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동아리 16차]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우연
2020-06-29 21:44
293

장마철이라는 오늘은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이 해를 가려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날씨였다. 산행하기 좋은 날이다. 6월의 게스트로 유가 온다고 한 날이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82년생 김지영이 아니고 유. 육아에 지쳐 기린의 제안에 아무 생각없이 덥석 허락하고 오늘 산행에 합류했다고 한다. 식당에서 낙지전골을 먹고 헤어진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근 일년 반 쯤 됐나? 나도 이제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식당과 음식으로 기억하는구나. ㅎㅎ. 반가왔다. 육아에 얼마나 바깥세상이 그리울까? 그녀의 말대로 아기가 예쁜 건 예쁜거고 몸이 힘든 건 힘든거라는 당연한 사실이 까마득이 먼 옛날, 내 육아의 기억을 소환한다. 그 땐 정말 뭘 몰랐으니 키웠지. 세 아이의 엄마인 유가 대단해 보였다. 기린도 유가 동행함이 엄청 즐거워보였다. 같이 세미나 하던 그 때를 폭풍수다로 즐겁게 회상했다. 중간에 문탁샘을 만나 격한^^ 환영인사를 하고 발걸음도 가벼웁게 출발! 유와 바람은 얼굴만 몇 번 스친 초면이란다. 처음인 유가 혹 어색할까 올라가면서 계속 얘기를 했다. 이러저러한 사는 얘기, 애들 얘기, 함께 세미나 했던 시절, 육아의 고단함 등등. 네,네, 대답만 하던 유가 '우연샘, 원래 그리 말이 많았어요?' 한다. 흑, 너무 떠들었나? 산새도 종종 말없이 걷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내가 좀 수다스럽나? 말이 많은 사람이라기보다 오랫만에 유를 봐서 반가왔던 걸로^^(오르막을 오르며 말하기는 쉽지 않은 기술이다. ㅋㅋ)

 

 

 

 

 

 

 

광교산 곳곳은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등산로에 야자매트를 깔고 경사로에는 계단을 설치하고 데크를 만드느라 좀 어수선하다. 멀쩡한 길을 왜 다시 손 보고 있는건지. 중간에 화장실이나 하나 만들어줬음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good idea.

 

여름의 숲은 싱그럽다. 더운 열기와 습한 기운으로 땀이 비오듯 흐르지만 여름 산만이 가지는 활기참이 있다. 이 충만한 생명의 기운을 난 사랑한다. 짙은 녹음이 뿜어내는 산길을 걷고 있으면 자잘한 세속의 잔걱정들이 사라진다. 이 단순함 속에서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낀다. 

 

8시 반에 시작한 걷기는 10시 반 쯤 바람의 언덕에서 휴식을 갖는다. 싸온 간식 다 꺼내먹고 물도 마시고 서늘한 숲의 공기도 만끽하고. 이제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가면 된다. 주변에 좋은 친구들을 만드는 것만큼 즐겁게 사는 길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세기며 우리는 유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하 호호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우리는 같이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문탁샘은 good girl이 대박이라는 얘기를 오늘도 했고(ㅋㅋ) 유는 육아에서 오는 우울감이 있음을 토로했고 바람샘은 송창식과 서유석 같이 독창적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좋다는 얘기도 했다. 공부방이나 세미나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숱한 수다가 우리 사이를 가볍게 떠다녔다. 부드러운 아침 나절이 지나간다. 

 

멤버 둘과 헤어져 출발 장소로 내려온 우리 셋은 유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기린의 제안에 오늘도 어김없이 냉면을 먹으러 갔다. 도연명의 음주 예찬에 꽂혀 기린과 낮술을 작정하고 막걸리도 한 잔. 

내가 도연명, 도연명 노래를 부르며 술을 한 잔 한다고 하니 유가 연탄재 시인이라며 한 마디 했다. 그 말에 기린이 빵 터졌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넌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이였던 적이 있었는가  뭐, 대충 이런 시였던 것 같은데. 이 대목에서 깔깔깔깔, 호호호호, 크크크크....... 세대차와 문탁에서의 짠밥차를 얘기하며 82년생 유와 기린이 사 주는 즐거운 점심시간을 가졌다. 유가 태어난 82년에 난 고등학생이었다. ㅎㅎㅎ

유를 보내고 기린과 또다른 즐거움을 도모하며 버스타고 집에 왔다. 막걸리 반 잔에 얼굴이 그리 벌개지면서 무슨 도연명의 음주를 논하냐는 기린의 놀림을 들으며.

댓글 4
  • 2020-06-29 22:12

    캬하하...
    조만간 술에 취해 기분좋은 우연샘을 볼수 있으려나요? ㅎㅎ
    오늘 우연샘을 비롯 모든 멤버들이 젊은 유를 맞이하여 모두 하하호호 즐거움을 발산하셨음을 증언합니다!
    오늘 특히 활기넘친 산행...약간 어색한 저는 가끔 조용히 그러나 즐거이 산행을 즐겼답니다^^
    유가 전해준 젊음에 감사하며~♡

  • 2020-06-29 22:13

    도연명을 안도현으로... ㅋㅋㅋㅋㅋㅋ
    여름산이 주는 녹녹緑緑함과 샘들과의 즐거운 이야기들 덕분에 세상과 단절된 무릉도원에다녀온느낌이에여 ㅎㅎㅎ
    다시 현실로 돌아왔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______^*

  • 2020-06-30 07:46

    유가 와서 넘넘 반갑고 좋았시유.
    하산 후 바로 다른 일정이 있어서 유, 점심도 못 사줘 찝찝했었는디
    결국 기린과 우연님이 낮술과 도연명까지 곁들여서 환영을 이어가셨군요.

    담주는 자룡 보려나? 보구시퍼...ㅋㅋㅋ

  • 2020-06-30 08:30

    ㅋㅋㅋㅋ '도'자 하나로 연결된 도연명과 안도현이라.... 안도현 시인이 들으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ㅋㅋㅋ
    유~~~~~ 다음에 또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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