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여름 포스트휴먼] 3주차 후기 - 신유물론, 포스트휴먼, 페미니즘

경덕
2024-07-22 01:49
566
3주의 세미나로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을 읽고 이제 강사님의 강의를 앞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3회차 세미나에서 주요하게 논의한 부분으로 '방법론적 민족주의', '텍스트적 평등주의', '인문학과 과학의 관계', '물질-실재론적 생명', '지도그리기 / 대안적 형상화 / 개념적 인물', '비선형적, 유목적 양태의 기억', '포스트 휴먼적인 법', '돌리를 나의 누이로, 온코마우스를 토템적 신성으로'.... 등이 떠오릅니다. 정군샘은 공지에 이렇게 쓰셨지요. "이 텍스트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현대철학 매거진' 같은 책입니다... 텍스트의 서술방식이나 구조가 여러 형태의 참고자료를 많이 요구하니 최대한 많이 찾아가면서 읽으세요..." 그래서 세미나 질문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이런 자런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브라이도티의 학문적 여정과 그 안에서 이번 책이 차지하는 위상이 궁금했어요. 브라이도티의 생애를 간략히 적어보면 이렇습니다. 195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6세 때 호주로 이주하여 호주 국립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으로 건너가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88년 네덜란드로 건너가서 여성학 창립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현재까지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해요. 위키피디아에는 그녀의 연구가 "사회 및 정치 이론, 문화 정치, 젠더, 페미니즘 이론 및 민족성 연구의 교차점인 대륙 철학"에 있다고 평가하네요. 핵심적인 출판물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Patterns of Dissonance: An Essay on Women in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1991)
『유목적 주체 - 우리시대 페미니즘 이론에서 체현과 성차의 문제』(1994)
『변신 -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2002)
Transpositions: On Nomadic Ethics 』(2006)
『포스트휴먼』(2013)
『포스트휴먼 지식 - 비판적 포스트인문학을 위하여』(2019)
『포스트휴먼 페미니즘』(2021)
 
그런데 언제부터 브라이도티는 '포스트휴먼'을 중심 개념으로 사유하기 시작했을까요? 지난 겨울 세-강에서 읽었던 박준영 선생님의 『신유물론, 물질의 존재론과 정치학』을 보면, 브라이도티가 포스트휴먼 이전에 신유물론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전개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포스트휴먼에 나오는 개념들 역시 신유물론 개념들로부터 확장되었을 것입니다. 2013년 『포스트휴먼』이 나오기 직전에 출간된 인터뷰집에서 인터뷰이는 이렇게 씁니다.
 
브라이도티는 (신)유물론의 상황적(situated) 지도제작법을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통찰력 있는 대안들, 즉 비판에 대한 창조적 대안들을 생산하기 위해 이 지도들을 횡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명확히 한다. 유물론의 문제에 있어서 브라이도티의 정확한 견해를 접하면서 우리는 들뢰즈적 '일의성'(univocity) 또는 '단일 물질'(single matter)과 대면한다. 동시에 우리는 브라이도티가 차이를 한편으로는 성적 차이화(sexual differing)의 힘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을 어떤 성차(ssexual difference), 즉 포스트-휴먼, 포스트-인간중심주의 그리고 지속가능성과 (세대 간에 전해지는) 정의에 관한 포스트-세속주의 전망을 찾아내기 위해 횡단될 필요가 있는 성차로 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릭 돌피언/이리스 반 데어 튠, 박준영 옮김, 『신유물론 - 인터뷰와 지도제작』, 15쪽)
 
이 텍스트에서 당신은 신유물론을 발전시키면서, 질 들뢰즈의 철학에 가까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용어는 『불일치의 패턴』에서, 당신이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이미 발견됩니다. "사유의 일반적 방향은 페미니스트 이론 안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주체의 체현된 본성을 정립하며, 결국 물질의 한가운데에서 대안적으로 성차나 젠더의 문제를 정립한다. (...) 이것은 유물론의 급진적인 재독해로 이끌며, 완고한 마르크스적 정의로부터 멀어진다. (...) 푸코의 신유물론 즉, 들뢰즈에 의해 제안된 새로운 물질성은 (...) 페미니즘 이론을 위한 결정적 논점을 구성한다"(Braidotti, 1991, 263-6). 그리고 『유목적 주체』에서 당신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차이에 관한 포스트구조주의의 페미니즘의 재확인에서 등장하는 것은 (...) 텍스트와 텍스트적 실천에 있어서의 신유물론적 이론이다."(Braidotti, 1994, 154)." (위의 책, 21쪽)
 
텍스트와 텍스트적 실천을 언급한 부분에서 르꾸샘과 동화샘이 질문해주신 '텍스트적 평등주의'', "섬세한subtle 학문", "견고한hard 학문"이 떠올랐어요. 다음은 브라이도티가 『유목적 주체』(1994)에서 이질적인 텍스트와 개념이 경계를 넘어 횡단하고 동일한 평면에서 만날 수 있는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글쓰기란 지속적인 번역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상이한 문화적 현실들에 연속적으로 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 글쓰기란 유동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형세를 살펴 확인하고 자신의 언급들을 맥락화하며 지도를 그려내려는 욕구를 번역해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지성의 한 스타일인 유목주의는 어디에서든지 집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만큼이나 집이 없는homeless 것에 존재한다.(로지 브라이도티, 『유목적 주체』, 50쪽)
 
유목적 의식은 하나의 인식론적 입장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과학에 대한 연구에서 이사벨 스탠거스는 포스트모던 인식론에서의 "유목적 개념들"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스탠거스에 따르면, 개념들은 유목적이다. 개념들이 우리 시대 과학의 뚜렷한 역사적 특권인 분과학문적 경계들을 흩뜨리는 가운데 하나의 과학적 담론에서 다른 담론으로 옮겨가는 능력을 획득해 왔기 때문이다. 개념들을 분과학문을 횡단하도록 번식시키는 것은, 개념들을 상호 연결되게 해주고 또 "견고한" 과학에서 "부드러운" 과학들로 개념들이 옮겨다니도록 허용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위의 책, 60쪽)
 
따라서, 나는 비학문적 성격을 지닌 텍스트들 - 문자 텍스트, 시각 텍스트 혹은 퍼포먼스 텍스트들 - 을 똑같은 흥미를 가지고 접근한다. 이 지점에서 담론에 대한 일반 이론 내에서 모든 텍스트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일부 포스트구조주의자들, 특히 미셸 푸코와 롤랑 바르트가 이루어 낸 중요한 작업을 인용하는 것이 허용되리라. 담론이란 물질적, 제도적 사건들과 상징적 혹은 "비가시적" 효과들 둘 다를 의미하는 텍스트의 유통 네트워크이다. 텍스트란 의미, 가치, 규범을 창출하고 그것들을 사회적 맥락 안에서 분배하는 네트워크 속에 있는 한 용어이다. (위의 책, 391쪽)
 
'신유물론'이라는 용어가 나의 '유목적 사유'라는 신체 안에서 전진적으로 전개되고 규정된다는 당신의 지적은 올바릅니다. (...) '신유물론'은 하나의 방법, 개념적 틀, 정치적 입장으로서 출현한 겁니다. 그래서 신유물론은 언어학적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대신에 권력의 사회적 관계 안에 담긴 신체들의 구체적이지만 복잡한 물질성에 방점을 둡니다" (위의 책, 21쪽)
 
이어서 텍스트가 경계를 횡단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평을 넘어서는 개념적 사유실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들뢰즈의 경험주의를 따라, 이를테면 콜브룩(Colebrook)은 논쟁의 기반을 형이상학적 근거로부터 새로운 개념들의 창조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재성의 철학으로 이동시키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창조적 제스처는 주어진 것 즉 경험적인 것에 대한 어떤 응답의 방식이고, 따라서 사건 개념과 연결됩니다. 개념의 창조란 그 자체로 경험 혹은 실험이지요. 역기엔 이중의 함축이 있어요. 첫째로 철학이 주인 담론(master discourse)이나 불가피한 사유지평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술적이고 과학적인 실천이 마찬가지로 제 역할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윤리적 문제가 형이상학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개념들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개입이 비판적일 필요가 없어진 대신 독창적이고 창의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유에 대해 실험하기야말로 우리 모두가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는 우리가 출발했던 바로 그 성차의 탈-영토화를 함축합니다. (위의 책, 36쪽)
 
다시 인터뷰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뷰이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머니즘'과 '후기-세속주의' 작업과 관련하여 적은 부분이 있는데요. 이 부분은 라겸샘의 질문("그저 '상상력'이나 '창조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굳이 '기억'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나요?")에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최근 작업에서 당신은 '포스트-휴머니즘'과 '후기-세속주의'(post-secularis)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론, 문화 그리고 사회>의 두 논문에서 당신은 두 용어를 설명합니다. 사실상 포스트휴먼으로 탈인간중심주의(post-anthropocentrism)를 직조해 내면서 포스트휴먼을 바로 복잡하게 만들었지요. (..) 당신은 도나 해러웨이의 탈인간중심적 포스트휴머니즘이 반토대주의가 아니라 대신 '과정 존재론'(process ontology)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당신이 해러웨이의 화이트헤드적인 중요성("존재는 관계 이전에 실재하지 않는다", (Haraway, 2004, 6))을 인용한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당신은 또한 시간에 관한 어떤 특수한 이론을 페미니즘적 포스트휴머니즘에 귀속시킵니다. 그 이론은 다소 베르그송적인 것으로 보이더군요. ("과정 또는 이행중에 존재하는 것은 역사나 시간 바깥에서 사유하는 주체를 수립하지 않는다. (...) 장소(location)는 각인되고 체현된 기억이다. 이것은 일종의 대항-기억(counter-memories)이며, 한줌의 지배적인 주체 표상들에 반해 저항하는 사유자에 의해 작동된다. 하나의 장소란 주체의 공동생산(co-production)에 관한 유물론적 시공간의 현장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상대주의의 사례가 아니다(Braidotti, 2006, 199).) (릭 돌피언/이리스 반 데어 튠, 박준영 옮김, 『신유물론 - 인터뷰와 지도제작』, 36쪽)
 
그리고 들뢰즈의 유목주의와 여성적 주체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 브라이도티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체성에 관한 대부분의 페미니즘적 재정의들이 시작하는 지점은 말하는 주체(speaking subject)의 체현된, 즉 성적으로 차별화된 구조를 전개하는 유물론의 새로운 형식입니다. 결과적으로 주체성의 신체적 뿌리를 재사유하는 것이 유목주의의 인식론적 과제를 위한 출발점입니다. 신체 또는 주체의 체현은 생물학적이거나 사회적인 범주 어느 것도 아니라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보다 그것은 물리적인 것, 상징적인 것 그리고 사회학적인 것이 중첩된 지점으로 이해되어야 하지요. 나는 신체에 대한 사유라는 상이한 방식들을 요구하기 위해 체현이라는 주제를 강조합니다. 신체란 유물론적인 것에 적용되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간 주체성의 생기론적 기초에 관련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리를 고정하고 있거나 흘러 이동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를 구조화하는 변수들, 이를테면 계급, 인종, 성, 젠더, 연령, 장애 등을 초월하는 것이지요. 이는 주체 구성에 관한 포스트-정체성적 관점(post-identitarian view)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위의 책, 42쪽)
 
그럼 마지막으로, 브라이도티가 가장 최근에 출간한 『포스트휴먼 페미니즘』(2021)에서는 그동안의 개념적 작업이 어떻게 확장되고 있을까요? 결론 부분을 일부 인용해보겠습니다.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사회적, 학문적 공동체들을 조직하라고 종용한다. 그런 공동체들은, 새롭게 출현하는, 지식의 포스트휴먼 주체들, 특히 "사라진 사람들의 집단들"이라는, 윤리적으로 힘을 부여하는 개념을 성찰하고 또 강화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여러 범주들, 문화들, 종들을 가로지르면서 또 학술적 차원에서 여러 학제들, 방법론적 전통들을 가로지르는 횡단적 상호연결성이 새로운 집단적 주체를 구성하고 배양하기를 목표로 삼는 긍정적 윤리의 실천을 이루는 길이다. 그런 주체는, 인간과 비인간의 혼합, 조에/지오/테크놀로지에 결부된 것으로, 컴퓨터 연결망과 인간들의 혼합, 스마트 기술을 활용하고 스스로를 조직하지만 혼돈의 상태는 아닌, 살아 있는 상호연결성인 배치[집합체]- "우리" -이다. 더 나은 표현이 없으니 그것을 "생명life"이라고 부르자. 죽음은 그것의 필수적인 일부이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포트리스 유럽(망명자, 난민에게 까다로운 유럽연합의 이민 정책 및 국경 강화책)의 언저리에서 죽어가는 난민들처럼 생명권력의 타나토스 정치의 대상이 되거나 새롭게 죽는 방식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 모두 여러 가지 바이러스와 질병에 취약하고, 기후 변화 및 다른 황폐화의 결과에도 취약하다. 이런 것들에 노출된 생명들 다수는 인간이 아니다. 다행히도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이것이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되기"의 생태철학으로서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이 제시하는 통찰이다. 생명은 생성의 힘으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되기의 기저를 이루면서도 이를 초월하는 힘이다. 그것은 소진불가능한 힘으로서, 생명 - 비-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 - 을 저항의 터전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로지 브라이도티, 『포스트휴먼 페미니즘』, 396쪽)
 
포스트휴먼 페미니즘 연구자들은 고대 토착민의 인식론들에 있었으나 그간 무시되었던 지혜를 통해 배움을 얻어야 하고 새로운 공동체적 목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 책에서 나는 이런 작업이 상호성 및 다종간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정뿐 아니라 탈인류중심주의적 전환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주체성에 대한 페미니즘의 신유물론적 비전은 타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타자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상호적 능력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도전들에 맞서 협력하는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또 상이한 집단들 사이에서 위치나 특권, 자원의 차이들을 부정하거나 경시하지 않는 협력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청은 차이들을 위한 집단적 책임의 구축을 목표로 삼는다. 불편한 진실들을 직시함으로써 공동체적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이런 실천은 내가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의 필수적 요소라고 여기는 긍정의 윤리에서 핵심적이다. 환경적 재앙, 공중보건상의 재앙,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들 속에서 공존공멸의 가능성에 우리가 함께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이 우리를 학문 공동체로 묶어주는지를 가늠하는 출발점이다. (위의 책, 398쪽)
 

처음 출간된 책(『Patterns of Dissonance: An Essay on Women in Contemporary French Philosophy 』(1991), 그리고 '차이' 3부작(『유목적 주체 - 우리시대 페미니즘 이론에서 체현과 성차의 문제』(1994), 『변신 - 되기의 유물론을 향해』(2002), 『Transpositions: On Nomadic Ethics 』(2006)), 그리고 '포스트휴먼' 3부작(『포스트휴먼』(2013), 『포스트휴먼 지식 - 비판적 포스트인문학을 위하여』(2019), 『포스트휴먼 페미니즘』(2021))으로 이어지는 브라이도티의 사상적 흐름 전체가 '현대철학 매거진'이자 '상황적(situated) 지도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책은 코로나가 본격화된 시국에 출간된 만큼 '행성적 곤경'에 대한 사유를 적극적으로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라 던져봅니다. 전체를 조망하는 보편적 지도가 아니라, 집단이나 주체의 위치를 드러내는 상황적 지도 제작으로 '차이'와 '횡단'의 공동체를 조직하자고 말하는 걸까? 그런데 '위치'는 개념화, 형상화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개념과 형상을 아우르는 물질적, 감각적, 사변적 경험 그자체로서 드러나지 않을까? 유럽 학문 공동체에 개념적 형상으로 위치한 브라이도티가 쏟아내는 제언들을 비유럽 비제도권 인문학 공동체의 학인들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저렇게 자료를 참고하고 질문을 던지며 대략적인 흐름을 파악하고자 했지만 여전히 아리송하고 의문이 남고 알아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강사님과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많은 부분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댓글 4
  • 2024-07-22 09:48

    와~ 후기를 쓰기 위해 다른 책들도 참고하면서 공을 많이 들이셨네요.(리스펙~)
    지난 겨울 읽은 박준영선생의 책에서 브라이도티가 스스로를 들뢰즈의 불충실한 제자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포스트휴먼>을 읽으며, '불충실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브라이도티의 페미니즘을 알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세미나에서 아리송했던 점들이 강좌에서 좀 더 선명해지고 브라이도티에 대한 지도그리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답니다.ㅎ

  • 2024-07-23 10:26

    경덕 샘의 후기를 읽는 건 또 다른 공부네요^^
    저의 공부를 압박하는 이런 후기 일단은 밉고, 이단은 감사해요ㅎ
    개인적으로 브라이도티가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 '유목적 주체'로 한국의 페미니즘 진영에서 주목받았을 때
    그 외 공간에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신유물론의 '붐'(?)을 타고 다시 소환되는게 흥미로워요.
    저도 '포스트' 시리즈보다는 경덕샘이 '차이' 시리즈로 묶어주신 오래된 저작들을
    다시 꼼꼼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라이도티 사유에 대한 지도그리기 고맙습니다!:)

  • 2024-07-24 14:09

    이야! 아주 멋진 후기로군요!
    저 자료들을 다 찾아보자면 시간이 꽤나 걸렸을텐데 고생하셨습니다. 지난 겨울에 이어 '신유물론' 공부를 이어서 하고 있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이 사유가 제가 알던 '철학'의 범주 속에 있는 것인지 어떤지... 또 '철학의 위기' 아래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어떤 타협인 것처럼 보여서 좀 껄쩍지근 하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현재의 문제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들에 절로 존경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ㅎㅎㅎ
    이제 이번주부터 드디어 강의가 시작되는군요. 이경란 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해 주실지, 그 동안 우리가 읽은 것과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지 기대가 됩니다!

  • 2024-07-26 11:53

    경덕 선생님
    강의 듣고 다시 읽어보니, 더 깊어지네요.
    『포스트휴먼 페미니즘』하고 연결해주신 글까지 읽고 나니, '신유물론적 비전은 타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타자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상호적 능력을 강조'하기에 연대가 중요한 이유, 불교와 연결될 수 있는 지점들이 조금은 더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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