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 10주차 프로이트 후기

호수
2021-05-11 21:05
348

올해 들어서 일이 연달아 들어오고 새로이 일주일 세번 아이들을 가르치러 나가니 공부할 짬을 내기 쉽지 않습니다. 올해 고등학생이 된 큰애를 챙기는 일도 은근히 품이 들어가고요. 그럼에도 철학사 공부가 굉장히 재미 있습니다. 없는 틈 짬짬이 내어 세미나 책을 읽고 참고서적을 뒤적이며 생각을 굴려봅니다. 처음 만났던 고대 철학자들, 그리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중세 철학자들, 합리론, 경험론, 헤겔, 칸트, 계몽주의, 맑스.. 또 어제 다윈과 프로이트까지. 매번 새로 알아가는 기쁨이 큽니다. 이 사람을 좀 더 파볼까.. 싶을 즈음 일에 치이고 진도에 밀려 자연스레 덮게 되니 오히려 지치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것도 같고요.

 

*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결국 어떤 확고한 존재론적 인식론적 토대를 찾는 문제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사실상 신), 그 중간에 놓인 징검다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명제였던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나'라는 이 이성적 주체는 아무리 봐도 특별한 것 같았을 인간의 위상에도 걸맞았고요. 그런데 다윈의 동시대 인물이자 신경의학자에 무신론자였던 프로이트는 이 '나'라는 주체의 위상을 우습게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특히 '이드'나 '무의식'적 충동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들의 '에고' 즉 '나'에게 자명한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을 기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테니까요. 더욱이 프로이트는 에고의 이러한 상황을 일부 신경증 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꾸는 꿈이 무의식적 충동을 충족시키는 일차적인 장이라고 했으니까요. 이렇게 프로이트는 데카르트적 주체를 붕괴시켰습니다만, 저는 여전히 '주체'나 '의식하는 나'라는 개념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역할과 능력을 과대평가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은 차치하고라도(특히 에고-슈퍼에고-이드의 2차 지형학을 내놓았을 때, 그리고 무의식이 문법적 규칙을 따른다는 가설에서도), 인간의 의식이 미치는 영역이 매우 협소하고 그 능력에 한계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저 '나'가 처한 조건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아닐까, 그러니까 인간의 성찰 능력은 여전히 중요한 일차적인 지지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프로이트 이론의 학문적 위상에 대한 이야기가 길었는데요, 특히 프로이트가 썼다는 메타심리학이니 사변적 상부구조니 하는 표현이 상당히 혼란스러웠어요. 단순히 보면 당시에는 정신분석의 학문적 타당성을 주장하려면 정신분석이 과학적이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겠지요. 실증주의나 실험적 방법론을 따라야만 타당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학문 과학으로 인정받는 추세였고, 프로이트 자신도 신경의학을 공부한 정신과 전문의였으니까요. 프로이트의 그러한 주장은 포퍼 같은 이들에게 신랄하게 비판을 받았지만, 사실 아직까지 프로이트를 참조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과학적이라고 믿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세미나 시간에 이 부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저는 과학적 방법론과는 다른 학문적 방법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앞쪽 16장 '인문학의 대두'에 나왔던 슐라이마허의 해석학적 방법론이 다시 보였고요. 정신분석학을 심층 해석학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 하버마스의 주장도 이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중간에 보면 프로이트와 니체 둘 다 관습적인 도덕의 과잉과 충동의 요구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었다며, 니체의 위버멘쉬는 성공적인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신경증 환자와 같은 방식으로 자아를 극복했다고 한 부분이 있는데(836), 정말 그렇게 볼 수 있는 걸까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니체를 보고 나야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아요. 그럼 이 질문은 다음 시간까지 아껴두고, 힐쉬베르거를 세 번(?) 읽으시고 독서에 최적화된 신체를 지녔다고 일컬어지는 장서가 아렘샘의 니체 발제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댓글 2
  • 2021-05-11 23:06

    세미나가 끝나면, 내내 '후기'를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늠나 반갑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격하게 동감합니다. 정말 저도 '진도' 덕에 덜 지칩니다. ^^

     

    세미나 중에는, 어쨌든 '흐름'이 있으니까 프로이트, 다윈을 묶어서 '근대적 주체를 붕괴 시켰다'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여기서 한가지 저희가 주의해야 할 점은, 그렇다고 '주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차라리 이렇게 보면 어떨까요? '주체에게 제 몫 찾아주기'라고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데카르트의 '코기토' 이래로 헤겔까지 이어지는 (근대적) '주체'의 개념사는 '과잉-의미화'의 역사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프로이트나 다윈, 그와 더불어 맑스는 각자의 '관찰'을 통해서 (어폐가 있기는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주체'를 보려고 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요걸 약간 다른 각도로 보면 이 세 사람(어쩌면 니체까지 포함해서 네 사람)은 '주체의 발생'을 탐구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 '인간'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이들의 이론 앞에 마주세워 보면 어떨까요. 맑스라면, 인간은 생산과정에 들어감으로써 '계급적 주체'가 된다(그 유명한 '흑인은 흑인이다~'라는 명제가 그것이죠), 다윈이라면, 오랜 시간 자연의 선택과 그에 대한 적응의 결과 '인간'이 되었다, 프로이트라면 기억을 억압 함으로써(무의식을 구축함으로써) 인간은 '의식적 주체'가 된다 라고 답할 겁니다. (이 이야길 세미나 때 했어야 하는건데.....)

    이런 점에서 보자면, 말씀하신 것처럼 '주체가 처한 조건'에 대한 앎이 확장 되었다고 볼 수 있고요.

     

    따라서, 저는 '근대 철학사'를 '주체-사유의 역사'로 규정해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철학, 21세기 철학도 이런 관점('주체' 개념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에서 조망해 볼 수 있고요. 

    그러면 이쯤에서 다시금 (아렘샘의) 니체 (발제)가 기대됩니다! 니체는 또 어떻게 주체를 물고 늘어질까요. ㅎㅎㅎ 

  • 2021-05-15 17:35

    아니, 호수님과 정군님! 이렇게 아렘샘에게 짐을 지워도 되는 건가요?^^

    저는 프로이트는 프로이트의 이론 그 자체보다 프로이트 이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프로이트에 대한 해석과 전유와 비판이 철학의 역사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닐까요?
    헤겔과 맑스 장에서는 그들에 대한 반박과 저자들의 의견이 있었는데
    그런 점과 관련해서 프로이트에 대한 정보가 적은게 조금은 아쉬웠답니다.
    이 또한 앞으로 우리의 공부거리가 되겠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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