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50. 화풍정괘 - 솥을 메고 온 선비

진달래
2019-08-13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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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제목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 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 그 단 한자락이라고 훔칠 수 있을지^^

 

솥을 메고 온 선비

 

 

큰 나라를 세우려면 훌륭한 왕과 더불어 그를 보좌하는 훌륭한 신하가 있어야 했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에게는 강태공이 함께 은나라를 정벌하는데 힘을 보탰고, 동생인 주공이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데 힘썼다. 이는 주나라 이전에 상(은)나라를 세웠던 탕왕도 마찬가지였다. 탕왕에게는 이윤이라는 현명한 신하가 있었다. 그는 탕왕과 함께 주변국들을 정벌하고 상(商)나라의 제도를 개혁하였다. 탕왕이 죽고 난 뒤에는 이후 은나라가 안정적으로 계승될 수 있도록 힘썼다. 어떻게 보면 이윤은 무왕의 파트너였던 강태공이나 주공의 역할을 모두 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이윤의 등장에도 범상치 않은 이야기가 있는데 이 때 ‘솥’이 한 몫 한다.

 

『주역』 50번째에 등장하는 화풍정(火風鼎)괘의 정은 솥이다. 마치 괘의 모양이 솥처럼 생겼다고 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괘의 뜻이 아래의 나무를 위에 불로 때니 솥에서 음식이 익는 것을 말한다고도 한다.

 

 

정괘의 괘사는 매우 좋다. “크게 형통하다.(鼎 元亨)” 「단전」 역시 매우 좋은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정은 상(象)이니 나무로써 불에 순종함은 팽임(烹飪)함이니 성인이 팽임하여 상제에게 제향하고 크게 팽임하여 성현을 기른다. 공손하고 이목이 총명하며 나아가 위로 가고 중을 얻었으며 강에게 응한다.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한 것이다.(彖曰 鼎 象也 以木巽火 亨飪也 聖人 亨 李享上帝 而大亨 以養賢人 巽而耳目聰明 柔進而上行 得中而應乎剛 是以元亨)

 

솥의 쓰임으로 괘를 풀이하고 있다. 팽임(烹飪)이란 음식을 삶아 익히는 것을 말한다. 솥이란 음식의 재료를 넣고 삶아 그것을 하나의 요리가 되도록 한다. 고기는 날 것으로 먹는 것보다, 익혀 먹을 때 더 맛있고, 곡식도 솥에 조리한 밥이나 떡이 먹기 더 좋고 소화도 잘 된다. 나무를 때서 불을 피우고 솥에 음식의 재료를 넣어 삶고, 성인은 이를가지고 상제에게 제사를 지낸다. 크게 팽임한다는 것은 아마도 큰 제사를 지내고 난 뒤에 음식을 모두 나누는 것을 말하는 것인 듯하다. 고대에는 이렇게 큰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제사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것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를 보면 그 정치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공자도 제사 지낸 고기가 제대로 나뉘어지지 않고, 자기에게 오지 않자 노나라를 떠났다. 솥이란 인간이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후 음식을 조리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다. 솥을 통해 익혀진 음식물은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솥과 같은 모양을 한 정괘를 매우 길하다고 본듯하다. 

 

 

이윤과 솥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사기』에 의하면 이윤은 탕왕을 만나기 위해 탕왕의 후비로 들어가는 유신씨(有莘氏)의 잉신(媵臣)이 되었다고 한다. 잉신은 보통 귀족 집안의 여자가 시집갈 때 데려가는 남자 하인들로 대게 마부, 혹은 요리사 등이었다. 아마도 이윤의 신분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탕왕을 만나기 위한 이윤의 계책이었던 같다. 이 때 이윤이 가지고 간 것이 정(鼎)이다. 이윤은 요리사로 탕왕의 환심을 사고, 탕왕의 측근이 되었다. 이후 이윤은 음식의 맛을 예로 들며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탕왕에게 펼쳐보였다.

 

"이윤(伊尹)의 이름은 아형(阿衡)이다. 아형이 탕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방법이 없자 유신씨의 잉신이 되어 정(鼎)과 조(俎)를 메고 탕에게 갔다. 그는 음식의 맛을 예로 들어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여  탕이 왕도를 실행하게 하였다."-『사기』 「은본기」

 

탕(湯)왕은 『대학』 전1장의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주인공이다. 그가 쓰는 커다란 대야에 “진실로 어느 날에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말을 써 넣고 항상 스스로를 경계했다고 하는 인물이다. 이윤은 그 옆에서 탕왕이 현명한 왕이 될 수 있도록 조언한 인물이다. 이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이웃나라의 제후를 정벌하러가는 탕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명하십니다. 훌륭한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나아질 것입니다.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아낀다면 선(善)을 행하는 자들이 모두 왕궁의 관리로 있게 될 것입니다. 노력하십시오. 노력하십시오.”

 

탕왕의 신하가 된 이윤은 제후들을 정벌하는데 따라가기도 하고, 탕왕을 도와 상나라의 새로운 관제를 세우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이윤은 탕왕이 죽은 뒤에도 상나라가 안정되도록 힘을 썼다. 이윤은 4대 왕이었던 태갑제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왕의 본분을 잊고 제멋대로 하려하자, 그를 내쫓고 3년 동안 섭정을 했다. 그 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태갑제에게 다시 왕위를 돌려 주었다. 이렇게 상나라를 위해 일하던 이윤은 태갑제의 아들 옥종제가 즉위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역사를 읽다보면 정치적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왕의 가장 측근으로 권세를 누린 자들 중에 마지막까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죽은 사람은 흔치 않다. 이윤은 자신을 등용한 탕왕이후 4명의 왕을 섬겼으나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윤의 아들인 이척 역시 태무제때 재상으로 등용되기도 했다. 그와 비슷하게 『주역』을 읽다보면 맨 위에 자리한 상효가 길한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러나 정괘의 상구(上九)는 ‘대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되어있다. 효사에서는 상구의 자리가 강유가 적절하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이천은 상구는 솥에서 이제 요리가 꺼내지는 자리이므로 요리를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맡은 일이 완성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솥을 메고 온 선비, 이윤은 정괘의 의미처럼 옛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취하는 개혁 정치를 실행함으로써 상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발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윤이 요리사로 탕왕에게 맛있는 요리를 가지고 마음을 사서 재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후 사람들에게 여러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그가 끝까지 자기 자리를 잃지 않았던 것은 그 스스로가 바른(正)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윤이 메고 온 솥은 단순히 이윤이 탕왕을 만나기 위한 도구가 아닌 변혁의 시대를 지나, 한 나라의 기틀을 만들어가는 이윤의 이미지와 관련된 것이지 않았을까? 과거의 제도를 엎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가면서 결국 상나라 초기의 안정, 번영을 이루는데 밑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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