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 47.택수곤괘-곤궁한 때 형통하게

기린
2019-07-23 09:19
446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곤궁한 때 형통하게

 

 

 택수곤괘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음을 드러내는 형상의 괘이다. 그럼에도 괘사에서는 형통하다()”고 풀었다. 흔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막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기 마련인데 형통하다니 무슨 뜻일까? 곤괘의 상괘는 태()괘로 구사와 구오의 양효가 상육의 음효에 덮여있고, 하괘는 감()괘로 구이 양효가 아래 위 음효에 둘러싸여 있다. 형상으로는 양효들이 음효에 가려져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단전에서는 곤은 굳셈이 가려진 것이다.(, 剛揜也)”라고 풀었다. 즉 굳셈을 드러내야 할 양효가 음효에 가려져 제 몫을 못하니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처한 곤란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하나 때를 만나지 못한 경우이다. 그러니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능력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끝내는 형통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읽은 괘이다. 곤궁하지만 제가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형통하다(困而不失其所,-왕부지의 해석을 따름)” 고 했다. 곤궁함에 처해서 기다리되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잃지 않는 능력은 어떻게 드러날까?

 

 전국시대에 부국강병의 이익()을 바라는 제후 앞에서 맹자는 인의(仁義)만이 전국시대의 혼란을 바로 잡을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제후들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맹자에는 그런 제후들을 향해 논리를 구축한 언변으로 포기하지 않고 제후들을 설득하는 맹자의 모습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런 맹자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는 장면이 나온다. 제나라에 있을 당시 왕환과 관련된 일화에서였다. 당시 왕환은 제선왕의 총애를 받아 출세가도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의 주된 무기는 아첨이었다. 그런 왕환을 대하는 맹자의 태도가 두 번 언급된다. 하나는 공행자의 장례식에서 만난 경우다. 공행자의 아들이 죽어 치르는 장례식에 왕환이 참석했다. 왕의 총애를 받는 거물이 참석했으니 다른 사람들은 예를 치르는 둥 마는 둥하고 왕환의 자리로 몰려가 눈도장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침 그 자리에 맹자도 있었는데, 그는 공행자에게 장례의 예를 다할 뿐 왕환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등나라의 문상 사절로 가게 되었을 때인데 얄궂게 두 사람이 함께 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왕환이 제대로 예를 차리지 않는 것을 본 맹자는 제나라로 돌아오는 내내 왕환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라의 부강을 바라는 제후들이었으니 맹자의 뜻은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다.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맹자는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제나라에서 보낸 시절이 그랬다. 아첨을 일삼은 신하들이 왕의 총애를 받는 무도한 일을 눈앞에서 보아야 하는 때이기도 했다. 맹자는 왕환과 맞짱을 뜨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았다. 왕환 같은 소인과 맞붙는다고 하여 그를 이길 수 있는 때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저 아무 말 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올곧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만약 왕환과 대적하여 옳으니 그르니 했다면, 그에게 원망을 샀을 뿐이지 않겠는가! 그 원망은 고스란히 제선왕에게 참소로 이어졌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맹자는 다만 아무 말 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때를 기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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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맹자는 제선왕을 통해 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제나라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당시 왕환과 얽혔던 때를 잘 보내지 못했다면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왕에게 아첨하는 신하들로 둘러싸인 궁정에서 아첨하지 않는 맹자는 분명 원망거리를 제공할 확률이 높다. 그런 형국에서 오로지 예를 지키고 섣부른 언사를 경계함으로 곤의 형국을 보낸 것이다. 맹자가 지켰던 제 자리였다. 제후 앞에서 그의 의중에 반하는 주장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위험은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아첨의 무리에게도 원망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은 올곧음을 지켰다. 그래서 별일 없이 고향으로 돌아와 저술활동을 하다 제 명을 다했던 맹자, 이 정도면 곤의 시대를 만나서도 형통한 삶이었다 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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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2019-07-23 15:28

    맹자 어려운 사람이에요. ^^;; 

    저에게는 여전히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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