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 그리고 장자와 지원!!

문탁
2019-04-29 14:02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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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이 영화를  'just one line'으로 말해보라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압도적으로 아름답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어디가? 혹은 왜? 혹은 어떻게? 라고 묻는다면?
 
음......
버스 승객의 대화를 들으면서 알게 모르게 짓는 미소의 한 순간?
혹은 고단한 금요일 귀가길에서 다람쥐를 만나 몸이 먼저 반응했던 그 찰나의 순간?
아니면 아내의 위로를 들으면서 지었던 쓸쓸하면서도 따뜻한, 그 오묘한 표정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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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잘...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 영화가  '패터슨적 순간' 이라고밖에는 달리 부르기 어려운, 그런 순간/시간들의 반복과 변주를 매우 리드미컬하게 표현하고 있는 아름다운 시네마라고 생각한다.
별볼일 없고 대략난감한 삶 속에서 별볼일 없고 대략난감한 존재들만이 길어올릴 수 있는 삶의 시적인 순간들! 바로 눈물이 날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어떤 시간들 !!
난, 들뢰즈와 장자를 공부하고 있는 <글쓰기강학원> 팀에게 이 영화를 보러 오라고 말했다.  ( 버뜨..아무도 안 왔다. ㅠㅠㅠ...ㅋㅋㅋㅋ)
아마도 나는 이 영화가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이해하는 아주 좋은 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그런 개념을 통해 이 영화를 분석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여기선 들뢰즈가 아니라 장자를 한번 불러와보자. (그래서 이 영화를 지원이가 꼭 봤으면 좋겠다고, 난 생각한다)
<장자>에는 왕태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에피소드가 있다. 그는 한쪽 발이 없는, 별 특별난 구석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삼천 제자를 거느렸다고 일컬어지는 공자보다 더 인기가 높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가르침을 청하고 깨달음을 얻어간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가 가르치는 것이 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말없는 가르침(불언지교)"의 싸나이이다. (이게 바로 지원이가 꽂혀있는 부분^^)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또 애태타라는 인물도 있다. 그는 한쪽 발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온 몸이 뒤틀린,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남자이다. 그리고 그도 왕태처럼 "먼저 나서서 뭔가 주장"하는 게 없고, "단지 맞장구를 칠 뿐"이며,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가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정도인 사람이다. 그런데 모든 여자들(심지어 남자들도)이 그에게 와서 사랑을 갈구한다. 도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영화 속의 패터슨과 그의 부인은 뉴욕 근처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서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패터슨은 패터슨(市)의 버스를 운전하고 그의 아내, 로라는 컵케익을 팔아서 부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컨트리 가수로 성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랑스러운 전업주부이다. 하여 그녀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고 꿈꾸고 색칠하고 배우고 욕망한다.
이에 비해 패터슨은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그는 우체통조차 넘어지지 않게 만들 생각이 없다), 심지어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욕망 같은 게 전혀 없는 인물이다. 그는 다만 세상의 일에 조용히 반응하고, 아내의 말/욕망에 따뜻하게 응수할 뿐이다. 
그런데, 아니 그러자 생기는 매직!! 
"먼저 나서서 뭔가 주장"하는 게 없고, "단지 맞장구를 칠 뿐"이며, "아는 것이라고는 자기가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정도의 사람인 패터슨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詩)가 된다.  매일 반복되는 그의 드라이브도 ('The Run'), 시리얼을 먹으면서 눈길이 간 오하이오 블루 팁(성냥)도('Love Poem'), 아내가 만들어준 파이('Pumpkin')도  시(詩)로 바뀐다. 그의 별볼일 없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삶의 모든 순간들이 아이온(aion)의 시간이 된다. 그리고 화면 밖의 우리는 화면 안의 패터슨에게 전염되고, 위로받고, 시인이 되고 싶어진다. 
 
하여, 그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just one line'은 "차라리 패터슨이 될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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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록 글쓰기 강학원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지만^^  <필름이다 2019>의 두번째 상영회에도 회원들을 중심으로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뿐만 아니라 이 날 오신 분 중에서 세 분이나 새로 회원가입을 해주셨다. 바로  띠우, 여여, 단풍님!! (격하게 환영합니다.^^) 
영화가 끝난 후 <공사일지 4월호>에 실린 청실장의 <패터슨>발제를 시작으로 각자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에 대한 프리토크가 있었다. 청실장은 김혜리 평론가를 인용하면서 (그는 패터슨을 '통근하는 시인'으로, 로라를 '재0종합예술가'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 각자는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어떤 삶을 창안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산새회원은 패터슨을 보면서 내내 주역 생각이 났다고 했다. 영화가 패터슨에게 초점을 맞추는 만큼이나 같은 정도로 로라에게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둥글레회원의 소감도 있었다.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시달렸다는 (그래서 <퇴근길 인문학>도 결석했다는) 단풍님은, 이 영화에서 진정한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한편, 두번째 보는 거구, 약간 졸기도 했다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게으르니의 소소한 고백도 있었다.ㅋㅋㅋ 
 
영화만큼이나 영화를 텍스트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필름이다> 영화후 토크'는, 언제나 좋~~~~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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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필름이다 2019>에서는 매달 <공사일지>가 발간된다. (혹시 아는가? 이걸 1호부터 잘 모아놓은 사람이 언젠가 이걸로 엄청난 행운아가 될지? 그러니 잘 보관하시도록^^)
이번달 <공사일지>에는 청실장의 미스테리 꽁트(제목은 '살인에 대한 적합한 이해'이다)가 실려있고, <추억의 부스러기>코너에서는 달팽이 회원이 추천한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영화가 소개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너무 사랑하는 영화, <다가오는 것들>!! 혹시 아직도 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챙겨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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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지적인 철학교사 '나탈리'
갑자기 한꺼번에 들이닥친 삶의 총체적 위기.
그렇게 다가오는 것들을 품위있게 맞이하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여정을 그린 영화.
크게 흔들린 지평에서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그 발걸음이 눈을 뗄 수 없게 합니다." (달팽이)
 
댓글 11
  • 2019-04-29 14:44

    피에쑤 1 : 재태...ㄱ....이 우리 홈페이지 금지어래요. 그래서 본문에는 재O종합예술가라고 '태..ㄱ' 대신에 동그라미 넣었어요.


    피에쑤 2: 공식 프리토크 이후에 벌어지는 '술판'은 <필름이다>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크하핫...

  • 2019-04-29 15:00

    ㅋㅋㅋ 짐 자무쉬의 영화를 보면서 켄 로치를 떠올렸던 것은 이제는 관성화된 나의 습관의 발로일까요?

    아니면.... 패터슨의 너무나 평온한(그러나 비밀노트가 사라진 이후에 비친.... 미세한 균열) 표정에서 

    느낀 질투 때문일까요? ㅋㅋㅋ

    여튼^^ 5월의 영화는 쫌만... 켄 로치적으로... 추를 옮긴 영화를 보고 싶은 회원의 마음을 전하며^^

    매월 하루... 파지사유에서 필름이다 상영작을 보면서 늙어가는 시간도

    나름 '패터슨'적 이라고 뜬금없이 우기며^^

    5월의 시간을 흘러보겠습니다~~~

  • 2019-04-29 15:18

    페터슨하면...멍게 알탕 컵라면이 떠오르네요

    사랑시입니다^^

  • 2019-04-29 18:59

    내친김에 '다가오늘 것들' 까지 봤습니다. 

    주인공의 서재겸 거실이 이런 저런 일상을 담고 켜켜이 시간을 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패터슨과 닮은 영화였어요~

    패터슨을 보고 나의 일상과 루틴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 2019-04-30 11:55

    예전 히말님이 스피노자 세미나 때 에세이로 쓰셨던 그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

    주말에 한 번 봐야겠습니다..!

    • 2019-05-01 11:01

      패터슨 아닐걸?  작년에 개봉한 영화임.

    • 2019-05-01 14:24

      스피노자가 아니라 돈인문학 메모 때 소재로 썼던 영화^^

  • 2019-04-30 12:50

    나는 영화가 왜 싫지?라는 고민과

    나는 왜 '도시 어부'와 '한국 기행'만 보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패터슨과 다가오는 것들을 곧! 다 봐야겠어요.

    • 2019-05-01 09:24

      도시어부...래....ㅋㅋㅋㅋㅋ

  • 2019-05-01 10:59

    후기를 부탁하는 청량리의 강력한 눈 레이저를 슬쩍 피했지만 부담은 가지고 있었는데 문탁샘이 참지 못하고 후기를 써주셨으니 감사합니다.ㅎㅎ 

    독립영화라곤 1도 안봤던 제가 참 필름이다의 덕을 많이 봅니다. SF영화가 아니면 영화로 쳐주지 않는 사람과 살다 보니 <로마>나 <패터슨>같은 영화는 만나기 어려웠어요. 또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사실 기억에 잘 남지 않더라구요...

    <패터슨>을 보는 내내 저는 <맹자>나 <주역>같은 고전이 자꾸 떠올랐어요. 왜 그랬을까...패터슨을 보면서 자꾸 안회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의 시작노트는 그 자신을 드러내는 어쩌면 유일한 매체일지도 모르는데, 그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마빈을 조용히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리죠."마빈, 나는 네가 밉다" 그게 끝이었어요.  안회를 말할 때 공자님은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했다지요.  어느 구절에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나하고는 다른 인간, 패터슨과 안회가 확 겹치더군요...그러고 보니 문탁샘 말처럼 왕태도 애태타도 비슷한 인물이네요. 자기는 그저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할 뿐인데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고 사랑받고 싶어합니다.....끝없이 어떤 것이 되기 위해 매일매일을 새롭게 사는 로라와 대비되면서 더욱 그의 일상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2019-05-02 23:39

      아, 후기 감사합니다. ^_^

      봄날님 덕분에 좀 더 힘을 내서 좋은 영화 상영하도록 할께요.

      필름이다에서는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물론 SF영화도 사랑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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