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스타 책읽기> 녹평 178호 중반부 후기

곰곰
2021-06-14 15:47
195

녹평 178호 두번째 시간이다. 이번 호는 화폐 특집이라고 할 정도로 화폐 관련 내용이 많이 실렸다. 

 

먼저 스테파니 켈튼의 <적자의 본질>로 본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작가는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되지 않는 한) 정부는 얼마든지 빚을 져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돈은 어떻게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용법)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국가의 재정적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우리도 지겹게 들어온 얘기들), 즉 재정적자로 정부가 부도날 것이다, 미래세대에 짐이 될 것이다, 현실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등등은 근거가 부족하며 오히려 미신에 가깝다고 한다. 진정한 문제는 정부의 적자가 아니라, 좋은 직업, 저축, 의료, 교육, 인프라, 기후, 민주주의 등이니 적자를 통해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하기에, 지금의 대의제 시스템에서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명목화폐, 국가가 찍어내는 화폐라는 현실론에서 시작하는 논의라는 점을 생각하면, 화폐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적하고, 다양한 경제 이론의 생태계를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이어서 베르나르 리에테르가 말하는 다양한 화폐 이야기.

은행이 만든 돈(빚)에 기초한 통화 시스템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의 성격 때문에, 경제성장과 효율성의 당위성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화폐제도는 사회적 구성물일 뿐이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고, 실제로 변화시켜야만 한다. 필자는 보완적 통화를 제안하는데, ‘사용되지 않는 자원’과 ‘충족되지 않는 필요’를 연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이자가 붙지 않고 부의 축적에 기여하지 않는다. 다양한 층위에서 운영되는 통화들이 만들어지고 이를 결합시키는 실험들이 계속된다면, 잃어버린 회복탄력성을 되찾아 새로운 화폐 시스템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서는 비트코인도 대안 중 하나로 얘기하는데, 비트코인은 잘.알.못에다 현재는 투기적 면모만 부각되어 이러저러한 비판을 하긴 어려웠지만…. 기존 화폐 시스템과 연결되면서 가지게 되는 한계, 면대면이 아니라는 한계 등이 작용하는 것 아닐까 하는 얘기를 나누었다. 보완적 화폐는 ‘연결’이라는 역할이 핵심이니, 이러한 기능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찰과 관리 능력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보 모슬리의 <민중의 이름으로> 중 ‘부채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나’.

은행은 '예금의 소유권을 갖는다'는 특권을 가짐으로써 은행업이라는 마술(돈 만들기 게임)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그 마술의 내용과 생성 역사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돈에 대한 권리(증서)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은행업은 명백히 여러 겹의 사기(죄)를 범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행이 되었고 법이 되어 근대적 은행/금융 시스템에 이르렀다. 300년 전 부유한 자본가들에 의해, 그들에게 유리하게 설립된 이 시스템은 지금도 그대로 운영되고 있고, 30년 전부터는 은행가들의 이해타산과 정부의 규제 완화(&긴급구제)에 힘입어 인간과 자연계를 고갈시키는 거대한 약탈적 기생충이 되었다. 이런 낡은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혁의 아이디어들을 소개하는데, 대공황 기간 헨리 C. 시몬스가 제시한 전략은 혁신적이다. 정부의 부패를 직시하면서 돈을 만들어내는 제4의 기관의 신설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추첨으로 선발된 위원들(배심원)로 구성될 이 기관은 정부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통화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시몬스의 주장이 진정한 민주주의 절차를 통해 어떻게 개량될 수 있을지는 숙제로 남았다. 

 

화폐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갠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탈성장과 상상력, 성서에 길을 묻다'.

필자는 출애굽의 모험을 욕망의 폭주를 제어하고 충분함의 감각과 절제를 익히는 사회적 학습기간이라 말한다. 그리고 안식일, 안식년, 희년은 스스로 나 자신을 제한하여 자신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해주는 것이라 한다. 자발적 자기 제한. 안식은 나와 이웃, 자연을 위한 멈춤의 때이자, 창조된 것을 바라보고 음미하는, 또다른 방식의 활동이라는 것. 이러한 해석에서 '안식일에 일을 한 자는 누구나 사형을 받아야 한다'는 가혹하리만치 단호한 율법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익숙한 제국의 질서를 끊어내고 새로운 질서를 익힐 수 있는 시간을 강제적으로, 그리고 정기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필자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도 의미를 더해준다. 우리의 일상은 시간보다 공간에서 펼쳐지는데, 공간은 무언가를 하는 곳으로 우리는 공간에서 생산하고 소유하고 소비한다. 그러나 삶의 근원적 토대는 공간보다 시간에 있다. 공간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가능하다. 공간과 달리 시간은 우리 마음대로 장악할 수 없기에 낯설다. 안식은 공간에 가려진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공간의 분주함을 멈추고 시간에 들어와 머물라고 한다. 이때 우리의 관심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향한다. 공간에는 자기 것이 있으나, 시간 속에는 자신 밖에 없다! 계속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과 계속 양산되는 내적 불안이 모든 영역을 장악해 버려서, 이제는 어떻게 안식을 해야할지, 어떻게 시간의 나사를 반대쪽으로 살짝 돌리고 리듬에 변화를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겠다는 얘기를 나눴다. 효율성을 뒤로하고 의식적으로 쉬는 행위는 그것 자체로 매우 값진 행동이 될 것이다. "시간의 영역에서는 소유가 아닌 존재가, 움켜쥠이 아니라 내어줌이, 지배가 아니라 분배가, 정복이 아니라 조화가 목표다"

 

다음 시간에는 녹평 178호를 끝까지 다 읽고 논의하고 싶은 내용들을 정리해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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