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30.중화리괘-까불지 말고 조심조심

코스모스
2019-03-25 19:05
1597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까불지 말고 조심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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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공부를 하지? 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대답을 해왔던 것 같다. 궁금한 게 많아서, 사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두려움을 앎으로 극복하려고, 세미나를 좋아해서 등등.... 그런데 주역을 공부하면서 그 답을 찾았다. 내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아 적절하게 처신하는 것. 내 생각에는 그 적절함이 주역에서 내내 강조하는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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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리괘는 중수감괘 다음에 위치하는 서른번째 괘이다. 중수감의 감()은 빠짐이다. 험하디 험한 고난의 시절이다. 죽어라~ 죽어라~ 힘든 시절을 견디고 나면 좋은 시절이 오게 마련이다. 쏠림이 없는 조화로운 자연의 이치다. 그리하여 감()괘 다음엔 리()괘로 받았다. 즉 리는 밝음이다. 여기서 리의 밝음()은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는 좋은 때이면서 명석함이 발휘되는 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명석함으로 행하니 밝음이 밝을 수 있는 것이다.


 리는 정함이 이로우니, 형통하니, 암소를 기르듯 하면 길하리라. (離 利貞 亨 慉牝牛 吉)

<단전>에서 말하였다. “리는 붙음이니, 해와 달이 하늘에 붙어 있고 백곡과 초목이 땅에 붙어있으니,(彖曰 離 麗也 日月 麗乎天 百穀草木 麗乎土)

거듭 밝음으로 바름에 붙어서 천하를 교화하여 이룬다.(重明 以麗乎正 乃化成天下)

유가 중정에 붙어 있으므로 형통하니, 이 때문에 암소를 기르듯 하면 길한 것이다.”(柔麗乎中正 故亨 是以慉牝牛吉也)

<상전>에 말하였다. “밝음이 둘인 것이 리가 되니, 대인이 보고서 밝음을 이어 사방을 비춘다.”(象曰 明兩 作離 大人 以 繼明 照于四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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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리괘의 괘상을 보면 아래도 위도 모두 리()괘이다. 하나의 음이 위아래의 양에 붙어 밝게 빛난다. 상하가 모두 이니 거듭 밝다. 해와 달이 하늘에 붙어 있고 백곡과 초목이 땅에 붙어 있다는 것은 만물이 모두 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만물이 제 자리에 위치하고 가 유순함으로 중정에 처해 있으니, 형통하다. 형통하면 되었지 뭐가 더 필요할까 싶다. 어두운 날은 가고 이제 핑크빛만 펼쳐질 것만 같다. 그러나 핑크빛세상의 현란함을 즐기는 것은 주역 world와 거리가 멀다여기서 초구를 보자.


      초구는 발자국이 착연하니, 공경하면 허물이 없다.(初九 履錯然 敬之无咎)

<상전>에 말하였다. “‘리착지경은 허물을 피하려고 해서이다.”(象曰 履錯之敬 以避咎也)

 

 여기서 발자국이 착연하다는 말은 마음이 들떠서 이미 발자국을 막 내었다는 것이다. 고난을 극복하고 밝음을 맞이하였으니 얼마나 설레고 벅차겠는가. 게다가 양(-)의 기운이 아닌가. 막 나아가고 싶다. 그런데 위로 솟으려는 성질을 가졌지만 초구의 위치에 놓여있다. 맨 아래 위치에 있으면서 나아가려니 답답하고 조급하다. 어두운 날은 가고 밝은 날이 왔다 싶었는데 다시봐도 나설 수 없는 맨 아래 자리다. 그래, 초구는 초구일 뿐. 제 분수를 알아 삼가고 조심 또 조심해야 무탈할 것이다. 만약 밝은 분위기에 들떠서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경거망동한다면 핑크빛은 날은 가고 잿빛의 날들이 덮쳐 오리라. 그래서 주역에서는 좋은 때 일수록 자기 위치에서 분수를 지키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자의 자리인 육오는 어떨까? 쫌 안심하고 까불어도 될까


육오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함이니, 길하리라.(出涕沱若 戚嗟若 吉)

<상전>에 말하였다. “육오의 길함은 왕공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象曰 六五之吉 離王公也)

 

 밝은 때에 존위의 자리에 있는데 왜 눈물을 흘리지? 육오의 자리에서 위아래를 살펴보자. 모두 양이다. 돕는 자는 없이 홀로 양들 사이에 위치해서 핍박받으니 위태로운 자리다. 육오가 두려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그러나 사실 좋은 때 좋은 자리에 놓여 있다면 두려움을 느끼기 보다는 제 잘났다고 설쳐대기가 쉽다. 그러나 리괘의 육오는 명석하다. 두려움을 알아 고심하고 또 그 마음이 깊어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니 길()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밝음이 밝을 수 있는 것은 좋은 자리에 있으면서 늘 사리를 밝게 살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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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주역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주역점을 익히느라 열심들이다. 주역점이 정확하게 삶의 모든 순간 어느 괘, 어느 효의 어디엔가 처해 있을 나의 위치를 찾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절한 행동지침까지 내놓는다면 정말 짱일 것이다. 그러나 주역world는 정답은 가르쳐 주지 않으면서 어려운 말들만 늘어놓는 얄미운 world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주역을 공부하는 이유는 주역을 관통하는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을 행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주역의 가르침대로 어두운 시기라 절망하지도 말고 잘나간다고 까불지도 말고 조심조심 행하며 공부한다면 언젠가는 利貞亨을 몸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댓글 1
  • 2019-03-28 23:23

    64괘를 다시 외우면서 보니 貞자가 제일 어렵더구만요. 정이천도 貞자 용례가 여러가지라 했던 것 같아요.

    정하다(확정적)/정하면(조건)도 있고, 고집하다/바르게하다의 구별도 있었지요?

    밝은 자리, 밝은 시기에도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자, 사실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반발심도 있어요 ㅋㅋ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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