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22회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던 비(賁)의 시대

게으르니
2018-10-25 07:56
317

<어리바리 주역>은 고전공방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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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던 비()의 시대



 비()괘의 형상은 산 아래에 불이 있으니, 산은 초목과 온갖 물건이 모이는 곳이요, 아래에 불이 있으면 그 위를 비춰서 초목과 온갖 물건들이 모두 광채를 입으니 꾸미게 되는 것이다. 온갖 만물이 모인 곳이 산 아래에서 빛이 비춰지는 형국이니 그 만물이 빛을 입어 드러나게 된다. 그런 때는 실제가 꾸며지니 실제와 꾸밈 사이에서 어떻게 질서 지워야 조화와 안정을 이룰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를 평정하여 통일을 이룩했다. 그간 수많은 제후국들이 힘을 겨루며 패권을 다투었는데 그 속에서 진()이 마치 우뚝 솟은 산처럼 뚫고 나와 이들을 제압한 것이다. 그러니 그 산에 천하의 만물이 깃들었으니 오죽 그 책임이 막중할까. 천하의 백성들이 눈빛을 밝혀 자신을 관찰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빛에 드러나는 실제가 위엄이 있으려면 어떤 꾸밈으로 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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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괘의 괘사는 형통()하다고 풀면서 가는 것이 조금 이롭다(亨 小利有攸往)고 했다. 천하통일의 형국을 비의 시대로 판단했다면 춘추전국시대 혼란의 평정이 형통한 것이되 결과의 이로움은 조금 이로운 형국인 것이다. 천하통일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일까. 그 시작이 조금 이로울 따름이니 신중해야 이후의 형세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


 비괘의 대상전에서는 군자가 산 아래에 불이 있는 형상에서 정사를 밝히되 옥사를 과감히 하지 않는다(山下有火 賁 君子以 明庶政 无敢折獄)로 풀었다. 천하를 하나로 모아 놓았으니 기존의 온갖 것들이 제 자리를 찾도록 하자면 정사를 펼쳐야 하는 때인 것이다. 그 정사를 펼치는데 옥사(獄事)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옥사란 죄를 따져 물어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동력이 다른 여섯 제후국들과 달리 강력하게 법을 집행했던 것도 한 몫을 했다. 문명에 있어 가장 낙후했던 진나라로서는 강력한 군주가 엄한 형벌로 백성들을 단속하면서 가시적인 효과를 얻었을 수 있었다. 하지만 비의 시대에 이르렀다면 형벌의 집행에서도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과감한 집행을 벗어나 실정의 연관을 헤아리는 신중을 발휘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진시황은 더 과감해지는 행보를 선택했다. 그로서도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온갖 세력을 하나로 장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봉건제로 인한 혼란을 군현제로 다스리려고 한 것이다. 문제는 속도였다. 비의 시대에 꾸밈 즉 제도의 시행은 실정을 살핌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군주의 힘이라면 수레를 타고 강력한 속도로 달려갈 수도 있지만, 수레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며 걷는 속도로 처리 할 수도 있는 것이다.(初九 賁其趾 舍車而徒) 진시황은 속도 조절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힘에 너무 도취되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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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백성들과 조화를 이루어 꾸밈을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분열의 기미를 싹틔우게 된 것이다. 꾸밈의 시대에 위아래가 협력하여 마치 턱과 수염처럼 한 몸이 되어 움직이지 못하니 꾸며질 수 없고, 결국은 흰 바탕인채로 남았다. 통일 자체의 바탕은 남았으나 그것을 꾸며 천하의 조화와 안정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다시 혼란이 일어나니 초한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결국 통일천하라는 흰 바탕을 제대로 꾸며보지도 못하고 망하게 된 진시황, 꾸밈은 다시 다음 세대의 몫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진시황이 열두 살에 왕위에 올라 천하통일을 이룬 공 자체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던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깃든 산의 자리에 이르러 빛을 만나 낱낱이 드러나는 형세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의 실제를 법으로 감추려 한 것은 아닐까. 진시황의 삶에서 비의 시대를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떠올려 본다.

 

댓글 2
  • 2018-10-25 09:01

    “사기로 푸는 주역” 어때요?^^

    쏙쏙 들어오네요...

  • 2018-10-25 09:42

    게으르니는 사기 잘알아서 좋겠다! 

    진시황의 실패가 속도의 문제였을까? 시가 바뀌면 마인드 자체를  바꿨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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