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죽음 2회] 고맙습니다

황재숙
2022-10-06 09:23
487

 

죽음까지 남은 시간,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고맙습니다 (올리버 색스, 알마, 2016)

 

 

 

 

올리버 색스는 1933년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신경과 의사다. 그는 환자를 돌보는 일과 글쓰기를 사랑해 대표작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외에 10여 권의 책을 남겨놓았다. 『고맙습니다』는 2015년 그가 암의 재발을 확인하고 나서 임종을 맞기까지, 그러니까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며 쓴 글들이다.

 

「수은」(죽기 2년 전에 쓴 글)은 암이 재발하기 전에 쓴 글이라 그런지 조금은 여유롭다. 그는 이 글에서 죽음이 아닌 팔십 대의 삶을 그려본다. 이제야 인생이 시작될 것 같은 기분인데 사실은 끝나 가고 있음을 자각하며 삶의 마무리를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직은 막연하기만 하다. 죽음이 아주 멀게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코앞으로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올해 예순다섯 살인 나는 가끔 내 나이를 의식한다. 이제는 어느 모임을 가나 내가 최고 연장자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험 탓인지 내가 죽기까지 남은 날을 헤아려 볼 때도 있다. 여든 살까지 산다면 15년이 남았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이렇게 게으름을 피워서 되나 싶다. 점점 힘도 빠질 텐데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잠시 생각을 모아보지만 언제나 결론에 이르기 전에 다른 생각들이 치고 들어온다. 아마도 그리 절박하지 않은가 보다.

 

「나의 생애」는 올리버가 암이 재발한 걸 확인하고 쓴 글이다.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 나는 가능한 가장 풍요롭고, 깊이 있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이 글은 「수은」보다 표현이 명확하고 더 구체적이다.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남은 6개월을 풍요롭게 살고 떠나갔다. 매일 수영하고, 글을 쓰고, 우정을 다지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영국에 있는 고향 마을에도 다녀왔다. 죽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는 자질구레한 일들과 감정에서 벗어나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초연한 마음으로 삶을 풍경처럼 바라본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감각을 더없이 강렬하게 느낀다고 고백한다.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도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몇 달밖에 안 남았다면 이제 후회할 시간조차 없다. 삶이 간단명료해지는 느낌이다. 죽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덜 중요한 일들은 한순간 사라지고 자신에게 소중한 일들만 남을 것이다. 이 느낌을 잊지 말고 바로 이 순간부터 그렇게 살면 좋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가 매일 아침 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 하려고 하는 일들을 할 것인가?”

 

우리는 누구나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큼인지 모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기 삶이 무한히 펼쳐질 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죽음은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가리지 않고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촛불이 바람에 꺼지듯, 과일이 익어 땅에 떨어지듯, 내가 죽는 것은 분명하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 앞에 놓인 길을 어떻게 걸어갈지 올리버에게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내어주지 말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 단순하게 살아가는 나를 꿈꿔본다. 마지막 순간에 올리버처럼 내가 무엇보다 강하게 느끼는 감정은 고마움이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남들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나도 조금쯤은 돌려주었다.”는 고백을 나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받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고마운 마을을 전하는 연습부터 해봐야겠다. 또 하나, 매일 아침 ‘죽음 명상’ 시간을 마련하여 죽음을 숙고하고, 내 삶의 방향을 또렷하게 하고 싶다.

 

 

댓글 5
  • 2022-10-06 09:53

    "몇 달밖에 안 남았다면 이제 후회할 시간조차 없다."

    "꼭 필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내어주지 말자. 그리고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어 단순하게 살아가는 나를 꿈꿔본다."

    재숙쌤 글이 무척 좋네요.

    확 와 닿아요.

    꼭 필요한 일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며

    단순하게 사는 삶을 꿈꿉니다.

    ㅎㅎ 제가 예전부터 그런 의미로 닉넴을 단순삶이라고 지었는데,

    이제는 먹고 마시고 사는 문제도 적용하며 .절실하지만 심플하게 살아가야겠어요.

    글 잘 읽었어요. 수고하셨습니다 

  • 2022-10-06 10:29

    죽음이 일상에서 배제된 삶이 아닌 삶을 살아간다는 게 어렵게 느껴져요..ㅠ ㅠ. 이번 기회에 많이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단순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0^

  • 2022-10-06 10:33

    매일 수영하고, 글을 쓰고, 우정을 다지고....그렇게 죽음을 맞았으면 하는 바람을 중얼거려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2-10-06 15:06

    죽음명상.. 저도 해보고 싶습니다.

  • 2022-10-06 21:34

    오늘도 일에 치여서 밥를 거를 뻔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였다면 생각하니 '헉' 소리가 나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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