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 노래로 盈科而後進 4회

기린
2020-06-15 22:56
266
  1. 노래의 힘

 

 얼마 전 일요일 저녁에 뒹굴거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문탁에서 함께 세미나를 하고 있는 그녀였다.

“혹시 <안녕, 미누> 봤어요? 안 봤으면 같이 보러 갑시다.”

 오리 씨지브이에서 하는 상영 기간이 거의 끝나간다고 했다. 상영시간표를 몇 번 확인했으나 여러 일정이 겹쳐서 못가고 있던 참이었다. 회원 톡을 통해 올라오는 후기들을 보면서 궁금하기도 했다. 어슬렁 어슬렁 극장까지 걸어가서 그녀와 함께 영화를 봤다. 막상 그 넓은 영화관에 네 명이 앉아있으니 코로나 영향이 새삼 실감이 났다.

 미누는 네팔에서 20대에 한국으로 돈을 벌어 온 이주 노동자였다. 그는 이주노동자 밴드 ‘스톱크랙다운’을 결성하여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해 노래했다. 한국살이 18년째 되던 2009년에 불법체류의 죄목으로 한국에서 추방되고 말았다. 2016년 지혜원 감독이 미누를 만나 영화출연 제안을 했을 때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하면서 한 마디만 했다고 한다. “나를 불쌍하게 그리지 마세요.” 영화는 네팔에서 생활하는 미누의 모습과 한국에서 활동하던 때의 이야기를 교차편집하면서 진행되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미누가 20대 때 식당에서 일하면서 아주머니한테 배웠다는 ‘목포의 눈물’을 불렀다. 한국에서 밴드 활동을 하던 자료 화면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 노래하는 미누는 호소력 있는 보컬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네팔의 어느 강에서 미누가 다시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것으로 끝이 났다. 자신을 강제로 쫓아낸 한국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라니. 세상이 아무리 핍박해도 쫄지 않고 당당하게 노래했던 시절을 담담히 흘려보내는 그 힘이 스크린을 꽉 채웠다.

 영화를 보고 나온 그녀는 미누의 삶에 감응되어 눈물을 흘렸다.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양생이 별건가 노래 부르기 잘 되고 있어요? 영화 보고 나니까 나도 ‘목포의 눈물’ 한 번 부르고 싶어지네요.”

 처음에 노래 부르기 프로젝트 시작할 때 같이 하자고 몇 번이나 꼬드겨도 안 넘어오던 그녀였다. 사연이 생기니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나보다. 이것도 노래의 힘인가.

 

 

   2. 즐길 줄도 모르면서

 

 양생이 별건가 3회 글을 읽은 봉옥샘이 이렇게 말했다.

“노래 한 곡 부르는데 뭐가 그리 심각해? 그냥 즐겁게 부르면 안돼?”

 백일은 지나봐야 뭐라도 습득이 된다며 성마른 나를 진정시켰던 봉옥샘이 결국은 한 마디 하셨다. 집중이 안 된다, 음이 이탈한다, 부담 된다 등등으로 점철된 나의 고민을 읽으며 어지간히 답답하셨나보다. 즐길 줄 모른다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내가 계속 미션을 받은 도전자처럼 몸에 힘이 들어가 있어서 같이 노래 부르는 샘까지 부담을 준 건지도 모르겠다.

 봉옥샘은 지난번부터도 한 곡만 부르지 말고 듀엣을 부르자 다른 노래로 넘어가자며 이런 저런 노래를 찾아 오셨다. 나는 건성건성 대답은 했지만 속마음은 다른 노래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한 곡이라도 제대로 불러봤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봉옥샘은 다른 노래를 찾아서 흥이 돋는 대로 불러서 연습파일에 올렸다. 어느 날은 조영남의 노래를 세 곡이나 따라 불러서 모두 올렸다. 만나서 연습을 할 때도 가곡을 부르기도 하면서.

 그 사이 우리는 트레이너님과 두 번 만나서 노래 연습을 했다. 트레이너님이 가지고 온 기타 반주에 맞춰 음을 맞추는데 우리가 음을 제대로 못 잡으니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니, 두 분 음치였어요? 음을 못 잡는데요?”

 봉옥샘도 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반주로 부르다가 기타 반주에 음을 맞추자니 어색해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반주를 찾고 악보를 보면서 불러보았다. 두 번 째 만났을 때는 반주에 맞춰 부르니 예전보다 낫다고는 했다. 이 정도 수준에서 부르는 노래를 녹음파일로 만들고 다음 노래로 넘어가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다음에 만나 녹음을 하자는 약속은 했는데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노래 가사를 다 알고 리듬까지 익숙해져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그게 즐기는 건 아닌가 보다. 봉옥샘처럼 이 노래 저 노래 골라가며 흥취를 느끼지도 않는다. 즐길 줄도 모르면서 매일 부르기는 까먹지도 않는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ㅋㅋ

 

 

 3. 언제까지 들어야 해?

 

 트레이너님과 두 번째로 연습하던 날은 그래도 노래에 진전이 있다는 평을 들었다. 그래서 인문약방 회의에서 양생이 별건가 진척 상황을 논의하던 중에 녹음 파일을 틀었다. 4분이 안 되는 노래 반도 안 지났을 때다.

“중얼중얼 강약이 없는 건 여전한데?”
“이걸 언제까지 들어야 하니?”

 아.... 그렇군요. 우리의 노래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노래의 힘에 이끌려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이도 끌어 들이고, 노래 부르는 흥취에 맘껏 취하고 싶은 봉옥샘의 취향도 존중하고, 우리의 트레이너님 의욕도 만족시키면서, 나도 즐거운 노래 부르기^^; 7월에는 <양생이 별건가>의 경험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도 마련하기로 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할 때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채워진 이후에야 나아간다는 물의 이치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제 와보니 내가 과연 무엇을 채우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노래 한 곡 운치 있게 부르게 되기? 같이 참여하게 된 이들과 함께 만드는 즐거운 시간? 아무튼, 노래는 계속 부르고 있으니 뭔가는 채워질 것이다. 어디로 흘러갈지는 하나님도 모를걸?

 

댓글 3
  • 2020-06-15 23:11

    채우는 건 빼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음악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나는 박진영이 생각난다. 말하듯이 노래해 봐~ 노래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게 공기 반 소리 반일 수도....암튼 뭔가 채우려는 마음을 비우고 즐겨 보심이^^

    • 2020-06-16 07:19

      내가 녹음 한번 하고 들려주고 싶더라...ㅋㅋㅋ.... (난 고음불가 음치임....초등2학년 때 성적표에 이렇게 쓰여있었음. "글씨를 못 쓰고 음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양생팀...기린 응원차 모두 민물장어... 녹음 한번 해보실라유?

  • 2020-06-22 14:04

    암튼 응원하구요.. 민물장어의 꿈을 나도 듣고 불러보고 샘이랑 같이 불러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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