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노래로 盈科而後進 2회

기린
2020-04-21 03:08
216
  1. 100일은 넘어야지

 

<양생이 별건가>의 프로젝트로 노래 한 곡 제대로 부르기를 결정한 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물색하던 와중에 파지사유에서 화요일 매니저를 하고 있던 봉옥샘을 만났다.

“샘, 제가 양생 프로젝트로 노래 부르기를 하려고요. 샘도 같이 하실래요?”

“노래 부르는 게 뭔 양생이야?”

노래 한 곡을 제대로 부르기 위해 온 몸의 감각을 동원하는 능력을 연마하다보면 저절로 양생이 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긴가민가하면서 듣더니 밑져야 본전이지뭐 라는 표정으로 같이 해보자고 했다. 오래 전부터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연이어 몇 사람에게 제안했지만 성과가 없어서 봉옥샘과 단출하게 팀을 꾸렸다.

우리는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이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단톡방에 올리기로 했다. 맨 처음 부른 노래를 녹음해서 듣는데 음정은 안 맞고 리듬도 못 따라가서 엉망진창이었다. 웃음이 저절로 터졌다. 봉옥샘은 탐 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부르기로 하고 연습한 녹음 파일을 올렸다. 하루하루 쌓여가니 하나의 절차가 만들어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집안에 와이파이를 켜고 유튜브로 노래를 검색해서 따라 부를 준비를 한다. 휴대폰을 켜서 녹음버튼을 누르고 노래를 부른다. 녹음이 끝나고 재생해서 들어보면 전날 부른 것과 똑같다고 느껴지는가 하면 미세하게 변하는 날도 있다. 톡방에 올라온 봉옥샘의 연습 파일을 재생해서 듣고 피드백을 하고 끝나기까지 대략 1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이런 절차를 반복하다보니 차이를 발생시키기 위해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애쓰게 되었다. 어제는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데 오늘은 성량을 줄이면서 힘을 빼본다든지 하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봉옥샘과 함께 근처 공원에 가서 라이브로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4월 14일에 연습 끝에 내가 하소연을 했다.

“샘, 이제는 가사도 다 외웠고 리듬도 다 익혔는데 노래는 여전히 잘 안돼요. 왜 그럴까요?”

“이제 꼴란 한 달 연습했는데 잘 될 리가 있나. 100일은 채워야지. 그래야 노래가 몸에 새겨지지. 그럼 노래 듣고 문제점을 지적해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걸.”

노래 부르는 게 뭔 양생이냐 반문하던 봉옥샘 맞나 싶게 어조가 진지했다. 100일을 채우게 되면 저절로 노래를 잘 부르게 될까?

 

 

2. 규범화와 양식화 사이

 

 푸코는 『성의 역사 2』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이 성적 절제를 통해 자유를 행사하기 위해 자기 지배를 형태화하는 훈련 방법을 밝히고 있다. 이 때 ‘자기 지배’는 자신의 행위를 규범화하거나 해석하는 쪽이 아니라 “태도의 양식화(樣式化)와 존재의 미학”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태도를 양식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규범화는 무엇이고 양식화는 또 무엇일까?

한 곡의 노래를 한 달 동안 부르다보면 반복에서 오는 익숙함이 몸에 스민다. 굳이 전념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부르고 끝나기도 한다. 매일 부르기로 한 약속도 지켰으니 홀가분한 기분도 든다. 수월함과 홀가분함에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만족하는데 머무르게 되면 100일의 시간을 채우더라도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저 매일 노래를 부르기로 한 약속을 충실하게 지켰다는 사실만 앙상하게 남는다. 이런 방식이 자신의 행위를 규범화하는 것이다.

최근 항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트롯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부른 노래는 대부분 이미 발표된 노래였다. 송가인이 부른 ‘한 많은 대동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판소리를 가미한 창법에 오랜 무명을 거치면서 버틴 힘이 뿜어내는 그만의 ‘한’의 정서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타고난 재능이라도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훈련의 결과였다. 현재 ‘송가인이어라’ 라는 한 마디로도 관중을 열광시키면서 존재의 아름다움까지 한창 밝히고 있으니, 한 곡의 노래에서 비롯된 양식화일 것이다.

이렇게 규범화와 양식화를 살펴보니 우리의 노래 프로젝트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노래 한 곡 잘 부르고 싶다는 의욕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양한 훈련을 시도하고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년 연말의 부끄러움을 또다시 맛볼지도 모른다. 그저 도전에 의의를 둔다며 미적댈수록 주어진 규범에 휘둘리는 결과로 남을 것이다. 나만의 스타일로 불러내는 노래 한 곡이 되었을 때 저 부끄러움의 구덩이에서 차올라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3. 우리의 ‘청중단’을 찾아서

 

우리에게 송가인의 팬은 없지만 공동체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들은 있다. 우리는 그들을 청중단으로 삼기로 했다. 첫 번째 청중은 우리가 트레이너로 삼은 뿔옹이다. 뿔옹은 우리가 매일 연습하고 파일을 올리는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 연습 시간이 쌓이면서 달라지는 변화를 체크해주며 보충할 훈련을 지시해 주었다. 가사를 다 익히고 리듬까지는 섭렵했지만 노래에 정서가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가사를 낭송하면서 그 정서를 풍부하게 채우세요.” 우리는 요즘 노래는 잠시 중단하고 가사를 암송해서 올리고 있다.

우리가 공원으로 노래를 부르러 가는 것을 알게 된 달팽이는 그간 실력이 좀 늘었나 체크하겠다고 공원까지 따라왔다. 우리가 부끄러워 할까봐 저만치서 듣고는 칭찬 일색의 피드백 끝에 슬며시 고음을 처리하는 연습이 부족하다는 평도 곁들였다.

이번 주 등산길에 문탁샘은 연습 삼아 친구들 앞에서 불러보라고 했다. 예정에 없던 권유에 좀 당황하긴 했으나 또 다른 청중단이라 여기고 목청껏 불렀다. 생목을 따는 수준이라 노래 끝에 바로 목이 잠겼다. 문탁샘은 교과서 읽는 듯 부른다는 피드백을, 우연님은 들리는 가사로 볼 때 그렇게 즐겁게 불러서는 안 될 것 같다는 평을 해주었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시작할 때는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과연 그럴까 싶다. 이렇듯 여러 ‘청중단’의 관심까지 불어나면서 점점 이 프로젝트의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지 점점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노래 한 곡의 정서를 채운다는 훈련이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쩝.

 

 

댓글 4
  • 2020-04-21 06:48

    노래는 모르겠고 꽃 피는 좋은 시절이 지나고 있는 게 보이네요.

  • 2020-04-21 07:58

    매일 뭣인가를 꾸준히 하는 것.
    그게 논어 암송이든, 걷기든, 백팔배든....
    그건 기린의 엄청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자기가 규범적 인간이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삶의 어떤 스타일과 관계되는 건지 (반복을 통한 생성^^),
    드디어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걸로 보이네요.
    우리 함께 더 탐구해봅시다!!!

    (저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 역시 아침 6시 기상. 한 시간 남짓 집안일 -오마니 아침식사 준비 및 점심, 저녁, 간식거리 챙겨놓기 포함 - , 문탁 홈페이지 접속, 새글 읽고 댓글달기, 카톡으로 잔소리하기를 매우 루틴하게 하고 있는데.... 이건 도대체 뭘까, 라는 생각? ㅋㅋㅋ... '필유사언'일까? 아니면 그냥 習일까? )

  • 2020-04-22 17:02

    아~~ 산에서 부른 그 노래가 양생프로젝트!
    한 곡을 100일 동안 연습하면 음원 내셔도 될 수준이 아닐지ㅎㅎ
    응원합니다!

  • 2020-04-23 06:48

    규범화는 목적 달성을 위해서 자신을 옭아 메는 거구,
    양식화는 삶 자체가 목적이고 굳이 얘기하자면 과정이 양식화되는 거 같아요.
    암튼 저도 이번 성의 역사2를 읽고 감화? 받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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