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25회 무망괘-기도발이 끝내줘요~

여울아
2018-11-15 08:23
455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기도발이 끝내줘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옛말이 있다. 지성(至誠)은 정성(성실)을 다하는 인간의 노력이고, 이것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의미에서 감천(感天)이다. 무망(无妄)괘는 이런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담고 있다.  괘의 생김새를 보면위로는 하늘이 있고아래로는 우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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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괘가 ‘()’☰으로 하늘을 상징하는 것은 보자마자 알 수 있다. 그러나 하괘가 우레를 뜻하는 ‘()’☳ 으로,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인간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천둥번개(우레)까지 모두 하늘의 일이 아닐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번개는 하늘에서 만들어진 구름이 위쪽은 양전하(), 아래쪽은 음전하()를 띨 때 발생한다. 이때 구름의 아래쪽 음전하가 땅의 양전하 부분과 만나 강한 빛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번개다. 이렇게 번개가 번쩍하고 나면 곧바로 천둥소리가 들리고, 쏴아~ 비가 내린다.

천둥번개는 하늘의 구름과 땅의 만물이 음양의 조화(충돌)를 이루는 자연현상이다. 아마도 고대인들은 인간의 지성에 대한 하늘의 응답을 라고 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비를 동반하는 우레가 하늘의 뜻을 이어받은 인간의 일로 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성이 하늘을 감동시킨다는 말도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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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발이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새벽마다 부엌 한 쪽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새벽에 물 마시러 일어났다가 할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기도하러 절에도 자주 가시는 분이 구태여 집에서까지. 그런데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는 분의 얼굴은 무심해 보였고, 연신 허리를 숙이는 모습조차 비굴해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범접할 수 없는 경건함을 느끼며 부엌문을 닿았다. 할머니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다. 할머니가 우리 식구 잘 되라는 바람 말고 또 무엇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내게는 할머니의 기도가 사욕(私慾)처럼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无妄 元亨 利貞 其匪正 不利有攸往 (무망 원형 이정 기비정 불리유유왕)

무망은 크게 형통하고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으니 가는 바를 둠이 이롭지 않다.

 

무망은 곧 인간의 지성이고, 하늘의 도이다. 인간의 기도가 하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혹은 간절하다고 인간의 지성이 하늘에 닿는 것이 아니다. 하늘 아래 우레는 구름의 음기운이 땅의 양기운을 만나는 순간에야 빠지직 빛(전기)을 만든다.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이 통해야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하늘과 소통하려면 언제든 하늘의 기운을 포착할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욕심이 지나치면 눈뜬장님과 같다. 나만 중요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하늘의 기운인들 어찌 감지할 수 있겠는가. 할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이 초연해 보였던 이유를 조금 알겠다. 어쩌면 할머니는 욕심을 버리려고 기도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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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도를 따라야 기도발이 끝내준다

 

六二 不耕 穫 不菑 畲 則利有攸往 (육이 불경 확 불치 여 즉이유유왕)

씨를 뿌리지 않더라도 수확을 하고, 밭을 개간하지도 않더라도 3년 묵은 밭(옥토)이 된다. 가는 바가 있으면 이롭다.

 

가족이 잘 되라는 할머니의 기도가 어떻게 개인적인 욕심이 아닐 수 있을까? 여기서는 무망의 삶을 분별할 줄 아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다농부는 자연의 섭리(하늘의 도)에 따라 봄에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여름 내내 키워내고 가을에 수확한다. 그렇다면 씨를 뿌리지 않고도 수확하고 밭을 갈지 않고도 3년 묵은 좋은 밭을 얻게 된다는 육이의 효사는 어떤 의미일까? 육이는 음의 자리에 음이 왔고, 구오와 음양을 이루기 때문에 중정(中正)이다. 이때 농부의 마음은 욕망(欲望)이 아니라 무망(無望)이다. 농부는 씨 뿌리고 개간하는 일을 무망의 정신으로 해낸다. 무망의 정신이란 씨를 뿌리되 수확을 바라지 않고 개간을 하되 땅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농사일이 하늘의 도에 꼭 맞을 때 풍요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중용> 20장에서는 성()이란 하늘의 도(天之道)라고 했다. 인간의 지성(人之道)이 하늘의 도와 꼭 맞으면 힘을 쓰지 않아도 알맞게 되고(不勉而中),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된다(不思而得). 농부가 사욕이 아니라 무망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날 농산물은 화학비료와 성장 촉진제 범벅이다. 이것은 농작물을 기르는 과정보다 결과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무망을 따르는 농부라면 매일 새벽마다 논밭을 돌보는 일 자체에서 큰 기쁨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농작물이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울 것이다. 무망괘는 <중용>에서 인간이 만물 화육(化育)에 참여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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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농사일은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상과 더불어 사는 한 내 자식만 잘 되는 길도 없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한 번도 당신의 기도응답을 내게 강요했던 적도 없다. 내가 이만큼 기도했으니, 너는 시험에 붙어라, 부자 되라 등등. 아무 것도 내게 바라지 않으셨다. 아마도 자기 자식만 잘 되길 바랐다면 할머니처럼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어쩌면 천지화육(天地化育)의 일부로서 자신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이제 나도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가끔 할머니의 기도가 떠오른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할머니의 기도발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도발이 끝내주려면 무망해야 한다. (오늘 하루 수만 명의 수험생 부모들의 기도발이 끝내주길 바라며...)

 

댓글 3
  • 2018-11-15 18:02

    재밌네요^^ 점치지말라던 바로 그 할머니?

    • 2018-11-16 21:47

      맞아요~ 요즘 할머니 생각이 여러모로 자주 나네요. 

  • 2018-11-17 07:48

    도를 따라가는 무망한 기도빨ᆢ 아 이틀전에만 알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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