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프로젝트] RappIN'文學 (3) 좋은 공연을 찾아서

송우현
2019-05-29 00:46
443




* 보릿고개 프로젝트는 춘궁기를 겪는 청년들이 고료를 받고 연재하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다섯 명의 청년들이 매주 돌아가며 세 달 동안 저마다의 주제로 세 개씩의 글을 연재합니다. 글은 매주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우현의 보릿고개 프로젝트 : RappIN'文學  (3)

 

 

좋은 공연을 찾아서

-공연과 주술-

 

 1편에서 말했듯 내가 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교축제에서 했던 랩 공연이었다. 다만 랩에 빠져든 이유가 단순히 공연에서 받은 호응이 살면서 받았던 가장 큰 호응이어서만은 아니리라. 이번 편에서는 공연에 대한 나의 해석과, 내가 할 수 있는 더 좋은 공연을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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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첫 공연의 현장

 

공연이라는 주술


2014년 09월 12일 날씨 맑음

“ 라우더하면 모두가 라우더하고, 세이예에하면 모두가 예에했다. 벌스를 들어갈 때마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려왔고, 훅이 나오자 모두가 박자에 맞춰 뛰었다. 그렇게 긴장감과 행복감에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대기실이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게 신기하다. 서우현은 흥분해서 무대 위에서 점프를 해댔다는데 전혀 못 봤고 기억도 안나! 어쨌든 아직도 그 무대 위에 내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다음 축제는 언제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투현 포에버! ”


 공연의 좋은 분위기는 공연자 혼자 만들어 갈 수 없다. 공연의 규모와 형태, 공연장의 상태, 스텝들의 재량.. 따지고 들어가면 끝도 없겠지만 우리가 기본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것은 ‘공연자’와 ‘관객’일 것이다. 대부분 공연에서의 공연자는 관객들을 지휘할 수 있는 일종의 ‘힘’을 얻는다. 이 힘을 통해 공연자들은 제의적 가치를 부여받아 관객들을 컨트롤하고 공연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힘은 원시사회의 ‘마법’ 혹은 ‘주술’이라고 불리던 것과 닮아 있다. 마법은 기술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는 속임수 같은 것을 자연적 능력이라고 포장하는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트로브리안드라는 지역의 경작주문이 있다. 이 주문은 식량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터질 듯이 불룩하고 묵직한 상태를 유지하는 목적에서 읊어졌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주술사가 이 주문을 욈으로써 농부들의 심리적으로 식욕을 절제케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경작이 잘 되게 해주는 주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평소보다 덜 먹게 하여 창고에 들어가는 식량의 양을 늘리게 하는 정치적 효과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듯 주술(마법)을 부리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행위이며, 자신이 그런 권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공연자는 음악이라는 주문을 욈으로써 관객들에게 자신의 힘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하여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다. 나는 축제 때 슈프림팀의 ‘땡땡땡’이라는 히트곡을 불렀다. 슈프림팀의 힘을 빌려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 낸 것이다. ‘이미 효력이 보증된’ 주문 덕분에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었고,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랩을 계속하게 되면서 언제까지나 남의 주문을 이용할 수는 없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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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브리안드족의 주술 현장. 실제로 주술은 공연의 형태일 때가 많았다고 한다.

 

 

나만의 주문은 어디에?


2015년 04월 21일 날씨 구름

“ 고등학교 공부는 재미없지만 요즘 동아리 활동은 너무 재밌다. 2주 뒤에 있는 동아리 연합 공연에서 어떤 곡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별이형은 대중적인 곡을 카피하자고 했다. 저 형은 래퍼가 꿈이라면서 아직도 아마추어 같이 카피를 하자는 건지 원. 난 당당히 언더그라운드 힙합 비트위에 내 가사를 써서 공연을 할 것이다. 관객들의 호응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 내가 멋있는 걸 잘 해내면 알아서들 좋아하겠지. 내 실력이 동아리 탑이라는 걸 증명하고 어엿한 언더그라운드 래퍼로 거듭날 것이다. 빨리 2주가 지났으면 좋겠다! ”


 축제 공연 때 증명한 힘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 권력을 증명할 수 있는 나만의 주문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내 주문은 효력이 없었다. 내 랩은 분명 좋았는데.. 왜일까?

 사실 원시사회에서도 마법은 종교같이 절대적인 믿음으로써 작용되지 않았다. 부족민들은 주술을 들을 때 어느 정도 회의와 불신을 동반했다. 게다가 주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겐 효력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으며 ‘대부분의 주술사는 사기꾼이고 믿을만한 주술사는 소수다.’ 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러나 주술에 대한 불신은 주술사들이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주술사들은 제의의 진행과정에서 암시적으로, 또 제의의 외부에서라면 좀 더 명백하게 이 모든 절차는 단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방식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주술을 부려 정치적 권위를 얻으려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권위를 가지는 것 같지만 동시에 그 힘을 부인한다. 주술사들은 일방적으로 힘의 작동으로 부족민들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게 아니다. 부족민들은 주술에 대해 불신을 가지면서도 혹시 진짜가 아닐까 하는 가능성의 인식을 가지게 되는데 이 가능성의 인식이야 말로 주술이 의도하는 사회적 효과이다.

 축제 때 나의 주술은 슈프림팀의 곡을 빌려와 내가 슈프림팀인 것처럼 혹은 그에 버금가는 힘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연출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관객들이 나를 정말 슈프림팀으로 보았다거나 내가 그 정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공연은 단순히 공연자가 관객으로부터 권력을 획득하여 호응을 이끌어내는 행위가 아니며, 공연자 역시 권위적 위치를 확보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관객들 또한 공연자의 음악을 들어주고, 공연자에게 힘이 있다고 믿어주는 것으로 주술을, 공연을 완성시킨다. 그렇게 서로를 믿고 마음을 열어 다양한 감정들을 공유한다.

 하지만 동아리 공연 때의 나는 일방적으로 나의 힘을 작동시키려 했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아닌 화려한 기술들만 나열하면서 호응을 강요한 셈이다. 관객들은 그런 공연자에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마음을 열 수 없었기에 호응도 할 수 없었다.

 이후 나는 여러 공연 영상들을 찾아보고, 좋아하는 래퍼의 공연에 직접 가보기도 하였다. 그중 ‘허클베리피’(이하 헉피)라고 하는 래퍼의 공연은 내가 본 공연 중에서 ‘떼창’문화가 가장 발달한 공연이었다. 헉피가 단독공연시리즈인 ‘분신’에서 그의 대표곡인 ‘랩바다하리’를 부를 때는 거의 모든 관객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다. 헉피는 이에 감명 받아 이후 분신에서 랩바다하리를 부를 때는 마이크를 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관객들이 부르게 한다. 헉피는 관객의 입장으로 그들의 랩을 들으며 더블링 쳐주고, 호응한다. 헉피의 주술에는 관객과 공연자의 구분을 흐리게 하고 공연을 함께 이루어 나간다는 태도가 드러난다. 주술사들이 불신을 의도해서 부족민과의 권력관계를 무너뜨렸듯이, 헉피는 마이크를 관객에게 넘겨 관객들 또한 주술의 주체라는 것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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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피의 '분신' 현장. 

 

너, 내 관객이 되지 않겠나?


원시 주술사는 자신의 집단의 정치적 질서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주술을 활용했고 그 방향성에 따라 주술을 연마했다. 나에게 공연은 관객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한 공간 안에서 직접적으로 만나면서 마음을 열고 서로의 감정들을 같이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공연자와 관객의 관계가 일방적인 힘의 작동이어선 안 된다.

처음 본 공연자와 관객들이 서로의 마음을 열기위해서는 그럴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그 역할은 공연자 혼자서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공연자는 음악과 공연에 대한 연출을 일종의 속임수로 사용해서 관객에게 마음을 열어도 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자가 만든 판과 분위기에 들어가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관객들은 마음을 열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공연이라는 주술을 완성시킨다. 그 호응의 형태는 자유로워야 한다. 공연자는 관객들에게 그 형태를 제안하되, 강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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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공연은 공연자가 얼마나 유명한가에 달려있지 않다. 공연자와 관객들이 얼마나 잘 관계 맺는가에 달려 있다. 음악은 관계를 맺는 것에 도움을 주는 장치이지만 음악만 좋다고 해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연은 음악 감상이 아닌 같은 공간 속에서 직접적으로 관계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 3
  • 2019-05-29 06:38

    와우...msn040.gif  랩과 인류학의 결합이라~~

    공부를 바로 바로 써먹는 이 순박력! 짱!! 

  • 2019-05-29 10:19

    특히 힙합공연은 주술사의 제의같은 느낌이 더 있는 거 같아요.

    권위나  '힘'을 생각하면 누군가에게서 나오는 것 같지만

    우현이 글을 읽으니 이 또한 관계에서 흐르고 있는 건가? 싶네요. 

    결국 얼마나 '관계의 조직'할 수 있느냐가 내 힘의 근간일까요?

  • 2019-06-02 22:40

    그러니까 주술은 제안하되 강제할수는 없는거군요^^

    어쩐지 랩이 주술같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구먼요 ㅋ

    랩퍼를 친구로 두니 점점 유식해지는듯..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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