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월 특별전_영화로 던질 수 있는 질문이란?

청실장
2019-03-05 04:46
400

스스로 영화보기를 '무초'(=무척)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문탁샘이 옆구리를 찔러 이 후기를 쓰는 데 한참이 걸렸다.

컴터를 켜고 폴더의 영화들이나 유튜브의 영화들,

아니면 예고편이나 영상들을 서핑하고 오느라 늦었기 때문이다.

영화로 얻는 즐거움은 각자 크거나 작거나 다르겠지만,

문득 그 순간의 즐거움 이외에 영화로 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영화로 무슨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문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로 공부를 하려면

난 그 영화로 무언가에 대한 질문을 갖고 있어야만 할 거 같았다.

그저 재밌다는 이유로만 보기에는 지나고 나면 흔적없이 사라질 거 같았다.


03.png

영화<그래비티> 중에서

영화 로마는 그 전작에 비해 너무 조용했다.

광활한 우주와 세기말적인 암흑을 지나 카메라는 멕시코의 한 도시로 향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잡은 탓이었을까.

너무나 정적이고 긴 롱테이크 신이 많아 지루했을 법도 했다.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켤 수 없었다.

영화는 감독과 주연배우만이 만드는 게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엔딩크레딧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설령 '행인3'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영화 속 남자들은 죄다 찌질하거나 마초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하다.

중산층 가정의 남편은 바람나서 집을 나가버리고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안 마초는 그길로 도망간다.

엄청난 능력을 소유했다고 생각한 교수의 모습은 우스꽝 스럽기만 하다.

그나마 칼갈이 아저씨의 새소리 피리만이 여운으로 남을 뿐이다.

전작들을 포함 영화 로마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소피아(중산층 백인주부)와 클레오(멕시코 원주민 가정부)가 연대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02.jpg

영화<칠드런 오브 맨> 중에서

클레오는 두려운 마음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소피아에게 말한다.

혹시 제가 해고 당하나요?

하지만 소피아는 클레오를 안아주면서 산부인과에서 같이 동행한다.

소피아의 남편도 이미 바람나서 집에 안 온지 반년이 넘어가고

어느날 결국 여자는 다 혼자라는 말을 클레오에게 흘린다.

결국 남편이 바람난 사실을 숨기고 있던 소피아는

클레오와 아이들 앞에서 사실 휴양 온게 아니라

남편의 짐을 빼기 위해 시간을 비워준 거라 말한다.

한바탕 파도가 휩쓸고 지난 간 자리에 남는 건

빨래를 하러 옥상으로 올라는 클레오의 뒷모습과

뜻없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그리고 칼갈이 아저씨의 새피리 소리가 가득한 마당이다.

다시 일상이다.

엔딩 크레딧의 마지막에 샨티(shantih), 샨티, 샨티 라는 자막과 함께 종소리로 끝맺는다.

샨티는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일상에 평화가 깃들어 있다.


01.JPG

영화 <로마> 중에서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이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문명을 비판한  '황무지'라는 시에도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시에 마지막 다섯 번째 부분은 '천둥이 한 말'이 있다.

천둥이 한 번씩 쾅(da), 쾅(da), 쾅(da) 울릴 때마다,

다타(Datta), 다야드밤(Dayadhvam), 담야타(Damyata)를 외친다.

각각 산스크리트어로 Give, Sympathize, Control에 해당하는 말이다.

베풀고, 공감하고, 자제하는 것.

다다. 다야드밤. 담야타.
샨티 샨티 샨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던진 질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엘리엇의 시에서 그 답을 찾은 듯 하다.

남자가 든 창이 아니라 클레오가 든 빨래 속에서 찾아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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