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평180 세 번째 후기 - 탈식민은 현재진행형

오영
2021-10-10 22:17
247

이번 주에는 김종철 선생의 1주기를 기념하는 글 두 개와 ‘민중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기획 연재를 읽고 이야기 나누었다.

그 중 <김종철과 프란츠 파농의 탈식민주의>가 인상적이었다.  이 글에서 정희진은 <녹색평론>을 창간할 무렵 김종철 선생에게 중요한 사상적 도약의 계기를 제공한 파농과의 관련성을 통해 ‘김종철 이후의 문학’에 대해 말한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화는 많이 낯설다. 그나마 경험을 했던 우리 부모 세대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이지만 ‘김종철 이후’ 혹은 김종철에 대한 해석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김종철 이후’ 문학은 바로 지금 우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희진은 우선 ‘포스트’의 의미를 되짚는다. ‘포스트’를 시간적 연대 개념이 아니라 인식 주체의 위치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주관성을 보편성으로 만든 백인 남성의 입장이 ‘모던’이라면, 다른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일 수밖에 없고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이, 남성 중심의 입장에서는 여성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포스트’는 ‘이후’가 아니라 더이상 기존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파농이나 김종철이 지향한 탈식민은 식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식민주의의 연장이자 후유증을 뜻한다. 파농에 따르면, 식민주의의 정의 중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지배자가 규정하는 체제에서 정신분열을 일으키는 상태다. 나를 ‘동성애자’, ‘여성’, ‘유색인종’이라고 지칭하는 너는 누구인가? 이 호명을 의심하고 거부할 때 기존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기 찾기’는 과정이자 도구이지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사회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고 이러한 질문을 던진 소수의 작가들을 의도적으로 잊었다. 우리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자들의 입을 막고  대신 피식민자, 제국주의의 피해자로서의 도덕성을 호소하는 동시에 민족적 우월주의를 내세웠으며 서구 발전 담론을 답습하는 데 골몰했다. 그동안 우리만의 새로운 언어를 구성할 기회도, 힘도 잃어 버렸다. 김종철은 그 과정에서 파헤쳐진 자연과 농촌을 고통스럽게 지켜보았던 외로운 지식인이자 혁명가였다.

식민주의 후유증, 여파는 여전히 강력하다. 이것이 파농과 김종철의 해방투쟁이 식민주의가 계속되는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정희진은 ‘김종철 이후’의 문학이 외롭고 방황하는 이들을 조직하는 일이 되기를 희망한다. 주류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한 이들은 늘 외롭고 우울하며 방황할 수밖에 없다. 발전담론에서 소외된 많은 사람들. 지식인은 없고 발전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사회에서 우울증과 자살률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무척 슬프고 암담한 일이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희망의 여지가 아주 없지는 않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를 때, 살아야 할 이유가 하등 없어 보이는 순간, 문득 질문하게 된다. 당연하다고 여긴 전제들이 정말 그러한가 묻게 된다. 그럴 때 혹 <녹색평론>이라는 발신자로부터 초대장이 날아온다면 ? ‘오징어게임’에 참여하는 대신 지금까지 없던 길을 내는 ‘공생공락의 가난한 사회’에 참여하는 편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요즘 핫하다는 오징어 게임의 주제가 정희진이 이 글의 말미에 인용한 백석의 시와 닿아 있다면 (드라마를 안 봐서 모르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을 듯 싶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 <흰 바람 벽이 있어> 중에서

댓글 1
  • 2021-10-11 09:56

    꽤 오래 녹평을 못읽었는데, 후기 읽으니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찾아서 읽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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