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는 우회하지 않는다-두 가지 반복과 모나드

여울아
2022-04-01 16:03
432

철학학교 시작할 때 첫 시간에 읽었던 들뢰즈의 제자 우노 구니이치가 <유동의 철학>에서 "들뢰즈는 우회하지 않고 간명하다."고 스승의 글쓰기를 표현하는 문장이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들뢰즈의 책 읽기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간직하고 다시 되새김질하고 싶은 한 마디예요. 

 

저는 오늘 후기에서 5절에서 동일성의 반복과 차이를 발생시키는 이념 과잉의 반복, 이 두 가지를  대칭에 대한 도형연구에 집중해서 대비해보고 싶구요. 

 

다른 하나는  6절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왜 개념적 차이와 개념 없는 차이에서 들뢰즈가 얘기하고 있는지... 마찬가지로 책의 문구를 탐구해보겠습니다.  

 

5절 도형의 대칭 연구는 세션님 파트였지요? 주석의 Matila Ghyka를 찾아보라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저는 찾아보지도 않았어요. Le nombre d'or 책 이름은 불어였는데, 그냥 영어처럼 놈브레? 숫자인가? 했지요. 헌데, 짜잔~ 황금비율이라는 말이더군요. 육각형의 황금비율을 저자가 말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알 수 없죠.  대신 책 표지에서 들뢰즈가 말하고 있는 육각형의 등차적 대칭, 정태적 대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짝 눈치챌 수 있더군요. 책 가운데 있는 육각형을 확대했어요(아래 사진). 왜냐하면 우리 책 주석 42번의 오각형 별모양과 무엇이 다른지를 보자마자 알 수 있더군요. 보이시나요? 대칭 중앙에 자리잡은 교차점. 이와 달리 오각형 별모양(주석 42)은 등비적으로 무한히 작은 크기의 오각형 별모양을 형성합니다. 육각형 별모양은 중심이 있고, 이 중심으로 선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어요. 오각형 별모양은 이에 비해 탈중심적이고 발산적인 선들이죠. 그렇군요. 이것이 머리말에서 얘기한 것이군요. "차이가 부단한 탈중심화와 발산의 운동이라면, 반복에서 일어나는 전치와 위장은 그 두 운동과 밀접한 상응관계에 놓여있다(17p)"

 

들뢰즈는 대칭에도 두 가지 종류의 반복이 있다는 것을 이 예들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육각형의 정태적 대칭이고 다른 하나는 오각형의 역동적인 대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둘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육각형의 중심부에서 오각형의 역동적 대칭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육각형에서 어떤 역동을 발견하란 말인가... 흐음. 여자의 얼굴에서 황금비율을 찾고 있는 그(녀)의 책에서 발견한 또다른 육각형입니다. 점선모양으로 오각형이 보이시나요? 그렇다면 오각형의 별모양이 그려질 수 있겠군요.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오각형의 별모양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뼈대의 절단이나 주된 리듬은 거의 언제나 이 그물과 무관한 주제이다." 이제 우리는 이 표현을 해석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작도시간에 혹은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에 오각형이든 육각형이든 어떻게 그렸었는지를 떠올려 봅니다. 그물은 점, 선, 면을 통합적으로 작도해서 오각형이나 육각형의 얼기설기 얽힌 통합적인 형태가 그물이 아닐까요?  작도를 하는 과정에서 콤파스가 훓고 지나고 교차하고 그 자리에 점을 찍고 하는 과정은 절단과 리듬일테구요. 대칭적 성격을 띤 육각형도 발생원리상으로는 이런 비대칭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쫌 다른 얘긴데요. 왜 사람들은 별을 별모양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러니까 실제 별은 별모양으로 반짝이지 않잖아요. ㅎㅎ

 

그 이유는 정오각형의 별모양을 황금비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으로 보는 직사각형이 있고,(신용카드 크기가 그 비율 아닐까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8등신 황금비율이 있고... 또 피보나치의 수열은 황금비율의 나선형 모양 등등. 

 

그렇다면 "등비수열적 파동"(66p)이란 어떤 모양일까요? 저는 수업시간에는 등비수열이라는 단어만 보고 등차수열이 선형적이고 등비수열은 로그함수와 같이 급격히 커지는 수들의 조합으로 비대칭이라고 얘기했는데요. 

 

이것을 파동의 관점으로 다시 살펴보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각 악기들은 일정한 규칙적 반복을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음악으로 들릴 때는 등비수열적 파동, 즉 동일성을 반복하는 지루한 음악이 아니라 이념의 과잉으로 인한 차이가 발생하는 반복의 음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각각의 진동은 일정하고 규칙적이지만 이것의 합(sum)은 어메이징한 것이죠. 이것을 등비수열적 파동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정태적 반복 안에도 역동적 반복이 숨어있구요. 역동적 반복 안에도 정태적 반복이 숨어 있는 셈입니다^^

 

이외에도 리듬의 역동성을 보여주시려고 강약을 넣어서 허밍해주신 가마솥님, 언어의 죽음과 봉쇄에 관해 얘기해주신 아렘님, 벌어진 틈안에서 피조물들은 언제나 반복을 직조해가며 삶과 죽음을 선물받는다는 문장을 다시 되새겨주신 한스님, 기호를 수영에 빗대어 수영이란 물결의 기호를 내 신체의 특이점에 맞게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신 요요님, 그리고 반복과 봉쇄와 차이의 관계에 대한 세션님의 질문도 염두에 두고 다음으로 나아가 봅니다. 

 

"이 두가지 반복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하나는 독특한 주체이고, 다른 하나의 심장이자 내부이며, 또한 그것의 깊이다. 다른 하나는 단지 겉봉투, 추상적 결과일 뿐이다. 비대칭적 반복은 대칭적 총체나 효과들 안으로 숨어든다. 특이점들의 반복은 평범한 점들의 반복 아래에서 일어난다. 도처에서 다름은 같음의 반복 안에서 발생한다. 이것이 가장 심층적인 비밀스러운 반복이다. 오직 이 반복만이 또 다른 반복의 이유를, 개념들이 봉쇄되는 이유를 제공한다."

 

이제 6절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을 얘기하려 합니다. 책의 소제목은 개념적 차이와 개념 없는 차이입니다. 그런데 왜 저는 모나드론이라고 확신하냐구요. 우리의 튜터 정군님이 주름잡힌 모나드를 얘기해주신 게 힌트가 되어서 <형이상학논고>에서 모나드 부분을 일부 살펴봤습니다. 그러자 우리책 78p~80p 사이 내용이 다시 들어오더군요. 

 

먼저 헤겔은 라이프니츠를 비웃었죠. 야, 모나드가 모냐, 우스꽝스럽게!! 궁정의 여인들에게 똑같은 나뭇잎을 찾으라고 말하고서 이걸로 형이상학을 검증하겠다는 거야? 이 개념 없는 놈 같으니라구!  

 

헤겔의 딴지에 대해 라이프니츠는 똑같은 나뭇잎은 없는 게 사실이잖아! 라고 답합니다. 그래, 뭔가 내적 차이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개념적이지 않을 수 있지. 저는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에 대한 들뢰즈의 답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이프니츠의 또 다른 논문 <동역학적 시점>이라는 책의 주석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직선 운동을 얘기했다면 라이프니츠의 운동은 변화무쌍한 운동이야. 이것을 책에서는 순간 운동량, 순간 변화량... 결과적으로 미분방정식이 구하고자 하는 답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여기서의 동역학적 공간은 등속운동을 하는 공간입니다. 여전히 뉴턴의 역학이지만, 운동과 변화량에 방점을 둔 표현인 셈이지요. 이런 변화를 보이는 연속적인 반복(점들의 연속체)에는 어떤 내적 차이들이 있다는 것이죠.

 

그 이후 문단에는 칸트와 라이프니츠를 대립시키고 있는데요. 칸트의 지성과 도식이 아니라 라이프니츠의 강도량과 이념들에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를 무한 분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는 군요. 그래서 주름잡힌 모나드는 무한히 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모나드의 성격 때문에 연속적 반복이 가능하고, 또 이들 연속체의 종합이란 모나드의 (사각형)면적을 작게 무한히 반복하면 곡선의 면적을 구할 수 있는 적분, 즉 그 안쪽 공간이 생겨납니다. (80p)

 

자, 그렇다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개념 없는 차이라는 걸까요? 아닙니다. 들뢰즈는 너무 기준이 높습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내적 차이를 발생시킴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가 내생적이거나 개념적이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모나드들끼리의 내적 차이가 개념적이지 않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모나드들의 무한한 종합으로 내적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 그러나 라이프니츠 역시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처럼 차이를 개념 안에 봉쇄시킴으로써 차이의 독특한 이념은 묻혀버리고, 기계적 반복에 머물렀다고 비판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읽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들뢰즈는 우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겠습니다. 

댓글 5
  • 2022-04-03 21:56

    세션샘과 여울아샘 덕분에 그 '오각형'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것 같)았(다)고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에서 들뢰즈가  "세계는 무한히 많은 점에서 무한히 많은 곡선과 접하는 무한한 곡선, 유일한 변수를 갖는 곡선, 모든 계열들이 수렴하는 계열이다"(50쪽)라는 말을 하는군요. 지금까지 읽은 <차이와 반복> 서론에 비춰 읽어보면 어느 정도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점점 라이프니츠를 어떤 식으로든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요컨대 <차이와 반복>에서 '차이'가 '비개념적'이고 '내생적인 차이'를 의미한다면, 그 차이 개념은 라이프니츠의 다양한 차이들을 함축하는 개체(이자 실체)로서 '모나드'에 빚지고 있는 바가 아주 많은 듯 합니다....(들만철이 아니라 <형이상학 논고>로 번개를 했어야 했나...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난 주엔 프로이트, 이번주엔 라이프니츠... 거참... 이 선생님의 박학함에 이끌려 우리가 읽어야할 것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으니... 이걸 좋은 거라고 해야겠...져? 더불어... '후기'가 점점 보충수업이 되어가는 이 느낌적인 느낌...이것도 좋은 것이겠죠? ㅎㅎㅎ

  • 2022-04-03 21:57

    서문에 잠깐 언급된 가브리엘 타르드 선생님이 궁금해서 그새 책을 사서 좀 읽어보았습니다. 읽은 김에 인용문도 공유합니다.

    사물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다양성이지 통일성이 아니다. 이러한 결론은 게다가 세계와 과학을 언뜻 쳐다만 보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언급에서 도출된다. 어디서나 넘쳐 히를 정도로 풍부한 유례없는 변이와 변조는 사람들이 생물종, 항성계라고 부르는 영원한 유형, 즉 갖가지 종류의 균형체에서 돌출하며, 결국은 그 균형체를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만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물의 원리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데 익숙한 힘이나 법칙은 어디서도 다양성을 끝이나 목적으로 내세우는 것 같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힘이란 법칙에 봉사하는 것이며, 법칙이 모든 현상에 적용되는 것은 그 현상이 변화가 많은 반복이 아니라 완전한 반복인 한에서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분명히 모든 법칙은 주선율主旋律의 정확한 재생산이나 모든 종류의 균형체의 무한한 안정성을 유지해, 그것들의 변질이나 혁신을 막으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우주에 불변적이며 전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법칙, 즉 안정된 균형을 노리는 법칙들만 존재한다면 또한 그런 법칙들이 작용하는 이른바 동질적인 실체들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런 실체에 대한 그런 법칙들의 작용이 어떻게 해서 저 다양성의 장엄한 개화를 낳아 매순간 우주를 젊게 해주고, 또한 저 예기치 못한 일련의 혁명을 일으켜 우주를 변모시킬 수 있겠는가? 아주 작은 장식음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어떻게 해서 저 엄격한 리듬 속에 들어가 세계의 영원한 아리아를 조금이라도 꾸며줄 수 있는가? 모든 것이 동일성에서 나오고 모든 것이 동일성을 목표로 하며 그것으로 향한다면, 우리를 눈부시게 하는 저 다양성이라는 강의 원천은 무엇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사물의 밑바탕이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그렇게 빈곤하고 생기 없으며 무미건조하지 않다는 것이다.
    — 가브리엘 타르드, 이상률, 『모나돌로지의 사회학』, 이책, 89-91쪽

  • 2022-04-04 14:16

    가브리엘 타르드의 멋진 문장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빈곤하며 생기없고 무미건조한 원자들이... 우리 몸을 이루는지.. 우리책 50p 들뢰즈는 에피쿠로스적인 원자가 실존하는지 의심스럽다... 고 합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원자는 개념이 아니라 사실이다... 아래 파일 클릭해서 사진봐주세요. 원자 사진입니다. 모형 아니예요. 발달한 광학렌즈로 찍은 사진이예요. 모나드는 개념이였지만 원자는 개념이 아니예요. 올 겨울 강좌 때 쌤이 얘기한 건데 제 눈으로 확인을 못해서.. 오늘 게릴라 과학세미나팀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 올라온 자료입니다. 그렇다면 이 원자들이 어떻게 결합해서 꽃이 되고 사람이 되는 걸까... 생명현상에 대한 궁금증이 이어지지요^^

    • 2022-04-04 23:21

      원자는 개념이 아니고 사실이다라는 말로 여울아 샘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시간이 나면 얘기해 보시지요. 

      • 2022-04-05 15:30

        [이강영의 덧차원 일기장] 불멸의 원자

        입력
        2012.05.13 12:04
        0

         1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불멸성을 처음 이야기한 것은 기원전 5세기,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였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늘 존재할 따름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애초에 말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에게 있어서 진정한 실재는 전체이고, 하나이며, 불멸의 것이었다. 파르메니데스를 받아들이면서 눈에 보이는 자연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했던 데모크리토스는 이 불멸성을 구체화해서 원자론을 제시했다. 원자론에 따르면, 원자들의 운동에 의해 우리가 보는 많은 현상이 일어나지만, 원자 그 자체는 불멸의 존재다.

        데모크리토스의 불멸의 원자라는 개념은 근대에 이르러 화학의 뒷받침을 받아서 다시 살아났다. 과학자들은 자연에 물질을 이루는 기본 원소가 존재하고, 이 원자들의 결합으로 우리가 보는 다양한 물질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20세기에 들어서 물리학자들은 더 나아가서 구체적인 실체로서의 원자를 발견하고, 심지어 원자의 구조까지 들여다보게 됐다. 현대의 물리학은 원자를 이해하기 위해 발전했고,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세상은 원자를 이해한 결과로 만들어졌다.

        원자는 더 이상 데모크리토스의 개념적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다. 원자는 내부에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물질의 기본 입자가 아니라 기본 입자들이 결합한 상태이며, 더 이상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태어나고 변화하는 존재다. 핵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이 발전함에 따라 오늘날 우리는 가벼운 원자의 대부분이 우주가 탄생했던 빅뱅의 순간에 만들어졌으며, 더 무거운 원자들은 별 속의 핵반응에서, 그리고 아주 무거운 원자들은 초신성이 폭발할 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상해 보자. 오래 전 우주가 아직 어릴 때, 빅뱅에서 만들어진 수소와 헬륨과 리튬 등으로부터 첫 번째 별이 태어났다. 별들은 스스로 핵반응을 통해 무거운 원자들을 만들고, 죽어가면서 원자들을 우주 공간에 뿌렸다. 우주공간에 흩어진 물질들은 뭉쳐져서 새로운 별을 만들고, 그 별은 죽어가면서 다시 원자를 만들어서 내놓는다. 이렇게, 다음 세대의 별은 앞서 죽어간 별들에서 만들어진 바로 그 원자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느끼는 세상 속에서 원자는 사실상 불멸의 존재다. 불 속에서도, 물 속에서도 원자는 변하지도, 소멸하지도 않고 세상을 떠돈다. 심지어 우주 공간에 흩어져 수백만 광년을 날아서 다른 별, 다른 은하에 가더라도, 원자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죽더라도 그 몸을 이루는 원자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신이 땅 속에서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 원자는 흙 속에 있다가 물에 씻겨 바다로 갈 수도 있고 식물에 의해 흡수되어 꽃으로 피어날 수도 있다. 혹은 화장을 하면 원자는 공기 속에 흩어져 지구를 떠돌다가, 사막의 모래가 될 수도 있고, 남극의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의 꼬리가 될 수도 있다. 먼 훗날 태양이 사라지고 지구가 없어지더라도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다시 우주 공간 어디론가 흩어져서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수십억 년 전 어느 별 안에서 만들어져서,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우주 공간에 흩어지거나 적색거성의 표면에서 흩날려서 떠다니다가 서로 만났다. 우리는 언젠가 우주 어디선가에서 일어났던 초신성의 흔적이며, 수많은 별들의 죽음 속에서 태어난 존재다. 우리는 언젠가 죽겠지만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는 언제까지나 남아서 지구 어느 곳인가, 혹은 우주 어느 곳인가에서 또 무엇인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자의 불멸성을 아는 물리학자라고 해도 어떤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 죽음을 슬퍼하는 일은 현재의 물리학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현상이지만, 물리학으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슬픈 것은 슬픈 것이고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그의 몸을 이루던 원자가 세상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물리학자 역시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3년이 지났지만, 한밤중에 문득 눈을 떴다가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망연자실하곤 한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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