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부루쓰 5] K에게

히말라야
2019-06-11 12:44
630

1


“히말라야! 잘 만났다. 너 외상값 갚아라.”

“앗, 어떡하죠? 지금 돈을 못 찾아왔어요. 다음에 드릴께요.”


문탁에 정을 붙이고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할 즈음에, 각박한 이 세상과 달리 아직도 외상으로 뭐든 살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나는 이런 저런 것들을 외상으로 집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외상값 갚으라 말하기 시작하던, 문탁에 오면 늘 만나게 되는 K가, 나는 탐탁치 않았다.

게으른 내 지갑 속에는 돈이 없을 때가 많았다. 어쩌다 돈이 있는 날이 아닌 자주 공교롭게도(?) 돈이 없을 때마다 나는 K와 마주쳤고, 그 때마다 그는 내게 외상값에 대해 말하기를 잊지 않았다. 나는 외상은 반가웠지만, 외상값은,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정말 이렇게 쉽게 외상을 해도되는가는 의심하지 않았지만, 나를 볼 때마다 외상값을 떠올리는 K에 대해서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외상값으로 보이나?’ ‘자본가 마인드는 아닌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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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게 남몰래 K에 대한 미움을 키워나가던 나는 어느덧 파지사유 큐레이터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K처럼 다른 이들에게 외상값을 받아야하는 처지에 놓였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작년까지 함께 큐레이터를 하던 D가 외상값 정리를 하고 외상값 독촉을 할 때, 나는 종종 그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지 모르지만, 같은 큐레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난 그게 내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올해 D를 대신해 회계를 맡게되면서, 나는 ‘외상’이 매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너~어~무 깜짝 놀랐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뱉을 친구들의 욕지거리가 들리는 듯하다 , 아이고 귀야~^^) 돈들여 만들어 놓은 물건은 사라졌는데, 아직 그 물건 값은 들어오지 않았으니, 외상이 매출이 아니라는 사실은, 사실 너무나 당연하다. 다만 내가 외상을 가져가기만 했지, 한번도 외상을 주는 입장인 적이 없었을 뿐이다. 외상으로 뭔가를 사갈 때 안 갚겠다 결심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외상을 쓰면서 나는 그의 비용이 아니라 당연히 매출을 올려준다고만 생각했었다.

갚을 때 되면 알아서 어련히 잘 갚을 텐데, 외상값 빨리 갚으라고 말하며 나를 채무자 취급하는 K가 미운 만큼, 나는 다른 이들에게 외상값 갚으라는 말을 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다들 갚을 만할 때, 잘 알아서 갚겠거니. 그런데 웬걸! 내 딴엔 외상장부를 계산대 앞에 잘 보이게 붙여놨다 싶었지만, 언제나 바쁜 친구들은, 돈을 들고도 그 앞을 총총총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회계를 맡고 외상을 못 받은 채 시간이 점점 흘러갈수록, 내 이마의 식은 땀도 점점 더 많이 흘러내렸다. 그 식은 땀을 닦다보니, 내 이마 속에서 어떤 작은 술집에 대한 추억이 비어져 나왔다.




3


날이 좋아서 혹은 비가 오니까, 기분이 좋아서 혹은 꿀꿀해서, 할 일이 없어서 아니면 너무 바쁘니까. 이런 온갖 핑게로 친구 몇몇과 거의 매일 찾던 작은 술집이 있었다. 술을 마셔야 하는 핑겟거리는 많았지만, 우리가 그 집으로 향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그 곳에서는 돈이 없어도 학생증만 내밀면 언제라도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언니’ ‘누나’라 부르던 맘 좋고 말이 없던 젊은 주인은, 돈 없는 우리가 배고플까봐 시키지도 않은 안주를 그냥 내주기도 했었다.

커다란 뿔테 안경에 약간 긴 단발 머리를 하고 언제나 수수한 얼굴과 옷차림이었던, 술집 주인 답지 않은 외양의 그가, 우리에게 외상값을 독촉했던 기억은 전혀 없다. 외상을 갚지 않아도 언제나 또 다시 외상을 주던 그 집은, 그러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당시에는 그저 아쉬워 할 뿐이었는데, 이제 내가 외상값을 못받아 식은 땀을 흘리는 처지에 이르자, 혹시 내가 외상값을 갚지 않아서 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때늦은 죄책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계속해서 이렇게 외상값을 못 받으면 파지사유는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움으로 떨기 시작했다. 파지사유의 매출이 내 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돈이 아닌 것도 아니지 않은가? 외상값을 안 받는다고 파지사유가 망하지는 않겠지만, 외상값을 안 내도 되는 곳으로 알려지면, 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 식은 땀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외상값을 어떻게 받는 게 좋을지 몇몇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냥 그 사람한테, 너 외상값 얼마니까 갚아라 말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

“사람들이 바빠서 자꾸 잊어버리니깐 니가 얼만지 계산해서 알려주면 오히려 고마워하지.”


사람들이 아무 문제없다고 알려주는 방식은 익히 내가 알던 K의 방식이었다. K가 외상값을 받는 방식은,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고맙기까지한 K식 외상값 독촉이 왜 내게만 이리도 불편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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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딱 봐도 못 생긴 마녀가 매일매일 거울을 향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 것처럼, 딱 봐도 없는 집 딸이었던 나는 거울을 향해 매일매일 ‘있어 보이나?’ 물으며 살았다. 그러나 수업료 납부마감일이 다가와 “언제 낼거냐?”는 독촉을 받으면, 내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나의 ‘없음’을 확인하곤 했다.

내가 외상값 앞에서 쩔쩔매는 건 어쩌면 이런 일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저 내 성격이 극도로 소심하고 예민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론 외상값에 대해 듣거나 말하는 순간마다, 가난을 확인받던 지난 순간들이 무의식적으로 오버랩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자기의 역사와 삶의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 법이니까.

더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고, 다르게 살고 싶어서 아직 공동체에 남아 공부를 한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어려운 공부를 하고 안 해본 활동을 한다고해서, 나라는 한 인간이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런 사소한 순간들에 느껴지는 불편함을 통해 확인할 때면 나는 절망한다. 과연 나의 이 ‘작은 완전성’이  ‘큰 완전성’으로 변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만약 인간도 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가 만들어 놓은 세계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완전히 절망할 수도 없다. 외상값을 달라는 K가 불편한 원인은 K가 아닌, 내 안에 있었다. 그러니 나는 K를 의심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의심해야 했다. 타자와의 부딪힘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어쩌면, 언제나 변화 중인 내가, 지나 온 시간 속에서 이미 견고해진 내 안의 세계와 부딪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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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외상값 달란 소리가 거슬리던 망할놈의 귀를 자르지는 못하고, 나는 부루쓰나 쓰고 앉아있다 ㅠㅜ)




5


누군가에게서 외상값을 떠올리면서도 그 사람을 단지 외상값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는 것은 내겐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다행히도, '시'라는 것이 있다는 걸 기억해냈다.


“외상장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가난을 들킨 내가 당황해 서 있고

망해버린 술집 여주인의 선한 얼굴이 있고

너 잘 만났으니 외상값 내 놓으라는 K의 얼굴이,

추억처럼 있습니다.”  (윤동주의 「자화상」 표절, 시를 쓰지는 못하고 표절이나 하고 앉아있다...ㅠㅜ)


사랑해요, K!! ^^


댓글 5
  • 2019-06-11 23:28

    K도 처음부터 외상값을 잘 받진 못했다.

    늘 절절 맸다. 

    그래서 Y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보다 못한 Y가 큰 외상값을 받아주기도 했다.

    K는 그래서 가끔 외상값 정리를 하지 않고 몇 달 몰아 하기도 했다.

    정말 외상값 정리하고 쓰고 붙이고 말하는 건 어렵고 싫은 일이었다.

    H! 화이팅~!

  • 2019-06-12 11:09

    표절시 ᆢ넘 조아요 ^^

  • 2019-06-13 00:35

    돈달라고 하는건

    외상값이든

    밀린 임금이든

    빌려준 돈조차도 

    편하진 않죠.

    그런데 뭐 쉬운게 있나요

  • 2019-06-13 07:00

    어제.

    히말: 쌤! 5월 파지외상값 48,500원 있으셔요~~ 음료와 다른이십대 3권값입니다~~

             입금하시려면    000000000000000000000000  요기로 부탁드려용~^^

    문탁: 다른이십대는 내 이름으로 되어 있어? 그거 뭐지?

    히말:

       1234.jpg 

      쌤 필체인데요 ㅎㅎ

    문탁 : 위의 글씨는 내 필체가 아니지만...기억이 나고, 아래 글씨는 내 필체인데..기억이 안 나네...ㅋㅋㅋ..

    외상값을 받는 것은, 결코, 쉽....지....않다!!  히말 홧팅!!!!

  • 2019-06-13 19:06

    딱 내 이야기네요.

    외상값도 기억이 나야 값지 빌린 것 도 빌려 준 것도 기억이...

    기억 날 때는 꼬옥 돈이 없을 때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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