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별건가>마지막회

새털
2020-08-05 08:14
334

내 사랑이 그렇게 깊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7월에는 7번의 음주를 했다. 함백산장으로 걷기캠프 답사를 다녀왔고, 통영으로 휴가를 갔다왔고, 남편의 생일이 있었고, 양생프로젝트 에세이발표가 있었고, 둥글레가 출판 계약을 했다. 행사와 기념일과 축하해야 할 일들에 음주가 뒤따랐다. 그리고 날씨가 더웠던 어느 날 문탁에서 캔맥주 하나면 얼굴이 벌개지는 여울아와 함께 캔맥주 하나와 새우깡을 마셨고, 칸트 강좌 있던 저녁 쏟아지는 비를 뚫고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이렇게 음주에 관한 리포트를 쓰고 있으면, 음주와 함께 한달 동안 어찌 살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7월에 느낌은.......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갔지? 라는 당혹감이다. 이런저런 행사와 일들이 많았으니 시간이 빨리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일 테지만, 쌩하고 지나가버린 시간에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아!  운전속도를 줄여보자!!

 

 

 

 

  "나는 야식을 줄이고 싶지만, 맛있는 술자리를 줄이고 싶지는 않다. 아니 건성건성 마시는, 맛도 모르고 마시는 술자리는 피하고 싶다. 일단 재미가 없고, 뇌가 제정신이 아니라 다음날 기분이 안 좋다. 쓰고 보니 건성건성 대충 먹는 야식이 아니라 맛있는 술을 야무지게 마시는 미션이 된 것 같고, 그래서 뱃살을 줄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내 방식의 '양생'을 시작해본다. 일기 쓰듯 야식과 음주를 기록하고, 매월 한 번씩 보고하겠음." 

 

  지난 3월 이런 포부와 함께 시작된 음주리포트는 7월로 끝을 맞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한 달에 얼마나 술을 마시는지 궁금했다. 횟수가 궁금했고, 아마도 횟수를 체크하는 일이 음주를 줄이는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횟수'를  줄이고 싶을 뿐이지, 음주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음주에 대해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건강에 나쁘고, 인간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 중독에 이를 수도 있다고 음주의 위험에 대해 경고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음주'뿐일까? 우리가 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한 한계점을 갖고 있고, 또 그 나름의 효용도 갖고 있다. 운동, 등산, 독서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까 포인트는 이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조절하며 잘 사용할 것인가에 있는 것 같다. 자기배려의 기술이랄까? 양생술이랄까?

 

  기록을 해나가는 일은 생각지도 않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한 달에 몇 번 술을 마시나, 나는 어떤 술자리를 좋아하는가, 무엇으로 술자리의 좋고 나쁨을 나눌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면서, 나의 질문은 방향이 바뀌었다. "......이게 정말 좋은 것일까?" 나는 왜 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현실의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완과 해방감이 좋았고, 그런 분위기 속에 오고가는 경계없는 말들이 좋았고, 그런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공모의식과 동료애'가 좋았다. 말로 다 설명되지 못하는 느낌을 주고받는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말을 불신하는 측면이 있다. 말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 하는. 

 

  그런데 그런 느낌을 주는 술자리는 극히 드물다. 혹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위해 빈도를 높여가야 '그날'을 맞이할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그 기회비용이 이제는 좀 부담스럽다. 시간도 많이 들고 체력 소모가 심하다. 비슷비슷한 말들과 비슷비슷한 느낌을 반복하는 술자리에 대해 이젠 '좋다'고 말하기 힘들게 되었다. "아.....이건 지난 번과 비슷한데." 아마도 다음 술자리도 별반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슬픈 예감이 든다. 음주 꿈나무인 큰딸에게 이런 나의 소회를 말했더니 "음......엄마가 늙어서 그래."라고 패기 있게 논평한다. 그렇구나!! 너무 많은 술병을 따버려서......이제 내겐 맛있는 술병이 남아있지 않구나! 

 

  "술잔 위로 흐릿하게 피어오르는 훈김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놓인다. 하물며 두 볼이 에이도록 거센 겨울바람을 맞은 뒤라면 더더욱, 데운 술만큼 반가운 것이 없다. 그대로 잔을 들어 단번에 술잔을 비운다. 뭉근한 단맛이 느껴지는 후끈후끈한 술이 입안을 채웠다가 온몸으로 부드럽게 퍼져나간다. 이렇게 다정한 존재가 또 어디에 있을까. 누가 이토록 내 마음을 잘 알아줄까." (은모든의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의 한 부분에서)

 

  기록하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내가 이런 냉정한 진실과 얼굴을 맞대면하는 날이 왔다. 술에 대한 내 사랑이 그렇게 깊지 않음을 인정하게 했다. 지겹지 않을 줄 알았는데......지겹지 않다고 말하기 힘든 순간이 왔다. 잘가라! 한때의 내 애착이여~

 

                                                                                                

 

 

 

 

댓글 5
  • 2020-08-05 08:39

    이 동영상 하나를 건지기 위해 새털의 <양생이 별건가>는 지난 6개월, 그렇게도 많은 술/음식 사진을 찍었나보오!!! ㅋ

    (주인공 둘이 아니라 "잘 들 놀고 있네"라는 속마음이 묻어나는 지영의 웃음소리와......모시라 모시라...계속 떠드시는 지영아빠땜시...난 더 낄낄빠빠했음^^)

  • 2020-08-05 08:59

    아, 그랬구나... 음주 횟수 기록 중인 거 몰랐어요. 멋도 모르고 일곱 번의 횟수에 두 번이나 유혹을 했네요.

  • 2020-08-05 16:40

    아...나도 술먹고 저러는 동영상 많은데...ㅠ
    나도 횟수를 세고 나면
    내 사랑의 깊이를 알게될까요?
    갑자기 “사랑했지만”이란 노래가 떠오르네요
    새털의 사랑이 떠나려 하니 ...왜 내가 이리 맘이 아플까요~ㅠ 맘이 아퐈 한잔하고픈 날이네요

  • 2020-08-06 16:21

    난 늘 술 안좋아하는데 마실 일이 많았서 괴로웠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요사이 독주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딱 몇 잔의 독주가 어떤 음식을 먹을 땐 꼭 생각나요 ^^

    새털이 날 보며 술 안좋아하는 애랑은 안 통한다며 뭐라뭐라했는데..ㅋㅋ
    헤어스탈 바뀐 소영이를 보는 즐거움도 있네요~
    (좋겠다!!! 딸있어서~~ -.-)

  • 2020-08-06 21:13

    동영상은 삭제합니다.
    유튜브에 올려놓기엔 거시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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