는 정체성이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선택과 조합을 통해 구성·기능한다는 점이다. 모어·의복·의례·족보 같은 요소들은 뿌리 깊은 본질의 표식이 아니라, 권력과 자원을 둘러싼 경쟁 속에서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따라서 산악민들의 정체성은 복수적이고, 유동적이며, 애매모호한 형태를 띤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종족이 먼저 존재하고 그것이 뚜렷한 정체성으로 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 국가 형성과정 속에서 서로 다른 집단들이 교류·흡수·통합되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종족성’이 정치적으로 발명되었다는 점이다. 국가는 이러한 발명을 통해 이들을 행정 질서와 지배의 체계로 편입시켜 나갔다.

 

우리는 흔히 벼농사 국가(평지국가)의 성장을 문화적·민족적 힘이 자연스럽게 확산된 결과로 생각한다. 그러나 스콧은 그것을 강압적이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모으는 기법의 결과라고 본다. 다시 말해 평지 국가가 커진 것은 자생적 중심의 힘이 아니라 주변 집단들을 흡수·통합해온 결과다. 이는 곧 원래 중심이 있었다는 생각을 무너뜨리며, ‘중심’ 중심의 사고 자체를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템플릿은 사람들을 행정적으로 분류하고 지배하기 위한 측정 단위로 작동한다. 그래서 ‘부족’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흡수와 통합은 단순히 인구를 늘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족성과 문화를 발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따라서 샨족·버마족·타이족의 문화적 개별성과 특징이라 여겨졌던 많은 요소들이 사실은 국가 건설을 위한 장치와 긴밀히 얽혀 있었다. 다시 말해, 이들의 종족성은 국가성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었다. 역으로, 이러한 국가화된 집단의 관점에서 볼 때 산악 지역의 종족성은 곧 ‘비국가성’을 표상하는 것이었다.

 

평지 사회는 세금 제도나 행정 조직을 통해 점점 더 하나로 모으려 한다(구심력). 반대로 산악 사회는 언어·의례·계보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쪽(원심력)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지금의 흐름은 점점 국가 쪽, 즉 전자 쪽으로 크게 기울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소수민족의 독립운동” 같은 표상조차 사실은 이미 국가라는 틀 속에서 이해되는 모습이다. 스콧은 조미아가 국가가 생겨나기 이전의 원시적 공간이 아니라 국가와 동시에 존재한 대안적 삶이었고, 거기서 사람들은 필요할 때마다 서로가 새로운 조합을 통해 살아왔다. 이러한 정체성은 ‘평등과 위계’, ‘국가와 국가’의 양방향, 2차선 위에서 움직였다.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가능성은, 정체성을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선택하고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것, 국가의 힘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작은 공동체나 집단들이 새로운 조합과 다른 질서를 만들어낼 여지도 강해진다는 것 아닐까.

 

산악민들의 봉기와 반란은 늘 예언과 천년왕국적 상상력과 함께 나타났다. “예언적 반란은 종종 예언자의 이름을 따서 불렸지만, 사실 이는 강조점을 잘못 둔 것이다... 결국 카리스마는 잠재적인 예언자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문화적 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는 문화·정치와 분리되지 않았고, 불교·기독교·정령숭배 같은 요소들이 뒤섞여 저항의 언어가 되었다. 예언운동은 단순한 종교적 환상이 아니라, 국가의 압박을 피하고 막아내는 강력한 무기이자, 새로운 사회질서를 상상하고 시험하는 장치였다는 말이다.

 

스콧이 말하듯, 산악 사회에서 천년왕국운동은 가능한 최고의 도피 사회구조의 형태였다. 이때의 기독교 역시 위계적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중심에서 거리 두기, 평등적이고 지역을 넘어서는 연대를 가능케 하는 저항적 성격을 띤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인 것이다. 실제로 조미아의 산악민들은 애니미즘·불교·기독교를 뒤섞어 종족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동원력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일상적인 도피 양식이 가로막힐 때 필수접착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파지사유부족’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고정된 정체성을 갖지 않는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불러내고 바꿔간다. 새로운 의례를 갱신해간다. 그 속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을 느껴간다. 해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카리스마, 리더십은 양서류라는 이미지와 이어진다. 이쪽과 저쪽을 동시에 오가며 해석하고 연결하는 존재들. 그리고 레퍼토리의 확장은 글쓰기, 세미나, 공동식탁, 에코실험 등 지금 하고 있는 활동들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각각의 활동이 어떤 목적을 갖고, 어떤 시공에서 누구와 함께 해나가고, 다음 단계로 무엇을 열어놓는지를 함께 정리한다면, 그 일들이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길이 보일 것이다.

 

매사가 선택의 연속일 것이다. 그런데 그 선택의 흔적이 갈지자를 그리며 가더라도, 끊어지지 않는 길이 되어준다면, 공동체가 곧 혁명이라는 말에 가 닿을 수도 있을 것 같구나.

댓글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78
<포식하는 자본주의> 마지막 후기 (1)
곰곰 | 2026.03.09 | 조회 45
곰곰 2026.03.09 45
1077
<포식하는 자본주의> 4장 발제 및 메모 (4)
토토로 | 2026.02.26 | 조회 80
토토로 2026.02.26 80
1076
<포식하는 자본주의> 3장 후기
띠우 | 2026.02.26 | 조회 66
띠우 2026.02.26 66
1075
<포식하는 자본주의> 3장 메모와 발제 (4)
| 2026.02.20 | 조회 108
2026.02.20 108
1074
<포식하는 자본주의> 2장 후기
토토로 | 2026.02.19 | 조회 86
토토로 2026.02.19 86
1073
<포식하는 자본주의> 2장 발제 및 메모 올려주세요 (5)
토토로 | 2026.02.12 | 조회 119
토토로 2026.02.12 119
1072
<포식하는 자본주의> 첫 시간 후기 (2)
달팽이 | 2026.02.11 | 조회 125
달팽이 2026.02.11 125
1071
<포식하는 자본주의> 1장 발제 및 메모 올려주세요 (7)
토토로 | 2026.02.05 | 조회 139
토토로 2026.02.05 139
1070
<에코프로젝트 시즌2> 에세이발표 후기 (7)
토토로 | 2025.11.08 | 조회 257
토토로 2025.11.08 257
1069
<2025에코프로젝트시즌2> 최종에세이 올립니다 (9)
띠우 | 2025.11.04 | 조회 266
띠우 2025.11.04 266
1068
시즌2 9회차 에세이 피드백 후기
관리쟈 | 2025.11.04 | 조회 188
관리쟈 2025.11.04 188
1067
에세이 데이에 초대합니다 (11월 5일) (7)
관리쟈 | 2025.10.29 | 조회 314
관리쟈 2025.10.29 31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