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야식 안 먹기 혹은 잘 먹기 3회

새털
2020-05-03 21:08
237

숫자의 강박

 

 

  잃어버린 루틴을 찾아서

  이영광 시인은 하루 3시간 읽고, 3시간 쓰고, 3시간 마시는 일상을 20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의 시가 왜 좋은지 납득이 갈 만한 루틴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다른 루틴을 추구한다. 2일 학교일하고, 2일 문탁일하고, 2일 공부하고, 1일 쉬는 루틴이다. 나처럼 정규직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은 일주일의 루틴을 스스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내내 노는 느낌 또는 내내 일하는 느낌을 갖기 쉽다. 지난 겨울방학이 끝날 때 약간 불안한 조짐이 보였는데, 개학을 하면....다시 시간표대로 움직이면....삑사리나는 기분이 줄어들 줄 알았다. 그런데 3월에 이어 4월까지 코로나비상은 이어지고 있고, 이런 스케줄이 1학기 내내 갈 수도 있다고 하니, 강의계획서도 수정해야 할 것 같고, 온라인강의와 메일로만 알고 지내는 학생들과의 관계도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다 미루고 싶은 일들이다.

 

 

 

 

그래서라서 말하면 안 되겠지만, 4월에는 3월보다 2번이나 더 술을 마셔 총 7번 술을 마셨다. 변칙적인 술자리가 늘어서인지 사진도 다 못찍었다. 첫번째 사진은 우리집 음주 꿈나무 큰딸이 와인을 사들고 온 날, 순두부에 와인을 마셨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음주생활에 음주 꿈나무가 어떤 활약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딸과 마시는 술자리는 아직은 대체로 좋다. 두번째 사진은 시간에 쫓겨 밀려있던 일들을 해치우느라, 마음에 들지 않게 해치운 날 밤에, 홧김에 마신 모듬전과 막걸리다. 일을 이렇게 해치우면 안 된다는 자괴감이 들어 열을 좀 식힐 필요가 있었다. 4월엔 이렇게 홧김에 마신 술이 좀 많다. 이 밖에도 기린과 달팽이와 요요샘과 파지스쿨방에서 와인에 과자를 마셨던 날이 있었고, 행복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으며 막걸리 한 잔 반주 마신 날도 있고, 인문약방팀이 선물세트 포장박스 알아본다고 방산시장으로 출장갔던 날에도 뽈다구찜과 산사춘을 마셨다.

 

 

  숫자의 눈속임, 7번 음주와 5번 산책

 

 

 

  계속 이렇게 허덕거리면 안 될 것 같아서 4월에는 산책을 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산책을 가는 날에는 아침에 공원을 두 바퀴 돌고, 집에 와서 씻고, 학교에 가거나 집안 일을  했다. 그렇지 않은 날은 문탁에 갔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스케줄로 산책하기가 힘들어졌다. 집에서 일하다 보니, 낮이고 밤이고 일을 붙들고 있게 되고, 집안 일을 하다 다른 일을 하려니 집도 어수선해졌다. 그래서 일과 휴식을 분리할 수 있게 되도록 문탁에서 일을 하려 한다. 덕분에 문탁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널찍한 문탁 공부방을 내 전용 연구실인 양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문탁 가는 길에 공원에 들려 한 바퀴 걷는다. 그리고 2일은 '야간자율학습'하는 고등학생처럼 10시쯤 해서 느지막히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꿈꾸는 삶이 '야자'모델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별일없이, 아침에 문탁 가서 두 끼 밥 먹고 간간이 낮잠도 자고 10시쯤 불을 끄고 나오는 일상! 좋은 스케줄이다^^

  4월에 7번 술을 마시고 5번 산책을 했다. 6번쯤 술을 마셨을 때 이제 그만 마셔야 할까....마음속으로 슬슬 브레이크가 걸렸다. 3월에 마신 횟수보다는 4월에 줄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음주횟수만큼 산책횟수를 맞추려 하는 심리도 발동했다. 이건 도대체 뭔 심리인가? 술을 마신 죄의식을 산책으로 벌충하겠다는 속셈이리라. 그런데 그런 숫자를 세고 있는 내 모습이 참 보기 싫어졌다. 숫자는 명료하다. 그래서 그 숫자만 보인다. 만약 6번 음주 6번 산책이었으면, 뭔가 좀 균형 잡힌 느낌이 들었을까? 사실 음주와 산책은 별개의 활동이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이다. 그런데 숫자만 보고 있으면 이 둘이 상관관계가 있어보이고, 음주보다는 산책의 횟수가 많은 게 더 '건강한' 생활처럼 보이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4월동안 나는 그런 계산의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숫자를 세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고, 이 둘을 다른 숫자로 생각해보려 한다. 4월엔 7회의 음주, 5회의 산책이었지만, 5월에는 어떤 숫자들의 조합이 만들어질지 기대해본다.

 

 

  4월의 베스트컷

 

 

  이 사진을 찍었던 날은 너무 배가 고파서 너무 빨리 먹어치웠다. 사진에서도 그런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 날은 인문약방팀이 '공신단'을 만든 날이다. 오전에 양생세미나를 하고 오후에 슬슬 끝내려 했는데, 생각보다 노동강도가 높았다. 심지어 봉옥, 코스모스, 작은물방울, 세 사람이 일손을 도와줬는데도 저녁까지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 엄청 오래 일하며 엄청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밥도 싹싹 비우고, 맥주와 소주도 기분 좋게 마셨다. 함께 일한 사람들과 마시는 술은 참 달다는 것을 증명해준 '정석의 술자리'였다. 

 

 

 

  이 사진을 찍었던 날도 첫번째 사진을 찍었던 날처럼 중국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밥값은 오랜만에 오신 무담샘이 내셨다.  그리고 무담샘만큼 오랜만에 문탁에 오신 담쟁이샘도 이날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문탁의 몇 안 되는 주당인 담쟁이샘과 마시는 술은 내가 늘 반기는 술자리인데, 이 날은 그렇지 못했다. 요사이 마음 복잡한 일들이 일었고, 복잡한 속내의 담쟁이샘을 비롯해서 함께 앉은 사람들 모두 편치 않은 술자리였다. 그래서 이 날 우리는 어색한 인삿말을 나누고 겉도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술을 마시며 내내 생각했다. 이런 술자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 생각은 술자리가 끝난 다음에도 이어졌다. 좋은 술자리는 무엇인가? 모두가 기쁘게 마실 수 있는 술자리겠지만, 술은 그럴 때만 마시는 게 아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머릿속이 복잡할 때 더 자주 마신다. 그래서 기분을 리플레쉬하면 좋겠지만, 석연치 않는 앙금이 남는 술자리가 더 많다. 이렇게 심풀하게 정리된다면 인생이 뭐가 어렵겠는가? 무담님과 담쟁이샘과의 어색했던 술자리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날의 술자리는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서 우리는 그 다음을 조금 수월하게 맞게 되지 않을까? 그런 불편한 술자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럼 도대체 나쁜 술자리는 무엇인가? 나에게 묻고 싶을 것이다. 그건 후회되는 술자리이다. 아! 내가 왜 그랬지?....이런 자책과 후회를 가져오는 술자리는 나쁘다. 물론 이것도 사전에 피할 수는 없고, 지나간 다음에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쁜 술자리를 피할 전략 같은 건 없는가? 이런 건 다음 회에 계속....

 

 

 

 

 

 

 

댓글 2
  • 2020-05-04 07:15

    <양생이 별건가>는 인문약방팀의 공동프로젝트이다.
    이것은 지금-여기서 우리가 '양생'을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이며(개념)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기술)를 실천적으로 탐구해보자는 과제였다.
    그러니까 그것은 '자기계발'과도 달라야 하고, '목적합리성'과도 달라야 하고(물론 각자 과제를 정하긴 했다), 단순하고 소소한 일상적 일기와도 달라야 했다.
    무엇인가를 하면서 그 무엇인가가 무엇인지를 메타적으로 인식하는 일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었다.

    인문약방 '새기둥'이 두번씩 글을 썼고 이제 새털부터 다시 세번째 글을 연재한다.
    나는 우리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것이지를 놓치면 안된다고 '새기둥'한테 강조하긴 하는데
    음...나부터 자꾸 까먹는다. ㅋㅋㅋ

    하여 오늘도 이 글을 읽으면서
    "엇, 나도 요즘 밤마다 에일맥주 마시는데, 그래서 몸무게가 지난 10년 이래 최고점을 찍고 있는데, 나도 맥주 마시는 숫자 기록해야 하는게 아닐까?"라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했다는!!! ㅋㅋㅋ

    이 프로젝트에 대해 나라도 정신줄을 잡고 있어야 해!! ㅎㅎㅎ

    • 2020-05-04 19:15

      새기둥
      우리는 뭔가 이루려고 이러는 걸까요?
      걍 재미있는 순간순간을 살아요
      정신줄을 놓고
      걍 필~~ 이 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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