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39.수산건괘-멈추면 지혜롭지만

진달래
2019-05-27 23:50
625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멈추면 지혜롭지만



수산건괘의 건()은 어려움()을 뜻하는 괘로 산 위에 물이 있는 형세로 어려움에 나아가기 힘든 모습을 보여준다. 건의 뜻도 원래 발을 절다라는 뜻으로 절름발이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 괘의 내용은 괘사와 효사 모두 가는 것()’에 포인트를 둔다. 특히 초효부터 상효까지 네 글자로 맞춘 효사를 보면 주역을 만든 사람들이 이 괘에 공을 많이 들인 것을 볼 수 있다.


수산건7.png
 



초육 왕건래예 (往蹇來譽 / 가면 어렵고 오면 명예가 있으리라)

육이 왕신건건 (王臣蹇蹇 / 왕의 신하가 어려움에 어렵게 하니)

구삼 왕건래반 (往蹇來反 / 가면 어렵고 오면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육사 왕건래연 (往蹇來連 / 가면 어렵고 오면 연합하리라)

구오 대건붕래 (大蹇朋來 / 크게 어려움에 벗이 오도다)

상육 왕건래석 (往蹇來碩 / 가면 어렵고 오면 여유로워 길하리라)

 

그러나 이 중에 눈길을 끈 것은 괘사의 "은 서남은 이롭고 동북은 이롭지 않으며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우니 정하면 길하리라.(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貞 吉)"이다. 주역에는 어려움을 나타내는 괘가 건괘 외에도 둔(), ()이 있으나 서로 어려움의 뜻이 다르다고 했다. 둔의 경우는 처음에 어려워서 통하지 못하는 것이고, 곤은 힘을 다해서 어려운 것이다. 그에 반해 건은 험하고 막힌 형세로 인해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가기 어렵다고 하고, 서남은 가기 어려운 괘이지만 이롭다고 하고, 동북은 이롭지 않다고 하며, 대인을 만나면 이롭고, 바르면 길하다고 했다. 가면 안 되는 형세지만 갈 수 밖에 없거나, 그래도 가야하는 형국인 듯하다. 게다가 그 방향에 따라 어려움에 처하는 정도가 달라진다.


 



주역의 풀이는 대체로 음양오행을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서 "서남은 이롭고 동북은 이롭지 않다."는 것은 서남의 방향이 곤()의 방향으로 그 성질이 순()하여 평이하기 때문에 이롭고, 동북은 간방(艮方)으로 산을 의미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갈 수 없음에 불리하다고 본다.서쪽과 남쪽이 곤(), 즉 음()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순()하다고 보고, 평이하여 가기에 이롭다고 보고, 동쪽과 북쪽은 양()의 방향으로 그 성질이 강()하면 가기에 불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동북은 간방이라고 하여 가기에 어렵다고 했다그런데 이렇게 읽다보니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실제 중국의 지형은 서남으로 가면 살기가 더 어렵고, 오히려 동북지역이 평야지역으로 살기가 더 좋지 않나? ()나라 때 쓰인 회남자에도 동쪽으로 하천과 계곡이 흐르고 해와 달이 나오며, 서쪽은 높고 하천과 계곡이 나오며 해와 달이 들어간다.(東方川谷之所注 日月之所出 西方高上 川谷出焉 日月入焉)”고 했다. 그에 따르자면 서남 방향이 오히려 어렵고 이롭지 않으며, 동북으로 가는 것이 이로운 것이 아닐까? 음양오행을 근거로 쓰였다고 하지만 앞서 본 괘사의 대부분은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기반으로 쓰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 있는 중국 전체 지형을 근거로 삼는다면 이렇게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형도.jpg


 

그런데 고대인들은 무엇을 보고 동서남북을 구분할 수 있었을까? 허진웅의 중국고대사회를 보면 방향에 대한 것은 음식물을 찾기 위한 고대인들의 기본적인 감각이며, 선사시대 이전부터 이미 방향에 대한 일정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들은 먼저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으로 동, 서 방향을 정하고 후에 남과 북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서남북을 나타내는 갑골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에 대한 것과 관계없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은 양끝을 꽉 묶어 놓은 자루의 형상이며, ()은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방울 모양, (西)는 바구니 종류로 짜서 만든 물건의 모양이며, ()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진 모양이다.(은 후에 나무에 해가 걸린 모양을 형상화 한 것으로 풀이하는데 그 이전에 사용된 갑골문의 모양은 꽉 묶은 자루 모양이라고 한다. 중국고대사회p593) 이런 것들이 왜 방향을 나타내는 글자가 되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허진웅은 아마도 이를 사용했던 사람들의 지역 특색을 활용해서 문자화 된 것으로 본다. 즉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방울은 은나라 남쪽 지역에서 주로 쓰인 악기였거나, 연주 할 때 주로 남쪽에 진열해 놓은 것을 그려 놓은 것이 나중에 남쪽을 뜻하는 글자가 된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이렇게 갑골문이 당대 시대의 실제 사물 등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본다면 주역에서 말하는 서남은 이롭고, 동북은 이롭지 않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여기서 이야기하는 서남은 어디이고 동북은 과연 어디일지 한 번 상상해 볼만 하지 않을까? 일단 괘사를 주()나라 문왕(文王)이 지었다고 보면 당시 주나라의 상황을 토대로 해서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나라를 세운 주족은 원래 유목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고공단보(古公亶父/문왕의 할아버지) 때 기산의 남쪽에 터를 잡고 토착 농경민인 강족의 보호자가 되어 농경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중국의 역사, 선진시대p175 - 이 내용은 사기에도 대충 나와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가이즈카는 갑골문을 토대로 원래 주족은 오히려 서쪽에서 왔다기보다 고공단보 때 서쪽으로 이주했다고 보았다. 원래 은나라의 영향력 안에 있던 주족은 농경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훈육(귀방)이라는 산악민의 압박을 받고 서쪽으로 이주했고, 훈육은 이후에도 기산에 자리 잡은 주의 북쪽에 있으면서 동쪽으로부터 서쪽까지 에워싸는 모양으로 주와 대립했다는 것이다. 이는 주나라 건국 후에 주가 귀방을 정벌했다는 이야기가 소우정이라는 청동기 명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토대로 알 수 있다.


주문왕.jpg

 

기산의 남쪽은 비옥한 평야지역이었고, 고공단보는 이를 통해 주의 기초를 다졌다. 세력을 키워가던 주는 문왕 시기에 은과 대립하게 되고 - 이는 문왕이 잡혀서 유리에 갇히게 되는 사건 등으로 알 수 있다. - 무왕(武王) 때 이르러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건국한다. 흔히 주역의 괘사를 문왕이 유리에 갇혀 있을 때 지은 것이라고 보는데 그렇다면 문왕이 보기에 은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떠나야 하는 동쪽으로의 길은 아마도 매우 험난했을 것이다. 게다가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때를 기다려야만 하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때이지만 결국 가야 하는 형세를 가늠한 문왕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나. 기산의 남쪽, 즉 서남쪽의 평야를 토대로 주나라의 토대를 닦고, 동북쪽의 귀방과 은나라와 대립해야 했던 주나라 초기의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일들을 토대로 서남은 이롭고, 동북은 이롭지 않다.”는 괘사를 만들었을 것이다.대인을 만나면 이로우니 정하면 길하다.”는 다음의 괘사도 은나라를 정벌하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강태공의 만남과 연결해서 볼 수 있다. 은나라가 이미 기운이 다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주나라 혼자 대적하기는 어려웠고, 강족이 여기에 연합세력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주나라의 은나라 정벌은 가능해진다. 강족은 주의 시조인 후직의 어머니와 무왕의 왕비 읍강 등이 이 부족의 출신이라고 하여 이전부터 주나라와 통혼으로 이루어진 연합세력이었다. 이들은 항상 은나라의 공격을 받았고, 붙잡힌 강족 사람들은 대부분 제사를 지낼 때 희생으로 참수되었다. 그러나 큰일은 은원(恩怨)으로 할 수 없다. 이들은 무도(無道)한 주왕의 폭정에서 백성을 구한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은나라와 싸움을 벌였다.


 



얼핏 보면 건괘는 앞이 험난하고 막혀 있으니 가지 말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 보면 유리에 갇혀 있던 문왕이 꽉 막혀 있는 시기인 듯 보이는 때에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함을,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살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나에게 주역은 여전히 거의 암호문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왜 이런 표현이 등장하는지, 갑자기 등장하는 풀이름과, 각종 동물이 이름들 등 무슨 연관으로 등장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역이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이런 때인 것 같다. 갑자기 나에게도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주역읽기 중에서도 그저 절뚝거리며 가야 하는 건()의 기운이 느껴진다.     

댓글 2
  • 2019-05-29 00:08

    서남과 동북의 利, 不利를 順과 剛의 성질로 이해하기 보다 주나라의 상황과 연결하여 보니 훨씬 재미있네요.

    탕누어가 극찬한 '중국고대사회'를 꼭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요즘  서경을 공부하는데 고대사회의 제도들이 정비되는 과정이 꽤나 흥미롭고 재밌더라구요.

    예전에 재미없어서 덮었던 책을 다시 읽어볼때인가 봅니다^^

  • 2019-05-30 19:57

    진달래쌤과 중국고대사회 공부해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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