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바리주역>42.풍뢰익괘-주방에서 익괘의 지혜를 생각하다

기린
2019-06-18 09:06
657

<2019 어리바리 주역>은 이문서당 학인들의 주역 괘 글쓰기 연재물의 제목입니다.

그대로 어리바리한 학인들이 어리바리한 내용으로 글쓰기를 합니다형식도 내용도 문체도 제 각각인 채 말입니다.

하지만 압니까언젠가는 <주역>, 그 심오한 우주의 비의그 단 한 자락이라도 훔칠 수 있을지^^ 

주방에서 익괘의 지혜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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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괘는 위괘 손()괘와 아랫괘 진()괘로 이루어진 형상이다. 손괘는 바람을 나타내고 겸손함이며, 진괘는 우레를 나타내고 움직임이다. 익괘는 더함을 뜻하는데, 바람과 우레가 모두 움직이는 성질로 보아 서로 움직이면서 더해주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익괘의 괘사는 가는 바를 둠이 이로우며 대천을 건넘이 이롭다.”고 풀었다. 간다거나 대천을 건너는 등의 움직임이 일을 해 나가는데 이롭게 더해준다는 것이다. 단전에서는 이러한 형상은 하늘과 땅이 각각 만물을 시작하게 하고 낳아 천하를 유익하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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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괘의 구성으로 보면 위에서 겸손하고 아래에서 움직이면 유익하다. 주역에서는 여섯 개의 효가 각 자리가 있는데 위를 차지하는 것은 군주거나 대신, 나이든 축이다. 아래를 차지하는 자리는 신하거나 백성, 젊은 축이다. 그렇다면 위는 아무래도 부유함이나 귀함에서는 아래보다는 높은 자리라고 볼 수 있다. 익괘에서는 위에 있는 자리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이치를 설파하고 있다. 높은 자리에서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겸손하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날까?

 우선 일을 꾸리는 아랫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자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않는 겸손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윗사람의 위세를 내세우지 않고 아랫사람이 일을 주도할 수 있도록 응해주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고 아랫사람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세심히 일이 진행되어가는 상황을 살펴야 한다. 그러다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 때에 맞춰 나서는 것까지도 겸손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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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랫사람은 과감하게 움직여 일을 추진해야 한다.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육삼의 효사에 의하면 더함을 흉한 일에 쓰면 허물이 없다.”고 했다.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일에 제 마음대로 과감할 수 없다. 하지만 흉사에 이르면 사정이 달라진다. 예고 없이 닥친 흉사를 만났을 때 일의 선후를 가름하여 신속하게 진행하는 과감함이다. 그렇게 하면 상황을 해결하고 윗사람에게 사후 보고를 해도 허물이 없다. 물론 이때 윗사람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 과감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윗사람의 겸손과 아랫사람의 과감한 행동이 동시에 발휘되면 갑작스런 흉사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익괘의 유익함은 흉사가 닥쳐야만 발휘되는 지혜일까? 재해나 불의의 사고 같은 흉사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런 때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때에 맞춰 처신을 하려면 평소에도 겸손이나 과감함에 대한 감각을 익힐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그런 감각을 연마할 수 있는 장은 주방이다. 공부도 하고 밥도 함께 먹는 공동체 밥상을 차리자면 일주일에 총 17명 정도의 밥 당번이 필요하다. 주방의 매니저인 나는 당번이 펑크가 나지 않도록 한 달 전부터 스케줄표를 걸어놓고 신청을 받는다. 중순이 넘어가도 표가 채워지지 않으면 슬슬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떻게 채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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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방 전체를 꿰고 밥상이 차려지도록 일을 만드는 나는 자리로 치면 윗자리에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겸손하게 일에 임해야한다는 의미이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날짜에 가능한 이들을 물색하고 연락을 해서 가능한지 파악한다. 그래도 못 구하면 문탁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카톡에 읍소의 이모티콘을 날리며 도움을 청한다. 그런데 이 과정을 자연스럽게 하는 게 쉽지 않다. 내 예측대로 밥당번표가 착착 채워지기를 바라는 교만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저절로 심기가 불편해진다. 매순간이 예측대로만 되지 않는 변화의 연속이라면 매달의 밥당번도 그 변화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겸손의 감각은 빈 밥당번 스케줄표를 채우면서 너그럽게 대처하는 지혜에서 익혀지는 것이다.

 월말이 될 때마다 밥당번 스케줄표를 보면서 마음이 요동치는 나로써는 익괘의 지혜가 너무 고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밥당번표를 채우기 위해 씨름하는 시간을 반복하다보면, 어느 날 문득 평온한 때가 오겠지 라고 믿고 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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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2019-06-18 23:03

    주방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시는 군요~!!

    왠지 밥당번을 열씨미 채워넣어야할 것 같은 기분이.....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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